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722)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후일담 11화
용과 함께 춤을 (1)
시끌벅적했던 결혼기념일이 끝난 후.
강우는 다시 전 세계에 뚫리는 균열을 닫아가며 지구를 넘보는 온갖 이계의 존재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는 평화로운(?) 일상으로 복귀했다.
물론 수호자로서의 일만 수행한 건 아니었다.
그에게는 ‘수호자’보다도 더 중요한 역할이 있었으니까.
“수련을 도와달라고?”
나른한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 3시.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들의 말에 강우는 동그랗게 눈을 떴다.
“예, 아버지.”
“…전에 했던 마기를 다루는 훈련 말하는 거지?”
“그렇습니다.”
하아.
강우의 입에서 나지막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강현아.”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빠가 전에 말했지? 네가 지금 마기를 다루지 못하는 걸 신경 쓸 필욘 없다고.”
“다루고 싶습니다.”
강현이 잘근 입술을 깨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마왕의 아들이 마기조차 다루지 못하는 건…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나도 안 이상해 인마. 고작 9살 꼬맹이가 마기를 다루는 게 더 이상하지.”
내가 네 나이 땐 어?
편의점에서 파는 파워 웨이드를 마시고 몸 안에 마력이 들어왔니 뭐니 지랄하던 때였어.
“하지만 릴리아는 4살, 강희는 3살부터 마기와 권능들을 다룰 수 있었습니다!”
“그건….”
강현이의 말마따나.
강희와 릴리아는 아직 제대로 말도 배우지 못했을 때부터 마치 손발을 움직이듯 자연스럽게 물려받은 마기를 다룰 수 있었다.
하지만 그와 비교해 강현이는 9살이 된 지금까지 마기는커녕 마력조차 다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건 다 이유가 있….”
“저도 마기를 다루고 싶습니다, 아버지.”
“흐음.”
짧은 침음을 삼킨 강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옷 갈아입고 트레이닝 룸으로 내려와.”
트레이닝 룸은 강우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지하에 있었다.
“가, 감사합니다 아버지!”
강현이 환한 미소를 띠며 방으로 달려갔다.
강우는 잔뜩 흥분해 있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쯧, 혀를 찼다.
“나중에 또 연주한테 혼나겠구만….”
어쩌겠냐, 아들이 그렇게 하고 싶다는데.
원래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는 법이다.
* * *
아파트 지하에 위치한 사설 트레이닝 룸.
강우는 이제 딱히 ‘수련’이라는 것 자체가 필요 없는 경지가 됐다 보니 쓸 일이 없었지만, 나중에 자식들이 클 걸 생각해 만들어둔 곳이었다.
‘이걸 고작 딸내미들 3살, 4살 됐을 때부터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강현이는 아직 마기를 다루지 못하지만.
강희와 릴리아는 어렸을 적부터 마기를 다룰 수 있었기에 이 트레이닝 룸에서 마기를 다루는 법을 가르쳐주고는 했다.
마기는 아직 어린아이들이 다루기에는 위험한 힘이었으니까.
“준비됐어 아들?”
“예.”
강현이는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편한 자세로 앉아.”
“가부좌를 틀라는 말씀이시군요.”
“아니 이게 뭐 무협지인 줄 알아? 그냥 편하게 앉으면 돼.”
“…그렇군요.”
약간 실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강현이.
아무래도 전에 태수가 선물해 준 무협지가 퍽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자, 그럼 시작한다.”
강우는 검지 끝으로 강현이의 왼쪽 가슴을 푸욱 찔렀다.
“커흑!”
“참아.”
손가락을 직접 신체에 박아 넣지 않고도 마기를 전달하는 건 문제가 없었지만.
강현이의 신체에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섬세하게 마기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마왕의 핏줄이라고 해도 아직 ‘권능’을 각성하지 못한 강현이의 육체는 평범한 9살 어린애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크윽… 윽.”
“몸속으로 조금씩 마기를 흘려 넣을 거야.”
“알겠, 습니다… 아버, 지!”
심장을 파고든 손가락을 타고 극미량의 마기가 강현이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강현이는 왼쪽 가슴을 타고 전해지는 통증을 참으며 몸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마기를 느끼기 위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몸 안을 돌아다니는 힘을 느껴봐.”
“크읏… 아버지의 뜨거운 게… 제 안을 휘젓고 있어요.”
“마기라고 말해, 마기라고!”
그렇게 말하니까 존나 느낌이 이상하잖아!
“뜨겁고, 끈적하고… 아주 난폭해요.”
“그래. 그게 바로 마기야.”
“크읏… 아, 아버지!”
몸 안을 휘젓는 마기를 최대한 정신을 집중해 느끼고 있던 강현이 순간 크게 몸을 떨더니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강우는 즉시 강현이의 왼쪽 가슴에 박아 넣은 손가락을 빼며 그의 안에 흘려 넣었던 모든 마기를 회수했다.
“괜찮니?”
“허억, 허억! 괘, 괜찮습니다.”
안 괜찮아 보이는데.
“마기는….”
강현이는 왼쪽 가슴을 더듬으며 마기를 느끼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강우가 인위적으로 흘려 넣은 마기가 아닌, 마왕의 핏줄로 태어나며 자연스럽게 물려받은 마기.
심장 안에 잠들어 있다는 강우의 말을 따라 온 정신을 심장 안에 집중했지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심장 안에 잠들어 있다는 마기는 돌덩이처럼 단단히 굳은 채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뭐, 그렇게 쉽게 다룰 수 있는 힘이 아니니깐.”
강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풀이 죽어 있는 아들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그대로 방금 느낀 마기의 감각을 떠올리면서 열심히 연습하면 나중엔 다룰 수 있을 거야.”
