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2)
12화
3.
내가 이능관리부 측에 요구한 조건은 그쪽에서도 그렇게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만한 조건이었다.
원래는 다음 주 수요일로 예정되어 있던 공식 기자회견 일정.
즉, 3일 뒤에 있을 기자회견 일정을 내가 원하는 대로 바꾸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김 팀장의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그렇게 어려운 조건은 아니네요.”
“기자회견 일정 막 취소해도 되는 겁니까?”
“아예 취소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 정도는 조건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우 님께서 일부러 정체를 숨겨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그렇긴 하죠.”
“일정을 아예 취소만 안 하신다면 상관없습니다. 사실, 저희 이능관리부에서 이미 시우 님을 전제로 하는 계획들을 준비해 뒀거든요.”
팀장 선에서 이렇게 순순히 대답을 해 주는 걸 보면 아마 진작에 이능관리부 차원에서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과한 조건을 붙이지 않아서일까?
살짝 경직된 표정이었던 김 팀장이 어느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나는 그런 그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사실상 제가 대중들 앞에 나서는 건 일종의 쇼케이스지 않습니까?”
“그렇죠.”
“이번에 제가 어비스 던전에서 연을 맺게 된 민수 씨와 같이 그림을 하나 그려 볼까 하거든요. 예전에 그렸던 그림은 사실 어비스 던전에서 망가진 거라, 새로운 그림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극적인 쇼케이스를 원하시는군요. 이해합니다. 원래 첫인상이 중요한 법이죠. 저희가 공식 기자회견을 원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때문입니다. 시우 님은 대한민국 최초의 이레귤러이며, 그것을 가장 먼저 정부 측에서 확인했다는 것. 그 상징성이 중요하니까요.”
김 팀장은 목이 탔는지 그렇게 말하면서 물을 들이켰다. 그리고 한층 편안해진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저희는 그저 그 상징성만 챙기면 됩니다. 시우 님이 미튜브 활동하는 것? 그건 오히려 저희 쪽에서 환영할 일입니다. 적어도 시우 님이 대한민국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실 거라는 증표잖습니까.”
“가족들도 이곳에 있고, 굳이 다른 나라 가서 시작할 생각은 없어서요.”
“그렇기 때문에 매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아직까지도 저희는 시우 님이 지닌 힘을 모두 파악하진 못했으나, 시우 님이 대한민국에 나타났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들을 꿈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쉽게 공감할 수는 없는 이야기였다.
이 뒤바뀐 세상에 대해서는 내가 아직 잘 모르고 있기도 하고, 5년 동안 대한민국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잘 몰랐으니까.
하지만 김 팀장의 눈빛은 그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증명해 주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진심에 그저 희미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백명교에 관한 것은 저희 쪽에서도 새롭게 정보가 들어오는 대로 제공을 해 드리겠습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속담이 이럴 때 필요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저희가 파악하는 바에 따르면 단순한 쇠뿔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벌써부터 정재계 쪽으로 끼치는 힘도 상당한 편입니다. 어디까지 뻗어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현재 특수조사국에서 직접 조사하고 있습니다.”
하긴.
6개월 동안 음지에 있었던 조직이 하루아침에 올라올 생각을 한 건 아니겠지.
이능관리부 역시 신중하게 상황을 관리하려는 모양이다.
뭐, 나야 좋다.
저 녀석들이 저렇게 적극적으로 대중매체들을 이용하는 걸 봐서는 앞으로 내 경쟁자가 될 것이 틀림없었다.
한마디로 밥그릇 싸움을 하게 될 거란 뜻이다.
그런 마당에 이능관리부에서 내 편에 서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
그렇게 나와 김 팀장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냈고, 순식간에 30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김 팀장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제가 귀하신 분의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은 게 아닌가 싶네요. 죄송합니다.”
“일요일이라서 한가합니다. 김 팀장님이야말로 고생하시네요.”
“하하, 당연히 국가를 위해서…….”
나와 김 팀장이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려던 찰나.
“팀, 팀장님!”
카페 한쪽에서 일반인으로 변장해 있던 직원 하나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이쪽으로 달려왔다.
“귀빈이랑 이야기 나누고 있는 거 안 보여? 그렇게 티 나게 행동하면 시우 님께서 얼마나 불편…….”
