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07)
107화
33. 겨울 방학
1.
디재스터급 귀환자가 출현했던 사건 이후로는 별다른 일 없이 시간이 흘렀다.
전각련은 내부의 계파가 나뉘어 하루가 멀다 하고 서로 싸우고 있었고, 백명교 녀석들은 의외로 의료 봉사를 다니면서 자중하는 모습이었다.
덕분에 나 역시 아무런 고민 없이 신전과 집을 오가면서 휴식을 취했다.
정부에서는 동북아 교류전이 개최되기 이전에 전국의 빌런들을 뿌리 뽑겠다며 나날이 살벌한 행보를 이어 가고 있었다.
하이브 길드 소속의 헌터들이 대거 이능관리부로 넘어가고, 끊임없이 각종 비리 사건들이 보도되고.
대한민국의 연말은 매일 같이 터져 나오는 빅 이슈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중이었다.
외신에서는 이런 한국의 모습을 두고 ‘크레이지 코리아’ 등의 별칭으로 부른다던가?
아무튼.
세상이 미쳐 버리건 말건, 나의 연말은 10년 만에 만끽하는 크리스마스 덕분에 아주 행복하다 할 수 있었다.
그토록 돌아오고 싶었던 지구에서 맞이한 크리스마스.
지난번 회식 멤버에다가 토비, 라파르트 대주교까지 더해서 아주 거창하게 파티를 열었다.
파티를 준비하느라 힘들긴 했어도 시연이가 아주 행복한 표정을 지었기 때문에 나 역시 뿌듯했었다.
오랜만에 연말 분위기를 즐겼달까?
“흐으음.”
나는 토비가 만들어 준 하얀색의 너클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 너클은 지난번에 마검을 융해시키면서 얻은 금속, 일명 불카늄(Vulcanium)으로 제작된 특수 너클이다.
신의 불꽃을 머금은 금속이라고, 인욱이가 붙여 준 이름이다. 내 동생의 네이밍 센스가 꽤 탁월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내 전투 방식이 무기보다는 주먹으로 싸우는 무투파에 가까웠던 탓에 토비는 나에게 두 가지 무기를 만들어 주었다.
너클과 건틀렛.
그 무기들은 한 가지 공통적인 기능을 지니고 있었는데,
화르르륵-!
성화를 압축시켜서 방출해 낼 수 있는 기능이 탑재되었다. 즉, 성화의 위력을 대폭 강화시켜 주는 촉매제가 되어 주는 셈이다.
불카늄 자체가 성화를 응축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었기에 가능하다던가? 토비가 아주 열성적으로 설명을 해 주었지만, 워낙 쓸데없이 많은 정보였던 탓에 한 귀로 흘려 버렸다.
남은 불카늄은 추후 제작되는 장비에 첨가할 예정이라는 것만 들었다.
나는 너클에 손가락을 넣은 채로 가볍게 돌리면서 슬쩍 내 집무용 책상 너머를 바라보았다.
“저기요.”
“예! 교황님.”
“기도실도 있고, 지하 공간도 있고, 하물며 조금만 걸어 나가면 카페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제 집무실에서 과외를 하고 계시는지?”
회의를 위하여 가운데에 배치해 둔 넓은 책상에는 양복을 입은 젊은 남자와 하얀색 사제복을 입은 노인이 앉아 있었다.
젊은 남자의 정체는 우리 교단의 경영 고문 역할을 맡게 된 박지원 씨였다. 지난번에 면접을 봤던 그 남자 맞다.
박지원 씨에게 현대의 경영 지식을 전수받고 있는 노인은 당연히,
“쯧. 섭섭합니다, 성하. 꼭 이 늙은 놈을 신전 밖으로 내쫓으셔야 마음이 편하십니까?”
“저봐 저봐. 꼭 자기가 불리할 때만 노인이래. 라파르트 대주교. 너무 비겁한 거 아니예요?”
