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0)
10화
5.
5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구민수는 이 던전이 자신과 동료들의 무덤이 될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저 알 수 없는 괴물이 자신을 무력화시키고, 자신의 모습으로 변신한 순간, 이 비극의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거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빨리 죽음을 바랄 뿐.
그러나 괴물은 그의 반응을 즐기기라도 하듯, 일부러 그를 살려 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이 어떤 식으로 기만을 하는지 관람하라는 듯, 모든 과정을 그의 눈앞에 보여 주었다.
그 과정 속에서 구민수는 그를 믿어 줬던 동료들이 하나하나씩 괴물로 대체되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저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절규는 그 누구에게도 닿지 못했고, 그가 울부짖을수록 괴물은 짙게 웃으면서 그를 조롱할 뿐이었다.
그렇게 절망으로만 가득했던 시간들이었다.
희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살아 있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순간들이었는데.
화르륵-!
“끼아아아아아악!”
그런 그의 앞에 기적이 일어났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기적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던 구민수였으나, 그것은 오로지 기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그의 눈앞에는 이상한 옷을 입은, 난생처음 보는 남자가 서 있었다.
얼핏 보면 신부복을 입고 있는 듯한 남자.
남자의 몸에서 피어오른 하얀색 불꽃이, 지금까지 자신을 흉내 내며 끊임없이 기만해 왔던 괴물의 전신을 잡아먹는 중이었다.
‘꿈인가.’
구민수는 그 장면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쩌면 이것 역시 저 괴물의 질 나쁜 장난인 게 아닐까.
하지만 곧 그는 스스로의 생각을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저 불꽃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너무나도 따듯했다.
괴물은 쉬지도 않고 비명을 내지르는 중이었지만, 그에게는 어머니의 품이 생각날 정도로 포근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따스한 온기를 타고, 그 남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구민수 씨. 이 던전에서 가장 고통스러웠을 사람은 당신이니까, 특별히 당신에게 선택권을 주겠습니다.”
구민수는 그의 말에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제가…… 보입니까?”
여태까지 그 누구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5년을 동고동락했던 동료들조차도 괴물의 술수에 당한 건지, 그를 몬스터 보듯이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아무리 도망가라고 외쳐도 그들은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달랐다.
그는 정확하게 자신의 눈을 바라본 채로 씁쓸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제가 시력이 좋은 편이라서요. 아, 제 소개가 좀 늦었네요? 인욱이 형 되는 사람입니다.”
“인욱이…….”
아끼는 동생의 이름이었다.
나이도 어린데, 동생이랑 할머니 먹여 살리겠다고 열심히 미튜브 편집을 하는, 싹싹하고 기특한 녀석.
형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다만, 그 형이 5년 전에 실종되었다는 딱한 이야기도 함께 들었었는데, 그렇다면 눈앞에서 인욱이의 형을 자처하는 저 남자는 누구란 말인가?
구민수는 잠시 고민하다가, 곧 그 고민을 멈췄다.
고민해 봤자 달라질 건 하나도 없었으니까.
남자는 그런 구민수의 반응에 고개를 살짝 끄덕인 다음, 여전히 괴물의 멱살을 잡은 채로 말을 이어 갔다.
“민수 씨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두 가지 중 하나입니다.”
구민수는 뒤이어질 남자의 말을 예상할 수 있었다.
이미 저 괴물에게 자신을 빼앗긴 순간부터 짐작하고 있었던 일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남자가 말을 해 주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절 죽이십시오. 괴물에게 저를 뺏긴 순간부터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차라리 같은 인간의 손에 죽는 것이…….”
“거, 상상력이 쓸데없이 뛰어나신 형제님이네. 사람 말은 끝까지 들으세요 좀.”
남자는 구민수의 말에 재밌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어 갔다.
“첫 번째. 이 녀석의 대가리를 단번에 깨부순다. 두 번째. 지금처럼 성화로 불태워 죽인다. 참고로 저는 두 번째 방법을 추천합니다. 그쪽이 훨씬 고통스럽거든요. 보시다시피 이놈은 고통을 느낄 수 있습니다.”
화르르륵-!
남자의 말과 함께 불길이 이전보다 훨씬 더 거세졌고.
“끼아아아악!”
괴물의 비명 소리 역시 더욱더 높아졌다.
새하얀 불길은 어느새 구민수가 있던 자리까지 번져 오면서 구민수의 몸을 휘감았지만, 구민수에게는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다.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괴물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이것이 기적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 기적이란 말인가.
구민수는 본인에게 일어난 기적을 바라보면서 그저 눈물을 흘렸다.
이것이 목숨을 구제했다는 안도의 눈물인지, 아니면 눈앞에서 지켜 내지 못한 동료들에 대한 자책의 눈물인지, 본인 스스로도 알 수 없었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 기적의 순간에 그가 원하는 건 딱 하나뿐이었으니까.
