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02)
102화
5.
라파르트 대주교의 잔소리는 무려 3시간 동안 이어졌다.
지금까지 교단을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한 것부터 시작해서, 아무런 대책 없이 성지를 개방한 것까지.
레오가 지금껏 성실하게 정리해 둔 보고서를 기반으로 쉴 새 없는 질책이 이어졌다.
지옥과도 같았던 3시간이었다.
그렇게 나를 한참 동안 팩트로 두드려 팬 라파르트 대주교는 식어 버린 차로 입술을 축인 후, 처음과 똑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조직을 정비하는 일입니다. 성하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시기에는 부담이 너무 큽니다. 그렇기에 성하를 뒷받침해 주는 강력한 조직이 필요합니다.”
라파르트 대주교는 현실주의자였다.
교단도 결국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는 집단이다. 신앙심만으로 그들을 이끌어 나가겠다는 것은 그저 이상주의적인 이야기일 뿐, 전혀 현실적이지 않았다.
애초에 그것은 모두를 세뇌해서 광신도로 만들지 않는 이상에야 결코 성립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제가 우리 라파르트 대주교를 모셔 온 게 아니겠습니까?”
“에덴과는 다른 형태의 조직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에덴과 지구의 문명 수준은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에덴의 것을 지구에 그대로 이식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은 보통 나이가 들수록 생각이 보수적으로 변화한다. 바꾸는 것보다는 현재에 안주하는 것을 선호하게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라파르트 대주교에게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교단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파격적인 아이디어도 받아들인다. 이제 막 수행사제가 된 이들의 의견일지라도, 교단에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인 것이다.
“성하께서 에덴에 도착하기 전부터 제게 주어졌던 사명은 끊임없이 학습하여, 교단을 융성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지자인 제게 리멘님께서 학습의 은총을 내려 주신 것은 그러한 이유였겠지요.”
학습의 은총.
말 그대로 끊임없이 학습할 수 있게 해주는 은총. 그에게 있어서 ‘배움’이란 일생을 함께한 존재였다.
그렇기 때문에 라파르트 대주교는 지구에서도 쉽게 적응하게 될 것이다. 지구에 와서도 끊임없이 학습을 이어 나갈 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야말로 내가 라파르트 대주교를 지구로 데려온 이유였다.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게 되었으니, 인생의 늘그막에 염치없이 가슴이 뜁니다. 저를 이곳으로 보내신 리멘님의 은혜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는 사뭇 진지한 노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제 지인으로부터 사람 하나를 소개받기로 했어요. 기업…… 그러니까 거대한 상단 조직을 운영하는 데 유능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만나 보고 괜찮으면 데려올 생각입니다.”
사람을 깐깐하게 보는 최 대표가 장담을 할 정도라면 분명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일 것이다.
직접 만나 봐야 알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거는 기대가 컸다.
내 말에 담긴 의미를 짐작한 라파르트 대주교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늙은이에게 있어서 젊은 사람과 일하는 건 언제나 기쁜 일입니다. 성하께서 직접 모셔 오려는 분이니 능력은 당연히 출중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하…… 걱정했던 건 아닌데.”
“그러니 전 신경 쓰지 마시고, 성하께 필요한 인재들을 데려오시지요.”
라파르트 대주교는 인자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편하게 쉬셔야 할 분을 이세계로 불러들여서 마음이 참 무겁습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성하께서는 속에도 없는 말씀을 참으로 잘하십니다. 이 늙은 놈을 부려 먹게 되어 참 기쁘다, 솔직하게 말하셔도 좋습니다.”
예리한 할아버지 같으니라구.
최대한 티를 안 낸 편인데, 내 표정이 그렇게 잘 읽히나?
“저는 그럼 신전을 좀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성하. 토비 님과도 이야기를 나누셔야지 않습니까?”
“그래야죠.”
“그럼, 이따가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라파르트 대주교가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나는 180cm를 훌쩍 넘기는 라파르트 대주교의 장대한 기골을 바라보면서 가볍게 숨을 뱉어 냈다.
다시 생각해도 이곳으로 데려오길 잘했다.
라파르트 대주교는 앞으로 우리 교단의 훌륭한 컨트롤 타워가 되어 줄 것이다.
그에게 부족한 경영학 지식을 보충해 줄 파트너만 잘 고른다면, 교단 경영에 대한 부담도 한껏 덜어낼 수 있겠지.
“후우.”
라파르트 대주교와의 면담은 끝이 났으니, 이제는 우리의 장비를 책임져 줄 드워프, 토비를 만나러 갈 시간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신전 뒷측에 있는 신성석 광산으로 향했다.
6.
신전 뒷측에 위치한 신성석 광산.
민수 씨를 통해서 계약을 맺었던 아나키> 마이스터 길드에 소속된 플레이어들이 작업을 도맡고 있는 곳이다.
최상급 신성석을 채굴하는 장소기도 했는데, 이곳은 지금 아주 소란스러웠다.
“그렇게 채굴하면 안 된다니까! 그렇게 채광하면 신성석에 흠집이 날 수도 있잖아? 이게 얼마나 귀한 건데! 이렇게, 이렇게 곡괭이 질을 해야 한다고!”
