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92)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93화
극마지체에 도달하는 방법(1)
눈을 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세상 전체가 어둠에 잠식된 것만 같았다.
손을 움직였다. 몸을 비틀며, 발버둥 쳤다.
늪에 빠진 듯 끈적한 무언가가 그의 몸을 잡아당겼다.
‘여긴….’
기억이 흐릿했다.
약에 취한 듯 의식이 몽롱했다.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가 거대한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백강현.’
희미한 기억이 떠올랐다.
거대한 입에 통째로 집어삼켜진 그의 모습.
미친 듯이 발악하고, 저항하다가 처참하게 잡아먹히는 그의 모습.
깊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백강현의 모습에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빠져나가야 해.’
고개를 들어올렸다. 여전히 시야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두 발을 거칠게 휘저었다.
위로. 위로.
몸이 조금씩 올라가는 감각이 느껴졌다.
-콰드드득!
‘크윽.’
무언가 그의 발목을 물어뜯었다.
고개를 내렸다.
입.
거대한 입이 발목을 물어뜯으며 그를 잡아당겼다. 위로 올라가던 몸이 다시 아래로 끌어내려졌다.
몸을 비틀었다. 발목에 탄력을 줘 한 번에 뽑아냈다. 그의 발목이 거대한 입에 잘려나갔다.
‘지금.’
양팔을 휘젓는다. 몸을 비틀며, 검은 바닥을 빠져나가기 위해 남은 한 발을 바동거린다.
사방에서 ‘입’들이 나타났다.
날카로운 짐승의 이빨을 가진 포식자의 입.
온몸이 물어 뜯겼다. 팔이 잘리고, 얼굴의 반이 뜯어졌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았다.
지금 멈추게 되면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은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올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시야에 활짝 열려 있는 문 하나가 보였다.
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거대한 입이 그의 하반신을 뜯어 삼켰다.
비명을 내지르며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러는 순간에도 전신을 물어뜯은 입들은 그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
의식이 다시 몽롱해졌다. 시야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아….’
이곳이 어디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이름도, 나이도, 과거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대로 바다 깊은 곳으로 빠져든다면 무척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 우!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녀의 목소리였다. 희미해지는 의식에 번뜩임이 스쳤다.
‘집중해.’
입술을 깨물었다.
이름을 기억해야 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이곳에 왔는지, 어떻게 나가야 하는지 생각을 이어가야 했다.
‘나는.’
손을 뻗었다. 활짝 열린 문의 문고리가 손에 잡혔다.
있는 힘껏 문고리를 당겼다.
문이 닫혔다.
* * *
“허억! 허억! 허억!!”
“가, 강우! 괜찮아?”
정신이 들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을 뜨니 그의 얼굴을 붙잡고 있는 에키드나의 모습이 보였다.
“여긴….”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백강현과 싸웠던 장소였다.
“균열은?”
“…악마가 죽으니 함께 사라졌어.”
“후우. 그럼 일단 급한 불은 껐군.”
안도감이 들었다.
강우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에키드나가 가늘게 몸을 떨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뺨을 타고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강우… 사라지려고 했어.”
“…….”
“나 강우의 소환수니까 알 수 있어. 방금 강우, 죽을 뻔했어.”
“원래 이런 상황에선 목숨을 걸어야 멋있는 거야.”
“장난치지 말고…!”
에키드나는 진심으로 화가 난 듯이 그를 노려보았다.
“외롭지 않게, 더 이상 혼자 있지 않게 해주겠다고 했는데…!”
손을 뻗었다. 눈물이 흐르고 있는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미안해.”
“흐윽. 흐아아아앙!”
에키드나가 안겨들었다.
강우는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역시 지금 상황에서 개문을 한 건 무리였나.’
개문(開門).
마기의 바다라고 할 수 있는 만마전을 강제로 폭주시키는 방법이었다.
지옥에 있을 때조차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았던 방법이기도 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굳이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잘못하면 잡아먹히니까.’
