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00)
100화
31. 노인과 난쟁이
1.
회식이 끝난 다음 날 아침.
밤새 쌓인 취기는 신성력으로 싸그리 배출한 덕분에 숙취 같은 건 없었다.
그래도 할머니가 북엇국을 끓여 주셔서 회식 참여 멤버 전원 든든하게 먹고 신전으로 출근했다.
민수 씨와 백설화는 합정에 위치한 민수 씨네 회사로 출근했다. 미튜브 컨텐츠와 관련해서 논의할 게 있다던가? 그래서 인욱이도 우리 교단 대표로 그쪽에 보냈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점이다.
“새벽까지 달렸는데…… 주말에도 출근시키고…… 진짜 악덕 사장…… 노동부에 꼭 고발…….”
“숙취도 없으면서 그만 좀 징징거려. 그리고 어제 우리 교단이 벌인 일이 있는데, 신전을 비워 두자고?”
“후우…… 그걸 내가 벌였나?”
“다 들린다.”
“다 들리라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성하. 워라벨 몰라요? 워.라.벨.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고, 지구에 왔으면 지구의 법을 따르셔야죠.”
내가 살면서 저런 말을 외계인으로부터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아마 루나는 어떤 세계에 던져 둬도 1달 안으로 완벽하게 적응을 끝낼 것이다.
장담한다.
나는 루나의 불만을 가볍게 무시하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오늘은 신입들 기본 교육만 시키고, 성지 내부의 질서 유지 작업에 투입시켜.”
“순찰 돌리라는 뜻이죠?”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딱 좋은 타이밍이잖아? 하루 정도 쉬게 할 겸, 그렇게 해.”
“아까 들어오시면서 밖의 인파 보셨잖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쉬는 것 같진 않은데…… 뭐, 성하 명령이니까. 그럼 빨리 준비하러 갈게요.”
“오준우 씨도 꼭 데려가고. 이제 리멘 교단에서 일할 사람인데, 하이브 길드가 아니라 리멘 교단의 오준우로 언론에 노출시켜야지? 마침 기자들도 많이 있겠다, 효과 좋겠네.”
이런 식으로 얼굴도장 확실하게 찍어 둬야 앞으로도 계속 우리 교단에서 일하게 될 것이다.
S급 헌터가 막 굴러다니는 존재들도 아니고, 내 품에 들어온 이상 놔줄 생각은 없었다.
이런 내 꿍꿍이를 알아차린 루나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했다.
“지구에서는 그런 걸 보고 사탄도 울고 간다, 그렇게 표현하더라구요?”
“사탄이면 악마야. 네가 모시는 교황을 악마랑 비교하기 있기냐? 신전에서 감히 교황을 모독해?”
“교황님 앞에서 수많은 마족이 울었던 건 사실인걸요 뭐. 틀린 말은 아니죠. 아무튼 준우도 같이 데리고 다닐게요. 그럼 이만.”
루나는 가벼운 발걸음과 함께 신입들이 대기하고 있는 장소로 향했다.
끝까지 한마디도 안 지는 것 좀 봐라.
교황의 권위가 바닥이다, 바닥.
“레오 너는 성서 편찬 작업만 마무리하고 쉬자.”
“성하.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뭔데?”
레오의 부탁이라.
혹시 와이파이를 업그레이드해 달라는 이야기려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레오가 공손한 자세로 말했다.
“외출을 허락해 주셨으면 합니다.”
“어디 다녀올 곳 있어?”
“지난번에 성하께서 다녀오셨던 희망 보육원 기억하시는지요. 오늘은 성지 주위도 다소 소란스럽고, 당장 급한 일정은 없으니 한번 다녀오고 싶습니다.”
내가 직접 원장을 갈아치워 버렸던 그 보육원.
김 실장으로부터 듣기로는 국가에서 임시적으로 인력을 충원시켜 두었다고 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레오로서는 희망 보육원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건 앞으로 허락받지 말고 다녀와.”
“감사합니다.”
“꼭 차 타고 다니고.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지?”
에덴에서처럼 달려 다녔다가는 큰 사고가 난다. 지난번에 서울로 급히 올라왔을 때만 보더라도 인터넷에 ‘이족보행 몬스터가 출현!’ 같은 괴소문들이 돌아다녔으니, 급하지 않다면 이목을 신경 쓰는 게 좋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너 면허도 땄잖아. 차량은 일단…… 민수 씨가 빌려준 차량 사용하면 될 것 같다.”
참고로 레오와 루나 모두 현재 법적으로도 한국인이다. 둘은 애초에 지구에 ‘국적’이 없었기 때문에 문제 될 것도 딱히 없었다.
오늘은 내가 하루 종일 신전에서 내정을 신경 쓸 예정이라, 굳이 신전 주위에 간부들이 남아 있을 필요는 없었다.
