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24)
124화
3.
동북아 교류전이 끝난 다음 날 아침.
정부에서 언론사들에 걸어 두었던 엠바고가 해제되자마자,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사들이 일제히 동북아 교류전에 대한 기사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속보)대한민국, 동북아 교류전 전승!>
중국의 이레귤러, 왕 웨이. 대련 도중 불의의 사고로 폐인이 되다?>
익명을 요구한 일본의 각성자, ‘한국과는 절대로 싸우고 싶지 않다. 특히, 리멘 교단의 각성자들을 상대할 일이 있다면 할복하거나 독약을 마시겠다. 그편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
흠잡을 곳이 없던 승리, 동북아의 판세가 재편되다.>
외신들, 일제히 리멘 교단을 ‘폭풍의 핵’으로 지목.>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니었다.
정부 측에서 자료를 제공받은 기자들은 쉴 새 없이 기사들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선봉에는 당연히 우리 교단을 대표하는 스피커, 세종일보의 서 기자가 자리잡고 있었다.
레오와 루나로부터 직접 인터뷰를 딴 서 기자의 기사는 순식간에 포털 사이트를 장악했고, 외신들 모두가 서 기자의 기사를 참고해서 세계 각지로 소식을 퍼뜨렸다.
기자들의 개성에 맞게 재해석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들이 쓴 모든 기사들은 한 가지 사실을 가리켰다.
-중국이 한국에 패배했다!
디멘션 오프닝 이후,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움켜쥐고 있던 중국의 패배.
심지어 숨기고 숨겼던 이레귤러조차 잃어버리는 최악의 결과.
일부 국제정치학자들은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내놓기는 했으나, 그들은 곧 이어진 중국 정부의 공식 발표로 인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 ‘한국의 비약적인 발전을 축하한다. 이번 교류전에서는 우리가 완벽하게 패배했다. 다음 교류전은 쉽게 패배하지 않을 것.’>
교류전 막바지에 발생했다는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서는 말을 아껴…… ‘대표단에 속한 인원들의 개인적인 일탈일 뿐, 중국 정부와는 관련이 없음.’>
‘잃어버린 땅’을 두고 이어지던 신경전, 한국의 승리?>
“얘네가 뭘 잘못 먹었나? 패배를 순순히 인정하네요. 나는 또 끝까지 잡아뗄 줄 알았는데.”
“패배만 인정하겠다는 거지. 전형적인 꼬리 짜르기잖아? 하나는 인정하지만, 하나는 인정할 수 없다. 딱 그거잖아.”
“이런 게 먹혀요?”
“불리해졌으니까 외교로 풀어 나가겠다는 거지. 흑단으로 인해 희생자가 없었잖아? 다행히 대련 녹화 영상이 있으니까 우리 정부 측도 대응을 할 거야. 쉽게 넘어가 주진 않을걸.”
나는 루나의 말에 대답해 주면서 커피를 한 모금 넘겼다.
내가 아는 서 대통령이라면 이번 기회를 통해 중국을 탈탈 털어먹으려들 것이다.
이레귤러 하나를 잃은 상황임에도 저쪽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유 역시 거기에 있었다.
이레귤러나 되는 놈이 자폭을 각오하면서 달려들었다.
비록 흑단에서 흘러나온 마기로 인해서 녹화가 깨끗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책임을 물을 정도의 증거는 확보되었다고 들었다.
거기서부터는 이제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영역.
지금까지 서 대통령이 보여 준 역량을 생각해 본다면, 중국의 실수를 두고도 가만히 넘어갈 거란 생각이 안 든다.
분명히 속옷까지 털어먹겠지.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거기에 에이든 하워드라는, 걸출한 미국의 이레귤러가 보증까지 서 줬으니 잡아뗄 여지도 없었다.
“중국에서는 외교부장까지 파견한다고 했으니까…… 발등에 불똥이 떨어졌다고 봐도 된다.”
“복잡하다, 복잡해. 국제정치. 그 사람들 올 때 대표단도 수습해 가나?”
“그렇겠지? 왕 웨이를 비롯한 대표단들은 아직 치료 중이잖아. 그런데 솔직히 데려갈지는 잘 모르겠네.”
그들에게 신병을 인도하는 대로 서해바다 어딘가에 던져지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이미 중국 쪽에선 노선을 정했다.
대표단의 돌발 행위는 어디까지나 그들의 개인적 일탈일 뿐, 당과는 상관없다는 스탠스.
사실,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범위라서 그리 놀랍지도 않았다.
나는 루나와 이야기를 나누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고 아까 전부터 나를 부담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중국인, 린 타오를 향해서 말했다.
“린 타오. 부담스러우니까 그만 좀 쳐다봐.”
그러자 린 타오가 무릎을 꿇으면서 대답했다.
