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709)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190화
율법(律法)이 없는 세계 (10)
“크윽, 카학!”
타들어 가는 의식.
후들거리는 다리가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꺾인다.
“크윽.”
억지로 다리에 힘을 주며, 낮은 신음을 흘렸다.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거냐.]빛의 거인이 차갑게 물었다.
입술을 짓씹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좆까, 이 새끼야.”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파르르 떨리는 팔에 힘을 줬다.
손바닥과 이어진 검은 점액질이 점차 옅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카르트를 구속하는 이 끈이 끊어지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파국(破局)이 일어난다.
‘균열.’
방금 전 떠올린 방법을 머릿속에 정리했다.
-과연 가능할까?
사고(思考)의 꼬리를 물 듯 의문이 떠오른다.
고개를 돌려 의문을 지워냈다.
‘가능할지 말지, 따져봤자 아무 의미 없어.’
어차피 여기서 하지 못하면 아카르트를 막을 수 없다.
그렇다면 해보는 수밖에.
-쩌적! 쩌저적!!
아카트르가 조금씩 몸을 움직일 때마다 점차 넓게 벌어지는 균열.
점멸하는 의식 속에서, 그 균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예전에 한 번, 해본 적 있잖아.’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질 정도의 과거.
그래, 아마 일본에서 만난 어떤 정신 나간 악마교 놈들이 지구에 리리스를 소환하려고 했을 때였을 것이다.
-구천지옥과 이어진 균열.
그때, 자신은 리리스가 지구로 넘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억지로 균열을 닫아버린 적이 있었다.
물론 그때 막은 줄 알았던 것은 착각이었고, 리리스는 지구에 넘어와 쿠로사키 유리에의 몸에 빙의하고 말았지만.
‘중요한 건.’
균열을 닫았을 때 당시, 자신이 균열을 이루고 있는 힘을 포식의 권능으로 ‘흡수’했다는 사실.
‘포식의 권능으로, 균열을 먹어치울 수 있어.’
물론.
‘…그때랑 상황이 많이 다르긴 하지만.’
사실 ‘많이 다르다’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때는 고작해야 리리스 하나가 넘어올 수 있는 균열이었고, 지금은 세계 전체가 뒤섞일 수 있는 거대한 균열이다.
컵에 뚫린 구멍에서 새어 나오는 물 정도는 마실 수 있지만, 댐에 뚫린 구멍에 쏟아지는 물을 마실 수 없듯.
지금 그의 힘으로 균열을 먹어치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가능성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확률을 따질 때가 아니다.
하지 못하면, 죽는다.
‘아니.’
차라리 자신만 죽는 거라면 상관없다.
마치 영웅 만화의 한 장면처럼, 나 하나의 희생으로 모두를 구할 수 있는 단순한 상황이었다면 오히려 고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편리하지 않다.
간단하고, 단순하지 않다.
목숨을 불사르며 희생을 해도, 돌아오는 건 그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개죽음뿐.
이겨야 한다.
멈춰서는 안 된다.
타협해서는 안 된다.
그 순간,
자신은 모든 것을 잃는다.
-꾸르르륵.
점액질의 극히 일부를 떼어 아카르트가 잡아 벌리고 있는 균열에 가져다 대었다.
검은 점액질에서 나타난 날카로운 이빨이 균열을 씹어 삼켰지만, 이내 힘의 격류를 이기지 못하고 산산이 터져 버리고 말았다.
‘역시.’
이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역부족인 정도가 아니라, 터무니없는 정도다.
“그렇, 다면….”
균열 밖으로 내보냈던 심연의 군세들을 불러들여 균열을 먹어치우는데 힘을 보탰다.
거대한 암석들이 떨어지며 지구의 피해가 커지긴 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이름 모를 지구의 누군가가 뒤지는 것보다, 지금 이곳에서 그의 소중한 이들이 죽는 게 더 큰 문제였으니까.
[아, 으아.] [머, 먹어.] [모조리, 먹어, 치워….] [우리가… 당했던, 것, 처럼.]수백, 수천만에 달하는 악마의 무리가 개미처럼 달라붙어 균열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하.]그 광경을 본 아카르트는 헛웃음을 흘렸다.
[생각해냈다는 방법이라는 게 이런 거였나.]아카르트가 가소롭다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한 번 열린 균열은, 설사 티탄이라고 해도 닫을 수 없다고.]“그래, 그러, 니까…!”
까드득.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말을 이었다.
“모조리… 뜯어 먹어버리면, 되는, 거지…!”
[…그게 가능하리라 생각하는가?]아카르트는 한심하다는 듯 강우를 노려보았다.
[세계와 세계를 잇는 통로를 뜯어 먹겠다고?]말도 안 되는 헛소리다.
