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20)
120화
37. 공한증
1.
첫 경기로 예정되어 있던 나와 왕 웨이의 경기가 뒤로 밀리는 바람에, 우리의 선봉은 레오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레오 루멘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장 민. 두 각성자는 대련을 위해 앞으로 나와 주시기를 바랍니다.”
유선호 장관이 마이크를 통해서 말했고, 그 말을 들은 레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레오에게 딱히 해 주고 싶은 말은 없었다.
처음부터 긴장감 따위는 없는 대련이었다. 저쪽은 모르는 것 같지만, 나는 중국의 헌터들이 레오와 루나와 대적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힘의 격차는 이미 뚜렷하다.
사실, 지난번 환영식 때 이미 이번 대련전의 결과를 직감했다.
나, 레오, 루나를 제외하고서도 마찬가지였다.
“레오 대주교. 너무 돋보이면 내가 곤란합니다. 애들한테 오늘 큰 거 한 건 하고 오겠다고 장담하고 왔어요. 무슨 말인지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흐하하! 맛있는 걸 혼자만 드시진 마십쇼!”
지난 1달 동안 에이든으로부터 특훈을 받았다는 우리의 최서진 대표는 물론이고.
“제가 민폐가 될 수는 없어서, 준비를 많이 해 왔습니다. 믿으셔도 좋습니다.”
류진영과의 재회 이후로 부쩍이나 실력이 상승했다는 대한민국 대표 마법사, 강채아도 마찬가지였다.
그 둘은 현재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낼 수 있는 최선의 카드들인 건 틀림없었다.
게다가 한 달 사이에 몰라보게 성장한 둘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마치 국밥마냥 든든했다.
왕 웨이를 제외하고 이번 중국 대표단의 쌍두마차라고 불리우는 실력자 둘을 레오와 루나가 각각 상대하는 상황.
“레오야.”
“예, 성하.”
“가서 보여 줘라.”
레오는 고개를 숙이면서 나에게 인사를 한 다음, 본인의 외눈 안경을 사제복의 주머니에 잠시 넣어 두었다.
그리고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갔다.
중국 측의 장 민도 레오를 따라서 천천히 훈련장의 중앙으로 향했다.
축구장의 절반 크기 정도 되는 넓은 훈련장 위.
레오와 장 민은 그 넓은 곳의 중앙에 서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연녹색 빛깔의 경갑을 착용한 장 민의 손에는 기다란 창이 들려있었다.
“장 민. 중국 내부에서는 무결점의 창술사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외부로 공개된 중국의 디재스터급 귀환자 중 한 명이기도 합니다.”
팔짱을 끼고 있던 최 대표가 장 민을 주시하면서 말했다.
“동시에 초인부 국제협력국 내부에서 왕 웨이의 오른팔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철저한 실력주의를 주장하는 검귀의 오른팔인 만큼, 실력 역시 출중한 것으로 유명하죠. 별호는 창룡. 중국 내부에서는 삼국지의 조운을 빗대어 표현한다고 들었습니다.”
중국 쪽 각성자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나를 위한 최 대표의 배려였다.
나는 최 대표의 설명을 들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 대표는 누가 이길 것 같습니까?”
“고민할 여지도 없습니다. 레오 대주교입니다.”
“이유는?”
“지금 이렇게 장 민을 바라보고 있으면, 딱히 저자가 무섭다는 생각이 안 듭니다. 하지만 레오 대주교는…… 흐흐, 말을 아끼도록 하겠습니다.”
에이든으로부터 최 대표가 큰 성과를 얻었다는 걸 들었다.
특히, 전투 감각에 있어서 만큼은 엄청난 진보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 말은 곧 에이든이 쉴 새 없이 최 대표와 겨루어 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투 감각은 강자와 싸워야지만 성과를 얻을 수 있으니까.
투쟁심을 폭발시키며 싸우는 최 대표에게 있어서 전투 감각, 더 나아가 직감은 가장 효과적인 스펙 업 수단이다.
레오와 장 민은 제자리에 서서 묵묵히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 둘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최 대표는 본능적으로 그 기류를 포착해 낸 것이다.
“레오 대주교가 어떤 대련을 보여 줄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기대하시면 좀 곤란할 것 같은데요.”
“예?”
“시시하게 끝날 테니까요.”
나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잠시 후, 대련의 시작을 알리는 부저가 울렸다.
삐이이이익-!
부저가 울렸음에도 둘은 서로를 탐색하기라도 하는 듯, 가볍게 자세만 잡은 채로 대치를 유지했다.
특히, 장 민은 창을 두 손으로 쥔 채로 창끝을 자신의 정면에 놓았다.
마치 레오에게 들어올 테면 들어오라고 도발하는 모양새였다.
“장 민의 창술은 적의 공격을 방어하고, 반격하는 것을 우선시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창이라는 무기의 우월한 리치를 이용해서…….”
