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
4.
이은혁은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있어서 불행이란 일상이었다.
학교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던 학창 시절.
음주 뺑소니에 의해 돌아가신 부모님.
부모님의 사망 보험금을 두고 싸우던 친척들.
그가 머무르거나 스쳐 지나갔던 곳 모두는 폐허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은혁에게 있어서 세상이란 오로지 불행으로 가득찬 곳이었다.
그의 인생에서는 행복이란 단어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죽을 용기조차 없어서 살아가는 인생.
이은혁은 자신에게 몰아치는 불행을 피할 수도, 피할 생각도 없었다. 그저 묵묵히 그 불행들을 몸속에 담아 두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파르데스라는 이름의 세계로 전이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여느 때처럼 길거리에서 잠들었다가 깨어난 이은혁이 마주한 광경은 눅눅하고 시체 썩는 냄새가 풍기는 지하 감옥이었다.
인간의 비명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 도살장.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이은혁은 그 불행조차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러자 그의 눈앞에 묵빛의 검신을 지닌 얇은 장검 하나가 나타났다.
-지독히도 불행한 아이야. 너의 불행과 증오로 나를 피워 내거라. 그리하면 내가 너의 소원을 들어주겠다. 십만의 영혼을 먹어 치우게 해 다오.
훗날 자신의 손에 죽어 나간 성기사들이 그 검을 보고 ‘마검’이라고 불렀지만, 그것이 성검이던 마검이던, 이은혁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이은혁은 기꺼이 그 검을 손에 쥐었고, 그날부터 그는 끊임없는 살인 속에서 살아갔다.
파르데스는 그가 수도 없이 읽었던 웹소설 속에 흔히 등장할 만한 세계였다. 마법과 기사, 성녀 같은 존재들이 존재하는 뻔한 클리셰 같은 세계.
마검의 도움으로 지하 감옥에서 탈출한 이은혁은 곧 인심 좋은 시골 가정을 마주하게 되었다. 얼굴도 다르고, 말도 통하지 않는 이들이었지만 그들은 이은혁에게 따뜻한 정을 베풀었다.
따듯한 음식과 아늑한 침대. 이은혁은 그들의 호의에 대한 대가로 죽음을 선사했다. 단란했던 다섯 가족은 그렇게 이은혁의 첫 피해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은혁은 그 뒤로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쉴새 없이 마검에게 영혼을 먹였다.
가끔씩 그의 악행을 저지하기 위하여 기사들이나 모험가들이 찾아오기는 했으나, 마검이 건네주는 힘을 이용해서 얼마든지 이겨 낼 수 있었다.
감당할 수 없는 적들로부터는 과감하게 도망쳤고, 감당할 수 있는 적들은 반드시 죽였다.
그의 목표는 단 한 가지였다.
지구로 돌아가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
그는 마검을 통해 흡수한 힘을 이용하여 1만 명이 살아가는 도시 하나를 싸그리 학살한 것을 마지막으로, 마검이 요구했던 십만의 영혼을 10년 만에 충족시킬 수 있었다.
-너의 세계로 돌아가 더 많은 영혼을 먹여 다오.
영리한 마검은 지구라는 세계에 더 많은 영혼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검은 처음의 약속을 지켜 주었고, 그렇게 해서 이은혁은 다시 지구로 돌아오게 되었다.
더 이상 그는 10년 전의 무력한 고등학생이 아니었다.
10년 동안 마검을 통해 흡수해 온 마력은 그 어떤 세계를 가더라도 강자라고 불릴 수 있는 수준이었다.
마검이 열어 준 게이트를 넘어오면서 그는 드디어 자신의 사명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남들에게도 자신과 같은 불행을 선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가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그 모습을 상상할 때마다 흥분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가 마침내 게이트를 넘은 순간, 모든 계획이 무너져 내렸다.
“죽어어어어어!”
검은색의 사제복을 입은 남자.
겉으로 보기에는 특별할 것도 없는 남자였으나, 이은혁은 아주 오랜만에 공포감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마검이 인도하는 대로 검을 휘둘렀다.
마검의 끝에서 붉은색의 꽃이 피어나고, 날카로운 가시가 쉴 새없이 남자의 몸을 찌른다.
마검의 유려한 검신은 쉴 새 없이 남자의 피를 탐했다. 마력을 통해 한계치까지 끌어올린 속력으로, 숨조차 쉴 틈 없이 거칠게 몰아쳤다.
‘그런데 왜?’
수십의 검격이 이어졌음에도 살을 베는 감각이 전해지지 않았다.
인간의 살을 검으로 베는, 그 묘하고도 흥분되는 쾌감이 없었다.
상대는 얼마든지 베어 보라는 듯이 그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지만, 이은혁의 마검은 사제복의 옷깃조차 베어 내지 못했다.