만마전은 거대했다.
지옥에 있던 시절의 강우조차 만마전의 모든 것을 알지 못했다.
수십, 수백만의 악마.
그들의 마기가 뒤엉킨 그곳은 이미 또 다른 세계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것을 강제로 폭주시키는 것에는 그만큼 큰 위험이 따랐다.
‘그래도 원래 첫 번째 문까지는 별 문제 없었는데.’
가이아 시스템에 의해 그의 힘이 봉인당하면서 폭주를 제어하기가 더 어려워진 것 같았다.
‘함부로 쓰면 안 되겠군.’
예상했던 것보다 리스크가 컸다.
방금, 희미하게 들린 에키드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정말로 마기의 바다에 잡아먹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본래의 힘을 더 되찾아 만마전에 대한 제어력이 강해질 때까지는 최대한 사용을 자제해야 할 것 같았다.
‘이제 와 죽을 수는 없지.’
강우는 자신의 몸을 끌어안은 에키드나를 내려다보았다.
지구로 온 이후로 아직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꽤나 많은 일이 있었다.
먹는다는 것의 쾌감과 휴식의 여유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소중한 사람과 지켜야 될 존재도 생겼다.
죽을 수 없는 이유가 생겨 버린 것이다.
-띠링.
[팔천지옥의 악마 암두시아스를 처치하였습니다.] [레벨 제한이 걸려 있습니다. 상승한 경험치가 모두 누적됩니다.] [마기 스탯이 5 상승합니다.] [봉쇄의 권능을 습득하였습니다.]“호오.”
마기 스탯 5!
자연스럽게 입가가 올라갔다.
지금 그가 90후반에 육박하는 마기 스탯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엄청난 상승치였다.
제한시간이 1분밖에 되지 않는 크라켄의 분노를 영구히 사용할 수 있게 된 것과 같은 효과였다.
‘드디어 100을 넘겼군.’
강우는 스탯창을 확인했다.
현재 마기 스탯은 103!
원래는 크라켄의 분노를 사용해야지만 넘을 수 있던 세 자릿수의 스탯의 벽을 기본 스탯만으로 달성할 수 있었다.
‘월드 랭커의 최소 기준이 세 자릿수 스탯이라고 했던가.’
월드 랭커 심사를 받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85레벨 이상과 세 자릿수의 스탯이었다.
일반적으로 9차 각성의 마지막, 89레벨에 도달해도 찍을 수 있을까 말까한 세 자릿수의 스탯을 지금 강우는 고작 59레벨에 도달해 버린 것이다.
결국 플레이어에게 실질적인 힘을 부여하는 것은 레벨이 아닌 스탯이었다.
지금 강우는 월드 랭커와 일전을 벌여도 전혀 꿀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가 가진 여러 권능들을 생각한다면 압도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고작 3개월.
3개월 만에 그는 세계의 정상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새로 얻은 권능도 효과가 사기적이고.’
봉쇄의 권능.
다른 누구도 아닌 강우의 힘을 봉쇄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권능이었다.
직접 대상의 몸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그만큼 효과가 굉장했다.
‘이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어.’
강우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아쉽게도 레벨 제한이 풀리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잊게 할 만큼 얻은 수확이 막대했다.
“강우 씨!”
“강우 형님!”
“야! 너 괜찮아?!”
한설아와 김시훈, 차연주가 그를 향해 뛰어왔다.
그들의 뒤에 태수와 백화연, 은비의 모습도 보였다.
“그래.”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어?”
그때, 그가 휘청거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강우!!”
차연주가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목에서 흘러나온 쇠사슬의 그의 몸을 휘감았다.
“힘들면 그냥 누워 있어! 괜히 사람 걱정하게 하지 말고!”
그녀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누가 혼자서 들어가래! 악마교를 주의하라고 한 건 너였잖아! 왜 멋대로 혼자서 싸운 거야?”
쩌렁쩌렁 울리는 노성에 강우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분노 속에 감춰진 그녀의 진심어린 걱정이 꽤나 기분 좋게 느껴졌다.
