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16)
116화
5.
왕웨이.
중국의 이레귤러라고 불리는 놈답게, 녀석의 몸에서는 마력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대신에 배꼽 부근에서부터 마력과 비슷한 기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력과 출발점은 비슷하나, 훨씬 압축되어 있는 기운.
그러나 그 기운은 마냥 순수하지는 않았다. 불순물이 섞여서, 회색빛의 아우라를 형성하고 있었다.
물론 내 눈에만 보이는 색깔이었다.
“이 자리가 축하를 위한 자리라는 것에 감사해라. 만약 다른 장소였다면 너에게 연장자에 대한 예의와 강자에 대한 법도를 알려 줬을 것이야.”
왕웨이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건 딱 두 가지였다.
교만함과 불쾌감.
스스로의 실력을 과신하여 생긴 교만함일 테고, 내가 자신에게 위축되지 않기에 느끼는 불쾌감일 터였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 내 태도가 불만이었던 건지, 왕웨이의 옆에 서 있던 남자가 말했다.
“왕웨이 님께서 너에게 말을 하고 계시잖…….”
“성하께서는 네놈의 참견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함부로 끼어들지 마라. 그리고 예의를 갖추어라, 불신자.”
그를 제지한 것은 다름 아닌 레오였다.
레오는 내가 왕웨이와 대화하고 있을 때는 가만히 있었지만, 다른 이가 끼어드는 것은 두고 보지 않았다.
레오의 눈빛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게다가 손에다가 신성력을 끌어올리는 걸 보면, 언제라도 상대방을 ‘접어 버릴’ 준비 역시 끝낸 상태였다.
당장에라도 싸움이 날 것만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
그 숨 막히는 대치를 깨고 먼저 말을 꺼낸 쪽은 왕웨이였다.
“우리가 너희들에게 건넨 제의를 무시했다고 들었다. 내 특별히 어른으로서 너에게 가르쳐 주마.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짓은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다. 지도자라면 모름지기 더 큰 대의를 위하여 스스로를 굽힐 줄 알아야 하지.”
“어이 왕 씨.”
“……왕 씨?”
“왕 웨이라면서? 그러면 왕 씨지. 손님 대우를 해 주는 건 지금뿐이니까, 닥치고 네 자리로 꺼져. 가면서 우리 유 장관님에게 감사하다고 전해라. 저분이 부탁하셔서 지금 네 틀니가 보존되고 있는 거야.”
나도 지금 당장 싸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아직 맛있게 잡아먹기에는 밥이 설익었다. 뜸을 들여야 할 시기란 뜻이다.
고작 저딴 놈의 위협?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차라리 에이든이 벌거벗고 나에게 달려드는 것이 더 무서울 정도였다.
“중국에도 이런 말이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혹시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 그런 말 알아?”
“네 이노…….”
“너 진짜 자신은 있냐?”
나는 웃으면서 왕웨이를 바라보았다.
왕웨이의 얼굴은 이미 잘 익은 홍시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가만 보면 마라탕의 국물 색깔 같기도 하고.
내가 대놓고 무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왕웨이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죽일 듯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만 볼 뿐.
그렇게 왕웨이는 한참 동안을 그렇게 나를 노려보고 있었고, 우리의 신경전을 가만히 주시하고 있던 유선호 장관이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두 분 모두 거칠게 인사를 나누는 걸 선호하시는 듯합니다. 소개가 늦었습니다, 왕웨이 각성자. 이능관리부의 장관, 유선호라고 합니다.”
나와 대화를 할 때는 언어의 축복>을 적용받았기 때문에 수월하게 의사소통이 되었지만, 유선호 장관에게까지 축복이 적용될 수는 없었다.
따라서 왕웨이는 자신의 옆에 있던 통역사가 통역을 해 준 뒤에서야 답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초인부 국제협력국에 소속된 왕웨이요.”
“동북아시아의 국가들끼리 친목을 도모하는 좋은 자리 아니겠습니까? 서로의 힘을 견식하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만큼은 여유롭게 즐기다 돌아가셨으면 합니다.”
더 이상 분란을 일으키지 말아 달라는 소리를 완곡하게 돌려서 말한 셈이다.
적절한 시점에 이루어진 중재였다.
양쪽 다 한 번씩 모욕을 주고받았으니, 누가 더 잘했다고는 말할 수 없는 상황.
결국, 왕웨이는 인상을 찡그린 채로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곳에 과연 내가 즐길 만한 것이 있을지는 모르겠소만, 유 장관의 얼굴을 봐서라도 물러서도록 하겠소.”
가만히 내버려 뒀어도 재밌어졌을 텐데 말이지.
나는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왕웨이의 뒤쪽에서 벌벌 떨고 있는 한 여자를 바라보았다.
