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08)
108화
3.
시연이를 픽업한 지 30분 후.
“떡볶이가 입에 맞는지 모르겠어요, 시연 양. 먹을 만해요?”
“맛있어요! 감사합니다, 대통령 아저씨.”
“그래요. 많이 먹어요. 그 나이 때는 무엇이든 많이 먹는 게 좋습니다.”
서 대통령은 시연이가 열심히 떡볶이를 먹는 모습을 흐뭇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나는 그가 손수 덜어 준 떡볶이를 포크로 찍어서 입에 집어넣었다.
우리가 흔히 사 먹는 배달 떡볶이와는 확연한 맛의 차이가 있었다. 떡도 아주 탱글탱글했고, 씹을 때마다 고추장을 비롯한 양념들의 풍미가 쏟아져 내렸다.
확실히 맛있는 떡볶이였다.
“맛이 어떻습니까?”
“아주 맛있습니다.”
“하하! 저희 한식 조리장의 솜씨가 아주 훌륭합니다. 분식도 잘 만드는 편이라, 저도 매번 신세를 지고 있지요. 제 안사람보다 훨씬 나아요.”
“대통령께서 말씀하셨던 가까운 곳이라는 게 이곳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시연이도 함께 데려와도 좋다기에 어디 음식점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대통령이 불러 준 주소는 바로 이곳, 구청와대였다.
한때 대통령들의 거처였기도 한 이곳은 디멘션 오프닝 이후로 완전히 폐쇄되었다고 들었는데, 막상 와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곳곳에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흔적은 있었지만, 많은 인력이 투입되어 재단장이 이루어지는 중이었던 것이다.
“곧 개최될 동북아 교류전의 공식 행사를 이곳에서 진행할 계획입니다. 그래서 급히 시설 보수를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렇군요.”
“이곳을 저희들에게 돌려주신 분이 바로 시우 님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가장 먼저 시우 님을 초청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곳은 그라운드 제로와 꽤 가까운 곳에 위치한 장소였다. 만약 리멘이 아크를 해체해 주지 않았다면, 이곳의 창문을 통해 여전히 검은색의 장벽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아예 이쪽으로 이사를?”
“하하, 임기 중에 집무실을 옮기는 건 힘든 일입니다. 여전히 세종시 청사를 사용할 예정입니다. 이미 그쪽에 정부 기관 대부분이 자리 잡은 상태기도 하구요. 아마 이곳은 국가적인 행사가 있을 때만 사용하게 될 것 같습니다.”
확실히 외부의 행사를 위한 장소로 이곳만 한 곳이 없기는 했다.
한때 대한민국 권력의 심장이었던 장소였으며, 지금에 와서는 대한민국이 디멘션 오프닝이라는 상처를 극복했음을 상징하는 장소가 되었다.
바로 앞에 펼쳐진 경복궁과 그 왼쪽에 자리 잡은 리멘 교단의 성지까지.
대한민국이 지니고 있는 여러 상징들과 맞닿은 장소임에는 틀림 없었다.
그 이후로 나와 서 대통령은 가볍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식사를 이어 나갔다.
그렇게 슬슬 식사가 마무리되어 갈 때쯤.
입가에 소스를 잔뜩 묻히며 먹고 있던 시연이가 포크를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잘 먹었습니다!”
“맛있었나요, 시연 양?”
“네! 그런데 대통령 아저씨! 저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만난 지 1시간 정도밖에 안 되었는데 대통령에게 부탁을 한다?
시연이에게 이런 뻔뻔함이 있었을 줄이야.
서 대통령은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음에도 인자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우리 귀여운 숙녀분의 부탁이라면 얼마든지 들어드릴 수 있지요.”
“혹시 레오 아저씨랑 같이 이 건물 둘러봐도 될까요? TV에서만 보던 곳이라 엄청 궁금해요!”
“마침 본관에는 사람이 많이 없으니까 이번 기회에 실컷 뛰어놀아도 됩니다. 이 비서관? 우리 꼬마 숙녀님과 레오 대주교에게 이곳을 안내해 주게나.”
“예, 대통령님.”
그렇게 시연이는 신나는 발걸음으로 청와대 모험을 시작하였고, 레오와 함께 빠른 속도로 퇴장했다.
서 대통령은 그런 시연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일부러 자리를 피해 준 것이군요. 시연 양은 정말 또래답지 않은 것 같습니다. 참으로 총명해요.”
“원체 눈치가 빠른 아이거든요. 가끔은 또래다웠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시연이는 아마도 내가 자신 때문에 서 대통령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있다 생각했을 것이다.
시연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아이였다.