68세의 만학도, 라파르트 대주교였다.
라파르트 대주교는 볼펜을 움켜쥔 채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성하께서 이리도 매정하시니, 힘없는 늙은 놈은 그저 서러울 따름입니다.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는 처지이온데…….”
“……제가 미안합니다. 계속하세요. 과외.”
“성하의 하해와 같은 자비로움에 감사드립니다. 지원 군? 계속합시다.”
“좋습니다, 대주교님. 대주교님이 워낙 스펀지같이 지식을 빨아들이셔서 매번 감탄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허허, 부끄럽군요. 그저 성실히 배울 뿐입니다. 이게 다 스승이 훌륭해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허허허.”
둘이 성격이 안 맞으면 어쩌나 걱정했건만. 이쪽도 전혀 예상치 못한 찰떡의 케미를 자랑하는 중이었다.
서로를 칭찬하는 그 모습이 어찌나 거북하던지, 사제 간의 끈끈한 정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밥맛이 사라진다.
“어후.”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랬다.
나는 차마 그 상호 그루밍의 현장을 끝까지 볼 자신이 없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사제지간이 동시에 나를 쳐다보았다.
“어디 가십니까?”
“급한 일도 없으니까 잠시 외출 좀 다녀오려구요. 날씨 좋잖아요.”
“교황님.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 역대급 한파주의보가 발령되었다고 하던데……”
“역대급 한파를 이때 아니면 언제 경험할까 싶군요. 그리고 오늘 시연이가 방학하는 날이라서 오래간만에 데리러 갈 생각입니다.”
그 말에 라파르트 대주교가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시연 아가씨를 데리러 가시는 거군요. 알겠습니다. 수행원은 딱히 필요 없으십니까? 레오 대주교라도 데려가시지요. 루나 단장은 견습 성직자들을 데리고 실습을 나갔습니다.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온다더군요.”
우리 교단의 1기 교육생들도 정상적인 궤도에 올라섰다. 오준우 씨와 루나가 쉴 새 없이 교육생들을 갈아 넣은 덕에, 아주 기초적인 호신술 정도는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걸음마를 겨우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자마자 곧바로 지옥의 던전 뺑뺑이가 시작되었다.
토비가 직접 아나키> 길드의 플레이어들을 데리고 공장마냥 갑옷을 찍어 낸 덕분이다.
빵빵한 장비빨이 아니었다면 병아리들을 던전으로 몰아넣는 미친 짓은 못 했을 터였다.
“그렇게 해야겠네요. 그럼 레오를 데리고 다녀오겠습니다, 라파르트 대주교. 그동안 신전을 잘 부탁드립니다.”
“예, 성하.”
나는 간단하게 코트를 챙겨 입었다.
그리고 나가기 전, 책상 옆 유리병에 담겨 있던 꿈틀거리는 조각>을 확인했다.
[꿈틀거리는 조각>]*성장률: 58%
내가 지금 여유로울 수 있는 이유 중에는 메인 퀘스트의 부재라는 이유가 포함되어 있었다.
기존의 메인 퀘스트는 클리어되거나 정지되어 있는 상태.
아마 이 녀석이 완전히 성장하기 전까지는 현재 상황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 전에 마음껏 즐겨야지.”
바쁠 땐 바쁘더라도 즐길 땐 즐겨야지.
일이 닥치지도 않았는데, 나중의 걱정을 당겨서 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오십시오, 성하.”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교황님.”
나는 그들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 준 다음, 집무실의 문을 열고 나갔다.
2.
시연이가 다니는 ‘서울제일초등학교’는 성지로부터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 그 학교는 여러 가지로 유명했다.
대형 길드 소속 헌터들의 자제들이나, 고위직 공무원들의 자제 같은 사회 상류층이 주로 다니는 사립초등학교.
그런 특수성 때문인지 헌터들을 경비로 고용하고 있었고, 여러모로 보안도 확실했다.