“뭐, 어찌 됐든 이번 사건은 잘 해결됐잖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내가 얼마나….”
“걱정해 줘서 고마워.”
강우는 차연주의 머리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뒤로 몸을 뺐다.
“거, 걱정한 거 아니거든!”
차연주는 그녀의 머리칼처럼 붉어진 얼굴로 소리쳤다.
강우는 대답하지 않은 채 바닥에 누웠다. 전신을 짓누르는 듯한 피로가 밀려왔다.
누워 있는 강우에게 한설아가 다가왔다. 그녀는 강우의 가슴에 손을 올리며 힘을 일으켰다.
“치유의 빛.”
“오….”
피로가 말끔하게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여기저기 쑤시던 몸이 한결 편해졌다.
“엄청 효과가 좋은데?”
“이번에 5차 각성을 했거든요.”
“뭐? 벌써 40레벨을 넘겼어?”
그가 할 소리는 아니었지만 비상식적으로 빠른 레벨 업 속도였다.
“이번에 시훈 씨가 특수 퀘스트를 받았어요. 그걸 완수하니까 레벨이 한 번에 올랐어요.”
“특수 퀘스트?”
“그건 제가 나중에 설명 드리겠습니다, 형님. 우선 지금은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흠….”
강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지금 당장 쓰러질 것 같으니까.’
치유의 빛을 받고 한결 몸이 나아졌지만 아직 피곤한 건 마찬가지였다.
“아직 움직이기 힘드신가요?”
“조금.”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설아는 특유의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몸을 들어올렸다.
가녀린 여인처럼 보이지만 그녀 또한 플레이어.
기본적인 육체의 스펙은 일반인을 한참 뛰어넘었다.
성인 남자의 몸 하나를 들어 올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제가 집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강우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실제 힘이야 어쨌든 여린 여인이 성인 남성을 안아들고 있는 구도는 뭔가 기분이 몹시 이상했다.
‘내려달라고 해야겠군.’
움직이기 조금 불편한 건 사실이었지만 걷는 것 정도는 괜찮았다.
“마음은 고맙지만 아무래도 이….”
-뭉클.
그때.
부드러운,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포근한 감촉이 그의 배에 닿았다.
케로베로스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는 그녀의 가슴이었다.
강우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걸으실 수 있을 것 같나요?”
“아, 그게….”
번뇌가 차올랐다. 본능과 이성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벌였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강우는 크흠 하고 침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역시 걷기 힘들 것 같아. 아, 이거 참. 어쩔 수 없네. 겉보기가 좀 그렇지만 몸이 영 움직이지 않으니….”
“그렇다면 제가 형님을 들겠소!”
“어?”
이게 아닌데.
“하하하! 형수님이 드는 것보다 제가 드는 게 더 편할 거요!”
‘오지 마.’
“형님이 걷지도 못한다는데 아우가 가만있을 수는 없지!”
‘제발 가만히 있어, 새끼야.’
“형님! 어서 이 강태수의 두 팔에 안기시오!”
‘저리 꺼져.’
태수가 강우를 번쩍 들어올렸다.
바위 같은 근육의 감촉과 짙은 땀 냄새가 확 풍겨 올랐다.
“형님! 일단 바로 집으로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소! 걱정 마시오! 책임지고 형님을 집까지 모셔다 드리겠소!”
“아니…. 태수 너는 집 방향이 다르잖아. 그러니까….”
“하하하하! 형님을 위해서라면 그까짓 것 상관없소!”
“잠깐 내려줘 봐. 지금 생각해 보니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환자에게 무리는 금물이오! 가만히 계쇼!”
태수는 한층 더 강우를 안아든 팔에 힘을 더했다.
축축하게 젖은 태수의 땀이 강우에게까지 옮아 붙었다.
‘이게 아냐.’
강우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는 한설아를 향해 애처롭게 손을 뻗었다.
닿지 않았다.
‘이게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