지난번에 신전에 찾아왔던 여자, 리 지에.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우리 또 보네. 너 루나랑 친구 하기로 했다면서? 루나한테 너 다시 한국 들어왔다고 전해 둘게. 안 그래도 요새 루나 심심해하던데 잘됐다. 금방 찾아갈 거니까 시간 비워 둬.”
루나와 저 여자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평범한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털썩-.
루나의 이름을 듣자마자 저렇게 다리의 힘이 풀릴 리가 없었다.
“리 지에 님!”
“갑자기 왜…….”
기세 좋게 영빈관에 들어와서는 대놓고 체면이 상한 중국 측 대표단.
그 촌극을 두 눈으로 지켜본 왕웨이가 나를 향해 이를 갈며 말했다.
“도대체 내 부하에게 무슨 짓을…….”
“본인한테 물어보시든지.”
“……네놈이 나와 대련을 하고서도 그렇게 당당할 수 있는지 보자.”
전형적인 악당들의 클리세 중에는 그런 게 있다.
두고 보자는 새끼들치고 진짜 두고 볼 만한 새끼들은 하나도 없다는 것.
나는 몸을 돌려 자신들의 자리로 향하는 중국 측 각성자들을 보며 실소를 지었다.
“병신들.”
중국의 이레귤러, 왕웨이.
검을 사용한다고 했으니 아마 검을 들면 기세가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 정도로는…….
“에이든.”
“왜, 시우.”
“네가 더 낫다.”
“그건 당연한 거다.”
지금까지 이 모습을 팝콘이나 먹으면서 직관하고 있던 에이든조차 이기지 못할 것 같았다.
중국에서는 꽤 날렸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눈에는 그랬다.
“저 새끼 순 거품이야.”
내 말에 에이든은 무릎을 탁 치면서 답했다.
“거품? 버블 말인가? 그렇게 따지면 시우, 너도 버블이다.”
“뭐?”
“언빌리버블. 후후후.”
스스로의 드립에 뿌듯해하는 표정 좀 봐.
그냥 눈 딱 감고 한 대 칠까?
6.
나와 왕웨이의 충돌 이후 이어진 환영식의 분위기가 좋을 리가 없었다.
중국 측 각성자들은 아예 자기들끼리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일본 측 각성자들도 대부분 마찬가지였다.
진영이 형만이 간간이 한국 측에 얼굴을 비출 뿐.
그런 분위기가 어쩔 수는 없는 게, 이 자리에 모인 각성자들은 결국 조국의 명예를 위해 싸우러 온 것이다.
교류전은 단순히 핑계일 뿐.
이번 교류전의 결과로 인해서 동북아시아의 정세가 재편될 것이라는 걸 다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3개국 중에서 가장 분위기가 침울한 쪽은 일본이었다.
그들에게는 이레귤러가 없었으니까.
그들은 애초에 이기러 왔다기보다는, 구색을 갖추기 위한 들러리의 역할이 가장 컸다.
실제로 일본 대표단 중에서 진영이 형만이 유일한 디재스터급 귀환자였다.
일본에는 디재스터급 귀환자가 총 다섯 명이 있다고 들었는데 말이다.
“오늘 여기서 가장 바쁜 건 유 장관님이네.”
“분위기가 이렇기는 해도 외교는 이어 가야지. 아마 외교 실무자들은 각오를 하고 왔을 거다.”
에이든의 말처럼 외교는 별개의 영역이었다.
서로 섞이지 않으려는 각성자들과는 달리, 실무자들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저들에게도 저들만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던 것이다.
“내가 봤을 때는 교류전의 의미도 없을 것 같다. 결과가 너무 뻔해.”
“누가 이기는데.”
“당연히 한국 측이지. 시우, 루나, 레오. 이 라인업부터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뿐만이 아니야. 네 번째는 내 친구 서진, 다섯 번째는 저기 강채아. 솔직히 양심 없는 라인업 아닌가?”
교류의 목적을 위한 대련인 만큼 결과에 상관치 않고 5경기를 전부 치르는 것으로 확정되었다고 한다.
한국 측의 멤버 역시 확정되었다.
에이든이 말했던 대로 우리 교단 3인방에 최 대표, 강채아까지 더하는 라인업.
최 대표보다 랭킹이 높은 랭커들 모두가 이번 교류전에 보이콧을 선언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집에 불이 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오늘 최 대표가 안 보인다. 가족 행사가 있다고 하던가?
“시우. 왕웨이 옆에 있던 그 남자가 누군지 아나?”
레오에 의해 제지당했던 놈을 말하는 것 같다.
“내가 중국인을 어떻게 알아.”
“장 민. 왕웨이가 아끼는 디재스터급 귀환자다. 아마 2번으로 나설 거다.”
각국의 1번은 당연히 나와 왕웨이다.
우리 측의 2번은 레오.
공교롭게도 아까 충돌했던 멤버 그대로 대련을 치르게 되었다.