학비가 엄청 비싸다는 단점은 있었지만, 마침 우리가 이사간 집에서 멀지 않은 편이어서 길게 고민하지 않고 그곳으로의 전학을 결정했다.
처음에는 적응하지 못하면 어떻게하나 걱정하기는 했다.
시연이가 아직 10살이고, 저학년 때의 전학은 대부분이 싫어할 테니까.
하지만 시연이는 고맙게도 싫은 티를 하나도 안 냈다.
새로운 시연이네 담임 선생님의 말을 들어 보면 곧잘 적응을 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글쎄.
다음 학기까지는 두고 봐야 하지 않을까?
“성하. 도착했습니다.”
창문 밖을 바라보면서 상념에 잠겨 있을 때쯤, 레오가 나를 불렀다.
“어, 그래. 레오야. 너 요새 운전 실력 엄청 많이 늘었다? 잘 뻔했어.”
면허를 딴 이후로 나날이 운전 실력이 늘어나고 있는 레오였다.
인간을 뛰어넘는 운동신경의 소유자였으니 어쩌면 운전 쯤이야 레오에게 무척이나 쉽게 느껴질 것이다.
참고로 루나는 요새 3억짜리 스포츠카 끌고 다닌다.
루나가 직접 병아리들을 데리고 토벌하는 던전에서 나오는 부산물들이 제법 짭짤했고, 그에 따라 막대한 양의 인센티브가 지급된 덕분이었다.
“주차장에 빈 자리가 없어서 좀 멀리 주차를 해야 할 듯합니다.”
“그래 보이네. 뭔 놈의 학교 앞이 이래?”
“하교 시간에는 보통 이렇습니다. 보통 부모님보다는 기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리러 오더군요.”
잘사는 집 자제들이라 이거지.
딱 봐도 경호원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정문 주변에서 대기 중이었다.
마력도 은은하게 느껴지는 것이, 하나같이 각성자, 그것도 헌터들인 것이 틀림없었다.
“먼저 내리시지요, 성하. 여기에 잠시 주차를 해 둘 테니, 시연 님을 이곳으로 모셔 오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
차에서 내리자 곧 칼날 같은 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한파주의보답게 아주 매서운 칼바람이었다.
오늘 최저 온도가 영하 16도라고 했나?
등교 시간을 낮으로 변경했기에 망정이지, 아침에 등교를 하라고 했으면 아마 대부분이 등교를 거부했을 것 같다.
그 정도로 추운 날씨였다.
아마 나도 신성력이 아니었다면 쌀쌀하다고 느꼈을 것 같았다.
“그래도 타이밍 잘 맞춰 왔네.”
때마침 정문에서 학생들이 걸어 나오는 중이었다. 방학식이 끝난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는 곧 하교 문화의 신세계를 경험하게 되었다.
학생 한 명 한 명이 나올 때마다 정문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사람 중 하나가 달려가서 가방을 건네받았다.
정문 밖으로 나온 학생들 중에서 수행원이 없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정문 앞에 거대한 크기의 주차장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신기하네.”
나나 인욱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만 하더라도 본 적이 없던 광경이다.
그때는 친구들이랑 같이 하교하는 낭만이라도 있었지, 이게 뭐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렇게 아이들을 챙기는 것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었다.
돈이 많고 여유가 있으니까 저렇게 해 주겠다는 건데, 그것을 두고 뭐라고 할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다만, 아이들다운 맛이 없다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드디어 노란색 떡볶이 코트를 입은 시연이가 정문 밖으로 걸어 나왔다.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시연이는 나오자마자 곧장 우리집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시연이의 뒤로 다가간 다음, 시연이의 눈을 가리면서 말했다.
“누구게?”
“큰 오빠! 헤헤, 나 데리러 왔어?”
“생각보다 안 놀라는 것 같네. 깜짝 놀래켜 주려고 한 건데.”
