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71)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72화
짧은 휴식(1)
“당했군.”
어두운 방 안. 수정 구슬을 바라보고 있던 사내의 입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붉은 악마 가면을 쓴 사내는 아무 감정이 담기지 않은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검은색 로브를 입은 사제들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소환 성공을 축하드립니다.”
“이번에 교단에서 추가적인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지원만 받으면 이제 본격적인 계획을 실행에 옮길 수 있을 겁니다.”
사제들은 입을 모아 악마 소환의 성공을 축하했다. 붉은 악마 가면의 사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구체적인 지원은 어떻게 되지?”
“마기를 응축시킨 마정(魔晶)입니다. ‘계획’은 물론 추기경님의 힘을 더욱 증폭시키기에도 충분한 분량입니다.”
“좋군.”
가면의 사내는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주어질 힘에 대한 강한 열망이 녹아내려 있었다.
결과야 어떻게 되었든 소환 자체는 성공적이었다. 교단이 제시한 조건을 만족한 셈. 그에 따른 보상을 받는 것은 당연했다.
‘이렇게 허무하게 당할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구슬을 통해 본 영상을 떠올렸다.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애초에 소환을 하는 것 자체에 중점을 두기는 했지만 설마 이 정도로 쉽게 악마가 제압당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적어도 화랑부대에 큰 피해를 주길 바랐는데.’
화랑부대와 악마교에 가담하지 않은 대형 길드는 앞으로 한국이라는 나라를 집어삼킬 그의 계획에 방해가 되는 존재들이었다.
이번 기회에 그 세력에 피해가 있길 바랐던 것이 솔직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기껏 소환한 악마는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더니 그대로 죽어버리고 말았다.
‘대체 왜 악마가 그런 행동을 한 거지.’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처음에 의기양양하게 등장한 것도 잠시, 소환된 악마는 갑작스럽게 불에 덴 짐승처럼 꽁무니를 말고 겁에 질리기 시작했다.
그가 예상했던 악마의 행동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차연주 때문인가?’
동굴에 도착한 플레이어 중에 가장 강력한 플레이어는 단연코 레드로즈 길드의 길드장 차연주였다.
“…….”
고민을 이어가던 가면의 사내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차연주는 그도 몇 번 마주친 적 있는 플레이어였다.
강한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었지만 악마가 공포에 질려 벌벌 떨 정도로 특출하게 강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설사 그렇게 강하다고 하더라도 자존심 덩어리라 할 수 있는 악마가 싸워보기도 전에 그렇게 공포에 떠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뭔가 있어.’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가 모르는, 무언가 결정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구슬을 통해 본 영상만으로는 그 이유에 대해서 알 수 없다는 사실.
‘마지막에 낫을 들어 공격한 그놈인가?’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청년의 모습이 떠올랐다.
강우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의 정체에 대해서는 그도 미리 전해들은 바가 있었다.
레드로즈 길드가 밀어주고 있는 루키. 상당한 재능을 가졌다고 은밀하게 소문이 돌기 시작한 플레이어.
“흠….”
사내의 입에서 짧은 침음이 흘러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루키는 루키였다. 레드로즈가 그를 지원해준지 한 달이 이제 막 지나고 있을 뿐이니 강해져 봤자 그 한계가 있었다.
‘모르겠군.’
어째서 악마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확인해 봐야겠어.’
사내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추기경님 다른 소식이 하나 더 있습니다.”
“말해라.”
“월드 랭커들이 움직일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
사내는 ‘월드 랭커’라는 단어에 거칠게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들이 움직인다는 사실이 아닌, 월드 랭커라는 칭호 자체에 분노한 것 같은 모습.
“흐음.”
분노는 잠시였다. 사내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최근 한 달 사이 차원의 벽이 급격히 약해지면서 악마교의 활동은 엄청나게 활발해졌다.
그에 따라 다른 놈들이 움직이는 것은 필연이었다.
“교단에서 지시는?”
“딱히 없습니다.”
“없다, 라….”
사내는 흥미롭다는 듯이 눈을 빛냈다. 지금 상황에서도 지시가 없다는 얘기가 의미하는 것은 한 가지였다.
“서둘러야겠군. 계획은 그대로 진행한다. 우선은 엘 쿠에로부터 시작해.”
그의 입에서 수원 S급 게이트에 서식하는 보스 몬스터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예!”
머리를 조아린 사제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답했다.
* * *
악마 소환 사건이 일어난 후, 강우는 에키드나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차연주와 백화연은 극구 반대했기에 함께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니 김시훈을 병원에 데려다주고 온 한설아가 있었다.
한설아만이 아니었다.
은비와 태수도 함께 있었다.
그들은 강우에 대해서 굉장히 물어볼 것이 많다는 눈빛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내일 시훈 씨의 병문안을 가서 말해줄게.”
이미 사건에 한 다리 걸친 그들에게 더 이상 숨기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다음날 강우는 김시훈이 입원한 병원에 가서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그가 레드로즈 길드의 후원을 받고 있는 플레이어이며, 악마교라는 정체불명의 집단이 국내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김재현과 김영훈이 그 악마교에게 제물을 공급하고 있다는 것까지.
“그렇다면… 강우 씨는 제 소문을 듣고 일주일 동안 제 주변에 잠복해 있으셨다는 말씀입니까?”
“예. 처음 소문을 듣는 순간 그게 시훈 씨에 대한 얘기라는 걸 알았거든요.”
