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14)
114화
35. 나쁜 사람들 아니에요
1.
하루 전에 내린 폭설이 채 녹지 않은 1월의 마지막 날.
영하 12도에 달하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2개월 경력의 일용직 포터 권동현은 오늘도 돈을 벌기 위해 현장에 나왔다.
오늘의 현장은 파주시 문산읍의 넓은 벌판에 출현한 C급의 대형 게이트였기에, 권동현으로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C급부터는 위험하다고 들었는데…….’
C급 이상부터는 보통 자체적인 포터팀을 구성하거나 전문 포터 업체들이 담당한다.
이유는 안전상의 문제 때문이었다. C급 게이트부터는 위험한 변수가 곧잘 발생하고는 했으니까.
비각성자 출신인 권동현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운 등급의 게이트인 건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권동현이 이곳에 오게 된 것은 평소 그와 얼마 전에 알게 된 동생, 유 씨의 권유 때문이었다.
-형님. 내가 갑작스럽게 일이 생기는 바람에 못 가게 된 곳이 있거든? 내가 물어보니까 대타를 보내도 된다더라고. 형님이 대신 가쇼. 나중에 이 아우한테 한턱내고!
처음 현장에 도착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왜 유 씨가 자신에게 한턱을 내라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여태까지 경험했던 모든 현장은 하나같이 일용직 포터들에 대한 대우가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같이 추운 날에 진행되는 레이드는 더더욱 힘든 편에 속했다.
하지만 현장에 도착한 후, ‘박정수 팀장’이라는 관계자를 만나게 된 이후부터는 생각이 바뀌었다.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리멘 교단의 첫 단독 레이드에 참여해 주신 포터 여러분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여기, 목걸이부터 착용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 레이드에서 여러분들의 안전을 지켜 줄 겁니다.”
박 팀장은 포터들에게 손톱만 한 크기의 새하얀 보석이 박혀 있는 목걸이를 지급했는데, 놀랍게도 그 목걸이를 착용하자마자 추위가 사라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동안 몸에 쌓여 온 피로들마저도 눈 녹듯이 녹아내렸으며, 온몸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던 다른 포터들도 마찬가지인 듯 보였다.
“저도 여러분들과 같은 일용직 포터 출신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고충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포터의 일이란 것이 즐거울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오늘 이곳에서만큼은 좋은 기억을 가져가셨으면 합니다.”
여태까지 자신을 이렇게 살갑게 대해 주었던 담당자가 있었던가?
일용직 포터는 노예 취급만 안 당해도 다행인 일이었다. 각성자들 중에는 비각성자를 벌레처럼 취급하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권동현은 2주 전에 참여했던 E급 던전에서 자신의 아들뻘인 헌터에게 인신공격에 가까운 욕을 얻어먹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와중에 다가온 호의가 그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게이트가 완벽하게 소멸하기 전까지 이곳에서 편하게 대기하고 계시면 됩니다. 그럼 조금 있다가 다시 오겠습니다.”
박 팀장이라는 남자는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고 물러났고, 그제야 포터들끼리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는 얼굴이 없던 탓에 난감해진 권동현이었으나, 곧 그의 옆에 서 있던 다른 포터가 말을 걸어왔다.
“그쪽 분도 당첨돼서 오셨나?”
“당첨……이요? 아니요. 저는 그냥 아는 동생 대타를 뛰러…….”
“히야, 나중에 크게 한턱내셔야겠네! 여기 경쟁률이 49 대 1이었는데, 이걸 양보해 줘? 귀인을 만나셨구먼.”
“……49 대 1이요? 일용직 포터에 그 정도나 사람이 모여들었답니까?”
“리멘 교단의 현장이면 그럴 수밖에 없지. 잘 모르는 걸 보면 경력이 그리 오래되시지는 않았나 보네?”
“이제 막 2개월 차입니다.”
권동현의 대답에 남자는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모를 수도 있지.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어! 마침 저기들 가시네!”
남자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서는 한 무리의 헌터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얼추 50명은 넘어 보이는 숫자.
새하얀 빛의 갑옷을 입은 헌터들이 선두에서 걸어가고 있었고, 그 뒤에서는 터질 듯한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묵묵히 선두를 따라가는 중이었다.
“딸꾹.”
그들이 내뿜는 기세에 질린 권동현이 자신도 모르게 딸꾹질을 시작했다.
여태까지 그가 보았던 헌터들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장대한 체격도 체격이었지만, 당장에라도 상대를 잡아먹을 듯한 그들의 눈빛은 꿈에서 볼까 두려울 정도였다.
“저, 저 사람들은 도대체 누굽니까?”
권동현은 떨리는 목소리로 옆 사람에게 물었다.
잔뜩 겁에 질려 버린 권동현과는 달리, 옆 사람은 익숙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누구긴 누구야? 당연히 리멘 교단의 신입 성직자님들이지.”