“헤헤, 정문에서 나오자마자 오빠가 있는 걸 봤지! 일부러 모르는 척했어!”
요새 내 정신 나간 동료들이랑 자주 놀아서 그런가, 시연이 역시 나를 놀리는 맛에 빠져 버린 것 같다.
하지만 시연이는 귀엽고, 또 귀여우니까 봐주도록 하자.
나는 시연이를 꼭 껴안아 주었다.
“시연이 안 추워?”
“응! 백설이 덕분에 하나도 안 추워.”
스르르륵-
미야아아아아.
아무것도 없던 바닥에서 아깽이 크기의 백설이가 모습을 드러냈더니, 내 다리에 머리를 비볐다.
이것은 지난번에 신목이 대폭 성장하는 과정에서 백설이에게 탑재된 일명 스텔스 기능이었다.
“오늘도 잘했어. 집가서 츄르 먹자, 백설아.”
미야아아!
츄르라는 단어 앞에서는 귀엽게 꼬리를 쳐 대는 백설이였지만, 저래 보여도 지금 마음만 먹으면 호랑이만큼 거대해질 수 있는 상태였다.
지난번 마검의 영혼을 해방시켰던 일이 신목에게 엄청난 영양분이 되어 줬던 것이다.
지금의 백설이 정도면…… 하위 S급 헌터와도 한바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명색이 신수니까 말이다.
“오늘 방학식은 어땠어?”
“음, 별거 없었어! 큰 오빠. 우리 이번 겨울 때 다 같이 눈썰매장 가면 안 돼?”
“인욱이 데리고 셋이서? 좋…….”
“아니아니. 가족들 다! 아까 새로 사귄 친구들이랑 이야기했는데, 누구는 스키장을 빌린다고 하더라구. 나는 스키는 싫어. 옛날부터 오빠 손잡고 눈썰매장 가고 싶었어!”
‘가족들 다’라고 하는 건 리멘 교단의 식구까지 모두 포함이겠지?
그것 참 대가족일세.
하지만 저렇게나 좋아하고 있는데, 안 된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새끼손가락을 올리며 말했다.
“가자. 오빠가 약속할게.”
“약속!”
시연이는 해맑게 웃으면서 내 새끼손가락에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그리고 그때, 시연이의 배에서 귀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꼬르르륵-.
“헤헤. 배고프다.”
“우리 떡볶이나 먹으러 갈까? 레오 아저씨가 차에서 기다리고 있어.”
“좋아!”
떡볶이라는 소리에 시연이가 힘차게 대답했다.
그렇게 나는 시연이의 손을 잡고 차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탑승하려던 찰나,
우우우웅-.
코트의 주머니에 넣어 둔 스마트폰이 울렸다.
“시연아 잠깐만.”
폰을 꺼내 확인해 보니 전화가 오는 중이었는데, 액정에는 꽤 오랜만에 보는 이름이 표시되고 있었다.
「서신우 대통령」
요새 동북아 교류전 때문에 바쁘다더니만. 이 아저씨가 웬일로 전화를 했을까?
“시연아. 먼저 차에 들어가 있을래?”
“알았어 오빠. 추우니까 빨리 들어와!”
나는 시연이를 먼저 차에 들여보낸 다음, 여유롭게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스마트폰 너머로 힘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에 전화드립니다, 김시우 각성자. 날이 부쩍이나 추워졌는데 잘 지내십니까? 문득 생각이 나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저야 항상 잘 지냅니다. 그런데 어쩐 일로?”
-동북아 교류전에 관한 몇몇 사항이 확정되었습니다. 혹시 식사는 하셨습니까? 안 하셨다면 함께 식사를 하면서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마침 리멘 교단의 성지와 가까운 곳에 있기도 하구요.
아무래도 편하게 쉴 날은 다 지나간 것 같다.
나는 전화기 너머로 안 들릴 정도로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