“이거, 이것 좀 보십시오.”
“도대체 뭔데 호들갑이야? 시우 님.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김 팀장은 나에게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인 후, 부하 직원이 들고 온 태블릿 PC를 들여다보았다.
몇 초가 지났을까.
태블릿 PC를 들여다보고 있던 김 팀장의 얼굴색이 하얗게 변했고, 곧 그는 나에게 태블릿 PC를 넘겨주면서 말했다.
“시우 님도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음?”
나는 그가 넘겨준 태블릿 PC를 확인했다.
태블릿 PC에는 미튜브가 틀어져 있었는데, 영상의 제목은 딱 다섯 글자였다.
죄송합니다>.
어떤 미튜버가 또 사과 영상을 올리나 싶어서 채널명을 봤는데, 그 채널명을 확인한 나는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플레이어 K?”
-안녕하세요. 플레이어 K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2일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이 영상을 올립니다. 영상을 시작하기에 앞서, 죽을 뻔한 저와 저희 촬영팀을 구원해 주신 그분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올립…….
약 2분가량의 영상.
그 뒤로 이어진 민수 씨의 이야기와, 그 영상에 달린 댓글까지 모두 확인한 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으면서 말했다.
“……제가 직접 만나고 오죠.”
“부탁드리겠습니다…….”
광신도가 일을 저질러 버렸다.
4.
김 팀장과 헤어진 후에 내가 곧바로 향한 곳은 바로 옆동네에 위치한 구로 한국대 대학병원이었다.
물론 내가 아파서 온 건 아니다.
만날 사람이 있어서 여기 온 거지.
똑똑똑-.
나는 1인실의 문을 두드린 다음, 심호흡을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병상에 앉아 있던 남자를 향해서 최대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제님. 저 왔습니다.”
그러자 병상에 앉아 있던 남자가 나를 바라보면서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무난한 환자복조차 잘 어울리는 미남.
민수 씨였다.
“오셨습니까 교황 성하?”
“……성하라는 호칭은 또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트리위키에서 제가 따로 검색을…….”
트리위키라면 없는 정보가 없다는 그곳을 말하는 모양이다.
성하라.
에덴에서도 사람들이 나를 보고 교황 성하라고 칭하긴 했었기에 그렇게 어색한 호칭은 아니다.
다만, 이제 막 교단을 세운 마당에 구태여 저렇게 불편한 칭호로 불리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병상 앞에 있는 의자에 앉으면서 손을 내저었다.
“그냥 편하게 시우 씨라고 부르세요. 그게 정 불편하시면 시우 님이라고 하시든지.”
“그래도…….”
“존중은 좋지만, 불편한 수준의 존중은 오히려 괴롭습니다.”
“알겠습니다, 교황님. 부디 교황이라고 부르는 것만큼은 막지 말아 주십시오.”
“……좋을 대로 하세요 그냥.”
호칭 문제는 간단하게 정리했고.
환자를 앞에 두고 굳이 길게 얘기할 생각은 없었기에, 나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왜 그러셨어요?”
민수 씨가 1시간 전에 올렸던 죄송합니다>라는 제목의 영상.
내가 장담하건대 저 다섯 글자만큼이나 시청자들의 어그로를 끄는 제목은 없었을 것이다.
그것도 여태까지 단 한 번도 구설수에 올라간 적이 없고, 플레이어 미튜버 중 최고의 민심을 자랑하는 민수 씨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2분짜리의 그 영상은 온통 나와 리멘의 이야기로 가득 찼었다.
내 이름을 실제로 언급만 안 했다 뿐이지, 나를 두고 생명의 은인이며 그분이 모시는 초월적인 존재가 본인을 치료해 주었다. 이런 식의 맹목적인 찬양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나로서는 썩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조금 더 극적인 연출을 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내 질문에 민수 씨는 당연히 해야 했을 것을 했다는 듯, 당당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언제라도 제 모든 것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리멘 님의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다면 언제라도 제 전 재산을 헌납할 생각입니다.”
