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1)
11화
4. 간증
1.
2일 전, 여주의 던전에서 일어났던 도플갱어 사건은 어떻게든 잘 마무리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고, 부상자만 12명인 걸로 확인이 되었다.
게다가 12명의 부상자 모두 눈에 보이는 신체적인 부상이 아니라, 정신적인 측면에서 고통을 호소했다.
사실, 그건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고통이었다.
미믹이랑 도플갱어에게 당하면 흔히 겪게 되는 후유증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하루라도 더 늦었으면 그들 중에서 상당수가 목숨을 잃었을 거다.
도플갱어 놈을 죽이고 난 다음, 녀석의 계획이 어떤 거였는지 알아낼 수 있었거든.
“만약에 형, 도플갱어? 그놈이 의식에 성공했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어떻게 되긴. 거기 있던 사람들 전부 제물로 바치고 다른 악마들을 불러들였겠지.”
에덴에서도 도플갱어의 역할이 바로 그것이었다.
인간들을 본인의 연극에 몰아넣어 마기에 오염시킨 후, 그 인간들을 산제물 삼아 데모닉 게이트를 소환하는 것.
나는 실제로 녀석들이 시골 도시 하나를 제물로 바쳐서 거대한 데모닉 게이트를 소환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도플갱어를 보고 교만의 척후병이라고 했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도플갱어가 소환해 낸 데모닉 게이트를 통해 교만의 군단이 등장했었으니 말이다.
“운이 나빴는데, 또 한편으로는 운이 좋았던 거지. 내가 봤을 땐 그래.”
결론적으로는 큰 문제 없이 잘 마무리된 일이다.
대신 찜찜한 건 있었다.
왜 대한민국에 몇 번 나타나지 않았다는 그 어비스 던전>이, 하필이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단 말인가.
마냥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노골적인 우연이다.
지난번에 리멘이 나에게 말했던 인과율>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렇단 말은 내가 정말 추리 만화의 ‘그 주인공’마냥 지나가는 곳마다 사고를 끌어들이는 운명이 되었단 뜻일까?
“인욱아. 형 그냥 밖에 나가 살까?”
“뭔 개소리야 또.”
“그냥,”
리멘한테서 인과율 이야기는 괜히 들었다.
이래서는 사건 사고를 몰고 다니는 토템이 된 기분인걸.
그렇게 속으로 이런저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던 찰나, 인욱이는 갑자기 뭐가 생각났는지 먹고 있던 샌드위치를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맞다 형. 나 어제부터 물어보고 싶은 거 있었어.”
“뭔데.”
진짜 궁금했었던 모양인지 눈까지 반짝거린다.
인욱이가 저런다는 건 정말로 궁금하다는 이야기다. 어렸을 적부터 꼭 궁금한 게 있으면 저렇게 눈을 빛내더라.
“도대체 민수 형을 어떻게 한 거야?”
“그러니까 뭐를?”
“민수 형이 진짜 지독한 무신론자였거든? 그런데 이것 좀 봐.”
인욱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본인이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내게 보여 줬다.
녀석의 스마트폰 화면에는 민수 씨가 어제 인욱이에게 보냈던 톡이 떠올라 있었다.
-인욱아. 교황님이야말로 여신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증거야. 앞으로 너랑 나랑 열심히 노력해서 교황님을 잘 모셔야만 한다. 알겠지?
“형 혹시 안 믿으면 안 구해 준다, 뭐 이런 거 아니지?”
“에이, 너 형 못 믿냐? 형은 그냥 좋은 말씀 나눈 게 끝이야. 더 없어.”
진짜 나는 억울하다.
누가 보면 내가 민수 씨를 묶어 둔 채로 가스라이팅이라도 한 줄 알겠다.
민수 씨의 이런 자발적인 신앙심은 어디까지나 본인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물론 거기서 외압이 좀 있기는 했지.”
“형이 직접 세뇌한 거야? 540만 미튜버라서 쓸모 있으니까? 형. 그거 범죄야.”
“넌 날 도대체 뭐라고 보는 거냐?”
내 질문에 인욱이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사이비 교주?”
“뒤진다 진짜.”
“그러니까 민수 형이 갑자기 왜 이러는 거냐고. 그 외압이 도대체 뭐야?”
대충 넘어가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나는 한숨을 내쉰 다음, 진실을 말해 줬다.
“그 짧은 시간에 반해 버릴 줄은 몰랐지. 1분도 안 걸린 것 같은데.”
“……형한테?”
“너 그러다 죽어.”
“아니, 그러니까 누구한테 반했는데.”
“리멘한테.”
난 아직도 민수 씨가 깨어나자마자 지었던 표정을 잊지를 못한다.
