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06)
106화
6.
이능관리부 본청에 위치한 장관실.
유선호 장관은 창문너머로 펼쳐진 저녁 노을을 바라보며 조용히 숨을 뱉어 냈다.
똑똑똑-.
“들어오게.”
장관실의 문이 열리며 방금 막 이능관리부에 도착한 김동식 실장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장관님.”
“대강 보고받았네. 일단 앉게나.”
김동식 실장은 고개를 숙인 후 의자에 앉았다. 유선호 장관은 자신의 성실한 부하 직원에게 녹차를 내어준 다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김시우 각성자는?”
“헬기를 통해서 신전으로 복귀시켰습니다.”
“우리 김 실장이 항상 고생이 참 많아. 그래도 자네 덕분에 김시우 각성자와 정부의 관계가 매끄럽게 유지되고 있네. 항상 고마울 따름이야.”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겸손하기도 해라. 가끔은 티를 좀 내는 것도 좋아. 너무 겸손하기만 하면 밥맛 없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유선호 장관이 작게 웃으면서 말했다.
상사의 장난 섞인 조언에 김동식 실장은 상사를 따라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회의실에 살짝 내리앉았던 긴장감이 녹아내렸고, 유선호 장관은 부드럽게 본론으로 들어갔다.
“사후 처리는 어떻게 되었나?”
“타깃의 무기였던 검을 김시우 각성자가 회수해 갔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는 사특한 물건이라고 합니다.”
“자네가 보기에는 어땠는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비명이 귓가에 울려 퍼졌습니다. 저희로서도 쉽사리 감당하지 못했을 겁니다.”
김동식 실장의 보고에 유선호 장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리멘 교단 측에서 알아서 해결하겠군. 처리할 방법이 있으니 가져갔을 터.”
“그런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런 위험한 물건이 다른 자의 손에 들어갈 바에야 확실하게 처리하는 게 맞겠지. 그래, 그게 끝인가?”
“예. 그렇습니다. 부상당한 교섭조 네 명을 제외하고서는 추가적인 사상자는 없습니다. 재산 피해 역시 우려했던 것만큼 크지는 않습니다.”
“고생했네.”
“아닙니다.”
김동식 실장의 보고는 그렇게 끝이 났고, 유선호 장관은 입을 다문 채로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이레귤러 특별법의 도움을 받았군.’
김시우의 활동을 지원해 주기 위해서 제정되었던 법이었으나, 결국 그 법을 통해 먼저 득을 본 것은 정부였다.
그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디재스터급 귀환자는 디재스터라는 명칭에 걸맞는 재앙을 일으켰으리라.
‘그동안 내가 아등바등 싸워 온 것이 무색해지는구먼.’
불과 반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게이트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서 전각련을 비롯한 길드들의 의견을 조율해야만 했다.
전각련과 끊임없이 신경전을 주고받았고, 그 무엇 하나 쉽게 진행할 수 없었다.
하지만 김시우가 나타난 이래로 모든 것이 변했다.
그를 오랜 시간 동안 괴롭혔던 전각련은 분열하기 시작했으며, 정부의 권한도 대폭 늘어났다. 일본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존심 높던 그들이 먼저 고개를 숙이고 들어왔을 정도였으니까.
그 모든 것이 결국 김시우의 존재로 인해 이루어진 일들이었다.
‘차라리 그가 종교 집단의 수장인 게 다행이야.’
길드 같은 이익 집단의 수장이었다면, 정세는 또 다르게 흘러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유선호 장관은 저녁 노을을 바라보며 자신의 생각을 천천히 정리했다. 그리고 김동식 팀장에게 말했다.
“대통령께는 내가 직접 보고를 드리겠네. 자네에게 3일의 특별 휴가를 주도록 하지.”
“휴가 말씀이십니까?”
“근래에 정신없지 않았는가? 이번 기회에 아내와 자식에게 점수 좀 따고 오게나. 지금이 아니면 당분간 쉴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주는 거야.”
서 대통령의 주도하에 동북아 교류전이라는 희대의 이벤트가 확정되었다. 준비 기간이 그다지 여유롭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 뒤부터는 이능관리부의 전력을 쏟아부어야만 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네의 휴가가 끝나면 정신없는 나날들이 시작될 것 같으이. 우리 이능관리부에 있어서도 아주 중요한 분기점이 되어 줄 교류전이네. 대통령께서 강력하게 추진하고 계신 만큼, 우리 역시 최선을 다해서 지원해야만 해.”