“……성직자? 깡패가 아니…….”
“어허! 이 사람. 어떻게 신의 뜻을 따르시는 분들에게 그런 무례한 말을!”
보통 성직자라고 하면 개신교의 목사, 천주교의 신부, 불교의 스님 등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눈앞의 그들은 온몸으로 ‘성직자’라는 단어를 부정하고 있었다.
“나도 저분들을 처음 볼 때만 하더라도 그쪽처럼 생각했는데, 금세 생각이 바뀌더라고.”
“생각이 바뀌다니, 그게 무슨…….”
“보면 압니다.”
우우우웅.
어느새 하늘에서 게이트가 생성되었고, 잠시 후 초록색 피부를 지닌 괴물, 오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신이 두꺼운 근육으로 뒤덮인 오크들이 일제히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모습은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권동현은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포터들이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오히려 좋은 구경거리라는 듯, 눈을 빛내면서 리멘 교단의 성직자들을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내 말이 무슨 말인지 곧 깨달을 테니까, 그쪽도 그냥 조용히 지켜보기나 하쇼.”
옆에 있던 남자의 말에 권동현은 조용히 앞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방금 전에 자신을 지나쳐 간 리멘 교단의 성직자들이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우아아아아아!”
“리멘께서 우리를 보호하신다아아아!”
“리멘께 영광을! 우리에게는 승리를!”
순식간에 기도를 끝낸 그들은 저마다 무기를 꺼내 들더니, 곧 엄청난 속도로 오크들을 향해 돌격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쓰나미와도 같았다.
그리고 그 쓰나미는 아직 제대로 전열을 갖추지 못한 오크들을 무참히 쓸어버렸다.
콰지지지직-!
곧이어 펼쳐지는 일방적인 폭력의 현장.
누군가는 철퇴로, 누군가는 방패로, 누군가는 맨주먹으로.
오크들의 비명과 함께 곳곳에서 오크들의 대가리가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던 권동현의 귓가에, 옆에 있던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들어 왔다.
“저분들 앞에서 나쁜 짓을 한다면 내 머리가 박살 날 것 같더라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매사에 조심하게 되고, 그동안 저질러 왔던 잘못들을 후회하게 되고…… 인생 막 살아온 나조차도 회개하는 마음을 품게 해 주시는데, 저분들이 성직자가 아니면 누가 성직자겠어?”
“……과연, 그렇군요.”
자신도 모르게 그 말에 수긍해 버린 권동현이었다.
2.
“만족스러우신가요, 성하?”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이지만…… 이 정도면 어디에서 맞고 다니지는 않겠어.”
나는 우리의 귀여운 병아리들이 오크들을 쓸어버리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일방적인 학살이라고 부르기에 충분한 전투였다.
상대가 고작 C급 게이트에서 기어 나온 오크들이기는 했지만, 1기 교육생들이 입교한 지 2달 정도밖에 안 되었다는 걸 고려한다면 확실히 엄청난 성장 속도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 C급 게이트 정도는 우리의 도움 없이 해결할 수 있겠어. 다른 헌터들이랑 비교하면 수준이 어디까지 올라온 거야?”
“못해도 C급 최상위. 도깨비 길드랑 설화 길드의 헌터들과도 일주일에 한 번씩 대련하는데, 몇몇 교육생들은 B급 헌터들도 이기더라구요.”
“저 둘인가?”
압도적으로 밀어붙이는 전장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교육생들이 두 명 있었다.
다른 교육생들에 비해 낯이 익은 남녀였다.
신성력이 막 등장했던 초기에 내가 직접 영입했던 다섯 명 중 두 명.
최시원과 신아영.
둘은 견습 성기사라는 것을 증명하듯, 한 손에는 철퇴, 한 손에는 방패를 든 채로 거침없이 오크들의 진형을 무너뜨리는 중이었다.
“맞아요. 훈련 성과도 가장 좋고, 실전에서도 가장 움직임이 좋아요. 신성력을 운용하는 것도 부드럽고, 성기사로서의 밸런스가 굉장히 잘 잡혀 있어요.”
“잠재력은 확실한 친구들이니까.”
나는 루나의 말을 들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최초로 신성력을 각성했던 교육생인 만큼, 다른 교육생들에 비해 훈련을 빠르게 시작했던 친구들이었다.
그들이 두각을 드러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다섯 명 중 나머지 세 명은?”
“오후 조요. 오전 조에 비해서 실력이 살짝 떨어지긴 하지만, 그렇게 큰 차이는 없어요. 오후 조도 이따가 직접 보실래요?”
그 말에 나는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오후에는 다른 일정이 있으니까 패스. 굳이 안 봐도 될 것 같다.”
“성하께서 만족하시니 다행이네요.”
“2기 교육생들은 2주 뒤부터 교육 시작이야. 이번에는 200명 선발했다. 1기 교육생들 중에서 조교로 쓸 만한 애들도 미리 선발해 두고.”
