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22)
122화
5.
처음부터 그다지 위협을 느낄 수 없는 상대였다.
에이든을 처음 만났었을 때의 그런 위압감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녀석에게서 느껴졌던 것은 자만심, 허영, 그따위의 쓸모도 없는 것들뿐이었다.
진정으로 강한 자들은 그런 허상들로 자신을 감싸지 않는다.
스스로의 강함을 뽐내려 든다는 것.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스스로의 약점을 가리기 위해서 일부러 몸을 부풀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이야기들은,
째애애애애앵!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게 딱 네 꼴이야.”
“이노오오오오옴!”
모두 왕 웨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대련이 시작된 지 3분째.
바닥에는 한때 검이었던 조각들이 유리 조각처럼 흩어져 있었다.
내 필생의 역작, ‘내가 꿈꾸는 중국’이 몇 차례 진화한 것이다.
그 모습은 내가 보기에는 참 흡족했지만, 왕 웨이에게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부우우우우우웅!
왕 웨이가 아까 전보다 더욱 신경질적으로 검을 내지른다.
자신이 아끼는 보검 다섯 자루가 싸그리 박살 나서 그런가, 검 끝에 숨길 수 없는 분노가 실려 있었다.
그래도 꼴에 이레귤러라고, 지난번에 상대했던 디재스터급 귀환자 이은혁보다는 훨씬 위협적인 검이었다.
그때처럼 대놓고 몸으로 때울 수는 없었다.
날파리처럼 달려들던 다른 보검들과는 다르게, 녀석이 직접 손으로 쥐고 있는 검에 깃들어 있는 기운은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카아아아아앙!
“너클 만들어 달라고 하길 잘했다니까.”
물론 너클을 낀 채로 가볍게 튕겨 내면 그만이었지만 말이다.
원래라면 너클에 맞닿는 즉시 다른 검들처럼 박살이 났어야겠지만, 직접 들고 있는 검이라서 그런가 다른 검들에 비해 확실히 좋아 보였다.
“언제까지 승부를 피할 셈이냐!”
왕 웨이가 거칠게 소리치면서 발을 굴렀다.
그러자 녀석의 몸을 중심으로 거대한 파동이 퍼져 나갔고, 그 파동은 내 몸의 균형을 일순간 무너뜨렸다.
그리고 그 순간, 왕 웨이의 검로가 한 번 더 변화한다.
지금까지는 집요하게 내 상체를 노리고 있던 검이 균형을 잃은 하체를 파고 들어온다.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부드럽게 이어지는 연계 공격.
마침내 왕 웨이의 검이 내 무릎에 닿았으나,
화르르륵-!
파아아아아앙!
너클에서 피어오른 응축된 성화가 검을 받아 내었다. 그리고 검이 성화에 닿자마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며 왕 웨이의 몸이 다섯 발자국 떨어진 곳으로 튕겨 나갔다.
“쿨럭.”
충격이 어느 정도 누적되었는지 왕 웨이의 입가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나는 너클을 가볍게 쓰다듬으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이게 끝이야?”
“건방진…….”
“이레귤러라고 부르기에는 좀 부끄러운 것 같은데…… 이것도 한번 막아 봐.”
우우우우우웅-!
[액티브 스킬 성창 Lv. Max>를 시전합니다.]눈 깜짝하는 사이에 천장을 빼곡하게 채운 성창들이 왕 웨이를 향해 차례대로 쏟아져 내렸다.
왕 웨이는 숨도 고르지 못한 채로 검으로 반투명한 막을 만들어 냈고, 곧이어 폭격이 시작되었다.
예전에 에이든을 상대했을 때보다 훨씬 강력해진 성창이었다.
그만큼 나에게 할당된 인과율의 범위가 넓어졌다는 것을 의미했고, 신도들이 늘어난 효과가 여실히 드러났다.
콰아아아아앙!
성창이 훈련장에 꽂힐 때마다 거대한 구덩이가 파인다.
바닥이 뒤집어졌고, 바닥에서 피어오른 먼지가 시야를 뿌옇게 가렸다.
에이든은 20개 가까이 맨몸으로 버텨 냈었지만, 왕 웨이에게는 10개로도 벅찬 모양이었다.
먼지 사이로 보이는 왕 웨이의 형체가 조금씩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재미없네.”
그렇게 내가 남아 있는 성창들을 일제히 꽂아 버리기 바로 직전, 왕 웨이가 일순간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던 내 바로 뒤에서 짙은 살기가 전해져 왔다.
