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10)
110화
7.
“그래도 손님 대접한다고 내준 차인데, 끝까지는 마시지. 쯧.”
나는 찻잔에 반쯤 남아 있는 국화차를 보면서 혀를 찼다.
리 지에는 돌아갔다.
마음 같아서는 싹다 엎어 버리고 싶었지만, 나중을 위해서 잠시 참았다.
인내는 성직자의 미덕.
게다가 고작 S급 헌터 나부랭이 하나 잡는 선에서 이번 일을 마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그딴 쓰레기 제안을 들은 순간, 이미 마음을 굳혀 버렸다.
그 제안은 제안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모욕이었다. 중국에서 종교를 어떤 식으로 관리하는지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녀석들은 겉으로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상을 까 보면 그렇지 않다. 어디까지나 ‘당에 반하지 않는 종교의 자유’일 뿐이다.
14억 인구에게 포교를 하는 대가로 녀석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교단을 억죌 것이다.
불 보듯 뻔한 미래였다.
14억을 대가로 교단을 한 국가에 종속시키라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제안이었다.
“분을 삭이시지요, 성하.”
“라파르트 대주교가 아니었다면 아마 저놈들, 신전 내부로 쳐들어왔을 겁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라파르트 대주교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신전 앞에서 전투가 벌어졌다면 아마도 라파르트 대주교 선에서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라파르트 대주교는 자신의 힘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신전의 입구를 막고 서 있었을 뿐.
“성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리멘의 사도이신 성하만이 주관하실 수 있습니다. 저희들은 그저 성하와 리멘의 뜻을 섬길 뿐입니다.”
“저쪽에서 먼저 공격했으면요?”
“벌어지지 않은 일을 굳이 생각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허허. 그런데 성하, 저들이 도대체 뭐라 하였기에 그리 화가 나신 겝니까?”
라파르트 대주교의 질문에 나는 의자에 앉으면서 답했다.
“많은 신도를 얻게 해 줄 테니 자기들을 주인으로 모시라더군요.”
“중국이란 나라는 지원 군이 제게 가르쳐 주었던 그대로인 듯합니다.”
“뭐라고 가르쳐 줬습니까?”
“대국이라 부르기에는 인간들의 속이 너무 좁고, 그렇다고 소국이라 부르기엔 땅이 쓸데없이 넓으니, 그리하여 중국이라 부른다더라, 그리 가르쳐 주었지요.”
이렇게 보면 참 대단한 나라기는 하다. 어떻게 까도까도 깔 게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국가와 종교가 동행하는 모습이야말로 리멘께서 가장 원하시는 모습이 아닐까, 이 노인네는 그리 생각합니다.”
“그럴 겁니다.”
종교가 국가를 잡아먹는 모양새도, 국가가 종교를 통제하는 모양새도, 그 어떤 모양새도 리멘의 눈에는 좋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전쟁 직후의 에덴에서 우리 교단이 엄청난 교세를 자랑함에도 국가를 세우지 않았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불균형은 갈등의 어머니입니다. 성서에도 나와 있듯, 리멘께서는 균형을 추구하십니다. 자식된 저희로서는 그분의 뜻을 따라가는 것이 맞습니다. 아주 잘하셨습니다, 성하.”
라파르트 대주교는 인자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교단에 큰 어른이 있고 없고가 이렇게나 중요하다.
만약 레오와 루나만 있었다면…… 지금 당장 쫓아가서 가루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이야기만 튀어나왔으리라.
다시 생각해도 라파르트 대주교를 데려오기를 잘했다. 이 할아버지도 성격이 보통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통제 불가능한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앞으로도 그는 훌륭한 중재자가 되어 줄 것이다.
나는 라파르트 대주교를 바라보면서 가볍게 숨을 뱉어 냈다.
화가 나기는 하지만, 정작 그 화를 준 놈들이 중국이었기 때문에 빠르게 납득할 수 있었다.
오히려 이번 일을 통해서 한 가지를 확실하게 깨달았다.
저 녀석들은 제대로 밟아 주기 전까지는 제대로 정신을 못 차린다는 것.
녀석들의 땅에 정화자 놈들이 암약하고 있다는 것을 떠나서, 중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우리 교단의 앞길에 방해가 될 것은 틀림없었다.
따라서 행동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박지원 씨는 퇴근했습니까?”
“혹시 몰라서 지하 기도실에 잠시 피신을 시켜 두었지요. 지원 군은 오후 6시가 되어서야 퇴근할 수 있습니다. 성하께서 그리 정해 두셨잖습니까.”
“다행이네요. 레오야? 가서 박지원 씨 좀 데려와 줄래?”