“중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교황 성하의 존안을 더이상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차마 시선을 뗄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성하!”
눈물까지 흘려 대며 말하는 린 타오에게서는 일종의 광기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광신도 그 자체.
라파르트 대주교에 의해 완벽하게 회개하고 다시 태어난 린 타오는, 언제라도 우리 교단의 미래를 위하여 몸을 던질 각오가 되어있는 듯 보였다.
그 모습을 옆에서 흡족하게 지켜보고 있던 라파르트 대주교가 녹차를 마시면서 싱긋 미소를 지었다.
“리멘께서 보시기에 참으로 흡족한 장면입니다. 리멘을 믿지 않던 친구가, 이제는 리멘을 위해 기꺼이 순교할 것을 각오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리멘의 축복이 아니겠는지요.”
“라파르트 대주교.”
“예, 성하.”
“지구에서는 보통 그걸 보고 세뇌라고…….”
“세뇌가 아닙니다. 이건 영접이라고 불러야 마땅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영접을 하면 신앙심이 하나도 없던 놈이 광신도가 되어 버리는 걸까?
육체적인 고통은 전혀 주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말이다.
나는 꺼림칙한 표정으로 라파르트 대주교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정말 이 친구를 중국으로 돌려보내실 생각입니까?”
“그래야지요. 이미 린 타오 군은 각오를 끝냈습니다. 선교를 위해 에덴의 북부로 향한 수행 사제들처럼, 린 타오 군이라면 마땅히 제 역할을 할 것입니다.”
“대주교의 말씀대로 저는 이미 모든 준비를 끝냈습니다. 대륙 전역에 리멘의 찬송가가 울려 퍼지기 전까지, 저는 쉴 새 없이 노력할 것입니다!”
중국에서 포교 활동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라파르트 대주교를 직접 파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린 타오에게서 시선을 거둔 다음, 그의 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리 지에를 향해 말을 건넸다.
“리 지에. 너는 어떻게 할 계획이냐? 중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야?”
“……저는 돌아가면 무조건…… 숙청을 당할 겁니다. 가능하다면 이곳에 남는 쪽을…….”
“에이든과 이야기를 대충 끝내 뒀어. 네가 원한다면 미국으로 망명할 수 있을 거다.”
리 지에는 린 타오와는 경우가 달랐다.
린 타오는 흑단조차 지급받지 못했을 정도로 낮은 위치에 있었지만. 리 지에는 흑단을 지급받았다.
즉, 책임 소지가 있는 책임자란 뜻이었다.
아마 그녀는 중국으로 귀국하는 대로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래도 나름 중국인치고는 우리에게 협조적이었는데, 살길은 하나 열어 주는 게 좋지 싶었다.
그쪽이 우리 교단에게 득이 되는 선택이기도 했으니까.
리 지에는 내 말을 듣자마자 눈시울을 붉히며 물었다.
“정, 정말입니까?”
“내가 그런 걸 가지고 거짓말을 왜 해? 미국 정부 측에서 먼저 제의한 거야.”
미국으로서는 이번 기회에 중국 초인부에 대한 정보를 확보할 생각인 것 같았다.
루나에게 허구한 날 쥐어 터져서 그렇지, 따지고 보면 리 지에의 전투력도 쓸 만한 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갈 곳을 잃은 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절박해지는 법.
물론 리 지에의 신병을 미국 측에 인도하는 대가로 리멘 교단이 약속받은 게 몇 가지 있었지만, 그건 굳이 리 지에에게 말해 주지 않았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은 이때 사용하는 것 아니겠어?
“대한민국에 남는 것보다는 아예 미국으로 망명하는 게 훨씬 안전할 거다. 어떻게, 고민 좀 해 볼래?”
“아닙니다! 아닙니다. 미국으로 망명…… 꼭 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섭섭하네, 지에야. 우리 둘 사이 좋았잖아? 언니랑 그렇게 떨어지고 싶었어?”
“죄송합니다…….”
“후후, 장난이야. 괴롭히는 맛이 아주 쏠쏠해. 그렇죠, 성하?”
“네 변태적인 취향을 나에게 강요하지 않아 줬으면 한다.”
나는 루나의 공격을 여유롭게 받아 낸 다음, 집무실의 창문 밖을 쳐다보며 한숨을 뱉어 냈다.
“이제 남은 건 정화자, 그놈들인데.”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말이지.
서 대통령과도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야 할 문제인 건 틀림없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까?
4.
중국.
상해에 위치한 어느 빌딩의 최상층.
동방 명주가 한눈에 보이는 그곳에서, 흰색 머리카락이 돋보이는 미청년이 조용히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청년의 나긋한 목소리에 한 중년의 남자가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왔다.
