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705)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186화
율법(律法)이 없는 세계 (6)
구천지옥으로 향하는 게이트.
과거 일곱 대공의 무기를 모아 만들었던 그 술법은 악마들 중 아몬만이 펼칠 수 있었다.
“게, 게이트를… 만들라는 말씀입니까?”
“그래. 가능한 크게.”
“하지만 대공의 무기 없이는 게이트는….”
아몬이 데굴데굴 눈을 굴리며 말끝을 흐렸다.
“자, 여기.”
강우는 마해(魔海) 속에 잠들어 있는 다섯 개의 대공 무기를 밖으로 꺼냈다.
두 개가 부족하긴 하지만, 그 당시에 비해 비약적으로 마기가 늘어난 만큼 다섯 개로도 ‘술법’을 펼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시간 없으니까 빨랑빨랑 움직이라고.”
빠악!
다시 한번 시원하게 아몬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명했다.
“…….”
바닥에 떨어진 다섯 개의 대공 무기.
마해(魔海)를 통해 강화된 그 무기 안에는 과거 일곱 개가 모였을 때보다도 훨씬 많은 양의 마기가 느껴졌다.
-이 정도라면 술식을 펼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과거 지옥에서 열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균열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아몬은 마왕의 눈치를 살피며 입가를 슬쩍 올렸다.
“흐음, 제가 마왕님의 말을 따라야 할 이유라도 있나요?”
“앙?”
험악하게 눈살을 찌푸리는 강우의 모습을 보고 흠칫 몸을 떨면서도, 재빠르게 눈을 돌려 주변 상황을 살폈다.
“제가 균열을 열지 않으면 좀 곤란한 상황이신 것 같은데… 부탁하시는 태도가 너무 강압적인 것 아닙니까?”
“푸흐흐!! 수 쓰네, 이 새끼.”
같잖다는 듯, 강우는 어깨를 들썩였다.
“토사구팽을 당하지 않으려면 이런 수라도 써야죠.”
“뭐, 꼴에 머리는 열심히 굴린 것 같은데.”
상대를 잘 못 골라도 한창 잘못 골랐어.
-턱.
“그 흉측하게 굽은 등이 네 콤플렉스였지?”
아몬은 굽은 허리를 감추기 위해 너덜너덜한 로브를 평소에 뒤집어쓰고 다녔다.
“갑자기 등은 왜….”
“내가 그 콤플렉스를 해결해줄게!”
“…뭐?”
아몬이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듯 가늘게 눈을 떴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의 양팔을 뒤에서 잡아당기며, 발을 들어 굽은 등에 가져다 댔다.
“자, 잠깐…!”
무슨 짓을 하려는지 눈치챈 듯, 아몬이 다급히 외쳤다.
“굽은 등은 건강에 좋지 않아요!!!!”
무시했다.
“머, 멈춰!!! 멈추란 말이다아아아아!!!”
“척추의 요정 오강우!!!!”
굽은 척추를 활짝 펴 줄게요!!
-우드드드드득!!!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끔찍한 비명이 고막을 때렸다.
움켜쥔 아몬의 두 팔을 잡아당기며 발에 힘을 싣자, ‘⊃’자로 굽혀 있던 아몬의 허리가 ‘⊂’형태로 뒤집혀 버렸다.
“아아아아아아아니이이이이이이!!!!! 허리가 반대로 접혔잖아아아아아아아!!!!”
“커헉!! 컥!!!”
“척추의 요정은 굽은 등을 용서하지 않아욧!!!!”
반대로 뒤집힌 그의 허리를 다시 원래 형태로 접었다.
-파작.
“어?”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팔을 잡아당기는 것을 멈추고 자세히 살펴보니,
“X됐네 이거.”
개작살난 척추가 등가죽을 뚫고 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크륵, 크르륵.”
아몬이 눈을 까뒤집으며 거품을 흘렸다.
“야, 야야!! 정신 차려 인마!!!”
숨 쉬어!
뒤지면 안 돼!!!!
다급히 아몬에게 재생의 권능을 사용했다.
아작났던 그의 척추뼈가 시간을 되감기라도 한 듯 빠른 속도로 재생됐다.
“휴우.”
척추의 요정으로서는 절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는 광경.
가슴을 쓸어 내밀며 숨을 헐떡이는 아몬의 어깨를 짚었다.
