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11)
111화
34. 나 때문이라고?
1.
다음 날 아침.
통보도 없이 외박을 한 우리의 불량 성기사, 루나 레벤톤이 신전으로 돌아왔다.
“성하. 저 왔어요.”
도대체 어디에서 잠을 그렇게 푹 잤는지, 루나의 혈색은 그 어느 때보다 좋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집무실 내에 은은하게 풍기는 이 향기는 분명히 향수를 뿌리고 온 것이었다. 딱 봐도 비싼 향수가 틀림없었다.
“그런데 그 와인 세 병은 뭐냐? 네 돈 네가 쓰는 걸 뭐라고 하는 건 아니지만…….”
“아, 이거요? 친구가 룸서비스로 시킨 거 남아서 챙겨 왔어요. 10병 시켰는데 7병만 마시고 3병은 성하 드리려고 가져왔죠.”
루나의 손에는 아주 고급스럽게 포장되어 있는 와인이 세 병이나 들려 있었는데, 그 겉면에는 무슨 호텔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 같았다.
“아, 그렇구나. 룸서비스 와인이구나. 몰랐…….”
잠깐만.
성기사가 외박을?
그것도 호텔에서?
“라파르트 대주교.”
“예, 성하.”
“우리 루나 레벤톤 경께서 저렇게 당당하게 나오시는데 도대체 제가 어떤 징계를 내려야겠습니까?”
성기사가 교황의 허락도 없이 움직인 것도 문제인데, 외박까지 했다는 건 아주 심각한 문제다.
성기사단 내부의 규율에도 어긋나고 말이다.
그러나 라파르트 대주교는 국화차를 마시면서 미소를 지었다.
“제가 파견했습니다. 교황청의 국무원장에게는 성기사를 파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지요.”
“어쩐지.”
어제 루나가 복귀하지 않았는데도 화를 안 내더라.
평소 같았으면 당장에라도 쫓아가서 머리채를 잡고 끌고 왔을 텐데, 왜 그렇게 평온한가 싶었다.
“그런데 라파르트 대주교가 루나를 왜?”
“자세한 건 본인에게 직접 들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루나에게 발언권을 넘긴 노인은 인자한 표정과 함께 차를 즐기기 시작했다.
좋아. 일단 이야기부터 들어 보고 혼을 내든지 하자.
“어디 한번 이야기나 해 봐.”
그 말에 루나는 활짝 웃으면서 와인들을 내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의자에 앉으면서 싱긋 미소를 지었다.
“제 사생활을 이렇게나 궁금해하실 줄은 몰랐네요. 아닌 척하시면서도 속으로는 집착하고 계셨구나? 그런 성하의 모습도 꽤 귀엽…….”
“거기 밖에 누구 없냐? 내가 허락해 줄 테니까 훈련장에서 검 하나만 가져와 봐.”
“친구랑 놀고 왔어요, 친구. 이번에 새로 사귄 친구 있거든요? 어제 저녁에 처음 만났는데 저를 어찌나 좋아해 주던지…… 아, 그 친구가 중국 출신이라서 그런가, 돈이 진짜 많더라구요. 중국이란 나라가 확실히 돈은 많나 봐요. ”
루나는 내 책상 위에 올려 둔 와인을 가리켰다.
“저것도 그 친구가 가져가라고 챙겨 준 거랍니다. 후후, 어때요. 제 친구 돈 많죠?”
“루나야.”
“네, 성하.”
“대충 보니까 챙겨 준 게 아니라 뜯어 온 것 같은데?”
“에이, 저는 그냥 챙겨 달라고 부탁만 했을 뿐이라구요. 자세히도 모르시면서.”
이게 어딜 봐서 성기사단장이야? 그냥 강도지.
나는 땅이 꺼질세라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미간을 찌푸리면서 루나를 바라보았다.
돈이 많은 중국 친구가 갑자기 생겼을 리는 없고,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어제 우리 신전 왔던 걔네 찾아갔네.”
“정답!”
“죽였냐?”
그러자 루나가 불쾌하다는 듯이 인상을 찡그렸다.
“누가 보면 내가 피에 미친 년인 줄 알겠네. 안 죽였거든요? 그냥 좀 쓰다듬어 줬을 뿐이지. 그래도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도 못 봤고, 아무도 다치지 않았답니다.”
당당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대사가 다르게 해석되어 들렸다.
“그러니까 네 말은 입막음도 잘 시켰고, 상처도 완벽하게 치료해 주고 왔다는 거지?”