방으로 들어온 남자는 청년을 보자마자 무릎을 꿇으면서 절을 올렸다.
“위대한 분을 뵙습니다.”
“날이 참 좋습니다. 이런 날은 창문 밖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법이죠.”
“3시간 뒤, 외교부장이 직접 한국에 방문할 예정입니다. 혹, 따로 지시할 사항이 있으신지요.”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이런 말이 있습니다. 위정자들의 일은 위정자들에게 맡기도록 하세요. 저희들은 그저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지켜보고만 있으면 됩니다.”
백발의 청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런 청년의 대답을 들은 남성은 다시 한번 허리를 숙였다.
“쓰촨성의 청두시에서 마왕의 화신체를 발견, 곧바로 확보하였습니다. 보고된 바에 따르면 음욕의 마기를 강하게 타고난 여성체라고 합니다.”
“상태는요?”
“마기에 의해 반쯤 미쳐 있다고는 하지만, 완전히 붕괴된 것은 아닌 듯합니다.”
“우리 천박한 음욕의 마왕께서 흡족해하시겠군요. 곧바로 실험실로 보내도록 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간단하게 상황을 보고한 남성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여전히 정중한 목소리로 청년에게 물었다.
“위대한 분이시여. 리멘 교단을 가만히 내버려 두실 생각이십니까? 그들은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던 계획 대부분을 수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대로 두면 장차 저희들의 가장 큰 적이 될 것입니다.”
리멘 교단.
별 볼일 없던 한국에서 등장하여, 최근 동북아시아의 판세를 뒤흔들고 있는 신흥 종교 집단.
김시우라는 이레귤러를 중심으로 모습을 드러낸 그들은 껍데기만 남아 있던 한국을 뿌리부터 변화시켜 버렸다.
동시에 그들은 정화자의 구성원들이 사용하는 ‘마기’와 정반대의 기운인 ‘신성력’을 사용하는 존재들이었다.
내버려 두면 내버려 둘수록 큰 화근이 되는 존재들.
“참초제근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이 못난 놈이 무례를 무릅쓰고 의견을 전합니다.”
“일 장로가 무엇을 걱정하는지는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김시우. 그는 잠깐 대면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을 찌릿하게 만드는 괴물이 맞습니다. 그가 단신으로 에덴의 일곱 마왕들을 처리했다는 게 믿겨지더군요.”
청년은 왕 웨이의 몸을 통해서 만났던 김시우를 떠올렸다.
두려움이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던 인물.
근거가 없는 자신감은 자만에 불과할 뿐이나, 김시우의 자신감에는 분명한 근거가 있었다.
압도적인 신성력과 그것을 바탕으로 기꺼이 몸을 움직이고자 하는 왕성한 활동력.
거기에 그의 뜻을 도와줄 강력한 조력자들까지.
“그는 사람을 끌어모을 줄 아는 자입니다. 그런 부류의 적은 제거할 수 있을 때 제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일 장로. 그들을 제거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일 장로라고 불린 사내는 청년의 말에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위대한 분에 비하면 한없이 부족한 저로서는 감히 당신의 뜻을 가늠할 수 없습니다. 가르침을 주십시오.”
“가르침이랄 것도 없습니다, 일 장로. 나는 일 장로의 그 욕망을 존중합니다. 욕망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진실 되게 만들어 줍니다. 위선으로 가득 찬 세상을 정화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가치지요.”
청년은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가 입고 있던 하얀색의 긴 장포가 바닥을 쓸었다.
“그러니 나는 일 장로가 내 욕망을 존중해 주었으면 합니다. 익지 않은 과일은 맛이 없습니다. 달콤한 과일을 얻기 위해선 충분히 기다려야 합니다.”
청년은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붉은색의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나는 그 달콤한 과일을 원합니다. 그 과일이 우리를 죽일 독을 품고 있다고 한들 어떻겠습니까? 입안 가득 달콤함을 품은 채로 죽을 수 있다면, 그 또한 행복이지 않겠습니까?”
일 장로는 자신이 모시는 이의 입가에 가득한 미소를 보았다.
순수한 어린아이의 미소.
그 미소를 앞에 두고 그는 그 어떠한 말조차 내뱉을 수 없었다.
“그래도 우리 일 장로가 걱정하고 있으니, 그냥 넘어갈 수는 없겠지요?”
청년은 넓은 벽에 덩그러니 달려 있던 지도를 향해 사뿐사뿐 걸어갔다. 그리고 어느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슬슬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록 할까요? 일 장로. 밑의 것들 중 일부를 이곳으로 보내도록 하세요. 벌집을 마음껏 쑤실 시간입니다.”
“그곳은…….”
일 장로는 말끝을 흐렸고, 청년은 그런 일 장로를 바라보면서 더욱더 짙게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그들에게도 충분한 선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