“알겠습니다, 성하.”
이 일이 단순히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교단의 미래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중국은 목에 칼이 들어오기 전까지 저런 자세를 유지할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자세를 교정할 생각도 못하겠지.
그러니까 우리가 직접 자세를 바로잡아 줄 필요가 있었다.
마침 동북아 교류전이라는 좋은 명분이 우리에게 있지 않은가?
“동북아 교류전에 레오와 루나까지 내보낸다면…… 충분한 교육은 될 것 같고.”
서 대통령의 부탁을 들어줘야 할 것 같다.
원래는 고민을 해 볼 생각이었지만, 방금 전의 일로 마음이 확 바뀌었다.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서 대통령이 우리 교단에게 제공하겠다는 것들 역시 제대로 검토해 봐야겠다.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해야지.
어차피 하게 될 일, 저쪽에서 주겠다는 걸 거절할 필요까지는 없잖아?
우리의 경영 고문 박지원이라면 아주 실속적인 혜택으로다만 딱딱 골라 줄 것이 틀림없었다.
“맞다. 라파르트 대주교.”
“예, 성하.”
“루나를 호출했다고 하지 않았어요? 이 시간이면 도착하고도 남아야 하는데, 무슨 일 있나?”
“혹시 딴 길로 샌 것 아니겠습니까?”
“딴 길이요?”
라파르트 대주교가 직접 호출했으면 그럴 리가 없다. 루나가 라파르트 대주교를 얼마나 두려워하는데 말이야.
원래의 라파르트 대주교라면 화를 내고도 남을 상황.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허허.”
……도대체 이 노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가끔 내 사람들이 두려워지고는 한다.
그런데 루나는 진짜 어디로 간 거지?
8.
서울시 강남구에 위치한 한 호텔.
호랑이의 아가리에서 겨우 살아나온 리 지에는 자신의 상관과 통화를 하는 중이었다.
“리멘 교단 측에서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였습니다. 이미 그들은 저희들을 적대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부장님.”
-리 지에. 미튜브를 통해 우리 쪽 인원이 무릎을 꿇는 모습이 돌아다니고 있다더군. 그런 모멸을 받을바에 차라리 검이라도 뽑지 그랬나?
“……도저히, 도저히 뽑을 수가 없었습니다.”
뽑았으면 죽었을 것이다.
리 지에는 아까 전에 느꼈던 김시우의 진득한 살기를 떠올렸다.
교황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야차가 어울렸던 남자.
단검을 뽑았다면 아마 지금쯤 자신은 이 세상을 떴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상관 앞에서 차마 그 속마음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굳이 그 말을 꺼내서 상관의 심기를 더 건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 녀석이 어떻게 싸우는지 정도는 알아 오기를 바랬건만, 내가 그동안 너를 과대평가했던 건가?
“입이 백 개라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나저나 감히 소국의 사이비 교주 주제에 대국의 자비를 거절하다니…… 생각보다 훨씬 멍청한 놈이구나. 참으로 방쯔다운 판단력이야. 대국에서 뜻을 펼칠 기회를 스스로 날린 것 아니더냐?
타국의 이레귤러를 이토록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중국에서 오로지 넷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리 지에와 통화하고 있는 남자는 그중에서도 자존감이 특히 높기로 소문난 자였다.
검귀 왕웨이.
북부전구를 담당하고 있는 초월자.
중국에서는 자국의 이레귤러를 두고 초월자라고 표현하고는 했다. 그만큼 인간을 벗어난 존재들이란 뜻이었다.
-스스로 복을 걷어찬 놈 따위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이번 교류전에서 실수인 척, 목숨을 끊으면 그만일 뿐. 리 지에. 너에게는 아직 많은 임무가 남아 있기에 이번만큼은 넘어가 주도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감사하기는 이르지. 남은 임무는 성공할 것이라 믿는다.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면 곧바로 요청하도록 해라. 소국의 인재라도 필요하다면 등용한다. 그것이 현재 본국의 방침이니까. 알겠나?
“예. 명심하겠습니다.”
툭.
리 지에는 왕웨이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전화기를 침대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강하게 조여 두었던 넥타이를 풀어헤치며, 숨을 크게 뱉어 냈다.
“후우.”
이번 한국행이 편할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첫날부터 이런 상황에 놓일 것이란 건 꿈도 꾸지 못했다.
김시우를 막연히 왕웨이 같은 사람으로 생각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힘에 취해 있고, 권력욕에 불타오르는 남자.
김시우 역시 왕웨이처럼 그러리라고 생각했다.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의 희망이라고까지 불리고 있었으니, 스스로에게 취해 있을 거라 판단했다.