“세상에. 리멘님께서 드디어 성하에게 천리안의 은총을…….”
“후우.”
리 지에, 그녀는 중국의 선발대로서 먼저 파견된 인원이다.
즉, 현재로서는 중국 각성자들의 대표인 셈이다.
내가 그녀와 그녀의 부하들을 순순히 보내 준 이유는 별거 없었다.
잘못 건드렸다가 꼬투리 잡고 물고 늘어지면, 답도 없기 때문이다. 명분이란 게 원래 그런 거거든.
우리 교단이야 사실 그깟 명분 따위야 크게 상관없지만, 동북아 교류전을 한참 준비하고 있는 정부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일 거다.
그래서 나름의 계획을 세워서 큰놈을 잡아먹으려고 했는데, 그 와중에 직접 찾아가서 굳이 들쑤셨다?
어질어질하다.
어쩌면 내가 계획을 세우는 족족 무너지는 건 내 주변인들 때문이 아닐까?
“왜 내 밑에 있는 놈들은 하나같이 이런 걸까.”
“성하. 정말 왜 그런지 모르시겠어요? 저는 딱 봐도 알 것 같은데.”
루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담긴 의미는 하나였다.
“나 때문이라고?”
“후후, 노 코멘트.”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없어.
이건 분명히 나를 음해하기 위한 루나의 헛소리인 게 틀림없다.
“말이 되는 소리를…….”
그러나 그때, 문득 루나와의 첫 만남이 떠올랐다.
-안, 안녕하세요 사도님! 교단의 성녀 루나 레벤톤이라고 합니다! 잘……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사도님을 보좌하겠습니다!
내가 교황위에 오르기 전의 일. 잔뜩 붉어진 얼굴로 나에게 인사를 건넸던 붉은 머리의 성녀. 루나는 동생들을 먹여 살렸던 생활력과는 별개로, 의외로 부끄러움이 많았었다.
그랬던 루나가 지금 같은 성격으로 변하게 된 것은 나와 함께 다니면서…….
“……진짜 나 때문인가?”
“라파르트 대주교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루나의 질문에 라파르트 대주교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성하.”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겠다는 것은 보통 긍정한다는 의미로 통용된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이미 기울어진 판세였다. 이럴 때는 긴급탈출이 정답이다.
나는 재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세하게 보고해 봐. 듣고 판단할 거야.”
그러자 루나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번에도 제가 못 이기는 척 넘어가 드릴게요.”
“빨리 보고나 해.”
“암요암요. 누구 말씀이신데.”
……그냥 한 대 팰까?
2.
루나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손 좀 봐 주고, 정보도 뜯고, 선물도 받아 왔다.」
루나는 거기에 ‘확실하게 일을 처리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루나가 확실하게 처리했다는 말은, 적어도 이럴 때만큼은 신뢰도가 아주 높았다.
다시는 이빨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공포를 각인시켜 주었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게다가 루나는 CCTV 영상 같은 흔적을 남겼을 정도로 허술하지 않다. 아마도 완벽하게 증거를 제거하고 왔을 것이다.
“저한테 잡혀서 줄줄 정보를 얘기했다는 이야기를, 리 지에 같이 출세지향적인 사람이 자신의 상관에게 보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럴 배짱은 없어 보이던데.”
“걔 부하들은?”
“당연히 아무것도 모르죠. 제가 호텔에서 떠날 때까지 재워 뒀거든요.”
그야말로 완벽범죄였다.
이 정도면 성기사가 아니라 차라리 청부업자가 적성이 맞는 듯싶다.
나는 나 대신 혼 좀 내 달라는 표정으로 라파르트 대주교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라파르트 대주교는 오히려 만족스럽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참 훌륭하지 않습니까? 신전을 모독한 이는 응당의 대가를 치르는 게 옳습니다. 하물며 우리에게 굴종할 것을 요구했다? 이건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성하. 리 지에가 정 못 미더우시다면, 한 번 더 루나를 보내면 됩니다.”
과연, ‘백색 공포’다운 대답이었다.
훌륭한 중재자는 개뿔.
그냥 포기하자. 포기하면 편하다.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쉰 다음, 언제부턴가 내 옆에 가만히 앉아있던 백설화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백설화는 루나가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던 도중에 집무실에 들어왔다. 오늘 나와 신전에서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개해 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던가?