김시우의 등장으로 인해 동북아의 세력 균형이 크게 뒤틀려 있었다. 이런 상항에서 서신우 대통령이 동북아 교류전이라는 빅 이벤트를 진행한다는 것은, 김시우를 중심으로 새 판을 짜겠다는 의지기도 했다.
유선호 장관은 의자에 등을 기대면서 작게 숨을 뱉어냈다.
“추경예산이 통과되면, 그 예산을 이용하여 각성자 전력을 증강 시킬 생각이야. 이번에 큰 위기에 빠진 하이브 길드의 몇몇 헌터들과도 물밑협상이 시작되었어.”
“바쁘신 것 같습니다, 장관님.”
“은퇴가 머지않았는데 족적은 남기고 가야지 않겠나? 그때까지 자네가 날 좀 잘 도와주게.”
은퇴라는 단어를 항상 입에 달고 다녔던 유선호 장관이었으나, 어쩐지 김동식 실장은 이번만큼은 그 말이 농담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후후. 그래, 이제 나가 봐도 좋네.”
“그럼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가족들과 좋은 시간 보내시게. 언제나 남는 건 가족뿐이니 말일세.”
톡.
유선호 장관은 방에서 나가는 김동식 실장을 바라보면서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의 뒤를 이어 줄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좋군.”
그러나 그로서는 이력의 막바지에 찾아온 이 부산함이 썩 싫지가 않았다.
노인은 차갑게 식어 버린 차를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7.
헬기를 타고 성지로 돌아왔다.
성지라고 하기에는 거창하긴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이곳을 성지라고 부르고 있었다.
레오와 루나가 인터뷰를 통해 몇 번 언급하기도 했고, 구 그라운드 제로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이쪽이 훨씬 간편했기 때문이다.
헬기에서 내린 나는 마검을 든 채로 곧바로 새롭게 건설된 대장간으로 향했다.
고등학교 체육관만 한 크기의 대장간에서는 미리 연락을 받은 토비와 라파르트 대주교가 성화로의 불을 피워 둔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그래요, 준비는 다 된 겁니까?”
내 질문에 토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성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충분히 성화로를 달구어 두었습니다.”
“이걸 녹여야 합니다.”
나는 신성 결계에 의해 완벽하게 봉인되어 있는 마검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 검을 본 토비의 표정이 잔뜩 찌푸려졌다.
“마검이군요. 이렇게나 끔찍한 피 냄새가 날 정도면, 셀 수 없이 많은 피를 묻힌 모양입니다. 그리고…….”
“검에 사로잡힌 불쌍한 영혼들이 보입니다.”
라파르트 대주교가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그를 이곳에 대기시켜 둔 이유도 전부 저 영혼들 때문이었다.
“라파르트 대주교께서 위령기도를 해 주셨으면 합니다.”
“얼마든지 그리하겠습니다.”
그들은 마검에 잡아먹혀 오랜 시간 고통받은 영혼들이다. 무저갱 속에서 고통받던 그들을 위로해 주는 일은 당연히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의무기도 했다.
화르르륵.
토비가 몇 번 풀무질을 하자 곧 성화로 내부의 새하얀 불길이 거세게 타올랐다.
화로에 넣어둔 최상급 신성석으로부터 피어오른 성화였다. 최상급 신성석을 원료로 삼은 만큼 화로 속의 성화는 무척이나 뜨거우면서도 강렬했다.
“이제 넣어 주시면 됩니다.”
“예.”
나는 조용히 마검을 들어 성화로의 입구로 다가갔다. 마지막을 직감한 마검의 의지가 최후의 발악을 시작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끝까지 지저분하기는.”
투우욱.
마검을 성화로에 던져 넣자 잠시 후 끔찍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수많은 혈겁을 단숨에 정화할 수는 없었는지, 마검은 성화로 속에서 꽤 오랜 시간 동안 형태를 유지했다,
그 시간 내내 비명 소리가 이어졌지만,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입 밖으로 말을 내뱉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비명 소리가 멎었을 때쯤,
사르르르륵.
드디어 마검이 조금씩 융해되기 시작했고, 검신에서부터 새하얀 불씨가 흘러나왔다.
불씨는 천천히 성화로 주위로 퍼져 나간다. 그리고 그 장면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라파르트 대주교가 조심스럽게 위령기도의 첫 운을 뗐다.
“자비로운 리멘님이시여. 제 기도를 들으시어, 이 길 잃은 자들에게 문을 열어 주시옵소서.”
