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04)
104화
3.
[현 지역에 게이트가 생성됩니다!]붉은색 테두리의 메시지를 시작으로 몸집을 불려 나갔던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다들 준비해!”
“게이트의 메인 몬스터들이 확인되었습니다! 타입은 마수종! 그레이트 웜입니다!”
“바로 접근하지 마! 귀환자가 나온다. 본격적인 토벌은 귀환자와의 접선 이후다!”
헌터들은 경거망동하지 않고 상황을 주시했다.
게이트에서는 이빨이 달린 벌레 같은 마수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어지간한 단독주택 수준의 몸집을 지닌 마수.
그레이트 웜.
나는 끝도 없이 기어 나오고 있는 그 벌레 놈들을 바라보면서 가볍게 몸을 풀었다.
“명색이 B급 게이트라고, 위협적인 놈들이 기어 나오네요. 저놈들 땅속으로 파고들면 위험해요. 지반도 침식시키고, 무엇보다 체액이 강한 산성이라서 건물들에도 타격이 큰 놈들입니다.”
“그레이트 웜.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마수종입니다. 하지만 쉽사리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디재스터급 귀환자가 출현한 게이트에서는 1차 저지선에서 몬스터를 막아 내야 합니다.”
“현명하네요.”
헌터들을 막무가내로 투입시켰다가는 게이트에서 나온 귀환자한테 휩쓸릴 가능성이 있다.
내가 보기에도 적절한 전략이다.
설사 그레이트 웜이 땅속으로 숨어든다고 한들, 내가 있는 이상 큰 문제는 안 된다.
여차하면 땅에다가 신성력과 성화를 때려 박으면 되니까. 게다가 다른 종류의 몬스터들과는 달리, 그레이트 웜은 분명한 마수.
[패시브 스킬 마수의 천적>이 발동하고 있습니다.]마수 놈들은 내 앞에서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다. 실제로 게이트에서 기어 나온 대부분의 그레이트 웜들은 위축된 상태였다.
그레이트 웜들은 부차적인 문제.
이번 게이트의 분수령은 저 게이트에서 등장하는 귀환자의 태도였다.
“넘어옵니다.”
나는 게이트를 넘어오기 시작한 강대한 마력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고, 김 실장은 목젖을 꿀꺽이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시우 님. 최악의 경우에는…….”
“아직 대피를 하지 못한 시민들이 많아요. 저도 알고 있으니까 걱정마십쇼.”
나로서는 디재스터급 귀환자가 넘어오는 모습을 처음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지구로 넘어왔던 과정을 되짚어 보자면 크게 특출났던 건 없었다.
리멘의 힘을 이용해서 지구로 건너왔고, 리멘과 또 다른 계약을 맺었다.
그게 끝.
마치 마실이라도 나온 것처럼 조용히 귀환했으며, 순순히 이능관리부에 협조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장면은 단순히 ‘마실’이라고 부르기에는 큰 어폐가 존재하는 것 같았다.
파지지지직-.
우우우우우우우웅!
거대한 게이트 전체에서 붉은빛의 스파크가 잔뜩 튀긴다. 지난번 라파르트 대주교와 토비가 건너왔을 때와는 비교도할 수 없을 정도로 흉폭한 기세였다.
게이트의 중앙에서 번져 나가기 시작한 붉은색 반점은 순식간에 게이트의 보랏빛을 잡아먹는다.
그것은 게걸스럽다고 부르기에 충분한 모양새였다.
파지지지직!
눈 깜짝할 사이에 보랏빛을 싸그리 먹어 치운 반점이 곧 게이트 전체를 잠식했다.
그리고 잠시 후.
뚜벅.
붉은빛의 게이트에서 누군가 천천히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만큼은 그레이트 웜의 괴성도, 헌터들의 고함도 멎었다. 시간이 멎는 듯한 긴장감 속에서 울려 퍼지는 것은 오로지 누군가의 구둣소리뿐이었다.
구둣소리가 한참 동안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구둣소리가 멈췄을 때에는 이미 붉은색에 물든 게이트를 뒤로하고 있는 앳된 얼굴의 소년이 서 있었다.
“애매하네.”
저 녀석을 소년이라고 부르는게 과연 맞나 싶기도 하다. 소년과 청년, 그 사이 어딘가.
높게 쳐줘도 20대 초반이나 되었을 법한 액면가.
