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710)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191화
종막(終幕)
[━뭐?]거인의 눈빛에 파란(波瀾)이 일었다.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었다는 듯, 그의 입가가 쩍 벌어졌다.
아니, 실제로 그는 방금 전 논리에 맞지 않는, 이치에 맞지 않는 헛소리를 들었다.
[네가 율법이 되겠다니… 대체 무슨 소리냐.]“빡, 대가리, 새끼가… 한 번, 말하면, 알아, 들어라.”
더듬거리며 기계적으로 균열을 씹어뜯는다.
균열의 힘이 해일처럼 몰려들 때마다 육체가 파괴되고 재생하기를 반복한다.
죽음과 같은 고통 속에서, 절망과 같은 격통 속에서.
그는 환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율법의, 역할이… 쿨럭! 카학! 외, 계와의, 통로를… 닫는 거, 라면.”
그 통로를 뜯어먹어 강제로 닫아버리는 것 또한 율법의 한 종류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아카르트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균열을 한 입씩 베어 물고 있는 강우를 내려다보았다.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 말입니까?]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터무니없을 정도로 거대한 균열.
개미처럼, 아니 개미조차 되지 못한 벌레처럼 그를 갉아 먹어가는 마왕의 모습.
무모(無謀)하고, 무지(無智)하게까지 느껴지는 발버둥을 바라보며, 전율에 떨었다.
대체 어떤 정신 구조를 가지고 있어야, 저런 모습으로 포기하지 않는다는 헛소리를 지껄일 수 있단 말인가.
미지(未知)의 무언가를 마주한 공포가 등골을 타고 퍼진다.
[당신, 은.]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
균열을 뜯어먹는데 신경이 쏠렸기 때문일까, 몸을 단단히 구속하고 있던 검은 점액질의 힘이 약해져 있었다.
[대체….]아연한 말끝을 흐린다.
-너는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불현듯, 전투에 앞서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무것도 모른다.
그가 누구인지, 무슨 일을 겪었으며,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자신은 알지 못한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실제 아카르트는 ‘오강우’라는 존재가 누구인지는 잘 알지 못하니까.
그가 알고 있는 것은 그가 태초에서 탄생한 두 어둠 중 하나인 ‘마해(魔海)’를 몸에 지니고 있다는 사실.
그래.
그에게 있어 오강우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마해를 품고 있는 존재’에 불과했다.
마해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가치도, 의미도, 관심도 없는.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게 맞았군요.]아카르트는 거칠게 입술을 짓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당연히 떠올려야 할 의문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지극히 단순한 사실을 무시하고 있었다.
‘애초에.’
대체 왜, ‘오강우’에게 마해가 있었는지.
태초에서 탄생한 티탄도 아닌, 태어날 때부터 신성(神性)을 지니고 있는 초월자들이 아닌.
한낱 인간 출신 악마의 품속에 태초의 어둠이 자리 잡고 있는 건지.
‘마해가… 중요한 게 아니었어.’
순서가 잘못됐다.
인과(仁果)가 반대됐다.
마해(魔海)가 오강우의 몸속에 자리 잡은 것이 아니다.
오강우란 존재가, 마해를 ‘자리 잡도록’ 만든 것이다.
‘대체 어떻게?’
마해(魔海)를 제쳐두고, 그가 지닌 무수한 권능과 끝없는 마기를 제외하고.
오강우라는 존재하나에 그는 집중했다.
[━아.]의문은 오래지 않아 해결됐다.
너무나 간단할 정도로, 허망할 정도로 쉽게 풀렸다.
“하아, 하아, 하아!!”
거친 숨을 헐떡이며 균열을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다.
우적!
한 움큼 씹어 삼키더니 풍선이 부풀어 오르듯 그의 육체가 부풀어 올랐다.
당장이라도 터질 듯 전신이 부글부글 끓는다.
거대한 맷돌에 넣고 갈아버린 것처럼 그의 몸이 짓뭉개지고, 짓이겨진다.
그것도 잠시,
“커헉! 카학!! 칵!!”
마해의 힘으로 몸이 재생한 그가 다시금 균열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간다.
아무리 비참하더라도,
아무리 처참하더라도,
그는 기어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멈춘 적이 없거든.
분명 그렇게 말했던가.
그 말마따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몸이 부서지고, 무너지고, 찢어지면서도.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처럼, 멈추는 방법 자체를 잊어버린 것처럼.
계속해서 움직였다.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야 납득할 수 있었다.
[미쳤군요.]의지(意志)라고 할 만큼 단순한 것이 아니다,
신념(信念)이라고 할 만큼 숭고한 것이 아니다.
그는 미쳤다.
망가지고, 어긋나있다.
그렇지 않다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덜덜덜.
거인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그래,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광적인 중얼거림.
엉금엉금 기어가며 균열을 뜯어먹는 그의 모습에, 혐오감이 끓어올랐다.