“자, 내가 진짜 정중하게 부탁할게. 응? 게이트 한 번만 열어주라, 인마.”
환하게 웃으며 친근하게 어깨 위에 팔을 걸쳤다.
아몬은 망가진 목각인형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으, 으으.”
아몬은 벌벌 몸을 떨며 바닥에 놓인 다섯 개의 무구(武具)를 향해 손을 뻗었다.
“ZAZAS ZAZAS NASATANADA ZAZAS.”
-쩌적, 쩌저적!!
술법이 시작되며 허공에 불길한 검은 균열이 달렸다.
“하아, 하아, 안… 돼.”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헐떡이던 아카르트가 천칭을 움켜쥔 채 다급히 앞으로 나섰다.
그의 앞을 근육질의 붉은 악마가 막아섰다.
“술법이 모두 끝날 때까지, 여길 지나갈 수는 없다.”
쿠구구궁!!
가볍게 발을 굴러 대지에 깊은 표식을 남겼다.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아카르트는 가늘게 눈을 뜨며 발록을 노려보았다.
크흐흐! 발록은 어깨를 들썩이며 호탕하게 웃었다.
“뭐, 막기는 힘들겠지.”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아카르트다.
태초에서 탄생한 거인.
아무리 발록이 터프하다고 해도 단신으로 티탄을 막아설 수는 없었다.
“평소라면, 말이지.”
“…….”
아카르트는 지쳐있다.
당장에라도 쓰러질 듯, 위태롭게 비틀거리고 있다.
“어디 한 번 그럼.”
아카르트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천칭을 들어올렸다.
“━막아 보시죠!!”
콰앙!
거칠게 발을 박차며 발록을 향해 쏘아졌다.
“패왕갑(霸王鉀).”
철컥, 철컥!
검은 갑주가 발록의 몸 전체를 뒤덮었다.
-쿠우우웅!!!
발록과 아카르트가 격돌하며 자욱한 먼지가 피어올랐다.
“야, 시간 없어. 빨리.”
둘의 전투를 지켜보던 강우가 주문을 외우고 있는 아몬의 옆구리를 툭 쳤다.
아몬은 덜덜 고개를 떨면서 주문을 영창하는 속도를 높였다.
-쩌적, 쩌적.
허공에 거미줄과 같은 검은 균열이 점차 그 범위를 넓혔다.
유리창이 깨지듯, 무언가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검은 균열을 통해 흘러들어오는 짙은 마기.
“하아.”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익숙한 기운에 강우는 달뜬 한숨을 내쉬었다.
“크아아아앙!!!!”
점차 범위를 넓혀가는 검은 균열 사이로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튀어나왔다.
3미터에 달하는 덩치.
매끄러운 검은 털과 입가에 넘실거리는 불꽃.
일천지옥(一天地獄)의 최고위 포식자.
“헬 하운드라.”
피식. 강우는 실소를 흘렸다.
이래저래 자신과 인연이 많은 마물이다.
물론 처음 마주쳤을 때의 그 위압감은 이제는 온 데 간 데도 느껴지지 않지만.
-꾸르르륵.
“크르륵?”
낙원의 바닥을 뒤덮고 있는 검은 점액질들이 헬 하운드를 향해 움직였다.
콰드드득! 콰득!!
“크허어어엉!”
굶주린 아귀가 먹잇감을 포식하듯, 솟구쳐 오른 검은 점액질이 헬 하운드의 몸을 가볍게 씹어 삼켰다.
메말라 붙어 바닥을 드러내는 마해에 한 방울의 마기가 떨어졌다.
마해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지만━
“으음? 여기는…?”
“크읏!! 제길!! 여긴 어디야?!”
점차 범위를 넓혀가는 균열 속에서, 악마와 마물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게이트를 통해 낙원과 구천지옥이 뒤섞이고 있었다.
-꾸르르르르륵!!
“…어?”
“뭐, 뭐야 이거!!!”
균열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악마들의 몸을 검은 점액질이 휘감았다.
악마들은 당황하며 몸을 비틀었지만, 항거할 수 없는 힘으로 몸을 붙든 채 다가오는 날카로운 이빨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콰득!! 콰드드득!! 콰자자자작!!
“하아. 그래, 이거지.”
게이트 너머로 쏟아지는 수백, 수천의 악마들.