“…….”
강현이는 슬픈 눈으로 강우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역시 전… 재능이 없는 걸까요?”
강희도, 릴리아도.
자신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마기를 다루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난.’
가장 먼저 태어난 주제에.
두 동생을 지켜줘야 할 ‘오빠’인 주제에.
9살이 되도록 마기는커녕 마력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었다.
이걸 ‘재능’이 없다고 하지 않으면 뭐라고 하겠는가.
“아니, 오히려 그 반대일지도?”
강우가 손가락을 내려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반대라뇨? 그게 무슨 소리세요?”
반대라면 자신이 재능이 있다는 말인데.
강우의 도움을 받고도 손톱만큼의 마기조차 다루지 못하는 자신에게 무슨 재능이 있단 말인가?
“아니, 뭐. 강현이 넌 똘똘하니까 재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잖아?”
내려다보던 손가락을 뒤로 감추며 강우가 씨익 웃었다.
“…전 하나도 안 똘똘한데요.”
“에이, 우리 주식 천재 아드님께서 무슨 소리야?”
“그런 건 아무 쓸모 없다고요.”
강현이는 어딘가 초조한 눈빛으로 입술을 짓씹었다.
“…….”
강우는 누군가에 쫓기듯 초조해하는 아들의 머리를 상냥히 쓰다듬었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할 것 없어.”
“…아버지?”
“누가 뭐라고 해도 넌 내 아들이다. 자랑스럽고, 멋진 내 아들. 지금이야 조금 늦을지 모르지만, 너는 누구보다 빛나는 재능을 지니고 있어.”
“제가… 빛나는 재능이요?”
아.
일단 혼혈이라고는 하나 악마긴 악마니까 여기선 빛나는 재능이 아니라 시커먼 재능이라고 해야 하나?
뭐, 어쨌든.
“그래.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나중엔 이 아빠처럼… 아니, 나보다 훨씬 더 멋진 남자가 될 테니까.”
“…잘 모르겠어요.”
“그 나이 땐 모르는 게 많을수록 좋은 거야 인마.”
강우는 피식 웃으며 아들의 머리칼을 장난스럽게 헝클였다.
“아버지.”
“응?”
헝클어트린 머리칼에서 몇 가닥 흘러나온 붉은 머리칼을 손바닥 위에 올리며 강현이 물었다.
마치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우리 엄마… 사랑하시죠? 아, 그, 그러니까. 제… 진짜, 엄마요.”
진짜 엄마라.
그게 연주를 가리키고 있다는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지만.
“셋 다 네 진짜 엄마야. 그리고 당연히 모두 사랑하고.”
“…그렇죠?”
“갑자기 그건 왜 묻는 거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강현이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고마워요, 아버지.”
“그래. 아, 그래도 이렇게 내 마기를 직접 네게 흘려 넣어주는 건 위험하니까 앞으로는 못 해줘.”
“아뇨, 그게 아니라요.”
“응?”
“제게 재능이 있다고 말씀해 주신 거요.”
아마 시무룩해져 있는 자신을 위한 강우 나름의 배려였으리라.
“슬슬 저녁 식사 시간이네요. 이만 올라가요.”
강현이 강우의 손을 잡아끌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강우는 아들에게 손이 잡혀 끌려가면서도 뒤에 숨기고 있던 반대편 손을 힐끔 내려다봤다.
‘배려, 라.’
안정적으로 마기를 흘려 넣어주기 위해 강현이의 심장에 박아 넣었던 손가락.
그 끝이 마치 무언가에 ‘물어뜯긴’ 듯 잘려 나가 있었다.
‘딱히 배려해서 한 말은 아닌데 말이지.’
강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아들의 뒤를 따라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때.
“…음?”
아직 버튼을 누른 것도 아닌데 알아서 지하로 내려오고 있는 엘리베이터.
‘설마 연주한테 들킨 건가?’
지금 그가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는 1층부터 꼭대기까지 오강우 패밀리 딱 한 세대만 살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지하 트레이닝 룸까지 내려올 일이 없었다.
“끄응.”
아직 9살에 불과한 강현이에게 직접 마기를 흘려 넣었다는 사실이 연주나 다른 아내들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등짝이 걸레짝이 될 때까지 두들겨 맞을 게 분명했다.
“강현아. 만약 엄마가 물어보면 오늘 여기 있던 일은 비밀….”
“아뇨. 어머니는 아니에요.”
“엉?”
“세 분 다 오늘 일이 있어서 늦는다고 하셨거든요.”
그렇다면 지금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는 건 누구란 말인가.
-띠링.
의문의 답이 나오기도 전에 지하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그 안에서 나타난 건 마스크에 선글라스까지 써서 얼굴 전체를 가리고 있는 괴인.
수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얼굴을 가린 괴인이었지만, 강우는 그 괴인의 정체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에키드나?”
“강우우우우우!”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집어 던지며 투다다다다 달려오는 에키드나.
개구리처럼 폴짝 뛰어오른 그녀가 강우의 품에 안겼다.
“강우! 강우! 강우! 강우! 너무 보고 싶었어!”
“그래, 그래. 나도 보고 싶었어.”
강우는 안겨드는 에키드나의 등을 토닥이며 물었다.
“그나저나 여긴 무슨 일이야? 지금 월드 투어하느라 해외에 있던 게 아니었어?”
얼마 전 연주와 같이 피시방에 갔을 때 호주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그, 그게… 강우한테 부탁할 게 있어서 왔어.”
“부탁할 거라니?”
“강우!”
에키드나가 강우의 두 손을 움켜쥐며 외쳤다.
“아이돌이 되어줘!”
그게 무슨 소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