루나도 대충 순찰시키다가 오후쯤 돼서 퇴근을 시켜 줄 생각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주말이니까.
“그럼, 저도 업무를 보고 오겠습니다.”
“그래. 고생하고.”
레오는 공손하게 허리를 숙인 뒤, 지하에 위치한 자신의 작업실로 향했다.
레오가 지구로 넘어온 이후로 계속되었던 성서 번역 작업도 거의 마무리되었다. 하루의 모든 시간을 성서 번역에 투자할 수 있게 해 줬다면 훨씬 빨리 끝났겠지만, 워낙 데리고 다닐 곳이 많았어야지.
그래도 다음 달이면 한국어로 번역된 성서를 신도들에게 공급할 수 있다고 한다. 가장 시급했던 문제는 해결된 셈이다.
“후우.”
내가 작게 한숨을 뱉어 내고 있던 찰나, 눈앞에 여러 개의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보유한 신성 점수가 많습니다. 상점을 통해 소비하시기를 바랍니다.] [메인 퀘스트 교세 확장 – 대비>의 완료 보상을 아직 수령하지 않으셨습니다.]교단이 성장함에 따라 DLC의 시스템 메시지의 숫자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만큼 가면 갈수록 신경 쓸 게 많아진다는 소리다.
안 그래도 신성 점수를 소비할 생각이었는데, 이참에 미뤄 두었던 내실도 살짝 다질 필요가 있지 싶었다.
나는 잠시 메시지 창을 닫은 후, 천천히 집무실로 향했다.
오늘 아침 이미 서 대통령에게 중국과의 친선전에 대한 의견을 전달해 두었으니, 아마 조만간 분위기는 친선전이 성사되는 쪽으로 흐르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지금처럼 다소 소란스러운 평화는 누리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어찌 되었건 중국 그놈들은 손이 많이 가는 게 사실이었으니까.
일본에서처럼 그저 마수를 대신 잡아 주고 박수를 받는, 그런 무난하고 평화로운 결과 따위는 기대하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정화자 놈들도 분명히 같이 움직일 거야.’
어떤 방식으로든지 정화자 놈들의 마수가 뻗칠 테지.
최악의 경우에는 전쟁의 상황까지 벌어질 수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최악의 경우다.
이쪽에서 먼저 능동적으로 움직이면 될 일이다.
“그러니까 일이나 빨리 해 두자.”
지난번에 해 봐서 아는데 교단을 관리하는 것은 아무리 시스템을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꽤 복잡한 일이거든.
나는 집무실 안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2.
집무실의 내 책상에 앉아서 가장 먼저 처리한 일은 퀘스트 보상을 수령하는 것이었다.
[메인 퀘스트 교세 확장 – 대비>를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신성 점수 1만 점>, 성유물 선택권>이 지급됩니다.] [성유물 선택권>을 이용하여 성유물을 소환할 수 있습니다. 성유물의 중요도에 따라 추가로 신성 점수가 소모될 수 있습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신성 점수: 47,000점]“점수만 많으면 뭐 해.”
점수 수급량은 귀환 초기에 비하여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건 맞지만, DLC 상점의 상품 가격도 덩달아 상승했다.
고작 시스템 상점 따위의 시장 원리가 적용될 줄은 몰랐다.
물론 일부 특성들은 여전히 저렴한 편이었지만,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은 이럴 때 사용하라고 있는 듯하다. 가격이 낮을수록 효과도 미비했다.
이럴 때 가장 베스트는 고민의 여지 없이 축성소의 레벨을 올려 주는 것일 테지만,
[축성소의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교단에 소속된 축성 사제의 숫자가 30명을 초과해야 합니다.]생전 처음 보는 제한에 걸려 버렸다.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나름의 ‘빌드 업’ 과정이 필요하단 뜻.
아무래도 시스템은 이런 요소를 통해서 나름의 인과율을 확보하려는 듯 보였다.
“타이쿤이라도 하는 것 같다.”
신흥 교단을 세계 최고의 교단으로 만든다는 점에서는 기존의 타이쿤류 게임들과 비슷하긴 하지만…… 그래도 복잡하긴 하다.
초반에는 그나마 아기자기한 맛이 있었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스케일도 커지고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많아졌다.
이런 건 사실 적성에 맞는 사람들이 해야 잘하는 법인데 말이야.
내가 교황이기는 하지만 에덴에서도 사실상 바지교황이나 다름없었다. 교단을 운영하는 실무는 대부분 경영 능력을 지니고 있던 대주교들이 알아서 처리했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교황청의 국무원장이었던 라파르트 대주교.
꼬장꼬장한 할아버지에다가 잔소리도 쉴 새 없었지만, 그 할아버지 있으면 아주 그냥 든든…….
[당신의 주신이 신탁을 내립니다.]『보내 줄까?』
“깜짝이야.”
