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
황님 좀 말려주세요
1화
0. Prologue.
1.
아무래도 X된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아니라 지구가 말이다.
콰아아아아앙-!
우어어어!
“허허.”
나는 내 앞에서 울부짖는 와이번을 바라보면서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물론 짝퉁 드래곤이라고 불리는 와이번은 그렇게 희귀한 마수가 아니다. 오히려 흔한 마수에 속한다.
마룡 군단 침공의 효시를 알리는 마수라고 불릴 정도고, 내가 지난 10년 동안 수십만 마리는 학살했던 놈들이다.
하지만 문제는.
“왜 와이번이 마포대교를 배경으로 날아다니고 있냐고.”
노을빛을 머금은 채로 빛나는 강.
그리고 그 강에 건설되어 있는 거대한 대교들.
“씨이이이이-.”
“팀장님! 곧 지원 온답니다! 조금만 버티십쇼!”
“와이번 새끼들 위장에서 버티라는 거야 뭐야? 지원 병력 좀 빨리 오라고 그래 이 씨바꺼!”
그리웠던 한국어로, 그리웠던 욕설을 내뱉으며 치열하게 와이번들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
마지막으로 잔디밭을 굴러다니고 있는, 분명히 한글로 적힌 ‘여의도 한강공원’이라는 표지판까지.
그 모든 증거들이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여의도 한강공원이라는 걸 증명해 주고 있었다.
덤으로 저기 멀리 와이번의 둥지가 되어 버린 기괴한 철제 구조물은 마포대교인 게 틀림없겠지.
그 말도 안 되게 부자연스러운 장면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목구멍에서 솔직한 감상평이 튀어나왔다.
“허허, 씨발.”
10년 만에 돌아온 지구다.
백번 양보해서,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으니까 내가 기억하던 모습과는 달라졌을 거라고는 예상했었다.
하지만 이건 솔직히 선 넘은 거 아니야?
10년이면 강산도 이세계로 변한다, 뭐 그런 건가?
솔직히 말해서 꿈이라고 치부해도 될 정도로 기괴하고 부자연스러웠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지구의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것이 바뀌었으니까.
그러나 내 볼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 코끝으로 전해져 오는 비릿한 피비린내는 이곳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란 걸 증명해 주고 있었다.
몽마의 여왕이라면 이런 꿈을 만들어 낼 수야 있겠다만, 눈앞의 이 장면들이 그녀가 만들어 낸 꿈일 가능성은 아예 없었다.
내 몸속의 신성력으로 인해 그런 꿈에 놀아날 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몽마의 여왕은…….
“네 손으로 대가리를 직접 뽑았었잖아. 안 그래? 나의 자랑스러운 교황 성하. 그 천박한 년 대가리를 뽑는 모습이 얼마나 섹시했었는데.”
“……리멘?”
저 녀석의 말대로 내 손으로 직접 곤죽을 만들어 버렸거든.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음성이 들린 쪽을 향해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은색 머리카락의 여인이 나를 바라보면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리멘.
리멘은 이 혼란스럽고 기괴한 풍경 속에서도 고고히 빛난다.
인간이라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으며, 또 그 표현이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존재다.
“시우.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별로 표정이 좋지 않아 보이네. 이래서야 돌려보내 준 보람이 없는걸?”
“우리 계약은 지구로 돌아오면서 끝난 거 아니냐?”
“섭섭해. 그래도 한때 네가 모시던 여신인데, 존경과 애정을 좀 보여 줘. 너가 이렇게 무사히 지구로 돌아올 수 있게 해 준 것도 바로 나잖아!”
그녀는 투정을 부리면서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그런 그녀를 향해 나는 이를 부드득 갈면서 대답했다.
“애초에 네가 그 빌어먹을 세계로 나를 끌고 가지 않았다면 고생할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지구에 남았다면 분명히 죽었어.”
“그걸 어떻게 확신해.”
“우리 교황 성하께서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나는 여신이잖아? 당연히 알 수 있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우우우웅.
그러자 곧 눈앞의 모든 것들이 멈춰 버렸다.
인육을 탐하며 날뛰고 있던 와이번들도.
그런 와이번을 막기 위해 발악하고 있던 사람들도.