나와 루나, 그리고 라파르트 대주교 셋이서 꽁트를 하고 있건 말건, 그녀는 아무런 말 없이 손끝으로 얼음꽃을 피워 내고 있었다.
마력을 미세하게 조정하는 훈련인 듯싶었다.
“안 시끄럽냐?”
“그다지.”
“아까 루나가 하는 말 들었지?”
리 지에를 포함한 중국의 선발대가 한 달이나 일찍 대한민국에 들어왔던 것은 S급 헌터들을 포섭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백설화 역시 그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그녀는 딱히 별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차피 영입을 제안했어도 바로 거절했을 거야.”
“왜? 방송 때문에?”
“그것보다는…….”
그녀는 잠시 말을 흐리며 이번에는 얼음으로 작은 새 한 마리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곧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자살할 생각이 없어.”
“그게 무슨 소리야.”
“네 반대편에 서 있는 거, 그거 자살행위야. 내 직원들을 버리고 지옥불 구덩이로 들어가라고?”
역시, 백설화는 똑똑했다.
3.
백설화가 소개해 주고 싶다는 사람의 정체는 다름이 아닌 기자였다.
“교단의 소식을 전문적으로 보도해 줄 수 있는 기자가 있으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별나기는 해도, 능력 하나만큼은 확실한 사람이야. 둘이 이야기 나눠.”
쿨하게 설명을 끝낸 백설화가 자리를 떴고, 그런 백설화를 따라 루나 역시 ‘상큼아!’라고 부르며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라파르트 대주교 역시 신전을 둘러봐야겠다면서 슬쩍 자리를 비웠다.
사람이 북적이던 집무실 안에는 어느새 둘만 남게 되었다.
나는 헛기침을 몇 번 내뱉은 다음, 천천히 눈앞의 남자를 살펴보았다.
“음.”
말끔하게 차려입은 정장과 정성스럽게 만진 머리. 누가 보면 선이라도 보러 나왔냐고 생각할 정도로, 그에게서는 신경을 과하게 쓴 느낌이 물씬 풍겨 왔다.
물론 처음 만나는 자리에 격식을 차리고 올 법은 하지만, 그의 뿔테 안경으로 보이는 저 이글거리는 눈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게다가 자세히 보면 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에게서 우리 교단에 대한 믿음>이 느껴진다는 것 역시 특이사항이었다.
일단 가벼운 인사로 시작해 볼까?
“안녕하세…….”
내가 인사를 채 끝내기도 전, 저쪽에서 극렬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아아아아아! 이런 날이 올 줄이야. 교황 성하를 이렇게 뵙게 해주신 리멘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살면서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남자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곧 나를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이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교황 성하! 기억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예전 구로구 게이트 기자회견에서 교황 성하의 말씀을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세종일보의 서태호 기자라고 합니다. 다시 만나 뵙게 되어 일생일대의 영광입니다.”
“아! 그때 열성적이었던 기자님?”
“저, 저를 기억해 주시는 겁니까?”
“물론이죠. 첫 기자회견이었는데, 기억을 못 할 리가 없습니다.”
첫 기자회견을 열었을 당시, 나를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던 기자.
귀환 초기였음에도 나를 향해 열성적인 지지를 보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내 대답에 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서태호 기자님?”
왜냐하면,
“흐으으으윽.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영광입니다. 정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 댔기 때문이다.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감격에 복받쳐서 흘려 대는, 그런 뜨거운 눈물이었다.
서태호는 눈물을 흘려 대면서도 본인의 서류 가방에서 태블릿 PC를 꺼내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축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날 이후로 정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리멘 교단의 위대함을 알 수 있으면 해서…… 흐으으윽.”
그가 건네준 태블릿 PC에는 여태까지 그가 작성했던 기사들의 제목이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다.
리멘 교단이 전 세계의 희망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
세계를 지배하려 했던 중국이 리멘 교단 때문에 피눈물 흘리는 이유>
일본이 경악했고, 중국이 경악했고, 미국이 경악했다!>
리멘 교단의 교황 김시우의 위대한 기적! 세계를 뒤집어 놓다. (해외 반응, 리액션)>
리멘 교단의 잠재성. 전 세계 전문가들이 충격에 빠진 이유>
그 뒤로 이어지는 수도 없는 국뽕, 아니 리뽕의 기사 제목들.
나는 그 기사 제목들을 보면서 직감할 수 있었다.
‘제대로 미친놈이다!’
그것이 앞으로 우리 교단 최고의 포교꾼이 되어 줄, 서태호와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