짓밟힌 채 여러 갈래로 찢어진 벌레가 계속해서 꿈틀거리며 살아있는 모습을 본 듯한 기분이다.
분노보다는, 증오보다는.
혐오감이 앞섰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겁니까!!!]절규가 터져 나왔다.
태초의 빛을 해방할 때, 그는 ‘어쩔 수 없이’ 구원을 포기했다.
지키려고 했던 영혼들을 짓밟았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선택과 집중.
하나에서부터 열까지를 모두 가지려는 것은 욕심이다.
욕망이자, 탐욕이다.
하나도 잃지 않고 모든 것을 손에 넣으려고 하다니.
그래.
그야말로,
‘악마’나 할 법한 생각이다.
[당신은… 저와 다르다고 말하고 싶은 겁니까!!]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여기서 자신이 ‘어쩔 수 없었다’라는 사실이 부정당한다면.
그에게 버려진 영혼들은.
짓밟히고 내던져진 영혼들은.
대체 뭐가 된단 말인가.
[괜한 오기를 부리지 마십시오!! 쓸데없이 발악하지 마십시오!!!]쿠구구궁!!!
빛의 거인이 거대한 팔을 들어 올렸다.
뚜둑! 뚝!
그를 구속하고 있던 검은 점액질이 하나둘 끊어진다.
[당신은 이미 최선을 다하지 않았습니까!!!]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포기한다고 해도, 그만둔다고 해도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잘했다며, 지금까지 애썼다며 그의 어깨를 두드려 줄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대체 왜.
[왜!!! 멈추지 않는 겁니까!!!]절규하며, 울부짖으며.
높게 들어 올린 주먹을 내려쳤다.
찬란한 빛이 강우를 향해 떨어졌다.
‘이걸로 끝이야.’
균열을 뜯어먹는 것만으로 한계일 텐데 여기서 자신의 공격까지 더해진다면 더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마침표를 찍을 것이다.
종막(終幕)을 맞이할 것이다.
그래.
아무리 발버둥 쳐도, 부정하려고 해도.
여기서 모든 것이 끝━
-콰드드드득!!
[크으으윽!!]아카르트가 다급히 뒷걸음질 쳤다.
강우를 향해 내려찍었던 그의 팔이 무언가에 씹어 삼켜져 뜯겨나갔다.
오른팔을 잃은 그가 떨리는 눈으로 강우를 내려다보았다.
“그래, 이제… 끝을, 내야지.”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악마의 왕.
균열에 달라붙어 있던 수백, 수천만에 달하는 심연의 군세가 그를 향해 모여들었다.
꾸르르륵!
한곳에 뭉쳐, 들끓기 시작했다.
“하아.”
달뜬 숨을 토해냈다.
‘얼마나 먹은 거지?’
고개를 돌려 균열을 살폈다.
지구의 반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했던 균열의 크기는, 처음과 비교해 확연히 ‘줄어들어’ 있었다.
균열을 먹어치우는 것에.
그 힘을 포식해 마해(魔海)에 흡수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비록, 아직 균열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이걸로도, 충분해.’
태초의 거인을 상대하는데 필요한 힘 정도는 충분히 확보했다.
차고 넘치게 비축했다.
흡수한 ‘균열’의 힘은 바닥을 드러냈던 마해를 가득 채웠다.
아니.
가득 채우고도, 넘쳐 흐르고 있었다.
균열이라는 것은 세계와 세계를 잇는 통로.
별과 별 사이에 존재하는 틈.
즉, ‘태초(太初)’에서 탄생한 우주였으니까.
지금, 태초에서 탄생한 어둠은 자신의 창조주를 잡아먹었다.
잡아먹어, 그 몸을 가득 채웠다.
“자, 그럼.”
두 팔을 넓게 벌렸다.
쩌적.
등가죽이 갈라진다.
갈라진 등에서 검은 점액질로 이루어진 날개가 뻗어 나간다.
솟구치듯, 폭발하듯, 끓어오르듯.
거미줄처럼 갈라진 날개가 하늘을 뒤덮었다.
하늘 전체를 뒤덮었다.
아니,
‘루케오 푸레’ 전체를 뒤덮었다.
[아, 아아.]아카르트의 몸이 떨렸다.
그는 눈 앞에 펼쳐진 검은 점액질의 날개를 ‘올려다’보았다.
티탄 따위는 한입에 집어삼켜 버릴 정도로 거대한 날개.
그 모습은 마치━
[당신은, 대체….]율법(律法), 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까득, 까드득.
하늘을 뒤덮은 균열에 새하얀 이빨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네 말대로.”
화르르르륵!
검은 날개가 타오른다.
하늘이 일렁인다.
세계가 들끓는다.
붉은 황혼이 지평선을 넘어 펼쳐진다.
“이 이야기의 끝을 맺자.”
그리고,
━━━━━━━━━!
거대한 날개가 아카르트의 몸을 뒤덮었다.
타오르는 불길이 그를 집어삼켰다.