“최 대표님. 제가 에덴에서 레오의 칭호가 뭐였는지 말했습니까?”
상대의 무기가 창이든, 검이든.
레오에게 있어서 그딴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교황청의 광견. 레오에게 그런 살벌한 별칭이 붙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죠.”
광견이라는 단어는 신의 뜻을 따르는 성직자와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성직자에게 미친개라는 비속어가 별칭으로 붙는 것만큼 치욕스러운 일도 없겠지만, 레오가 진심으로 나서는 전투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들이라면 그 별칭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레오는 자신이 정해 둔 선을 넘은 자들에게 자비 따윈 베풀지 않습니다.”
드디어 레오가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거대한 몸집의 사제가 천천히 장 민을 향해 다가갔고, 장 민은 그런 레오를 바라보면서 자세를 바꾼다.
장 민의 창끝이 레오의 가슴팍을 조준한다. 그와 동시에 장 민의 창끝에서 마력이 빠르게 모여들었다.
투우욱.
레오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발을 내디디며 장 민의 공격 범위 안으로 파고들었고, 장 민도 그에 질세라 창을 찔렀다.
창술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찌르기.
마력이 응집된 창끝이, 완전히 개방된 레오의 흉부를 파고들었다.
승부가 결정된 것은 그 자그마한 찰나의 순간이었다.
장 민의 창끝이 검은색 사제복을 가르고, 레오의 살갗을 파고들었다.
얼핏 보면 공격이 성공한 듯 보였으나 장 민의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장 민의 표정은 다급했다.
그것은 녀석의 창이 원래 목표였던 레오의 가슴팍이 아닌, 레오의 어깨에 박히는 것에 그쳤기 때문이다.
“으아아아아!”
어깨에 박힌 창은 장 민이 안간힘을 쓰더라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레오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장 민의 창대를 타고 흘러내렸고, 장 민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레오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레오는 무표정한 얼굴로 장 민의 양쪽 어깨를 붙잡았다.
나는 레오의 손아귀에 들어온 장 민을 향해 히죽거리면서 말했다.
“미친개를 단숨에 절명시키지 못한다면, 결국 물어뜯기는 겁니다.”
셀 수 없이 많은 마수들의 이빨과 마족들의 병장기가 몸에 박힌 채로도 싸움을 이어 나갔던 레오다.
녀석은 전장의 한복판에서, 자신의 피를 뒤집어쓴 채로 수백, 수천, 수만의 적을 찢어발겨 왔다.
지금도 레오의 몸에는 강적들이 새긴 흉터들이 고스란히 쌓여 있었다.
맞고 더 강하게 때린다.
그 단순하면서도 우직한 레오의 방식이야말로 레오에게 광견이라는 칭호를 선사한, 레오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레오를 단번에 죽이지 못했다면?
상대가 맞이하게 될 결말은 뻔했다.
우드드드드드득-!
우드드득.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아악!”
레오는 거침없이 장 민의 어깨를 부러뜨렸고, 말 그대로 접어 버렸다.
장 민의 어깨뼈가 뒤틀리고, 부러진 뼈들이 장 민의 살을 찢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끄르르르륵.”
고통 앞에서는 디재스터급 귀환자고 뭐고가 없었다.
장 민은 눈을 뒤집으면서 혼절했고, 레오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장 민을 내려다보았다.
“연습 부족이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장 민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던 중국 측 대표단의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레오는 그런 중국 대표단을 슬쩍 쳐다본 다음, 다시 장 민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서로의 실력을 겨루기 위한 대련이니만큼, 특별히 펴 주도록 하지. 영광인 줄 알아라, 불신자.”
우드드득-.
다시금 울려 퍼지는 섬뜩한 소리에 유선호 장관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경, 경기 종료!”
“장 민 니이이이이이임!”
“의료지이이인! 의료지이이이인!”
순식간에 혼란스러워진 훈련장.
나는 그 아수라장을 바라보면서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서막 좋고.”
오프닝으로는 더할 나위 없었다고 생각한다.
2.
첫 번째 경기가 끝나자마자 우리 대표단이 있는 곳으로 왕 웨이가 찾아왔다.
왕 웨이는 우리 앞에 도착하자마자 얼굴을 붉히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소국은 대련의 의미도 모르는가! 네놈들에게 한 수를 가르쳐 주기 위해 온 귀인들을 죽이려고 해?”
다짜고짜 와서 한다는 소리가 개소리였다.
나는 왕 웨이의 헛소리를 들으며 귀를 후볐다. 그리고 능글맞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래서, 먼저 우리 레오의 흉부를 향해 창을 찔러 넣는 건 괜찮고? 아까 그거 레오가 아니라 다른 각성자였으면 죽었을 텐데, 죽일 생각을 품은 건 오히려 너희 쪽 아니야?”
