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26)
126화
39. 어린 성자
1.
원래 내 계획은 나와 승우 단둘이 문병을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내 계획에는 항상 변수가 발생한다. 이를테면 루나라든가, 루나라든지, 루나 같은 것 말이다.
“문병 갈 때 음료수를 챙기는 건 기본이라구요, 성하. 나 없었으면 어쩔 뻔했대?”
“음료수는 챙기더라도 너를 챙겨 가는 건 환자의 몸에 치명적이지 않을까?”
“제 외모가 치명적이긴 해요. 미튜브 댓글 보셨어요? 아주 그냥 제 미모를…….”
“확실히 치명적이긴 해. 저혈압 환자를 네 옆에 붙여 두면 순식간에 고혈압이 될 거야. 장담할게.”
나는 내 옆에서 음료수 병이 든 박스를 손에 들고 있는 루나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은 구로구에 위치한 한국대 대학 병원.
지구에 귀환했던 초기, 언데드들로부터 내가 지켜 냈던 바로 그곳이었다.
승우 친구의 아버지가 이곳에 입원해 있다고 하던데, 오랜만에 도착한 이곳에는 아주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지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저게 지금…….”
“일주일 전에 생긴 거라던데요. 그 뭣이냐, 리못죽? 거기 카페 회원들이 돈을 모아서 주문했다나? 요새 오피셜 리멘 안 보시는구나. 거기에 영상도 하나 올라왔는데.”
“리멘이 보면 오열…….”
“리멘님이시라면 아주 흡족해하실걸요? 본인이 임명한 첫 번째 사도의 인기가 날이 가면 갈수록 높아진다는 증거잖아요.”
“말을 말자.”
나는 병원의 앞에 떡하니 세워진 동상을 바라보면서 탄식을 금치 못했다.
사제복을 입은 남자의 전신상. 전신상의 뒤에는 여덟 장의 날개가 자리 잡고 있었고, 두 손은 가지런히 모은 채 ‘신성하다’라는 느낌을 사방에 퍼뜨리고 있었다.
언제 빼돌렸는지 모르는 최상급 신성석이 전신상 곳곳에 박혀 있는 건 덤이었다.
『수많은 생명의 구원자, 리멘 교단의 김시우 교황님께 바치는 자그마한 성의』
위와 같은 문장이 밑에 적혀있는 건 보너스였다. 그리고 그 밑에는 전신상 제작에 참여한 단체들이 조그마한 크기로 함께하고 있었다.
“장소 협찬 한국대학교 구로 병원, 리못죽, 오피셜 리멘, 김성아……. 이거 김성아는 어떤 분이냐?”
“아, 그거 성하 팬클럽이잖아요. 김시우의 성스러운 아이들.”
“……그러니까 지금 전신상을 여기다가 배치하는 걸 병원에서 허락했다고?”
“당연하죠.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던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나의 분신을 마주해 버려서 그런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게다가 평범한 전신상도 아니고, 하필이면 등에 여덞 장의 날개가 돋은 그 모습을 조각해 뒀을 줄이야.
“멋있어요, 교황님!”
“……고맙다, 승우야.”
“저도 언젠가는 반드시 교황님의 전신상과 리멘님의 신상을 다른 곳에 세울게요!”
나는 승우의 활기찬 목소리를 들으면서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깜짝 선물이라고 하기에는 스케일이 워낙 커서 헛웃음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그렇게 내가 멍하니 전신상을 보고 있는 사이, 시민 몇몇이 전신상으로 다가갔다.
“와, 이거 김시우 전신상 맞지?”
“이거 찍으려고 부산에서 여기까지 왔잖아. 부산에는 이런 거 안 만들어 주나?”
“진짜 만들어 주기만 한다면 매일같이 닦아 주고 쓰다듬어 줄 텐데.”
“살짝만 침 바르고 가자. 그 정돈 괜찮지 않을까?”
“이거 보고 나서 리멘 교단 성지로 가는 게 풀코스잖아.”
“신앙으로 충만해지는 기분이야.”
전신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과 두 손을 꼭 모아서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
시민들이 내 전신상을 두고 이런저런 행동을 하는 걸 보고 있자니, 절로 얼굴이 붉어지는 기분이었다.
“우리 성하, 부끄러우신 모양이네. 왜, 가서 사인이라도 해 주죠?”
“우리 문병하러 온 거다. 조용히 하고 들어가자. 병원에서는 정숙, 그 당연한 것도 모르냐?”
나는 루나에게 가볍게 쏘아붙인 다음, 빠르게 병원 안으로 들어섰다.
평상복을 입고 와서 다행이다.
사제복을 입고 왔으면 졸지에 팬 사인회를 열 뻔했다.
그나저나 전신상에 박혀 있는 최상급 신성석, 교단의 간부가 아니면 구할 수 없었을 텐데 말이지.
아무래도 내부에 범인이 있는 것 같다. 나중에 시간을 내서 찾아봐야겠다.
아무튼.
그렇게 내가 조용히 병원 입구로 들어섰을 때였다.
“승우야, 병실이 어디인지 알아?”