[…그렇군요.]불길에 집어 삼켜지며, 아카르트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종막(終幕)을 맞이했던 건 당신의 이야기가 아닌… 제, 이야기였군요.]어딘가 허탈한 표정으로 그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부디, 당신이라는 율법이 세계를 구원할 수 있기를.]그 말을 마지막으로,
-콰드드드드득!!!
그의 몸이 검은 날개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아, 아카르트시여.”
“으아아아아아!!!”
“이, 이건 말도 안 돼에에에에!!”
살아남은 루케오 푸레의 주민들과 그의 사도들이 머리를 움켜쥔 채 울부짖었다.
“━후우.”
강우는 낮은 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아카르트는 죽었지만, 아직 모든 일이 끝난 건 아니다.
‘균열을 완전히 닫아야 해.’
그를 위해서는, 방금 전과 같은 끔찍한 격통을 수도 없이 반복해야 했다.
“…….”
굳게 입을 다문 채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강우, 씨….”
너무나 사랑스러운,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듣고 싶지 않았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임자.”
다가온 한설아가 그의 손을 움켜쥔다.
“저희, 도망가요.”
애원하는 목소리.
“…….”
“아카르트도 이기셨잖아요. 이제… 정말, 정말 하실 만큼 다 하셨잖아요!”
울부짖듯 외친다.
강우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저 균열이 아직 남아 있잖아.”
“하, 하지만!”
“이대로면 지구랑 낙원이 충돌할 거야.”
“…그래도, 상관없잖아요!!!”
까득.
거칠게 이를 물었다.
그녀의 뺨을 타고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차피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만 데리고… 어딘가로 도망치면… 그러면 되잖아요….”
지금 여기서 균열을 막는다고 해도.
강우는 앞으로 지구에 이런 균열이 생겨날 때마다 방금 전과 같은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며 균열을 닫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지구 말고… 다른 곳에서… 그, 그래! 우리 제알로 도망쳐요! 거기라면 안전하잖아요! 강우 씨도 그 카드 게임 다시 해보고 싶다 하셨잖아요! ”
글쎄.
아카르트는 지구에 생긴 구멍이 점차 주변에 있는 외계로 퍼져간다고 말했다.
제알로 도망친다고 해도, 결국 그곳도 지구처럼 변하게 될 것이다.
“거기서 에키드나랑, 리리스 언니랑, 연주랑!! 발록 씨랑 시훈 씨랑 레이라 씨랑도!! 다 같이!!”
“…임자.”
“지금처럼 행복하게 사는 거예요! 아, 집은 지하 말고 처음 도착했던 계곡 쪽에 짓는 건 어때요? 거기라면 발록 씨도 지내기 편하실….”
“임자.”
뚝.
끊어지는 목소리.
“저는….”
어깨를 붙잡는 손길.
가슴에 닿은 그녀의 이마가, 불길처럼 뜨겁게 느껴졌다.
“더 이상… 강우 씨가… 아파하는 모습 같은 건… 보고 싶지 않다고요….”
흐느낌이 섞인 애원.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끌어안았다.
파르르 어깨가 떨리고 있는 것이 손을 타고 전해졌다.
“…….”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떤 말을 해야 그녀를 조금은 안심시킬 수 있을까.
자신이 균열을 막아야 하는 이유를 세세하게 설명해야 할까?
‘아니, 그건 임자도 알고 있겠지.’
지금 지구를 포기하고 도망친다고 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음을, 그녀 또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저.
지금 이 상황이, 눈을 뒤집어 까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자신의 모습이 그녀로서는 견딜 수 없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미소짓게 해주자.
자신다운, 오강우다운 말로 그녀를 조금이라도 웃게 만들어주자.
“지구가 사라지면 못 먹잖아.”
“…예?”
“김치찌개. 지구 아니면 어디서 먹으라고?”
“…….”
어깨를 으쓱이며 물었다.
“하….”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할 수 있는 말은 많았지만,
“하, 하하. 그렇, 네요. …예. 지구 아니면, 못 먹… 겠죠.”
한설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지었다.
‘그래.’
역시 임자는 웃는 얼굴이 이뻐.
“자, 그럼!!!!”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고, 과장된 괴성까지 터트리며 발을 박찼다.
우스꽝스럽게.
경박하고, 천박하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외쳤다.
“━끝나고 다 같이 김치찌개 먹자고!!!”
우적!
거대한 균열을 거칠게 물어뜯었다.
우득, 우드득!
몸이 부풀어 오르며, 또다시 아득한 격통의 해일이 전신을 뒤흔들었다.
치아가 뽑혀 나와 바닥을 굴렀고, 눈알이 으깨져 뺨을 타고 흘렀다.
“크륵!! 크학! 카하, 으!”
미칠듯한 격통 속에서, 균열을 뜯어 삼켰다.
당장에라도 정신이 타들어 갈 것처럼 괴로웠지만.
‘괜찮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은.’
해피엔딩이 가장 어울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