[리멘 교단>의 세 번째 신도 구민수>가 본인의 신앙심을 고백합니다.] [특수 업적 광신도>를 달성하셨습니다. 칭호 보상으로 신성 점수> 20점을 추가 획득합니다.] [해당 업적을 해금함에 따라 특수 직분 이단심문관>이 DLC 상점에 새롭게 업데이트됩니다.] [이단심문관(Inquisitor)]●종류: DLC – 직분
●조건: 특수 업적 광신도> 보유
●대표 특성
-심판>: 교단의 적이나 악마를 상대할 경우, 모든 능력치가 최대 10프로 증가한다. 특수 능력치 신앙>이 높을수록 증가율이 높아지며, 일반인>이나 소속된 교단이 없는 일반 플레이어>에게는 발동하지 않는다.
●구매 비용: 500DP
현대 시대에 이단심문관이라.
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직분이란 말인가.
게다가 당장 저 직분을 구매할 수도 없다. 단번에 구매하기에는 구매 비용이 너무나도 무지막지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메시지 창들을 천천히 읽어 내린 다음, 한숨을 내쉬면서 그것을 닫아 버렸다.
시스템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시스템이 이런 식으로 반응한다는 것은, 즉 민수 씨의 저 열렬한 신앙심이 전부 진심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 이럴 때일수록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어차피 미튜브를 통해서 관심을 끌어모을 생각이었다. 이건 내가 원했던 방식은 아니지만, 아직은 괜찮다.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나 들어 봅시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민수 씨에게 물었고, 민수 씨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방금 전까지 자신이 들여다보고 있던 스마트폰을 건네주었다.
“반응을 봐주시겠습니까?”
“안될 건 없죠.”
건네받은 폰으로 확인한 영상의 조회수는 벌써 100만을 돌파한 상태였다.
불과 10분 전까지만 해도 60만대였는데, 조회수 올라가는 속도가 심상치 않다.
그리고 그에 걸맞게 영상에 달린 댓글 수도 벌써 1만을 돌파했다.
「ㅋㅋㅋㅋㅋ백명굔가 뭔가 하는 걔네 때문에 새로운 컨텐츠 하는 거냐?」
「민수 형;; 아무리 그래도 사이비 컨셉은 좀 그렇잖아;;」
「형. 난 형이 어떤 역한 컨셉 잡아도 좋으니까 빨리 영상이라도 올려 줘」
「큰 거 온다 ㄷㄷ 도대체 뭘 하려고 이렇게 밑밥 까냐?」
「주접떨지 말고 빨리 새로운 영상이나 올려라, 민수야. 명심해라. 항상 건강보다 미튜브가 먼저다. 알겠지?」
이것이 참된 미튜버의 삶이란 말인가.
내가 봤을 땐 진심을 가득 담아 찍은 영상이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시청자들이 보기에는 이것도 컨셉으로 받아들여지는 모양이다.
“나쁘지 않네요. 의도하신 겁니까?”
내 질문에 민수 씨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저는 그저 백명교라는 놈들이 관심을 받는 게 싫었을 뿐입니다. 정작 그 관심을 받아야 할 건…….”
“리멘이다, 이거죠?”
“역시, 교황님이십니다. 모든 영광은 오로지 여신님의 것입니다.”
원래 미쳐 있던 사람인 걸까, 아니면 리멘과 내가 이 사람을 미치게 만든 걸까?
아무래도 오늘 집에 돌아가자마자 인욱이에게 물어봐야겠다.
민수 씨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의욕적인 모습으로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제 구독자들이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이란 건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 영상으로 또 다른 신도의 간증을 준비했습니다.”
“누구죠?”
“이미 교황님의 기적을 두 눈으로 목격한 친구입니다. 설세명이라고, 던전의 입구에서 교황님께서 마주친 카메라맨을 기억하십니까?”
“아아.”
어쩐지.
신도가 네 명으로 집계되더라. 시스템 메시지가 대충 설명한 걸 봐서는 일반인이겠다 싶었다.
“안 그래도 이미 간증 영상은 찍었습니다. 오늘 저녁에 업로드 예약을 걸어 뒀…….”
“우리 그러지 말고 차라리 이렇게 합시다.”
나는 그렇게 말한 뒤, 내가 병원까지 오면서 세웠던 계획을 민수 씨에게 말해 줬다.
잠시 후.
내 계획을 모두 들은 민수 씨는 한껏 벅차오르는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감히 제가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맡아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나는 그저 인자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리멘께서 아주 기뻐하실 겁니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