“어디서 그런 소문이….”
“플레이어들의 세계는 좁으니까요. 그리고 저희 파티의 경우 굉장히 눈에 띄는 외모의 사람이 많습니다. 소문이 나지 않는 게 이상하죠.”
강우는 태연한 표정으로 답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김시훈을 미끼로 사용하기 위해 은밀하게 소문을 뿌린 것이 자신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지금 내뱉는 말은 대충 생각나는 말을 입에 담은 것뿐이었다.
‘틀린 말도 아니니까.’
소문을 퍼뜨린다는 계획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일단 김시훈 파티가 남들과는 다른 차별점이 확실히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 김시훈 파티는 그런 소문이 오히려 부족할 정도로 재능 있고, 눈에 띄는 파티였다.
“미리… 말씀해 주셨으면 안 됐나요?”
한설아는 조금 슬프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강우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숨기고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은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아마 이번 일만이 아닐 거야.’
그녀는 지금도 강우가 더욱 많은, 거대한 비밀을 품고 있을 거라고 직감했다.
어쩐지 바로 옆에 있는, 심지어 함께 살기도 하는 강우와 자신의 거리가 도저히 손을 뻗을 수 없을 정도로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쓸한 감각이 그녀의 가슴속에 차올랐다.
“걱정시켜서 미안해.”
“아….”
한설아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조금의 변명도 없는 그의 사과에 도리어 죄책감까지 느껴졌다.
“아, 아니에요. 제가 뭐라고 강우 씨에게 그런 말을…. 강우 씨도 사정이 있으실 텐데.”
“그래도 한 식구를 걱정시킨 건 사실이잖아. 앞으로 절대 이런 일 없을 거라는 말할 수는 없지만… 나도 되도록 노력할게.”
“그, 그런! 노력이라뇨! 그, 그….”
한설아는 터질 듯이 붉어진 얼굴로 말끝을 흐렸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입가에 힘을 주지 않으면 바보처럼 웃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가 말해준 식구, 라는 단어가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고마워요.”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 묘한 핑크빛 분위기가 둘 사이를 채웠다.
“강우, 이거 까줘.”
에키드나가 뚱한 표정으로 그의 무릎 위에 앉았다.
그녀는 병문안을 올 때 사온 귤을 그에게 내밀었다.
강우는 피식 웃으며 귤을 잡아들었다.
“형님, 그 악마교 놈들은 어떻게 됐소?”
“일단락이라고 해야 할까. 아직 우두머리로 보이는 놈은 못 잡았어.”
“허…. 진짜 사람을 납치해서 막 제물로 바치고 그러는 거요?”
“너도 그놈들에게 당할 뻔했잖아.”
“천인공노할 놈들!”
태수는 성난 표정으로 발을 굴렀다. 안 그래도 무섭게 생긴 태수가 표정을 일그러뜨리니 꿈에서 나올 법한 악귀의 얼굴이 되었다.
‘너 사람 아니지.’
강우는 입 밖으로 나오려는 말을 다시 삼켰다.
“여하튼 앞으로 사냥을 나갈 때 주의를 기울여 줘. 언제 또 그놈들이 습격할지 알 수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자, 이거 하나씩 받고.”
강우는 차연주에게 받아온 동그란 구슬 4개를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강우 오빠?”
“게이트 안에서 밖으로 연락할 수 있는 구슬이야. 위급하면 바로 연락해.”
“감사합니다, 강우 씨.”
김시훈은 그의 세세한 배려에 감동을 받았는지 손에 쥔 구슬을 힘 있게 움켜쥐었다.
“강우 씨,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거라면 대답해드리겠습니다.”
“…김영훈과 김재현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둘 다 평생 감옥에서 썩을 겁니다.”
“…….”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무리 유전무죄라고는 해도 이번에 그들이 한 짓은 돈으로도 비벼볼 수 없는 짓이에요.”
플레이어들을 납치해, 사이비 교단에 제물로 팔아버렸다.
물론 돈으로 증거인멸을 시도하겠지만 그 정도도 대처하지 못할 강우가 아니었다.
‘증거가 필요하면 억지로라도 만들어 주지.’
강우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본의 아니지만 시훈 씨의 사정에 대해서도 좀 들었습니다.”
“아….”
“김재현 측이 손을 써서 막대한 빚을 지게 만들었더라고요. 그 부분에 대해서도 충분한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말해두겠습니다. 그리고 어머님께서 편찮으신 것 같은데 최고의 시설에서 치료받으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강우 씨….”
김시훈은 큰 충격을 받은 듯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한 줄기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흐, 윽. 강우 씨는 제 은인입니다.”
‘그런 말 하지 마. 괜히 죄책감 들잖아.’
강우는 김시훈을 습격해 사역마로 만들어 버린 것을 떠올리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강우 씨는… 정말 좋은 사랍니다.”
‘그만 하라고.’
“제가 강우 씨를 만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습니다.”
‘미안해, 내가 잘 못했어. 지금 생각해 보면 사역마로까지 만든 건 좀 너무 했던 것 같아.’
“앞으로 저도 태수 씨처럼 강우 씨를 형님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나한테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죄책감에 불타버릴 것만 같았다.
그가 아무리 계산적이고, 냉정하다고 하지만 모든 감정이 메마른 것은 아니었다.
‘뭔가 엄청난 쓰레기가 된 기분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