순식간에 뻗어 나간 마해가 게걸스럽게 그들의 육체를 씹어 삼켰다.
-메마른 바다.
한 방울, 두 방울.
포식의 권능으로 흡수한 마기가 메마른 바닥을 조금씩 적시며, 채우기 시작했다.
“아, 안 돼…!”
아카르트는 창백한 표정으로 외쳤다.
균열 너머로 쏟아지는 악마들을 먹어치우며, 점차 힘을 회복하고 있는 마왕의 모습을 부릅뜬 눈으로 바라보았다.
“머, 멈춰….”
이대로라면, 자신은.
구원을 애타게 기다리는 영혼들은.
“멈춰어어어어어어!!!”
“크읏!!!”
파각!!
황금빛 천칭이 섬광이 되어 휘둘러졌다.
반사적으로 팔을 교차해 막은 발록의 두 팔이 갑주째로 산산이 터져 나갔다.
분수처럼 솟구치는 검은 피.
“크하하하하하!! 좋구나!!!”
두 팔을 타고 전해지는 아찔한 고통을 느끼며, 발록은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패왕갑의 특성은 피를 흘리면 흘릴수록 강해진다는 것.
-치이이이익!!!!
갑주 사이로 흰색 증기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비켜!!!!”
“내가 말하지 않았나!!”
쿠웅!!!
거칠게 발을 구르며 허리를 숙였다.
“술법이 모두 끝날 때까지!!!!”
두 팔을 잃어버렸다면, 몸으로 막으면 그만일 뿐.
마치 황소가 돌진하듯 피 분수가 쏟아져 나오는 어깨를 내밀며 질주했다.
“━여길 지나갈 수는 없다고!!!!”
“크윽… 제길!!!”
콰아앙!!
강우 쪽을 향해 달려가려던 아카르트에게 발록이 돌진했다.
자신이 쏟아낸 피를 머금어 한층 더 단단해진 패왕갑이 새하얀 증기를 뿜어냈다.
“【패왕의 천력】.”
낮게 깔리는 목소리와 함께 근육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하나의 포탄이 된 그의 육체가 아카르트의 옆구리를 거칠게 들이박았다.
-뻐어어억!!
“크으으윽!!”
전력을 쏟아부은 돌진.
하지만 뒤로 튕겨 나간 것은 거세게 들이박은 발록 쪽이었다.
발록의 어깨가 처참히 짓뭉개지며 뒤로 튕겨 나갔다.
단단한 철문에 돌덩어리를 집어 던진 듯한 모습.
혼신의 힘이 담긴 그의 숄더 어택은 아카르트를 쓰러트리지 못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크윽….”
그를 두, 세 걸음 뒤로 물러나게 만드는 것에 그쳤다.
“크흐흐흐흐!!!”
바닥에 쓰러진 채, 발록은 핏물 섞인 웃음을 터트렸다.
“과연, 이게 태초의 거인이 지닌 힘인가.”
압도적이라는 표현 외에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이런 괴물을 상대로 대등하고 싸우고 있는 강우가 새삼 경이롭게 느껴졌다.
“그래도….”
-쩌적, 쩌저저저저저저적!!!!
구천지옥과 낙원을 잇는 균열.
검고 불길한 그 균열이 낙원 전체로 범위를 넓혀가는 것이 보였다.
유리창이 깨지듯, 낙원의 하늘이 검은 균열로 뒤덮였다.
무너진 균열 사이로 셀 수 없는 악마와 마물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이제는 막을 수 없다.
낙원과 구천지옥은 완전히 뒤섞여, 하나의 세계가 되어버렸다.
발록의 입가가 씨익 올라갔다.
“어떻게 목적은 달성한 것 같군.”
애초에 그의 목적은 낙원과 구천지옥을 잇는 술법이 끝날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
단단한 철문을 부수는 것이 아닌, 살짝 우그러트리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아, 안….”
아카르트가 다급히 손을 뻗었다.
하지만,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 정도로 커진 균열을 닫는 것은 아무리 티탄이라도 불가능하다.
-루케오 푸레. 그가 애정을 가득 담아 만든 이 아름다운 세계는.
지금 이 순간에,
지금 이 시점으로,
지금 이때를 기점으로,
멸망했다.
“자, 그럼.”
비처럼 쏟아지는 악마들 사이, 악마들의 왕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마지막 페이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