레오가 창이 닿는 순간 몸을 비틀지 않았다면, 장 민의 창은 여지없이 레오의 가슴팍을 꿰뚫었을 것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치명적인 공격이었다.
단지 레오가 몸을 비틀면서 최소한의 피해로 공격을 받아 냈을 뿐이다.
“게다가 레오가 곧바로 AS해 준다면서 뼈 다시 맞춰 줬잖아. 신성력으로도 슬쩍 치료해 주고. 네 눈으로 직접 봐. 장 민이라는 놈, 아까 전보다 어깨도 더 넓어졌잖아? 레오가 어깨를 넓혀 준 셈인데, 정신 차리면 와서 감사의 인사라도 전하라고 그래라.”
대련의 의미를 먼저 퇴색시킨 것은 저쪽이었다.
그럼에도 레오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비를 베풀었다. 그대로 쇼크사할 수도 있는 놈의 목숨은 살려 줬으니까.
물론 깔끔하게 치료해 준 것 같진 않았다.
목숨은 붙어 있을 정도로만, 딱 그 정도였다.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소국의 각성자들이여. 대국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테니까.”
할 말이 없어진 왕 웨이 놈은 마지막까지도 개소리를 지껄이면서 자신이 있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나는 멀어지는 왕 웨이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저럴 거면 뭐 하러 온 거냐?”
“에이, 성하. 저쪽 분위기 봐 봐요. 자기 수하들이 저렇게 충격받았는데, 가만히 있으면 체면이 살겠어요? 뭐라도 해야지.”
루나의 말대로 현재 중국 대표단은 아직까지도 충격에서 못 헤어 나온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녀석들의 두 번째 가는 전력이 1분도 채 되지 않아서 리타이어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압도적이고 처참하게 말이다.
거기에 레오가 인사불성의 상대를 치료해 준다는 핑계로 한 번 더 손봐 줬으니, 나 같아도 그 잔혹함에 치를 떨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공포란 건 원래 쉽게 전염된다.
특히, 자신들이 자랑하는 전력이 허무하게 꺾인 순간부터 그 공포는 삽시간에 퍼져 나갈 수밖에 없었다.
“하여간에 우리 동생, 북부 출신 아니랄까 봐 무식하게 싸운다니까?”
루나는 어느새 우리에게 돌아온 레오를 향해 웃으면서 말했고.
“원래는 끝까지 접을 생각이었습니다.”
“왜 끝까지 안 접었는데?”
“엄살이 심한 친구더군요. 반쯤 접었을 때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그 상태에서는 스스로의 죄를 회개할 수 없습니다, 성하.”
레오는 마지막까지도 살벌한 멘트를 치면서 묵묵히 본인의 외눈 안경을 다시 착용했다.
창에 꿰뚫린 어깨는 이미 회복된 후였다.
그 상처를 살펴본 루나가 레오의 등짝을 후려치면서 말했다.
“이 누나는 가끔 내 동생이 트롤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단다.”
“저를 낳아 주신 부모님은 당연히 인…….”
“알지, 알지. 하지만 지구에 넘어와서도 그렇게 피를 튀기며 싸우면 어떻게 하니? 에덴에서는 몰라도, 지구에서는 너무 야만적이라고 손가락질 받을걸? 안 그래요, 성하?”
“레벤톤 경. 내로남불이라는 사자성어가…….”
“레오야. 내가 지난번에 그냥 넘어갔는데, 내로남불은 사자성어가 아니야.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자매품으로 자강두천, 낄끼빠빠 등등이 있다.”
내 지적에 레오는 묵묵히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조용히 스마트폰을 꺼내는 걸 보면 내 말의 진위를 확인하려는 모양이다.
내 말을 의심하다니.
……나쁜 놈.
아무튼 그렇게 레오의 차례가 마무리되었고, 그다음 차례는 루나였다.
루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 다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성하. 제가 아름다운 전투라는 게 무엇인지 저들에게 똑똑히 보여 주고 올게요. 저만 믿으세요.”
“철퇴로 대가리 뭉개 버리면 안 된다. 그거 즉사야. 치료 못 하는 거 알지?”
“애초에 철퇴를 들 생각도 없었어요. 오늘을 위해 따로 준비한 비장의 무기가 있다고 했잖아요? 한번 지켜보세요. 성하의 마음에 쏙 들 거니까.”
그렇게 루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섰다.
그리고 1분 뒤.
나는 루나가 꺼내 든 무기를 바라보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럼 그렇지.”
루나가 평범한 걸 준비해 왔을 리가 없지.
뾱뾱-!
뿅망치에서 튀어나온 우스꽝스러운 소리가 훈련장에 울려 퍼졌고, 루나가 활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재밌게 놀아 줄게. 기대해.”
중국의 치욕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