“레오야.”
“예, 성하.”
“네가 봤을 땐 아까 그놈 몇 분 만에 끝낼 수 있을 것 같냐?”
그러자 레오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1분이면 충분합니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
“접는 데는 10초면 충분할 것 같지만, 대련이니만큼 다시 펴야 합니다. 접는 데 10초, 펴는 데 50초쯤 걸릴 것 같습니다. 접었다가 펴는 건 다소 손이 가는 작업입니다.”
이쯤 되면 레오는 사람을 정말 종이로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친절하게도 직접 펴 줄 생각까지 하고 있는 레오였다.
그리고 레오의 말은 사실이기도 했다.
내가 봐도 아까 전의 그놈과 레오가 붙으면 레오 쪽이 압도적으로 승리할 것 같았다.
레오의 힘을 굳이 지구의 기준으로 표현하자면, 디재스터급과 이레귤러 사이 어디쯤이 될 것이다.
확실한 건 그 장 민이라는 놈이라든지, 지난번에 내가 처리한 이은혁 같은 놈들보다는 레오가 훨씬 강했다.
왕웨이랑 비교를 해 본다면…… 글쎄, 확신은 못 하겠다. 왕웨이가 전력을 다하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봤어야 말이지.
“그런데 시우. 나 궁금한 거 하나 있는데, 물어봐도 되나?”
에이든은 샴페인을 병째로 벌컥벌컥 들이켠 다음, 와이셔츠 소매로 입가를 닦으면서 말했다.
“무슨 질문?”
“루나 양과 레오 군, 둘 중에 누가 더 강한가?”
“그게 왜 궁금하냐.”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그런 느낌이다.”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질문이었으나, 그 질문에 나 대신 대답을 한 건 레오였다.
“레벤톤 경이 저보다 더 강합니다.”
“그래?”
“예.”
레오의 대답에 에이든은 김이 샜다는 듯이 미간을 작게 찌푸렸다.
“재미없어. 보통 남매들은 티격태격 싸워야 정상 아닌가? 의남매라서 그런가, 그런 맛이 없구만.”
“대인전 능력은 비등비등한 편이지만, 다수를 상대해야 하는 전장에서만큼은 레벤톤 경에게 내려진 은총이 확실히 빛을 발합니다. 그녀는 손에 닿는 모든 것에 신성력을 부여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전장에서 아주 큰 장점입니다.”
그 말을 들으니 문득 분노의 마왕이 이끌던 군단과 치렀던 마지막 전투가 떠올랐다.
그 당시에 대륙의 마법사들이 힘을 합쳐서 만든, 현대의 전차와 비스무리한 느낌의 마법 병기가 하나 있었다.
성능은 확실했지만 조작이 어려웠던 병기였는데, 루나는 그 병기에 축성을 한 후 자유자재로 조종하며 마족과 마수들을 쓸고 다녔다.
즉, 성능이 괜찮은 무기나 병기가 있다면 그만큼 루나의 전투력이 배가되는 것이다.
축성을 통해 신성력의 힘을 얻게 된 전략폭격기나, 차세대 전차.
현대의 발전된 무기 체계와 루나의 능력은 아주 좋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군.”
에이든은 레오의 말을 충분히 이해한 듯 보였다.
“미국에서도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연구 중 하나가 그거야. 현대의 무기 체계로 몬스터들에게 대항하는 것. 지금이야 여러 가지 이유로 불가능하지만, 마정석들을 이용해서 빠르게 무기 개량을 진행 중이다. 마법공학이라던가? 그렇게 불렀던 것 같아.”
“그런 건 보통 기밀이던데.”
“뭐 어때? 어차피 알 사람들은 다 안다. 앞으로 루나 양은 더 조심해야겠어. 수틀리면 탄도미사일을 발사할지도 모르잖아? 신성력이 담긴 탄도미사일이라…… 천벌이 따로 없어.”
탄도미사일에도 축성이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다만 에이든의 아이디어만큼은 높이 평가하고 싶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서 대통령한테 가서 물어봐야지.
미사일로 실험 좀 하면 안 되냐고. 축성한 미사일로 정화자 놈들의 근거지를 정밀타격할 수만 있다면, 교단의 선택지가 더욱 많아지는 거 아니겠어?
아무튼.
그렇게 우리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쯤, 유선호 장관이 우리에게로 돌아왔다.
그의 표정은 참 오묘했다. 좋은지, 나쁜지도 잘 모르겠는 얼굴.
유선호 장관은 정돈된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들에게 알려 드릴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중국 측의 강력한 요청으로 인해, 동북아 교류전은 공개 대련이 아니라 비공개 대련으로 치러지게 되었습니다.”
그 말에 나는 중국 각성자들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웃음을 겨우 참으면서 말했다.
“저 새끼들 저거 쫄았네.”
저런 놈들이 대국은 무슨.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