『생각해 보면 슬슬 시우한테도 제대로 된 조직이 필요할 때가 되기는 했어. 통로가 불안정해지기 전에 필요한 인원을 미리 보내 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리멘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어제는 현신까지 하더니, 이틀 연속으로 신탁을 내릴 줄이야.
확실히 여유를 되찾은 듯한 듯했다.
“누구를 보내 준다는 건데?”
『방금 전에 시우가 생각한 그 아이.』
“그러니까 리멘. 너한테는 아이겠지만 나한테는 그냥 할아버…… 아니다. 됐고, 라파르트 대주교를 보내 주겠다는 거야?”
『내 눈에는 필요해 보여서. 안 그래도 시우 지금 적들을 추적하느라 바쁠 텐데, 덩치가 커진 교단을 혼자서 운영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야. 시우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솔직히 시우, 에덴에서 따로 경영 수업 같은 거 받은 적 없었잖아? 지구에서도 마찬가지구.』
리멘이 던지는 묵직한 팩트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것 참, 고졸 서러워서 살겠나.
『물론 에덴에 비해 지구는 여러모로 문명이 발전한 사회인 건 맞아. 교단의 조직도 훨씬 세련되고 세밀하게 갖춰야겠지. 그런데 그건 이미 시우가 준비하고 있었잖아?』
“그렇긴 해.”
최 대표를 통해서 사람을 소개받을 예정이다. 하지만 그 사람은 어디까지나 기업인이었고, 종교 조직과는 거리감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현대의 경영학에 라파르트 대주교를 통해 리멘 교단의 색을 입힐 수 있으면 보다 수월한 조직 관리가 가능할 것이다.
『안 그래도 라파르트가 나에게 기도를 올려.』
“뭐라고?”
『성하가 고향에서 부디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이 늙은이가 도움이 된다면 언제든지 달려가고 싶다고. 원래 잔정이 많은 아이잖아?』
라파르트 대주교의 나이가 68세인 걸 고려한다면 아무리 봐도 ‘아이’라는 호칭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리멘의 입장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나는 리멘의 제안을 듣고 나서 턱을 잠시 긁적였다.
확실히 좋은 카드다. 라파르트 대주교에, 최서진 대표를 통해 소개받게 될 경영진을 더한다면 교단은 빠른 속도로 조직화될 것이다.
언제까지 지금처럼 주먹구구식으로 교단을 이끌어 나갈 수는 없었다.
나 혼자서 모든 걸 해낼 수 있는 초인이 아닌 이상에야 리멘의 제의를 받아들이는 게 맞다.
하지만 여기서 딱 한 가지 아쉬운 지점이 생겼다.
“원래는 교황청 소속 드워프들 중 한 명을 데려오고 싶었어. 아직 지구의 장인들은 미스릴 같은 이계의 금속을 제대로 제련하지 못해서 말이야. 우리 신입들한테 좋은 장비를 입혀 주고 싶기도 하고.”
『드워프라면 누구?』
“토비 아이언비어드. 내가 지구로 돌아가면 따라가고 싶다고 입에 달고 다녔었지.”
이유는 딱 하나였다.
내가 언젠가 술자리에서 ‘지구에는 세계맥주점이라고 전 세계의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곳이 있다’라는 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토비 녀석은 지구라는 세계에 관심이 생겼다며, 돌아갈 때 자기도 같이 데려가 달라고 했었지.
실력 역시 교황청 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대장장이기도 했어서, 꼭 데려오고 싶은 인물 중 하나였다.
『……으음, 살짝 빠듯하겠다.』
“둘은 무리지?”
『둘이 무리라기보다는…… 굳이 따지자면 아이언비어드, 그 아이가 문제야. 드워프라는 종족 자체가 지구의 원주 종족이 아니라서 대가가 클 수밖에 없거든. 일단 한번 확인해 볼게.』
[당신의 주신이 해당 안건에 대해 인과율 적합 심사>를 신청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잠시 후.
결과가 적힌 메시지가 눈앞에 생성되었다.
[지불해야 할 대가는 당신이 보유한 신성 점수>로 설정됩니다.] [라파르트 산테: 3,500점>] [토비 아이언비어드: 30,000점>]“가격이 무슨……”
루나를 이곳에 데려올 때 지불했던 신성 점수가 5,000점이었던 걸 고려해 본다면, 토비의 가격은 무려 6배인 30,000점.
이번에 클리어한 메인 퀘스트를 세 번이나 클리어해야만 얻을 수 있는 점수였다.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된다면 빨리 선택을 내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시우. 갑자기 차원 간의 통로가 닫혀도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이야.』
“그렇다면 뭐, 어쩔 수 없는 거네.”
『역시, 지불하는 대가가 좀 크지? 아쉬운 대로 내가 인간들 중에서 장인을……』
“대가를 지불할게. 리멘. 둘 다 데려와 줘.”
신성 점수 아껴서 뭐 하겠어?
이럴 때 팍팍 쓰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