심지어 노을빛을 받으며 유유히 흘러가고 있던 강물조차 그대로 정지했다.
[경고! 타 차원의 주신좌가 차원계: 지구>의 인과율에 강제로 간섭합니다!] [강력한 인과율이 순리에 따를 것을 요구합니다.] [오류: 타임 패러독스>가 우려됨에 따라 당신의 시간이 5분 동안 정지합니다.]“흐으응. 5분 정도가 한계겠네? 메인이벤트가 진행되고 있는 차원계라서 인과율이 강력하게 작용하는 것 같아. 나름 한 차원의 주신좌로서 간섭하는 건데…… 아쉽다.”
리멘은 미약하게나마 웃음을 짓더니, 곧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을 이어 갔다.
“자세하게 설명해 줄 시간은 없으니까 본론부터 말할게. 나와 계약을 한 번 더 할 생각 있어?”
“계약?”
“응! 10년 전과는 다르게 이번엔 시우가 원하면 맺는 계약이야. 맺기 싫으면 안 맺어도 돼! 그런데 난 개인적으로 시우가 계약에 동의했으면 하는데…… 싫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내 눈치를 살핀다.
그도 그럴 것이 본인이 지난 10년 동안 ‘계약’이라는 단어로 나를 얼마나 괴롭혔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리멘은 지구의 평범한 청년 하나를 납치한 것도 모자라서, 10년 내내 부당하게 노동력을 착취했다.
잡초도 뽑을 줄 모르던 평범한 청년이, 마룡의 심장과 7대 마왕의 심장도 잡초마냥 뽑아낼 정도로 성장했으니 말 다 했지 뭐.
진짜 다시 돌이켜봐도 지옥 같았던 10년이다.
원래 내 계획은 평화로운 지구로 돌아와서 행복하게 일상을 되찾는 거였지만…….
이미 그건 글러 먹은 것이 틀림없다.
와이번들이 활기차게 뛰노는 지구에서 평화롭게 산책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얘기나 해 봐.”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곧 리멘이 얼굴을 활짝 피면서 말했다.
“진짜? 난 솔직히 시우가 이 상황을 못 받아들이면 어떻게 하나 고민했었는데! 고향이 이렇게 변한 것 때문에 충격받아서 폭주하면 어쩌나 고민 많이 했어.”
“이세계도 체험한 마당에 지구에 몬스터가 나오는 것 정도야 뭐…… 당황스럽다 뿐이지 그 정도까진 아닌데?”
비현실적?
이미 내 존재 자체가 비현실의 상징이다.
내 침착한 대답에 리멘은 감탄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 순진무구한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나랑 계약하면 시우가 저쪽 세상에서 사용했던 신성력 그대로 복사해 올 수 있게 해 줄게. 물론 이쪽에는 나를 믿는 신도가 없어서 조건이 조금 붙긴 하겠지만…….”
“잠깐만.”
“왜?”
“당연히 신성력도 같이 차원 이동되는 거 아니었어?”
“에이, 차원 이동이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야. 차원 간의 조율도 필요하고, 또 인과율도 신경 써야 하고…… 힘을 잃는 게 당연하잖아? 앗! 3분 남았다.”
“만약에 내가 계약을 안 한다 그러면?”
설마 하는 내 질문에, 리멘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신성력이 소멸하고, 나를 다시는 볼 수 없어. 걱정하지 마. 시우라면 내 신성력이 없어도 금방 다시 성장할 수 있을 거야. 10년 전에는 나도 급해서 어쩔 수 없었지만, 이번에는 시우가 선택하게 해 줄게. 나도 미안하잖아.”
힘을 유지하려면 다시 계약해야 한다고?
그런데 이번만큼은 나에게 선택의 여지를 준다고?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이건, 진짜 이건 단 1도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
“미칠 것 같아.”
“역시, 나랑 또 계약하는 건 죽어도 싫…….”
“아니, 진짜 미쳐 버릴 것 같다고.”
“……응?”
“계약 당장 안 하고 도대체 뭐 하냐고!”
“진, 진짜지? 그럼 바로 계약 맺는다?”
안 그래도 지구가 X된 바람에 심란한 마당에,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라고?
싫다.