“왜! 왜!”
파르데스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는 검수조차 견뎌 내지 못했던 연격이다. 또한 도시의 성벽조차 두부 가르듯이 갈랐던 자신의 마검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의 검은 가만히 있는 상대조차 베어 내지 못했다.
마치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에 나뭇가지를 찔러넣는 것만 같았다.
-도망쳐라.
머릿속에서 마검의 음산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이은혁은 이번만큼은 마검의 목소리를 무시하기로 했다.
‘지랄하지 마!’
아직 복수는 시작되지도 않았다.
대한민국에 살던 모든 인간들을 칼로 베어 넘기고, 드디어 행복해질 수 있었다.
-보고도 못 느끼는 거냐? 도망쳐라. 더 많은 영혼을 먹어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일말의 가능성조차 없다. 우리의 격으로는 이자에게 도달할 수 없다.
다시 한번 마검이 말했다.
이은혁은 그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면서 전신의 마력을 검 끝으로 끌어모았다. 그리고 활짝 열려 있는 상대의 가슴팍에 전력을 담아 찔러 넣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일까.
자신이 담을 수 있는 모든 힘을 담아 넣었음에도,
“마력이 아깝다. 하긴. 게걸스럽게 마력을 처먹어 대기만 했지, 효율적으로 사용하는지도 모르는 풍선 새낀데. 뭐.”
상대는 그저 손바닥을 들어서 검끝을 멈춰 세웠다.
이은혁은 그 어처구니 없는 방어를 보고 난 다음에야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길 수 없다.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그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이길 수 없는 상대다.
도망쳐야만 한다.
파르데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마검을 통해 힘을 모은 다음에 죽이면 된다.
뒤늦게나마 정신을 차린 이은혁은 다시 한번 아까처럼 검신을 통해서 마력을 방출했다. 그리고 지체 없이 몸을 돌려서 반대쪽을 향해 달려 나갔다.
‘아직이야. 아직…….’
-……늦었다.
콰지지지직-!
기괴한 소리와 함께 이은혁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그 순간에 이은혁은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았다.
다리가 바깥으로 꺾여 있었다. 마치 나무 토막이 꺽인 듯, 하얀색의 뼈가 외부로 돌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생전 느껴 본 적이 없는 고통이 전신을 꿰뚫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악!”
고통에 의해 흐릿해진 시야 사이로 방금 전의 그 괴물 같은 남자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여유롭게 이은혁의 옆에 도착한 그 남자는 이은혁의 목을 움켜쥔 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능글맞은 목소리로 이은혁의 귓가에 속삭였다.
“도망칠 수 있을 줄 알았어?”
5.
검수를 상대하는 건 꽤 오랜만이었다.
무기를 잘 사용하지 않는 마족들의 특성상, 검수와 상대한 적이 그리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마족 편에 선 인간들을 통해 경험했을 뿐.
하지만 무기가 무엇이든 간에 공평하게 통용되는 법칙이 하나 있다.
싸움은 그냥 강한 놈이 이기는 거다.
검이든, 도끼든, 철퇴든, 창이든.
그냥 더 쎈 놈이 이긴다.
“같은 수법에 한 번 더 당해 줄 리가 없잖냐.”
나는 이은혁의 목을 움켜잡은 채로 조소를 지었다.
이은혁.
분명 이 녀석이 보유한 마력량은 방대했다. 일본에 있는 진영이 형이 보유한 마력보다 훨씬.
일반적으로 마법사들이 비슷한 수준의 다른 마력 사용자보다 방대한 마력량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 녀석이 지니고 있는 마력이 얼마나 방대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만약에 이 녀석이 그 마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했다면, 꽤 까다로운 적이 되었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놈은 자신의 마력을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하는 병신이었다.
“끄으으으!”
“너 같은 놈들이야 뻔해. 넌 지금까지 너보다 약한 사람들을 상대로만 싸워 왔을 거야. 조금이라도 강한 상대를 만나면 지금처럼 도망갔겠지. 안 그래?”
자신에게 아무리 좋은 무기가 있다고 한들, 그 무기를 활용하지 못하면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
그릇을 뛰어넘는 힘은 도리어 독이다. 그 독에 취해 눈이 가려지고, 자만하게 된다.
그리고 그 그릇이란 건 한계에 맞닿은 싸움을 통해서만 성장한다. 만약 내가 평화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면, 일곱 마왕을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리멘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를 끝도 없이 사지로 몰아넣었고, 그랬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다.
“너 때문에 안좋은 기억을 떠올려 버렸어. 네가 책임져라.”