가끔은 나에게 떼를 좀 쓰고, 어리광을 부려도 좋을 텐데, 나를 다시 만났을 때 이후로 우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가끔 어른이 아이들을 배려해 주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어른들을 배려해 주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서 대통령은 어느새 조리장이 내어온 차를 나에게 권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안 그렇습니까, 김시우 각성자?”
“동감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은은한 국화 향을 풍기는 차를 한 모금 목으로 넘겼다.
차의 따스함이 몸으로 퍼져 나갔다. 긴장이 풀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식사 시간도 끝났으니, 슬슬 일 이야기를 시작해 봅시다.”
“좋습니다.”
“교류전 기간 동안 중국 측과 물밑 대화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잃어버린 땅, 즉 구 북한 지역이 주요 화제로서 논의될 것 같습니다. 그때 말씀드렸던 그대로 확정되었습니다.”
그동안 자신들이 꽁꽁 싸맸던 이레귤러까지 움직일 정도라면, 확실한 이익을 염두해 두지 않고서는 셈이 맞지 않는다.
실력을 견주자는 애매모호한 목적보다는 차라리 이쪽이 훨씬 말이 된다.
“결국, 교류전의 결과에 따라서 대화의 방향도 달라지겠군요. 하여간에 양아치 같은 새끼들.”
하루 이틀이 아니라서 이제는 별로 이상하지도 않다.
국제 관계에서 양아치가 아닌 관계가 있겠냐마는, 하는 짓을 보면 옛날부터 참 일관되었다.
남의 집에 들어와서 행패를 부린 다음, 돈을 뜯어 가는 놈들이 양아치가 아니면 대체 뭘까?
“교류전의 방식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나, 각국마다 10명의 각성자를 뽑은 다음, 5명씩 나누어 겨루는 방식으로 결정될 것 같습니다. 명단에 들어가는 10명 모두 최소 S급 헌터 이상의 실력자들로 구성될 예정입니다.”
한 중 일 3국의 내로라하는 S급 헌터가 10명씩 모여서 실력을 겨룬다?
“아수라장이 되겠네요.”
“일본 측과의 대련은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적당히 유망주끼리 겨루는 선에서 조정될 겁니다. 메인이벤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김 실장에게 듣기로는 대통령께서 일본의 참가를 밀어붙이셨다는데…….”
“곤궁한 상대에게 빚을 주는 것만큼 남는 장사가 없습니다. 일종의 고리대금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군요. 제 이자는 비싼 편입니다.”
체면을 세워주는 대가로 더 많은 것을 뜯어낸다라.
이쯤 되면 대통령이 아니라 사채업자 같다. 왜 이 사람이 장사꾼이라고 불리는지 다시 한번 실감했다.
“리멘 교단 측에서 김시우 각성자를 포함하여 총 세 명을 지원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 남자의 생각이 뭔지도 대충 예상이 간다.
“제가 교류전에 참가하는 것은 확답을 드릴 순 있지만, 다른 인원들의 참가에 대해서는 확답을 드리진 못하겠군요. 저희가 이래 보여도 종교인이라…….”
“저희 대신 싸워 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저 평화를 위해서, 약간의 도움을 부탁하고 있는 겁니다.”
서 대통령이 염두하고 있는 인원은 레오와 루나일 터. 나에게만 참가를 요청했던 지난번과는 조금 달라진 내용이다.
그만큼 서 대통령은 이번 기회에 확실히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나만 참가하는 것과, 레오와 루나까지 참가시키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신전에 돌아가셔서 한번 읽어 보신 후, 여유롭게 답을 주시지요. 저희측에서 리멘 교단에게 합법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해 두었습니다.”
그는 그 말과 함께 나에게 깨끗하게 정리된 서류 파일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나와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나는 그 서류 파일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장사꾼 맞으시다니까.”
“최고의 칭찬, 감사합니다.”
이 사람은 혹시 밥 대신에 구렁이를 먹는 게 아닐까.
4.
대통령과의 식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백설이를 꼭 껴안고 있는 시연이에게 넌지시 물었다.
“떡볶이 맛있었어?”
“응! 그런데 나는 엽전 떡볶이가 더 맛있는 것 같아.”
한식 조리 경력 22년이라는 조리장의 떡볶이조차 프랜차이즈의 떡볶이를 이겨 내지 못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대통령에게는 비밀로 해야지.
“그래도 예쁜 건물 많이 구경했어. 나도 나중에 그런 건물 짓고 싶어.”
“건물 짓고 싶어?”
“응. 엄청 예쁘고 크게 지어서 다 같이 살 거야. 특별히 큰오빠한테 가장 큰 방 줄게. 할머니는 그다음으로 큰 방, 작은오빠는 세 번째.”
“역시, 대한민국은 혈연이지. 우리 시연이 다 컸네, 다 컸어.”
“헤헤.”