나는 부드럽게 몸을 돌리면서 오른손을 들었다.
파카아아앙!
손가락 틈 사이에 낀 너클에서 꽤 묵직한 충격과 함께 불씨가 피어올랐다.
왕 웨이가 전력을 다해 내려친 검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너클에 가로막혔다.
그와 동시에 먼지구름이 걷히고, 악에 받친 왕 웨이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
붉게 충혈된 눈.
귀, 코, 입, 얼굴에 뚫려 있는 구멍이란 구멍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피.
그 모습이야말로 녀석이 지닌 검귀라는 별칭이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것 같았다.
“얼굴 좋네.”
나는 그 상태로 왼 주먹을 쥔 다음, 곧바로 왕 웨이의 얼굴 옆면을 가격했다.
콰지지지직-.
콰아앙!
너클을 낀 주먹이 왕 웨이의 얼굴 좌측을 강타했고, 왕 웨이의 몸이 순식간에 훈련장의 옆벽에 처박혔다.
손 끝에 묵직한 감각이 전해진 걸 봐서는 최소한 좌측 안면은 함몰되었을 것이다.
왼손의 너클에 왕 웨이의 피가 진득하게 묻혀 있는 것을 보면 공격은 제대로 들어갔다.
화르르륵-.
나는 너클에 묻은 피를 성화로 증발시키면서 가볍게 목을 풀었다. 그리고 왕 웨이의 몸이 처박힌 훈련장의 벽면을 주시했다.
최소 뇌진탕.
숨은 끊기지 않을 정도로 후려쳤으니까 죽지는 않았을 거다.
거친 굉음이 가득하던 훈련장에 순식간에 침묵이 내려앉았고, 숨 죽여서 대련을 지켜보고 있던 유선호 장관이 급히 마이크를 통해 외쳤다.
“대련 종…….”
그러나 유선호 장관은 끝내 마무리를 선언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왕 웨이가 박살 난 벽에서 비틀거리며 걸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녀석의 좌측 얼굴은 눈에 띄게 함몰되어 있었으나 정신을 잃지 않은 걸 보면 마지막 순간에 어떻게든 충격을 줄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멀쩡하지는 않았다.
녀석은 자꾸만 비틀거리면서 걸었다.
그 와중에도 손 끝에 검을 쥐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정신력만큼은 인정해 줄 만했다.
무인의 자존심인 건지, 아니면 나에게 질 수 없다는 승부욕인지,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확실히 인상적인 모습인 건 틀림없었다.
“아직…… 아직 끝나지 않…….”
기괴하게 비틀린 입 사이에서 바람 소리가 섞인 중국어가 튀어나왔다.
왕 웨이는 떨리는 손으로 장포의 소매에 손을 넣었다. 그러자 곧 은색의 작은 상자 하나가 소매에서 튀어나왔다.
잠시 후, 왕 웨이의 손에 놓인 은색 상자가 자동으로 열렸고, 그 안에서 둥그런 검은색 경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경고! 강력한 마기가 감지됩니다.]아까까지만 하더라도 감지되지 않았던 강력한 마기가 저 조그마한 경단에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내가 당황하는 것도 잠시, 왕 웨이가 경단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비릿한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네놈만큼은…… 커허어어어억!”
나는 순식간에 다가가 녀석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녀석에게 말했다.
“변신하는 시간이 무적인 줄 알았냐?”
“끄르르르르륵.”
“요새는 악당들도 영웅한테 변신하는 시간 안 줘. 그것도 모르냐?”
먹을 거면 시작부터 먹었어야지.
멍청하기는.
6.
‘……끝났어.’
리 지에는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에 눈을 질끈 감았다.
중국이 자랑하는 네 명의 초월자 중 하나, 왕 웨이.
비록 초월자들 사이에서도 가장 약하다고 평가받았지만, 초월자는 초월자였다.
그의 손에 의해 정리되었던 게이트와 던전은 이미 셀 수도 없었으며, 몇 차례의 비밀 임무들을 통해서 이미 다른 국가의 디재스터급 귀환자들을 제거한 전적도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모든 것들이 무의미해졌다.
‘상대하면…… 안 되었던 거야.’
한국에 등장한 이레귤러, 김시우.
지난번 한국에 왔을 때 그녀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심었던 그 존재가, 이번에는 왕 웨이의 목을 움켜쥔 채로 서 있었다.
대련은 이미 패배했다.
준비해 온 모든 카드들이 처참하게 찢어졌고, 왕 웨이의 목숨마저 김시우의 손에 매달려 있었다.