아무리 마해(魔海)가 태초에서 탄생한 어둠이라 할지라도, 균열 자체를 먹어치울 수는 없다.
[아니, 설사 네놈에게 균열을 먹어치울 수 있는 힘이 있다 해도.]이건 스케일이 다르다.
지구의 반 이상을 뒤덮은 균열.
두 개의 별을 잇는 통로.
이 거대한 균열을 ‘먹어’서 없앤다고?
[비참한 발악이로구나.]“닥, 쳐…!”
하아, 하아.
거친 숨을 헐떡이며 정신을 집중했다.
개미 떼처럼 균열에 달라붙은 심연의 군세들을 통해 포식의 권능을 사용했다.
하지만.
[아, 아아.] [크륵, 크르르륵!] [커흑!]터져 나오는 신음.
균열에서 흘러나오는 거대한 힘을 견디지 못한 심연의 군세들이, 하나둘씩 쓰러져가는 것이 느껴졌다.
“…크읏!”
거칠게 입술을 짓씹으며 포식의 권능을 통해 들어오는 힘을 몸속으로 받아들이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커헉! 컥! 우웨에에에에엑!!!”
검은 점액질을 토해냈다.
한 번에 몰려든 아득한 힘의 격류에, 그 힘을 마해로 흡수할 틈도 없었다.
-터무니없는 힘.
마해(魔海)조차 담을 수 없는 거대한 힘의 덩어리가 전신을 헤집었다.
“아, 으아.”
입이 쩍 벌어진다.
내부를 헤집는 거대한 압력에, 치아가 밖으로 밀려 나와 우수수 떨어진다.
입에서, 코에서, 귀에서.
검은 핏물이 쏟아지듯 흘러내린다.
‘아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단 한 가지의 생각.
내부에 자리 잡은 무언가를,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무언가가 밖으로 밀어내는 감각은 너무나 낯설고, 고통스러웠다.
툭, 투둑.
눈알이 밖으로 빠져나와 바닥을 구른다.
뜨거운 물이 끓듯, 피부가 부풀어 오른다.
‘아파, 아파, 아파.’
타들어 가는 의식의 끈을 필사적으로 잡는다.
풍선처럼 터지려는 몸을 처절하게 억누른다.
내부로 흘러들어오는 균열의 힘을 마해에 녹여낸다.
그 덕분일까, 마해가 차오르며 망가졌던 육체가 재생한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힘의 격류가 몸을 헤집는다.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재생됐던 육체가 내부를 휘젓는 압력에 다시금 붕괴했다.
찢어지고, 찢겨졌다.
‘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
너무 아파서, 고통스러워서, 괴로워서.
미쳐버릴 것 같아.
‘대체, 언제쯤 끝나는 거야.’
왜 끝나지 않는 거야.
먹고, 먹고, 먹고, 먹고, 계속 먹어치워도.
왜 줄어들지 않는 거야.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쿠륵, 쿡, 커흐, 으.”
뜻을 알 수 없는 신음이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다.
처음 개문(開門)을 했을 때 느꼈던 고통이 이랬을까.
아니면, 심연(深淵) 속에 갇히게 됐을 때 고통이 이랬을까.
‘아냐.’
그때와 비교할 수 없다.
그때와 비유할 수 없다.
한 번도 겪은 적 없던 통증의 해일이 몸을 달린다.
세포 하나, 하나가 풍선처럼 터지는 듯한 감각.
“아, 으, 아아.”
마해가 균열을 흡수할수록 그의 힘이 강대해진다.
강대해진 힘이 더 빠르게 몸을 재생시킨다.
재생된 몸이 더 많은 균열을 흡수한다.
-투둑, 툭. 콰득. 콰자작!!
10초에 한 번, 5초에 한 번, 1초에 한 번.
그의 육체가 재생되고, 찢겨 나가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점차 짧아진다.
통증의 해일이 커져간다.
범람하고, 요동친다.
“커헉! 크학! 우웨에에에에엑!!”
대체언제까지계속되는거야미칠것같아살려줘너무아파너무아파서미쳐버릴것같아제발제발제발제발그만해이제끝날때도됐잖아이정도면충분히많이먹었잖아왜안닫히는거야얼마나더견뎌야하는거야얼마나버텨야하는거야이제그만해다필요없어임자도시훈이도연주도리리스도발록도에키드나도필요없어다죽어도괜찮아제발날여기서벗어나게해줘이고통을멈춰줘.
[…악마의 왕이여.]빛의 거인은 안쓰러운 눈으로 강우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그만해라.]달콤한 속삭임이 아니다.
그는 진심을 담아 말을 이었다.
[여기까지 했으면, 충분하다.]차고 넘친다.
그는 이미 그 누구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몸으로 받아냈다.