나는 그런 한물간 클리셰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다.
진짜, 진짜 죽어도 말이다.
2.
“시우?”
“어.”
“계약 완료야. 이제 시우도 지구에서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어.”
그와 동시에 눈앞에 황금색의 메시지 창들이 떠올랐다.
[성좌 계약 완료.] [차원계: 에덴>의 주신좌 리멘>이 인간 김시우>를 후원합니다!] [다른 차원의 성좌와 계약하였으므로 차원계: 지구>의 인과율이 본 계약의 정당성을 조사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5……4……3……2……1] [조사 결과: 문제 사항 없음.]나는 그 메시지 창을 바라보면서 리멘을 향해 넌지시 물었다.
“시스템도 같이 넘어온 거야?”
이 메시지 창이 바로 리멘의 후원과 더불어 나를 에덴에서 빠르게 성장시켜 줬던 특별한 기능의 정체다.
일명 시스템.
내 성장을 수치화시켜서 보여 주었으며, 에덴에 보다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기능.
이 기능의 근원을 몇 번이나 리멘에게 물어봤지만, 리멘은 대답해 주지 않았었다.
그래도 시스템도 함께하니까 뭔가 든든한 기분…….
“아! 그거? 같이 넘어온 게 아니라, 사실 지구에서 에덴으로 넘어간 거야. 그 기능은 지구의 메인이벤트를 위해 준비된 기능이거든. 성장에 좋아 보여서 내가 시우를 에덴으로 데려가면서 은근슬쩍 베껴 갔었지!”
“……원래 지구 거라고?”
“굳이 따지자면? 미안해 시우. 말해 주고 싶었는데, 제약 때문에 에덴에서는 말해 줄 수 없었어.”
그러니까 사실 내가 특별한 기능이라고 생각했던 시스템이란 게, 원래 지구에서 유래되었다…… 이 말인가?
도대체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번에도 리멘은 나에게 자세한 설명을 해 줄 수 없는 모양이었다.
[1분 뒤, 시간이 다시 속행됩니다.]“아쉽게도 아직 내가 이 세계에 기반이 없어서 오랫동안은 같이 못 있어 줘. 나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아주 많겠지만, 그건 나중에. 지금부터 시우가 꼭 해야 할 게 있어.”
리멘은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더니 곧 눈물이 글썽거리는 눈으로 말을 이어 갔다.
“일단 신성력은 계약을 통해서 어떻게든 해결했는데, 근본적인 게 해결이 안 된 상태야. 언젠가는 사라질 수도 있어.”
“시간 없으니까 해결책부터.”
“신성력은 누군가의 믿음이 전제로 하는 힘이라서, 믿음이 없으면 자연스레 소멸해. 그러니까 시우가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구에 나를 믿는 사람들을 만들어 주면 돼! 쉽지? 시우는 교황이었잖아!”
“나보고 사이비 교주가 되라고?”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 신도를 많이 만들어 줘. 그거면 돼! 알겠지?”
우우우웅.
조금씩 리멘의 형상이 흐려진다.
그리고 그 흐려지는 빛무리 속에서 리멘이 나를 향해 간절하게 소리쳤다.
“금방 다시 볼 수 있어! 나 없다고 울지 말고! 응? 알겠지? 우리 교황…….”
그 처절한 외침을 끝으로.
[시간이 속행됩니다.]멈췄던 시간이 다시 흘러가기 시작했고, 나는 허탈하게 웃으면서 눈앞에 추가로 떠오른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교단 창설]종류: 메인
설명: 이 세계에는 당신의 신을 섬기는 신도가 부족합니다.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 교단을 창설하여 교세를 불리십시오. 수단과 방법은 제한이 없으며, 본 시스템은 차원계의 메인이벤트와 연동하여 자동적으로 신도의 숫자를 집계합니다.
완료 조건: 신도 숫자 1/10,000
*경고! 본 퀘스트의 제한 시간은 90일입니다. 제한 시간 내에 완료 조건을 달성하지 못할 시, 당신이 보유한 모든 것들이 초기화됩니다!
나는 그 메시지 창을 바라보면서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하하.”
……아무래도 X된 것 같다.
“씨발.”
이번에는 내가.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