심지어 그 과정조차 최악이었다.
어른이 어린 아이를 가지고 놀 듯이 일방적이었던 대련.
일전에 이루어졌던 다른 리멘 교단 간부들의 경기도 그러했지만, 김시우가 직접 나선 마지막 대련은 유독 그 차이가 극명했다.
검귀는 검은 교황에게 그 어떠한 상처조차 남기지 못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한국에 가져온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고서도 결과를 바꾸지 못했다.
‘흑단을 이렇게 허무하게 노출시켜서는 안 되었던 건데…….’
흑단.
일시적으로 힘을 대폭 강화시켜 주는 강화제로서, 급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용이 금지되어 있는 비밀 병기.
그녀로서는 이번 교류전을 통해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던 비밀의 환약이었다.
리 지에는 왕 웨이의 판단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진 않았다.
그녀가 보기에도 김시우는 그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제거해야만 하는 타깃이었으니까.
하지만 흑단을 사용한 타이밍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병신 같은 새끼!’
스스로의 힘을 과대평가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다 죽어 가는 마당에 흑단을 사용하겠다는, 머저리 같은 생각 따위는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리…… 지에 님. 저희는 이제…… 어떻게?”
넋이 나가 있던 부하 직원 하나가 리 지에를 바라보았다. 리 지에는 그제야 상념에서 깨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왕 웨이마저 저렇게 처참하게 깨진 순간, 대표단의 최고 명령권자는 그녀였다.
그녀보다 윗순위에 있던 인물들 모두가 정신을 잃은 채로 실려 갔기 때문이다.
“왕 웨이 님을 모셔 와야…….”
“그럼 네가 저기로 걸어갈래?”
리 지에는 아직도 대련이 진행 중인 훈련장 위를 가리켰다.
그곳에서는 여전히 김시우가 왕 웨이의 목을 움켜쥔 채로 서 있었다.
“저렇게 두면 왕 웨이님의 목숨이…….”
“우리가 지금 누구 목숨을 걱정할 처지로 보여?”
“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나라에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씨발.”
팔을 잘라서라도 이번 교류전에서 빠졌어야만 했다.
목숨을 살리는 대가로 팔 한 쪽이라면 차라리 싼 가격이었다. 적어도 팔은 의수라도 붙일 수 있었을 테니까.
리 지에는 입술을 깨물면서 훈련장 위를 바라보았다. 흑단까지 노출된 이상, 퇴로는 없었다.
그녀에게도 상부에서 지급한 흑단이 한 알 있었지만, 차마 그것을 복용할 용기는 없었다.
흑단을 통해 힘을 강화시킨다고 한들, 저 괴물들을 이겨 낼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흑단에 대한 비밀이라도 지켰다면…….’
그들에게 흑단을 지급해 준 ‘그’는 리멘 교단의 간부들이라면 흑단을 보고서 그냥 지나치진 않을 것이라 경고했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흑단은 아무런 의미 없이 사용되었고, 그 정체를 김시우가 알아차렸다.
그리고 김시우가 알아차렸다는 그 말은,
“우리 귀여운 지에. 나는 그 때 우리가 비밀을 공유할 정도로 친해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봐?”
“루, 루나 언니.”
“어머. 그래도 언니라고는 불러 주는구나? 나는 또, 아까 전에 아는 척도 제대로 안 하길래 우리 사이의 좋은 추억을 잊어버린 줄 알았잖니.”
한 달 전, 리 지에에게 끔찍한 기억을 선사했던 이 괴물도 알아차렸을 거라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루나는 잔뜩 얼어붙은 리 지에를 향해 여유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리 지에의 어깨에 팔을 두르면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지에야. 아까 언니 뿅망치 어땠어. 나름 신경 써서 들고 온 건데, 마음에 들었어?”
“……예.”
“다행이네. 맞다. 그거 알아? 그거 뿅망치, 마음만 먹으면 대가리 한 방에 터트릴 수 있다?”
철저하게 학습된 공포가 다시 발밑을 기어오른다.
리 지에는 몸을 벌벌 떨면서 루나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지난번에는 네가 날 대접해 줬으니까, 이번에는 내가 너를 대접해 줘야겠네. 우리 신전으로 정식으로 초대할까 하는데, 혹시 싫어? 싫으면 미리 말하고. 싫다는 사람 강제로 데려가지는 않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거절의 대가가 무엇일지, 리 지에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한 달 전의 악몽이 다시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