아나키> 길드의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몸소 시범을 보이는 드워프 한 명.
두꺼운 갑옷을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곡괭이질은 정확하다 못해 아름답기까지 했다.
도대체 언제 친해진 건지는 모르겠는데, 이곳에 있던 다른 플레이어들은 눈을 빛내면서 드워프의 곡괭이질을 눈에 담고 있었다.
나는 열심히 신성석을 캐고 있는 드워프의 뒤로 조용히 다가갔다.
“그러니까 곡괭이질은 이렇게…… 아이쿠! 성하! 이렇게 귀신같이 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간 떨어질 뻔했습니다!”
“여전히 목청 좋네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제가 이 친구들에게 곡괭이질을 제대로 교육해 줘야겠습니다. 금방 끝납니다!”
드워프다운 투철한 장인 의식이었다.
그렇게 나를 잠시 뒤로 물린 토비는 15분 동안 ‘곡괭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강연을 하고 나서야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나키 소속의 플레이어들은 방금 배운 노하우를 익히기 위해 곧바로 흩어져서 작업을 시작했고, 토비는 만족스럽게 자신의 갈색 수염을 쓰다듬었다.
“최상급 신성석을 마구잡이로 파내는 걸 보고 가만히 넘어갈 수가 있어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저 사람들이 토비 보고 안 놀랐어요?”
“처음에는 놀라긴 했는데, 제가 이것저것 알려 주니까 금방 친해졌습니다. 채광 레벨이 빠르게 오른대나 뭐래나? 하하! 아까 저들이 몰래 가져왔다는 술도 슬쩍 한 모금 했습니다. 소주라는 술인데…….”
생산 계열 플레이어, 특히 채광 스킬이 있는 플레이어들에게는 드워프가 귀인일 수밖에 없을 거다.
지도를 받고 안 받고는 하늘과 땅 차이니까.
그나저나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픈 마인드다. 딱 봐도 종족이 다른데, 호들갑을 떨어야 정상 아닌가?
“성하가 지구로 넘어오신 이후로도 아주 화끈하게 돌아다니셨던 모양입니다.”
“음?”
“리멘 교단의 땅이면 뭐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렇게 받아들이는 듯했습니다. 이계인들도 있는 마당에 크게 이상할 것 없다던가?”
“……묘하게 설득력 있네.”
이미 레오와 루나라는, 이계에서 건너온 존재들도 버젓이 활동하고 있는 마당에 드워프 하나 추가되었다고 해서 이상할 게 딱히 없긴 하다.
게다가 귀환자들의 존재도 공인되었고,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특히,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레오와 루나를 통해서 ‘게이트에서 나온 이종족은 모두 적대적이다’라는 가설이 폐기된 상황이니, 보다 수월하게 토비를 받아들였던 걸지도 모르겠다.
“자세한 건 가면서 이야기합시다.”
“알겠습니다, 성하.”
신성석 광산은 현재 우리 교단에서도 기밀로 취급되는 장소였다. 당연히 신전의 지하와 연결되는 비밀 통로가 있었기 때문에 그걸 이용하면 조용히 빠져나오는 것이 가능했다.
통로를 따라 20분 정도 걷자 신전의 지하에 도착할 수 있었고, 곧장 집무실로 향했다.
그렇게 토비를 데리고 집무실로 돌아온 나는 의자에 앉으면서 토비에게 말했다.
“차라도 드릴까요?”
“다른 거 없겠습니까? 차는 아무래도 밍밍해서, 영 입이 가지 않습니다. 신전이니까 맥주는 힘들 테고…….”
“제가 마시려고 사 둔 건데, 이거 한번 드셔 보시죠.”
나는 내 책상 밑에 있던 미니 냉장고에서 붉은 라벨의 콜라를 꺼내서 토비에게 건네주었다.
“위에 뚜껑을 돌리면 열립니다.”
“신기한 재질의 병입니다. 음, 이렇게 여는 건가?”
치이이-
토비가 두툼한 손으로 뚜껑을 돌리자, 탄산이 새어 나오는 소리와 함께 병과 뚜껑이 분리되었다.
토비는 그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이 관찰했다. 그리고 곧바로 콜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500ml 페트병에 담긴 콜라가 사라지는 데 걸린 시간은 단 2초.
“꺼어어어억.”
콜라를 순식간에 해치워 버린 토비가 한층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살면서 마셨던 음료 중에서 이게 맥주 다음입니다. 이게 뭡니까?”
“콜라라고 하는 음료예요. 탄산음료 중 하나인데, 지구에서 인기가 많습니다.”
“콜라! 혹시 더 없습니까?”
“여기, 하나 더.”
“감사합니다!”
토비는 내 미니 냉장고에 꽉꽉 채워져 있던 콜라들을 전부 다 해치우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토비를 바라보면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토비. 여전히 성수를 이용해서 맥주를 양조해요?”
“꿀꺽. 크으, 예. 안 그래도 지구로 넘어오기 전에 제 동료 놈들한테 양조법 전수해 주고 왔습니다. 성수로 양조한 맥주야말로 일품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이 콜라라는 음료도 그에 뒤지지 않는 훌륭한…… 꺼어어억. 어우 좋다.”