소년의 티를 얼굴에서 벗어 내지 못한 녀석의 외관은 꽤 그럴듯했다.
검은색의 폴라티 위에, 무릎까지 내려오는 버건디 색상의 코트.
창백하다고 느낄 정도의 하얀색 피부와 무심한 듯 이쪽을 쳐다보는 검은색 눈동자에서는 그 어떠한 동요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녀석에게서 느껴지는 마력과, 녀석의 허릿춤에 달려 있는 검은색의 검집을 통해서 그가 검을 사용한다는 것 정도만 추측할 수 있을 뿐이었다.
“교섭조. 시작해라.”
김 실장은 나지막하게 명령을 전달했다. 그러자 우리의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교섭조의 조장이 확성기를 들어 올렸다.
교섭조라고 하더라도 디재스터급 귀환자에게 접근하지 않는다라?
아주 현명한 판단이었다.
무턱대고 접근해서 개죽음을 당하는 것보다는 이쪽이 훨씬 낫지.
마침 그레이트 웜들의 괴성도 멈춘 상황이라 확성기를 통해서 교섭조장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대한민국에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귀하는 대한민국의 국민이 맞습니까? 맞다면 오른팔을 들어 올려 주십시오.”
그 말에 귀환자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없이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김 실장에게 넌지시 물었다.
“호재입니까?”
“……일단은 한국어를 알아듣는다는 점에서는 호재입니다. 일부 귀환자들은 한국어조차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적어도 말은 통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호재로군요.”
일단 첫 단추는 잘 끼워졌다, 그렇게 판단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아까부터 느껴지는 이 끈적한 불길함은 무엇일까? 절로 미간이 찌푸려진다.
“교섭조장. 계속 진행해.”
“예, 알겠습니다.”
한국어가 통한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그다음 단계는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다.
“적대 의사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무장을 해제해 주실 것을 정식으로 요청합니다. 만약 저희들의 지시에 따라 무장을 해제해 주신다면, 본격적인 절차를 밟아 나가겠습니다. 귀하에게 그 어떠한 해를 가하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검수에게 있어서 검이란 제 몸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놓으라고 해서 쉽게 놓을 수 있는, 단순한 물건 따위가 절대 아니란 뜻이다.
그러나 귀환자는 교섭조장의 요청에 순순히 검집을 풀러 자신의 발밑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천천히 무기와 거리를 이격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손을 뒤로했다.
전투 의지가 아예 없음을 표명하는 행위.
그 모습을 본 교섭조는 곧바로 다음 절차에 들어갔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이제부터 저희 직원들이 접근하여 귀하를 안전한 곳으로 모셔 갈 예정입니다. 그리하여도 괜찮습니까?”
끄덕.
남자는 그 질문에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겉으로만 보았을 때는 아무런 꿍꿍이도 없고, 정부 측에 굉장히 협조적인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김 실장이 긴장을 살짝 풀면서 말했다.
“3년 전의 류진영 씨보다도 훨씬 협조적입니다. 류진영 씨의 경계심을 풀기 위해서 꽤 애를 먹었습니다만, 저 남자는 의외로 순순히 따르는군요. 괜한 걱정이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플래그 함부로 세우시면 위험합니다, 김 실장님.”
교섭조장을 포함한 네 명의 교섭조가 조심스럽게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이미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그레이트 웜들은 그들이 접근하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길을 연다.
흉측한 마수들 틈으로, 남자에게까지 도달하는 길이 열렸다.
“……혹시 시우 님께서?”
“아닙니다.”
“그렇다면 저 몬스터들이 어째서…….”
“녀석들이 두려워하는 대상이 저뿐만은 아닌 겁니다.”
마수들 중에서도 흉폭하기로 유명한 그레이트 웜조차 저 남자에게 압도당해 있는 상태였다.
교섭조의 인원들은 최대한 평정을 유지한 채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그렇게 아주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발걸음을 내디뎌 갔고, 남자는 교섭조가 지근거리에 올 때까지도 무릎을 꿇은 채로 가만히 멈춰있었다.
아까 전에 느꼈던 직감이 정말 틀렸던 걸까?
‘……그럴 리가.’
직감이 틀렸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저 남자는 나조차도 내 직감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고분고분한 자세였다.
하지만 그때였다.