무언가에 홀려도 단단하게 홀린 것 같던 표정.
아마 전 상황을 몰랐으면 서큐버스한테 홀린 게 아닐까 오해하기에 충분한 얼굴이었다.
뭐, 민수 씨가 그러는 것도 크게 이상한 건 아니긴 하다.
리멘의 외모라면 내가 봐도 홀릴 수밖에 없는 외모다.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아름답고, 그녀만이 뿜어내는 그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그 누구라도 그녀가 여신이라는 것을 납득하게 만드는 고고하고 성스러운 분위기.
확실히 나도 리멘을 처음 봤을 땐 그런 충격을 받긴 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민수 씨는 리멘이 직접 치료까지 해 줬고, 본인이 직접 그녀의 권능을 체험했다.
신의 기적을 체험했음에도 그녀를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내 설명에 인욱이는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수 형이 금방 사랑에 빠지는 경향이 있기는 해. 그나저나 여신님이 착한 건 알고 있었는데, 거기다 예쁘시기까지 한 모양이네.”
“외모는 그렇다고 쳐도, 착한 건 네가 어떻게 확신하냐? 리멘이 내 납치범이라니까?”
“그래도 이렇게 끝까지 책임져 주시잖아. 나도 언제 한번 뵙고 싶다.”
맞는 말이라서 뭐라 반박을 못 하겠다.
아무튼.
그렇게 내가 커피와 함께 평화로운 아침을 맞이하고 있을 때쯤이었다.
우우우웅-.
내 휴식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다는 듯, 갑작스럽게 식탁 위에 올려둔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발신자는 이능관리부의 김동식 팀장.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다음, 천천히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기 너머로 다급한 김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우 님. 이른 아침부터 정말 죄송합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생겨서 이렇게 결례를 무릅쓰고 전화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말에 나는 커피 잔을 내려놓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씁쓸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야기나 들어 보죠.”
-시우 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제가 직접 찾아뵙고 나서 이야기드려도 되겠습니까?
하아.
내가 쉬는 꼴을 못 본다니까.
2.
얼마나 급한 일이었는지는 몰라도, 김 팀장은 곧바로 우리 집 앞의 카페에 도착했다.
전화하고 나서 20분이었나?
이 정도 시간이면 분명 우리 집 쪽으로 이미 출발을 한 다음에 전화한 게 아닐까 싶다.
나는 평범한 시민으로 위장한 채 카페 안을 가득 채운 이능관리부의 직원들을 슬쩍 바라본 다음, 김 팀장에게 말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었을까요. 이럴 거면 그냥 저희 집에서 이야기 나눠도 되는데.”
“목이 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희가 부탁을 드리려고 온 건데, 어떻게 저희가 감히 시우 님과 시우 님 가족분들의 소중한 공간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제가 직접 이능관리부로 가든가.”
“귀빈을 귀찮게 하지 말자는 것이 저희 원칙이거든요.”
음, 그냥 말을 말자.
이 이능관리부라는 집단도 뭔가 이상하다니까? 분위기만 보면 사이비 종교 저리 가라다.
김 팀장은 앉은 채로 연신 고개를 숙이더니, 곧 서류 가방에서 태블릿 PC를 꺼냈다.
“어제 저희가 별다른 연락을 못 드린 점은 정말 죄송합니다. 그저께 시우 님께서 해결해 주신 어비스 던전 건도 그렇고, 이런저런 일이 많았거든요.”
“죄송하실 것까지야. 덕분에 시연이랑 같이 놀이공원도 잘 다녀왔습니다. 김 팀장님이 챙겨 주신 프리패스 이용권도 잘 썼구요.”
세상 참 좋아졌다.
무조건 우선순위로 탈 수 있는 이용권 덕에 어제 시연이랑 놀이기구 잔뜩 타고 왔다.
내 대답에 김 팀장은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다행이네요.”
“슬슬 일 이야기를 해 볼까요?”
“그럼 간략한 브리핑 시작하겠습니다. 잠시 이 영상을 좀 봐 주시겠습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에게 누군가 핸드폰으로 촬영한 것 같은 영상들을 보여 줬다.
영상 속에서는 하얀색의 로브를 입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있었고, 그중에서도 지도자로 보이는 한 중년 남성이 누군가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위대하신 분의 의지를 받들어, 그대를 전사로 임명하노라. 그대는 열과 성을 다하여 그분의 원대한 계획에 동참…….
누가 봐도 종교의식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 영상.
게다가 영상은 그것 하나뿐이 아니었다.
내가 첫 번째 영상을 다 보자마자 김 팀장은 곧바로 두 번째 영상, 세 번째 영상을 이어서 보여 주었다.