구민수는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세게 깨문 다음, 남자를 향해서 소리쳤다.
“고통스럽게. 반드시 고통스럽게 죽여 주십시오!”
셀 수 없이 많은 감정이 섞인 그의 외침에, 남자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주문이 마음에 듭니다. 역시, 악마들은 불태워 죽여야 제맛이죠. 그럼 두 번째 방법으로 보내 주도록 하겠습니다. 굽기는 원래 제가 레어를 좋아하지만, 이번만큼은 특별히 웰던으로 바짝 구워 드리겠습니다.”
화르르르르륵-!
“끼아아아악! 끼아아아아아악-!”
거센 불길 속에서 괴물의 몸이 바스러져 내렸고, 녀석의 비명 소리는 녀석이 완전하게 전소되기 전까지 한참 동안 끊임없이 이어졌다.
구민수는 괴물의 고통스러운 죽음이, 억울하게 죽은 동료들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주길 빌었다.
그렇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괴물의 몸은 완전한 잿가루가 된 채로 바닥에 쌓였다.
그리고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구민수의 눈앞에 그동안 보지 못했던 하얀색 테두리의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당신은 성스러운 불꽃을 통하여 구원받았습니다.] [숨겨진 업적 구원>을 달성하셨습니다.] [이계의 신격이 당신의 눈물에 응답합니다.]그 메시지 창이 떠오르고 나서 잠시 후, 남아 있던 새하얀 불길 속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신.
평생을 무신론자로 살아왔던 그의 머릿속에 오로지 그 단어만 떠오르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불길 속에서 피어오른 그녀는 멍하니 서 있던 구민수를 부드럽게 껴안으면서 말했다.
“당신 탓이 아니랍니다.”
“아…… 아…….”
기적의 순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6.
도플갱어 놈을 완벽하게 전소시키자 상황은 알아서 종료되었다.
[어비스 던전을 클리어하셨습니다. 해당 던전은 1시간 뒤에 자동으로 소멸됩니다.] [던전 클리어 보상으로 신성 점수> 50점을 획득하셨습니다.] [퀘스트 구원>을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신성 점수> 100점이 지급됩니다.]“쯧.”
나는 그 메시지 창을 훑어보면서 혀를 찼다.
보상을 떠나서 이 상황 자체가 썩 유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침에 편한 마음으로 집 밖을 나섰던 걸 생각하면 입맛은 더욱 썼다.
차라리 내가 어제 곧바로 왔었다면 희생자가 조금 더 적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물론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도플갱어의 연극이 끝나기 전에 최대한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었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일단 어떻게든 위험한 상황은 정리했고, 그만큼이나 중요한 게 남았다.
“나는 또 헤어지기 전에 다급하게 소리치길래, 몇 년은 되어야 다시 만날 줄 알았지. 이렇게 금방 다시 볼 줄 알았나?”
“그건 우리 교황님께서 열심히 일해 주신 덕분이지! 내가 금방 다시 볼 수 있다고 했잖아. 헤헤.”
“보통 그런 상황에서 금방은 최소 1년은 넘기지 않냐? 그게 3일인 줄은 몰랐네.”
“난 시우 얼굴 이렇게 다시 보니까 너무 좋은데!”
어찌 된 영문인지, 내가 아까 전에 일으켰던 성화 속에서 리멘이 나타났다.
그리고 리멘은 등장하자마자 민수 씨의 상처를 치료해 버렸고, 민수 씨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신성력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겐 흔히 있는 현상이라 신기하진 않았다.
나는 접이식 의자에 앉으면서 리멘에게 물었다.
“이번에는 얼마나 있냐?”
“음, 이번에도 5분 정도? 이곳 환경이 좀 특이한 편이라 가능한 거야. 신기하게 여기만 차원의 틈이 열려 있더라구. 그 틈을 통해서 시우의 성화가 느껴졌고, 바로 온 거야. 이렇게.”
차원의 틈이라.
어비스 던전이랑 연관이 있는 걸까.
“그건 내가 따로 알아봐야겠네.”
“겉으로는 싫은 척하지만, 속으론 내 얼굴 자주 보고 싶구나? 시우는 항상 그런 식이라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너 원래 인간 직접 치료해 주는 건 별로 안 좋아하지 않아? 민수 씨는 어쩐 일로 치료해 줬냐.”
에덴에서조차 리멘이 직접 현신(現身)하는 경우도 꽤 드문 편이었는데, 현신하고 나서 누군가를 권능으로 치료해 주는 것도 몇 번 본 적이 없었다.
내 질문에 리멘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좋은 사람인 것 같아서. 동료의 죽음을 자책하는 사람 중에서는 나쁜 사람은 없어. 그리고 무엇보다 시우의 계획에 들어 있는 사람 아니야?”