[너는… 최선을 다했다.]아카르트조차 진심 어린 경의(敬意)를 표할 정도로, 그는 이미 셀 수 없는 한계를 극복했다.
“충분, 하다, 고?”
더듬더듬.
어눌한 발음으로 입을 연다.
충분하다.
최선을 다했다.
그 말이, 더없이 달콤하게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그래. 비록 1푼에 불과하다고 해도, 설마 진짜로 균열을 먹어치울 줄이야.]1푼.
100분의 1.
“━아.”
강우의 눈빛에 절망이 번진다.
그렇게 고통스러웠는데, 그렇게 미칠 것 같았는데.
고작, 그 정도밖에 먹지 못했다니.
앞으로 아흔아홉 번을 더 견뎌내야 한다니.
“아, 으.”
딱딱딱.
이가 부딪친다.
그것도 잠시, 내부의 압력에 치아가 우수수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악마의 왕이여… 아니, 오강우 씨.]빛의 거인의 말투가 변했다.
태초의 빛을 해방하기 전, 새하얀 청년의 모습이었을 때의 말투로.
[사실… 당신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호소하듯 묻는다.
“…뭘, 알아.”
[지구의 멸망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물론 이번에는 제가 의도적으로 균열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하지 않았어도.]아카르트는 슬픔이 가득한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결국은, 지금과 같은 일이 생길 겁니다.]지구의 율법(律法)은 망가졌다.
별을 보호하고 있는 껍데기가 부서진 것이다.
등딱지가 부서진 거북이가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가죽이 벗겨진 짐승이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런 일이 한 번, 두 번으로 끝날 거라 생각합니까?]“…….”
외계에 어떤 생명체가 사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외계(外界)’ 그 자체가 운석처럼 지구에 충돌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일이, 계속해서 일어난다면.
[당신이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외면하려고 해도, 믿지 않으려고 해도.]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율법(律法)이 사라진 세계의 마지막은 참혹한 종말(終末)뿐입니다.]사형을 선고하는 판사처럼,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이 하는 짓은… 천명(天命)을 맞이한 노인에게 산소호흡기를 붙여 억지로 살려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많은 희생을 치른다고 해도, 끝없는 고통 속에 몸부림친다 해도.]당신은.
[종말을 막을 수 없습니다.]율법이 사라진 세계.
외계(外界)와의 경계가 허물어진 세계.
그 세계의 종말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미 결말이 지어진 이야기의 페이지를 넘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중간에 어떤 이야기를 새롭게 짜 넣는다고 해도, 그 이야기의 에필로그는 이미 정해져 있다.
[왜… 왜 모르시는 겁니까.]사실, 알고 있었다.
[이미… 이미 다 끝난 이야기란 말입니다.]아카르트의 말이 옳다는 것을.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지구는 멸망한다.
만약 아카르트가 이번에 균열을 만들어내지 않았다고 해도, 언젠가는 이번과 같은 일이 또 벌어질 것이다.
그것이━ 율법(律法)이 망가진 세계의 말로(末路).
‘그래, 사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잖아?’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
바울리의 것도 아닌, 아카르트의 것도 아닌.
자신의 목소리.
‘여기까지 하자.’
미칠 듯이 아프잖아?
아파서, 아파서, 아파서.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잖아?
‘난 최선을 다했어.’
충분히 노력했어.
이 정도 했으면 괜찮잖아?
누구도 나한테 뭐라 할 수 없어.
‘나도 막고 싶었다고.’
하지만 뭐 어쩌라고? 나한테 더 이상 뭘 하라고?
이 미친 짓을 백번이나 반복할 수는 없잖아.
‘임자도, 시훈이도, 연주도 다 이해해 줄 거야.’
오히려 잘했다며, 충분하다며 위로해 줄 거야.
왜냐하면,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내쉰다.
비틀비틀, 두 다리가 후들거린다.
고개를 들어 허공을 가로 짓고 있는 균열을 살핀다.
1푼이라도 줄어든 게 맞긴 한 걸까?
거미줄처럼 그어진 균열은 처음 그 모습과 똑같았다.
변하지 않았다.
“이미 다… 끝난, 이야기, 라고?”
한 걸음.
발걸음을 옮긴다.
앞으로, 앞으로.
균열로 다가가 입을 쩍 벌렸다.
-콰득.
균열을 한 입 크게 베어 문다.
아득한 힘의 격류가 몸을 헤집는다.
육체가 재생되고, 파괴되기를 반복한다.
“그렇, 다면.”
다시 한번, 균열을 베어 문다.
통증의 해일이 전신을 헤집는다.
“그게 율법이 없는 세계의 말로라면.”
그 끝에 있는 것이 종말뿐이라면.
그렇다면.
지금부터.
지금 이 순간부터.
지금 이 시점부터.
내가,
“━내가, 이 세계의 율법(律法)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