묵묵히 뻗어 나가는 대주교의 목소리에, 허공으로 퍼져 나간 새하얀 불씨가 환하게 빛을 내뿜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슬며시 눈을 감았다.
“깊은 구렁 속에 갇혀 있던 영혼들이 당신의 자비를 구하나이다. 부디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그들을 죄악에서 구원하소서.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 당신의 크신 사랑과 우리들의 신실함에 기대어 기도를 드리나이다.”
라파르트 대주교가 나지막하게 위령기도를 끝마쳤을 때였다.
대장간의 천장에 설치된 유리창을 통해서 노을빛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노을빛은 허공에 떠올라 있던 새하얀 불씨들을 따뜻하게 비추었다.
불씨에 닿은 노을빛이 반사되어 빛줄기를 만들었고, 그 빛줄기를 통해 불씨들이 서로 연결되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도 그 기적과도 같은 절경을 그저 말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당신의 주신이 기도에 응답합니다.] [다른 차원계의 영혼들입니다. 차원계: 지구>의 시스템이 차원계: 에덴>의 주신좌 리멘>의 개입을 묵인하며, 수많은 영혼을 구원한 당신의 선행을 존중합니다. 해당 사건은 인과율 적합 심사>의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십만의 영혼을 구원한 당신의 선행이 신목>을 성장시킵…….]새하얀 불씨가 노을빛에 천천히 녹아 들어갔고, 나는 마지막까지 불씨를 바라보면서 숨을 죽였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새 우리의 주위에는 단 하나의 불씨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리멘이 검으로부터 해방된 영혼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거두어 간 것이다.
“고생하셨어요, 라파르트 대주교.”
“저에게 이런 영광스러운 일을 맡겨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교황 성하.”
라파르트 대주교가 고개를 숙이면서 겸손하게 답했다.
이로써 모든 일이 마무리되었다.
길었던 하루였다. 아침에는 면접도 보고, 오후에는 디재스터급 귀환자를 처리하고, 마지막에는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간만에 찾아온 다이나믹한 날이었다.
“그럼 다들 이제 퇴근을…….”
이렇게 많은 일이 있던 날에는 침대에 누워서 백설이의 볼을 만지작거리는 것이 최고다.
영혼을 해방시켜 주는 과정에서 신목이 성장했다고 하니, 가는 길에 들러서 확인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백설이도 아마 조금 더 컸겠지?
하지만 그때,
“성하. 아직 다 끝난 게 아닙니다.”
토비가 새하얗게 빛나는 금속 덩어리를 든 채로 나에게 다가왔다.
어디서 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순수한 신성력이 느껴지는 금속이었다.
“성화로를 통해 마검을 융해시킴으로서 얻게 된 결과물입니다. 사악한 기운과 마력은 성화에 의해 완벽하게 소멸한 상태입니다. 검의 제작에 사용된 금속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제련 환경에 따라 금속의 성질이 바뀌는 것 같습니다. 손을 한번 올려 보시겠습니까?”
토비의 말에 따라 나는 그 금속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익숙한 뜨거움이 전해져 왔다.
“성화?”
“그렇습니다! 이건 이 난쟁이 놈조차 살면서 처음 보는 금속입니다. 성화를 품은 금속이라니! 당장에라도 제련해 보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합니다.”
“이걸로 뭘 만들 수 있습니까?”
“말씀하시는 뭐든지요. 성검을 만들어 달라면 성검을 만들어 드릴 수 있고, 방패를 만들어 달라 하신다면 방패를 만들어 드릴 수 있지요.”
성화를 품은 금속이라?
정말 예상외의 소득이었다.
성화는 신성력을 통해 발현되는 힘이었지만, 발현된 이후로는 신성력과는 사뭇 다른 성질을 보유하게 된다.
사악한 것을 불태우는 힘.
즉, 강력한 파마의 성질을 획득하는 셈이다.
그러한 성화의 특징을 지닌 금속이라면 신성석을 통해 만드는 다른 합금과 비교하더라도 강력한 수준의 파마력을 발휘할 것이 분명했다.
“땡잡았네.”
역시 이래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하는 모양이다. 길 가다가 금 송아지를 줍게 된 기분이었다.
“성질을 잘 이용한다면 재밌는 작품을 많이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씀만 하십쇼!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어 드릴라니까.”
나는 통통한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는 토비를 바라보면서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뭘 만들어야 잘 만들었다고 소문이 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