김 실장으로부터 신성 계열 플레이어들의 숫자가 생각보다 느리게 증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 신성력이 등장했던 1주일 이후, 마력 사용자 20명당 한 명꼴로 각성하고 있다더라.
한 해에 5만 명 정도가 각성한다고 들었으니까, 신성 계열은 기껏해야 2,500명 정도가 각성하는 셈이다.
그 작은 파이를 종교들끼리 나눠 먹으려니 박이 터지지.
그래도 우리 교단은 다른 종교들에 비해 상황이 나은 편이다.
왜냐하면,
“이번 기수에 일본 쪽에서 100명 넘어오기로 했으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우리는 일본에서도 인력을 수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지난번 야마타노오로치전에서 보여 주었던 임팩트가 워낙 컸던 덕분에 일본에도 우리 교단의 신도가 엄청 늘었다.
두 번째 신전을 일본에 지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원래라면 자국의 각성자를 타국에 보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이 건은 지난번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서 확정된 건이었다.
“한국과 일본의 플레이어들은 언제든지 양국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어. 신성 계열 플레이어들도 마찬가지야. 이번에 들어오는 교육생들은 1년 동안 이곳에서 활동한 뒤, 일본으로 돌아가게 될 거야.”
“그렇다면 그 친구들이 차후 일본 교구의 핵심이 되겠네요?”
“그렇지. 언제까지 한국에 붙잡아 둘 수는 없잖아?”
“저나 레오는 괜찮지만, 일본 출신 교육생들이 한국 출신 교육생들과 잘 어우러질까요? 일단 말부터 안 통하잖아요.”
맞는 말이다.
언어 문제는 단합에 있어서 심각한 요소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건 걔네들 사정이고. 한국에 교육받으러 왔으면 한국어도 배워야지. 당연한 거 아니냐? 그래서 한국어 선생님들도 소개받아 뒀어.”
“아무리 봐도 서로 싸울 것 같은데.”
“그건 맞지. 일본 애들한테는 가위바위보조차 지지 말라고 했었으니까.”
“그런데 그냥 그렇게 하시겠다구요?”
“경쟁 상대가 눈앞에 있다는 건 아주 훌륭한 동기부여잖아. 잘만 이용한다면 괜찮을걸?”
라이벌이란 게 원래 그런 거다.
서로를 이기기 위해서 끝없이 노력하는, 긍정적인 상승효과를 기대해 볼 법하다.
물론 라이벌 의식이 극단적으로 치달았을 때는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겠지만…… 그건 이쪽에서 충분히 컨트롤이 가능했다.
“패싸움을 할 것 같으면 사랑의 매를 들어야지.”
“사랑의 매요?”
“너도나도 공평하게 쥐어 터지다 보면 없던 동료애도 싹트지 않겠냐?”
내 말을 들은 루나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더니 곧 박수를 치면서 감탄사를 내뱉었다.
“역시, 우리 성하. 아직 저는 성하의 발끝조차 따라가지 못하겠네요. 어떻게 교황의 입에서 그런 천박…… 아니, 쌈박한 아이디어가 튀어나올 수가 있지?”
“진짜 천박한 게 뭔지 보여 줘?”
“에이, 실수, 실수. 쏘리요.”
그렇게 나와 루나가 우리 병아리들의 전투를 지켜보면서 이런저런 의견을 교환하고 있을 때쯤이었다.
우우우웅.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스마트폰의 진동이 느껴졌다. 전화가 왔는데, 발신자는 김 실장이었다.
“여보세요.”
-시우 님. 확인차 전화를 드렸습니다. 오늘 오후에 친선단 환영식이 있습니다. 일본 측 친선단은 이미 한국에 도착하였고, 중국 측 친선단 역시 방금 비행기에 탑승했다고 합니다.
“오후 6시, 구청와대. 맞죠?”
-예, 정확합니다.
“안 늦게 가겠습니다. 루나는 참석하기 힘들고, 레오를 데려갈게요.”
-편하실 대로 하시면 됩니다. 그럼, 이따가 뵙겠습니다.
“이따가 봬요.”
나는 전화를 끊으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본 루나가 나에게 넌지시 묻는다.
“이건 기대하는 표정인데…… 그렇게 기대되셔요?”
“당연하지.”
중국 측 각성자, 일본 측 각성자, 우리 쪽 각성자.
싸그리 모여서 환영식을 한다는데, 내가 어떻게 기대를 안 해?
“누가 우리 성하 좀 말려 줘야 하는데.”
“그래서 레오가 같이 가잖아.”
“푸흡. 레오가 성하를 말려? 새해 들어 들은 농담 중에 제일 웃겼다. 인정.”
루나가 웃건 말건, 한 가지만큼은 확실하다.
“간만에 즐겁겠네.”
빨리 오후 6시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