‘설득할 수 없는 사람.’
신념으로 가득 찬 사람을 회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신념을 꺾는 수밖에 없었다. 신념을 꺾지 못한다면? 회유란 건 처음부터 성립할 수 없다.
“하아.”
지나간 기차를 잡을 수는 없었다. 김시우를 회유하지 못했다는 실망감보다는, 김시우로부터 살아 나왔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
리 지에는 한숨을 푹 내쉰 다음, 자신의 서류 가방에서 서류들을 꺼냈다.
그 서류들에는 내일 만나 봐야 할 한국의 S급 헌터들에 대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고 있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 옆에는 붉은색 별표가 표기되어 있었다.
왕웨이가 직접 뽑았다는 의미였다.
“백설화…… 빙결 마법을 사용하는 S급 헌터라.”
특이 사항으로는 미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 왕웨이는 아마 그녀의 능력보다는 외모에 관심을 둔 것이 분명해 보였다.
‘내일은 이 중에 최소 셋은 설득해야만 한다.’
그녀에게 내려진 가장 중요한 임무는 이 좁은 나라의 인재들을 중국으로 데려오는 것.
이번 동북아 교류전을 통해 세상은 동북아시아의 패자가 누구인지 똑똑히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 소국의 인재들 역시 자신들의 꿈을 펼칠 수 있는 땅이 어디인지 깨닫게 되리라.
그때를 대비하여 사전 접촉을 하는 것이 리 지에가 맡은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빨리 자야겠어.”
내일은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많았다.
그녀는 최대한 신속하게 서류들을 훑어 내려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목 근육이 살짝 뻣뻣해질 때쯤, 리 지에는 무언가 잘못 흘러가고 있음을 느꼈다.
‘……우리 애들의 기척이 안 느껴져.’
그녀가 있는 이 호텔 스위트룸 앞에는 그녀의 부하 직원들이 철저하게 경계를 서는 중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들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까 낮에 김시우로 인해 그녀의 감각이 충격을 받아서인 걸지도 모른다.
리 지에는 들고 있던 서류를 옆에다 내려놓았다. 그리고 침대 밑에 숨겨 두었던 자신의 단검을 조심스럽게 움켜쥐었다.
그때였다.
콰지지이이익.
“쉬이이이이잇.”
“끄으으으읍!”
아무것도 없던 뒤쪽에서 나타난 괴한이 그녀의 목을 짓눌렀고, 리 지에는 반항할 새도 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단검을 휘두르려고 했으나, 그것조차 할 수 없었다.
쓰러지는 순간에 괴한이 그녀의 양쪽 어깨를 부서뜨렸기 때문이다.
익숙한 공포가 그녀의 몸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낮에 느꼈던 그 공포가 다시 고개를 들어, 리 지에의 밑바닥부터 물어뜯고 있었다.
리 지에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서 괴한을 쳐다보았다.
청바지에 라이더 자켓.
라이더 자켓은 괴한의 볼륨감을 숨겨 주지 못했다. 괴한은 누가 봐도 여성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를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네가 우리 할배한테 덤빈 년이구나? 할배가 자기 대신 손 좀 보라고 해서 와 봤는데, 고작 이딴 수준으로 그 노친네한테 덤벼든 거야? 배짱도 좋아라. 너 그 할배가 20년만 젊었어도 그 자리에서 죽었어.”
허스키한 여성의 목소리가 리 지에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너랑 뜨거운 밤을 보내기 위해서 밖에 있는 놈들은 미리 처리해 뒀지. 걱정하지 마. 아무도 이곳에 못 들어올 거야.”
괴한은 왼손으로 리 지에의 몸을 들어 올린 채, 천천히 침대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그녀는 곧 침대 위에 흐드러져 있던 서류를 발견했다.
“음?”
아는 얼굴이라도 있었던 모양인지 괴한은 오른손으로 서류 한 장을 집었다.
“설화? 너, 우리 상큼이한테 관심 있어? 그러면 곤란한데. 얘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거든.”
“흐으으윽. 제발…… 제발 살려 주세요. 네?”
“얘도 참. 내가 이래 보여도 성기사란다. 막 사람을 죽이지는 않아. 걱정하지 마.”
괴한은 리 지에의 귓가에 허스키한 목소리로 속삭인 후, 그녀를 침대 옆 의자에 앉혔다.
리 지에의 저항 의지는 이미 꺾여 있었다.
괴한, 아니 루나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자아.”
루나는 의자를 끌고 와 리 지에의 앞에 앉았다. 그리고 복면을 벗어 바닥에 던진 다음,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대답만 잘해 주면 돼. 그럼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