“그런 셈이긴 하지.”
“시우가 불모지에서 노력하는 셈인데, 그런 시우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면 도와줘야지.”
리멘은 그렇게 말하면서 내 옆에 있던 의자에 앉았고, 나와 눈을 마주쳤다.
여신은 여신인지라 이렇게 가만히 보고 있자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리멘은 나를 저쪽 세계로 납치해 갔던 장본인이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그녀의 선택은 옳았다.
만약 그녀가 나를 에덴으로 데려가지 않았다면?
오늘 이 던전에서 도플갱어에게 농락당해서 죽었을 사람이 나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시우.”
“말해.”
“짧은 시간이었겠지만, 지금까지 시우가 바라본 고향은 옛날에 비해 어떻게 바뀐 것 같아?”
나는 그 질문에 잠시 미간을 찌푸린 다음,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기괴해. 하나부터 열까지.”
“그때 내가 시간이 없어서 말을 못 해 준 게 하나 있어. 잘 들어.”
리멘은 저번처럼 내 손을 잡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 갔다.
“차원계 전체에 적용되는 인과율은 신격을 지닌 존재에게도 여지없이 적용돼. 그렇기 때문에 그 인과율에 따라서, 다른 차원의 신격은 지구에서 영향력을 끼칠 수 없어.”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뭔데? 너 방금도 민수 씨 네 권능으로 치료해 준 거잖아.”
“그러니까 앞으로 조심해야 해.”
그녀는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이어 갔다.
“인과율은 천칭 같은 거야. 지구의 인과율이 시우와 내 계약을 허가해 줬다는 건, 천칭의 반대편에 그만큼 무거운 것이 올려져 있다는 뜻이거든.”
“그 무거운 것에 대해서는 앞으로 내가 알아가야 하는 거고?”
“안타깝게도.”
“……이해했다.”
쉽게 말해서 농땡이 피울 생각 하지 말라는 거구나.
멀쩡했던 지구에 갑자기 몬스터들이 나타나는 것부터가 확실히 글러 먹기는 했지.
어찌 되었든 숙제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내뱉은 다음, 리멘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알았어.”
“화 안 내?”
“왜 내가 너한테 화를 내? 사후 처리도 이렇게 확실하게 해 주고 있는데, 화를 낼 이유가 없지. 누가 보면 내가 성격파탄자인 줄 알겠다?”
“흐음.”
“그 침묵은 또 뭘까?”
“시우가 알아서 판단해.”
리멘은 장난스럽게 미소를 지은 다음, 다시 의자에서 일어섰다.
벌써 갈 시간인가 보다.
나도 10년 동안 정이 들어서 그런가, 막상 또 헤어질 시간이 되니 아쉽다.
“다음에는 같이 사진이라도 하나 찍자.”
“사진? 그게 뭐야?”
“그런 게 있어. 있는 모습 그대로를 담는 거. 네 사진만 있으면 신도들이 알아서 걸어 들어올지도 모르겠네.”
“이쁘다는 칭찬으로 알아들을게, 시우. 고마워.”
리멘은 방긋 웃으면서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다음에는 이렇게 어두컴컴한 곳보다는 밝은 곳에서 다시 보고 싶어.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어떻게 해야 하는데?”
“당연히 내가 현신하기 쉽게, 나를 위한 신전을 만들어 줘야지. 신도도 많이 늘리고.”
대한민국에 리멘을 위한 신전을 짓는다라…….
그것도 참 쉽지 않은 일이 될 것 같다.
괜찮은 곳 땅값이 워낙 비싸야 말이지.
“또 봐 시우.”
“들어가.”
화르르륵-.
리멘은 불꽃으로 왔던 것처럼 불꽃으로 사라졌고, 나는 리멘이 사라진 자리를 한참 동안 말없이 쳐다보았다.
그렇게 내가 얼마 동안이나 말없이 있었을까.
“허어어억.”
곧 바닥에서 기절해 있던 민수 씨가 감전이라도 된 듯이 몸을 떨면서 일어났고, 나는 그런 민수 씨를 향해서 반갑게 인사했다.
“일어났어요? 몸은 좀 어때요.”
“여신…… 여신님은요?”
“아깝네. 방금 막 떠났는데.”
내 대답에 민수 씨는 눈을 몇 번이나 끔벅거렸다. 그러더니 곧 간절한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제가 여신님을…… 여신님을 다시 뵐 수는 있을까요?”
나는 그의 질문을 듣고는 피식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방금 전까지 리멘이 앉아 있었던 의자를 권하며 말했다.
“글쎄요. 그건 지금부터 좋은 말씀을 나눠 보면서 천천히 알아가 보도록 할까요?”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