그 영상들의 주인공들 역시 첫 번째 영상에서 본, 하얀색 로브를 입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번엔 종교의식이 아니라 각자 만의 무기를 든 채로 몬스터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위대한 뜻을 위하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두 번째 영상은 게이트로 보이는 곳에서, 세 번째 영상은 던전으로 보이는 곳에서.
그렇게 나는 그 세 영상을 15분 정도 시청했고, 내가 영상을 다 보자마자 김 팀장의 질문이 이어졌다.
“어떤 것 같습니까?”
나는 그의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더할 나위 없는 사이비 종교군요.”
“역시…… 시우 님이 보셔도 그렇습니까?”
“따지고 보면 업계 동료라고 볼 수도 있으니까요.”
김 팀장이 씁쓸하게 웃음을 지었다.
나는 얼음물 한 모금을 목으로 넘긴 다음, 김 팀장에게 장난스럽게 물었다.
“혹시 저한테 이런 종교 만들 생각이면 꿈도 꾸지 마라, 이런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서 오신 건가요?”
“어우, 절대 아닙니다. 절대, 절대요. 저희 막 종교 탄압하는 그런 정부, 그런 국가 아닙니다.”
“알고 있어요. 저 많이 도와주고 계시잖아요.”
농담이 아니라 이능관리부에서 직접 내 종교 법인 설립을 도와주는 중이다.
나보고 그냥 가만히 있으면 모든 절차까지 해결해 준다고 호언장담을 했고, 실제로도 종교 법인 설립 절차가 진행 중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 편의를 봐주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내 신경을 건드릴 이유가 없지.
하지만 김 팀장은 내 장난이 꽤 당황스러웠던 모양이다.
본인의 앞에 놓여 있던 물컵을 빠르게 비우더니, 곧 꽤 심각해진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이들은 스스로를 백명교라고 칭하는 집단입니다. 이틀 사이에 저희 이능관리부를 정신없게 만든 주범이기도 하죠.”
“영상만 보면 크게 문제는 없어 보이는데.”
“그렇죠. 하지만 이 영상들이 촬영된 장소를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는 그렇게 말한 다음 태블릿 PC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러자 곧 대한민국의 지도와 함께 붉은색 점 3곳과 보라색 점 1곳이 지도상에 표기되었다.
“붉은색 점은 예고되지 않았던 돌발 게이트를 의미하며, 보라색 점은 돌발 던전을 의미합니다. 보라색 점에 대해서는 이미 시우 님도 알고 계실 겁니다. 시우 님이 직접 처리하신 곳이니까요.”
“이해했습니다.”
“돌발 게이트, 돌발 던전은 대한민국에서 그렇게 흔한 현상이 아닙니다. 아주 희귀한 편에 속하죠. 그런데 그런 현상이 고작 2일 동안 네 번이나 발생한 겁니다. 원칙대로라면 각 지역에 대기하는 상비 병력과 지역 길드들의 협조를 통하여 대응하게 되어 있습니다만…….”
“이 백명교라는 놈들이 선수를 쳤다, 이거네요?”
“……맞습니다. 저희들이 대응하기도 전에 백명교도들이 나서서 게이트를 해결해 버렸습니다. 공교롭게도 세 곳 전부 말이죠. 그리고 그들은 이 영상들을 미튜브에 올렸고, 그들이 모시는 신께서 예지력을 주었다 주장합니다.”
“정말 재밌는 친구들이네요.”
예지력이라.
벌써부터 사짜 냄새가 진동을 한다.
“백명교는 6개월 전에 대중들 앞에 등장한 신흥 종교지만, 음지에서 무시할 수 없는 속도로 성장한 조직입니다. 게다가 극도로 폐쇄적이며, 그 때문에 저희 이능관리부에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조직이기도 합니다. 그런 조직이 이번 게이트 영상들을 통해 양지로 진출하려는 겁니다.”
한마디로 통제할 수도, 알 수도 없는 집단이라는 거다.
그런 집단이,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돌발 게이트 세 곳에서 전부 모습을 드러냈다?
“구린내가 나네요.”
구려도 너무 구려서, 썩은 내가 진동할 지경이다.
“흠.”
이제야 이 사람들이 왜 나를 급히 찾아왔는지 알겠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김 팀장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그러니까, 사이비에 사이비로 대응을 하시겠다? 적어도 나는 말이 통하니까?”
“크흠.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같은 사이비 취급해 버리시면 우리 여신님께서 섭섭하시겠는데요. 마음이 굉장히 여리신 분이라.”
“……죄송합니다.”
“뭐, 좋습니다. 마침 저도 관심이 생겼거든요.”
나는 그렇게 말한 다음, 손으로 턱을 가볍게 쓸었다. 그리고 은근슬쩍 웃으면서 김 팀장에게 말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