나는 녀석이 검을 쥐고 있는 오른팔을 꺾어 버렸다. 그러자 녀석의 손에 들려 있던 묵빛 장검이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그것은 흔히 마검이라고 부르는 물건이었다.
반드시 마기가 깃들어야지만 마검이 아니다. 사악한 의지가 깃들어 있다면 그 어떤 기운이 담겨 있든지 마검인 것이다.
“끄으으으윽. 왜…… 왜 나를 막는 거야? 나는 그저…… 내가 받은 걸…… 돌려주려고…….”
고통이 녀석의 증오를 거두어 내자, 그 자리를 차지하는 건 억울함이었다.
이은혁은 허공에 매달린 채로 눈물을 흘려 대기 시작했다.
나는 그 웃기지도 않는 모습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물었다.
“뭐가 그렇게 억울한 거냐.”
“너희들 때문이잖아…… 내가 이렇게 된 거, 다 너희들 때문이잖아…… 너희들이 나를 이렇게 만든 거잖아…… 너희들이…….”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열 명의 사람이 있다면, 열 개의 사연이 있다.
인간이 이렇게까지 증오로 망가질 정도라면, 이 녀석에게도 분명 그럴 만한 사연은 있을 것이다.
내가 가족들을 다시 보겠다는 의지로 버텨 왔듯, 이은혁은 증오를 통해 버텨 왔겠지.
그건 굳이 이 녀석의 이야기를 듣지 않더라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내 눈에는 저 마검에 담긴 원혼들이 보였다. 셀 수 없이 많은 원혼들. 저들 모두가 이 녀석에게 살해당한 자들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죽어서도 평안하지 못했다. 저 저주스러운 마검에 갇혀 끝도 없이 고통받는 중이었다.
“네가 나였으면…… 안 이랬을 것 같아? 나를 이렇게 만든 세상은…….”
“이기적으로 남을 죽이고 다닌 새끼가, 이제 와서 나에게 공감을 바라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착각하지 마. 내가 지금 너를 죽이려는 이유는 정의구현 같은 거창한 이유가 아니야.”
으드드득-.
“끄으으으.”
나는 녀석의 턱을 잡은 채로 천천히 으스러뜨렸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같은 것을 이런저런 핑계로 살려 두면 내 사람들에게 아주 큰 위협이 된다. 그러니까 억울해하지 마라. 네가 너만의 이유로 사람들을 학살했듯, 나 역시 나만의 이유로 너를 죽이는 거니까. 단지 그뿐이다.”
그 말을 끝으로 이은혁의 몸이 축 늘어졌다.
녀석의 숨은 여전히 붙어 있었다. 목을 꺾어서 목숨을 거둘 수 있었지만, 그 방식은 내가 녀석에게 바라는 최후가 아니었다.
나는 녀석의 몸을 대충 바닥에 던져 둔 다음, 바로 옆의 마검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검의 그립을 잡자마자 사악한 의지가 내 정신 속으로 들어오기 위해 꿈틀거렸으나,
[패시브 스킬 신성 보호 Lv. Max>에 의해 정신 간섭이 무효화됩니다.]그 시도는 내 몸을 보호하고 있는 신성력에 의해 가차 없이 차단되었다.
“시우 님.”
어느새 내 곁에 도착한 김 실장이 내 이름을 불렀다.
“……이대로 생포는 불가능하겠습니까?”
“이번만큼은 안 될 것 같습니다.”
나는 김 실장을 향해 검을 살짝 흔들어 보였다.
“이 검에 잡아먹힌 분들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어서요.”
“그 검은…….”
“마검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의 정신을 좀먹고, 끝내는 파국으로 이끄는 저주받은 검이죠. 일이 끝나는 대로 성지의 대장간으로 가져가서 녹여 버릴 겁니다.”
성화로라면 사악한 의지를 소멸시키는 것은 물론이며, 마검에 의해 오염된 영혼들에게 평안한 안식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김 실장은 내 단호한 대답을 듣고는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용하게 말했다.
“이곳의 작전권은 현재 시우 님에게 있습니다. 원하시는 대로 하시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푸우우욱-.
성창을 소환하여 이은혁의 가슴팍에 찔러 넣었다. 그러자 녀석의 몸이 잠시 움찔거리다가 멎었다.
성창에서 뻗어 나간 신성력은 이은혁의 몸에 남아 있던 방대한 마력을 완벽하게 흩트렸다. 그리고 나는 곧바로 신성 결계를 이용해서 마검까지 완전하게 봉인시켰다.
나로서는 최선의 마무리였다.
김 실장은 그 장면을 끝까지 지켜본 후, 무전기를 들며 말했다.
“타깃 사살 성공. 현 시간부로 상황 종료. 부상자 네 명 발생하였으니, 호송팀 파견 바람. 이상.”
그렇게 상황이 종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