갑옷을 입고 있는 드워프가 짜리몽땅한 팔로 콜라를 연신 들이켜는 모습이 왜 이렇게 웃긴지 모르겠다.
“후우. 갈증이 좀 사라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성하.”
토비는 무려 13병의 콜라를 연달아 마신 다음에야 만족스럽게 배를 두드렸다.
“슬슬 일 이야기를 해 봅시다. 토비.”
“일 이야기랄 게 있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쇼. 성하가 만들어 달라는 건 뭐든지 만들어 드릴 겁니다.”
“따로 필요한 건 없습니까?”
“장비를 제작할 대장간과 신성석을 녹일 수 있는 성화로만 있으면 됩니다. 성하께서도 아시겠지만, 신성력을 극대화시키는 장비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련 과정에서 신성석을 섞어야만 합니다.”
대장간 같은 경우에는 DLC 상점을 통해서 건설할 수 있었다. 이번에 라파르트 대주교랑 토비를 데려오면서 신성 점수를 많이 소모하기는 했지만, 대장간을 지을 정도는 남아 있었다.
문제는 성화로였다.
“교황청에서는 리멘께서 직접 축복을 내리신 성화로를 사용했었습니다. 신성석을 녹이기 위해서는 성화가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리멘이 직접 축복을 내린 거라면…….”
“성유물입니다. 교황청의 대장간에는 총 일곱 개의 성화로가 있었습니다. 성유물이 일곱 개나 배치되어 있던 셈입니다. 저도 그 부분이 걱정돼서 리멘께 기도를 드려 보았는데, 리멘께서는 성하에게 답이 있을 거라 하셨습니다.”
“쓰으읍.”
이번에 퀘스트를 완료하면서 받은 성유물 선택권이 하나 남아 있었는데, 그걸 사용하란 소리였다.
새로운 신전을 위해서 선택권을 최대한 아끼려고 했건만.
“성화로는 별도로 제작 안 되나?”
“당연히 제작이 가능합니다! 완성품에 리멘님께서 직접 축복을 내려 주시면 되지요!”
“오.”
“대신! 제작을 위해서는 필히 성화로가 필요합니다! 성화로 역시 신성석이 가장 중요한 재료이기 때문입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이 희대의 난제와 비슷한 형태의 문제인 듯한데, 아무래도 이번 경우에는 닭이 먼저인 것 같다.
결국, 성화로 하나는 반드시 소환해야 해결될 문제인 듯 보였다.
하지만 선택권이 아쉬운 상황이었기에 나는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도 성화를 피워 올릴 수 있는데, 이걸로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만약에 성하께서 신성석을 녹일 수 있는 수준의 초고열 성화를 한 달 내내 유지하실 수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거 아주 도전 의식이 생기는군요. 만약 성하께서 그렇게 하시겠다면 이 난쟁이 놈도 기꺼이 함께하겠…….”
“성화로를 소환하도록 합시다.”
성화는 신성력을 매개체로 불을 피워 올리는 권능이었기에 신성력을 말도 안 되게 잡아먹는다.
마기에 오염된 것들을 불태우기에는 적합하지만, 평소에도 마구잡이로 남용하기에는 살짝 무리가 간다는 뜻이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신성석을 융해시킬 정도의 성화를 한 달 동안이나 유지하는 것은 빠듯하다.
“불가능하다기보다는 제가 일이 너무 많아서 그래요. 토비. 오해하는 건 아니죠?”
“암요, 암요. 제가 어찌 성하를 의심하겠습니까?”
신전은 성유물 점수를 모은 다음에 추가하는 걸로 하고, 우리 신입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이쪽에 선택권을 투자하는 게 맞지 싶다.
나는 연거푸 한숨을 내뱉은 후, DLC 상점을 열어서 시설> 카테고리에 있던 대장간 Lv. 1>을 구매하였다.
가격은 신성 점수 1만 점.
그렇게 대장간을 구매한 후, 곧바로 성유물 선택권을 사용했다.
무작위로 선택되었던 지난번과는 달리 선택권>이었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성유물을 선택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미 선택해야 할 성유물은 결정된 상태.
일곱 번째 불꽃>
●아이템 종류: 성유물 – 리멘 교단
●출신 차원계: 에덴
●설명: 태초의 불꽃을 통해 제작된 일곱 번째 성화로. 리멘이 직접 축복을 내렸다.
*성유물 선택권>으로 본 성유물을 소환할 시, 신성 점수 3,000점이 소모됩니다.
[성유물 선택권>을 사용하여 일곱 번째 불꽃>을 대장간 Lv. 1>에 배치합니다.] [신성 점수 3,000점이 소모됩니다.] [현재 잔여 신성 점수: 500점]“아주 그냥 신성 점수를 싹싹 긁어가라, 싹싹.”
나는 47,000점에서 500점이 되어 버린 신성 점수를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로써 교단의 미래를 위한 과감한 투자 포트폴리오가 완성되었다.
……떡상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