나는 시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해 줬던 말을 잠시 떠올렸다.
-중국에서 사전답사를 위하여 각성자들을 파견했습니다. 금일 오전에 입국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들이 찾아올 수도 있으니, 인지하고 계셨으면 합니다.
느낌이 살짝 쎄했다.
지구로 귀환한 이후로 축적한 빅 데이터에 따르면, 보통 저렇게 말할 경우에는 대부분 문제가 발생하더라.
그렇기 때문에 아예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훨씬 속이 편했다.
중요한 건 그 문제가 언제 발생하냐는 것인데…….
“성하. 도착했습니다.”
“시연이만 집에 데려다주고 올게.”
“예.”
1층에 내려서 시연이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인욱이에게 시연이를 인계한 다음, 다시 1층으로 돌아왔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퇴근하고 싶었지만 집무실로 돌아가서 확인해야 할 것이 이래저래 많았다.
대통령이 준 서류들도 한번 검토해 봐야 했고, 무엇보다 이 쎄한 느낌이 마음에 걸렸다.
“가자.”
“예.”
차를 이용하면 성지까지는 5분쯤 걸린다. 다만, 여전히 성지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가득했기 때문에 신전 앞까지 차로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신전과 가장 가까운 주차장에 차를 댄 후, 도보를 통해 이동하는 수밖에 없었다.
평소 같으면 나와 레오를 알아본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 만도 한데, 어째서인지 성지의 분위기가 좀 묘했다. 어수선하다고 해야 할까?
한파주의보가 발령돼서 그런가 평소보다 사람이 적은 편이라서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분위기가 좀 이상합니다, 성하.”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니었나 봐.”
레오 역시 수상하다고 하는 걸 보면 단순한 기분 탓만은 아닌 것 같았다.
우리는 조금 더 빠르게 걸음을 옮겼고, 곧 신전의 입구가 보이는 곳까지 도달했다.
외곽 지역과는 다르게 신전 주위에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같이 무언가를 보면서 웅성거리는 중이었다.
“쟤네 뭐야?”
“갑자기 등장해서는…….”
“아까 중국말을 하는 걸 들었어.”
웅성거리는 사람들 너머로 열댓 명쯤 되어 보이는 마력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나와 레오는 조용히 인파들을 헤쳐 나갔고, 곧 신전 앞에서 펼쳐지고 있던 기묘한 대치 상황과 마주할 수 있었다.
신전의 계단 위, 하얀색 사제복을 입은 라파르트 대주교가 뒷짐을 진 채로 아래를 내려다보는 중이었으며, 그 밑에서는 누가 봐도 중국 국적의 각성자로 보이는 놈들이 라파르트 대주교를 노려보는 중이었다.
들려오는 말로는 대치 상황이 그리 오래 이어지진 않은 것 같았다.
“다시 한번 말한다. 교황 성하의 허락 없이는 날붙이를 든 채로 신전에 들어설 수 없다. 너희들에게 우리의 교리를 강요하진 않겠으나, 성스러운 곳에서 무례를 범하는 것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라파르트 대주교의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묵직한 힘이 담겨 있었다.
그가 내뿜는 위압감에 중국의 각성자들은 모두 무기에 손을 올린 채로 라파르트 대주교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대장 격으로 보이는 여자가 잔뜩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희들의 교황을 만나러 왔을 뿐이다.”
“성하를 알현하고 싶다면 즉시 무장을 해제하고, 순순히 협조해라.”
“말도 안 되는 소리! 너희들에게는 우리의 무장을 해제시킬 권한은 없다. 교황을 불러라. 우리의 인내심은 그리 깊지 않아.”
어쩐지 아까 서 대통령의 말을 듣자마자 뒤통수가 쌔하더라. 내 몸은 이미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것이란 걸 직감하고 있었나 보다.
“성하. 제가 해결을…….”
나는 레오가 나서려는 것을 손을 들어 멈춰 세웠다. 그리고 입꼬리를 히죽거렸다.
“나를 만나러 왔대잖아? 신전까지 찾아온 성의가 있으니, 이야기나 한번 들어 보자고.”
생각해 보면 귀환한 이후론 처음 조우하게 된 중국 정부 소속 각성자가 아니던가.
도대체 어떤 개소리를 지껄일지 기대된다.
나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가면서 말했다.
“우리 라파르트 대주교를 고생시켜서야 쓰나. 너희들은 노인공경이라는 것도 모르냐? 라파르트 대주교가 분명히 알아듣기 쉽게 얘기해 준 것 같은데. 뭐…… 알아듣지 못했다면 어쩔 수 없지.”
중국의 각성자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고, 나는 그런 그들을 향해 싱긋 미소를 지어 주었다.
“알아듣게 해 주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