[상대방이 차원계: 지구>의 시스템에 완전하게 동기화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당신의 스킬들이 정상적으로 적용됩니다.] [액티브 스킬 멸악의 의지>를 발동합니다.] [플레이어 이은혁>의 악행을 나열합니다.] [대량학살> 등 ???건] [경고! 해당 대상은 수많은 혈겁을 쌓은 인물입니다. 멸악의 의지>가 즉결 심판을 권고합니다!]수많은 메시지 창들이 순식간에 눈앞에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멀리 보이는 남자, 이은혁의 등 뒤로 붉은색의 아우라가 관측되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보자마자 다급하게 김 실장에게 말했다.
“빼요.”
“예?”
“저 사람들 뒤로 빼라구요.”
“시우 님, 그게 지금 무슨…….”
김 실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손을 뒤로하고 있던 이은혁의 눈에서 붉은빛이 번뜩였다. 그와 동시에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검집이 녀석의 손으로 빨려들어 갔다.
이은혁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검집에서 검을 뽑아냈고, 나는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1초 채 되지 않는 찰나의 순간.
콰아아아아아앙!
“이 씹새끼 봐라.”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나는 장검의 검신을 손으로 막으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부우우우욱!
녀석의 발검에서부터 파생된 검풍이 내 주위의 모든 것을 찢어 버린다.
방금 전까지 조심스럽게 접근하던 이능관리부의 교섭조 전원이 피를 흩뿌리면서 뒤로 나가떨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들이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했다는 것.
만약 한 발자국이라도 더 나아갔다면 그들은 갈기갈기 찢겨 나갔으리라.
아아아아아아아악!
내 손에 가로막힌 검신을 타고 검붉은 마력이 요동친다.
마력이 요동칠 때마다 끔찍한 비명 소리가 귀를 때렸고, 검신 위로 고통스러워하는 인간의 얼굴들이 투영되었다.
정신력이 약한 사람이었다면 순식간에 공포에 잡아먹힐 수밖에 없는, 끔찍한 현상들이었다.
“너도 보이는구나.”
검신 너머로 이은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끔찍한 비명 틈 사이로 스며드는 녀석의 목소리는 귀신의 것과 다르지 않았다.
“네가 짐작하는 게 맞아. 내 검에 목이 잘려 나간 희생자들의 원혼이야. 정확히 10년 어치의 원혼들이지. 어때, 짜릿하지? 보는 것만으로 즐겁지 않아? 지구의 인간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어.”
위험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상대했던 유세혁? 아니면 테러의 주범이었던 이세희?
그 누구를 데려오더라도 이놈과 감히 비교할 수 없었다.
녀석의 공허한 눈빛 너머로는 한 가지만 보일 뿐이었다.
영혼마저 뒤틀리게 만든 증오.
이 녀석으로부터 느껴지는 것은 오로지 밑도 끝도 없는 증오심뿐이었다.
“너는 내가 오늘 이날을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는지 모를 거야. 오늘, 오늘 이날만을 위해서 내가 얼마나 많은 놈들을 죽여 왔는지 알아? 죽이고, 또 죽이고, 다 죽였어. 지구에 돌아오면 더 많이 죽여 버리려고!”
이은혁의 증오심을 매개체로 삼는지, 검붉은 마력이 다시 한번 요동쳤다.
파아아아아아앙-!
검신에서 방출된 반발력이 내 몸을 뒤로 밀어냈고, 이은혁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빠르게 자세를 재정비했다.
녀석으로부터 더 이상 무표정한 얼굴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은혁은 웃고 있었다.
“너만 아니었다면 기분좋게 시작했을 건데, 왜 나를 막는 거야. 너 따위가 뭔데? 너 따위가 뭔데 내가 행복해지는 걸 막아? 드디어 행복해질 기회가 찾아왔는데, 왜 막는 거냐고.”
“애새끼같이 생겨 가지고는, 더럽게도 징징거리네, 씨발.”
나는 검은 장갑을 착용하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교섭은 결렬되었다. 내가 정부로부터 받은 부탁은 하나야. 무력화시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되, 무력화가 불가능할 경우 즉각사살할 것.”
교화의 여지?
저딴 새끼를 교화시킬 바에야 차라리 마족을 교화시키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이미 영혼의 밑바닥까지 증오로 잠식된 자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어쩐지 기분이 더럽더라니.
“그러게 김 실장님, 플래그 좀 세우지 말라니까.”
나는 비릿하게 입꼬리를 올린 다음, 이은혁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였다.
“보통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 중2병은 사망 플래그더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무슨 소리긴? 너도 다를 바 없다는 소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