“네!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
승우와 함께 병실을 찾아 나서려던 찰나,
“김, 김시우 교황님?”
입구의 의자에 앉아서 조용히 커피를 마시고 있던 남자 하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남자의 목에 직원증이 걸려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병원의 직원인 듯 보였다.
내가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한눈에 알아차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냥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
나는 나를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 그 남자를 향해서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하하…… 반갑습니다. 날씨가 좋네요. 그렇죠?”
“잠시만, 아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남자는 급하게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어디론가 급히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잠시 후.
“부장님? 1층 현관에 김시우 교황님이 오셨습니다. 예, 예. 정말이라니까요? 병원장님께 빨리 보고를……. 아, 지금 같이 계신다구요? 예, 예. 알겠습니다. 예! 제가 성심성의를 다하여 모시고 있겠습니다!”
남자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을 때쯤, 뒤에 서 있던 루나가 작게 박수를 치며 말했다.
“역시 슈퍼스타.”
“……닥쳐.”
“제가 말했죠, 마스크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불난 집에 부채칠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는 루나였다.
나는 어느새 저 멀리서 전속력으로 뛰어오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양복을 입고 있는 사람 둘과 의사 가운을 입고 있는 남자 하나.
“병원장님이 급히 오고 계십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병원장님께서 직접 모시겠다 하셨습니다.”
“저희 그냥 문병 온 건데요.”
“병원과 환자들을 구원해 주신 은인께 무엇이든 못 해 드리겠습니까?”
오늘도 조용한 하루는 글러 먹었네.
쓰읍.
2.
“정승헌 환자는 급성 마력 중독 증상으로 입원 중에 있습니다. 헌터들에게 아주 흔한 증상 중 하나지만, 이 환자의 경우에는 오른쪽 다리가…….”
병원장은 내가 굳이 요청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알아서 환자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했다.
승우 친구의 아버지, 정승헌 씨.
병원장의 말에 따르면 마력 중독 현상은 레이드 중에 흔히 발생하는 부상 중 하나라고 한다.
게이트나 던전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에 중독되는 현상이라던가.
“마력 중독은 비급여 항목이기 때문에 치료비가 많이 발생하는 편입니다. 대형 길드들의 경우에는 자체적인 지원책이 있지만, 중소형 길드의 헌터들은 고스란히 치료비를 부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지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승우의 아버지인 진서준 씨도 그 비싼 치료비 때문에 치료받지 못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승우 역시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이곳에 왔을지도 모른다.
동병상련.
그 괴로움을 겪어 본 사람만이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법이니까.
나는 승우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면서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그래도 한 가지 고무적인 것은 현재 정부에서 각성자들을 위한 별도의 공공보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희 병원 역시 동참하겠다는 의견을 강력하게 표명했구요.”
“병원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셔도 됩니까? 보통 병원장이란 자리는 병원에 손해 되는 일 같은 건 안 하지 않습니까?”
내 질문에 병원장은 부드럽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제가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 현장?”
“교황님께서 저희 병원과 환자들, 더 나아가 이 일대를 정화해 주시던 그 현장이요. 제가 그것을 보고도 깨닫는 게 없을 정도로 미련한 사람은 아닙니다. 아, 도착했습니다. 이곳입니다.”
병원장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어느 병실 앞에 멈춰 섰다.
한 자리가 비어 있는 2인실이었다.
나는 병실의 문을 바라본 다음, 병원장을 향해서 조용히 물었다.
“혹시 저희가 환자에게 어떤 도움을 줘도 괜찮겠습니까?”
병원장은 내 질문의 뜻을 빠르게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저희가 부탁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현대 의학으로는 완벽하게 치료할 수 없는 환자입니다. 부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처음에 헐레벌떡 달려오기에 병실 내부까지 따라 들어오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었다.
하지만 병원장은 의외로 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인 것 같았다.
나는 병원장에게 슬며시 미소를 지어 준 후, 루나와 승우를 데리고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가습기가 틀려 있는 2인실 안.
침대 위에는 한 남자가 누워 있었고, 그의 옆에는 걱정으로 가득한 표정의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병실로 들어선 우리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섰고, 승우는 그녀를 향해 공손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서준이 친구 진승우라고 합니다.”
“아, 아침에 전화를 준 그 친구구나? 어서 와요. 와 줘서 정말 고마워요. 서준이 엄마예요.”
“저…… 이거.”
승우는 음료수가 담긴 박스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문병 올 때는 빈손으로 오면 안 된다고 해서요.”
“기특하기도 해라. 잘 먹을게요.”
그녀는 음료수 박스를 받아 든 다음,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와 루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보호자분들이신가 봐요? 혹시 승우 부모…….”
“절대 아닙니다.”
오해는 빠르게 풀어야 하는 법.
나는 마스크를 슬며시 벗었다.
“리멘 교단의 김시우라고 합니다. 승우가 문병을 가고 싶다기에, 보호자 자격으로 함께 왔습니다. 이쪽은 루나 레벤톤, 저희 교단의 성기사단장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서준이 어머님. 루나 레벤톤이에요. 편하게 루나 양이라고 불러 주시면 된답니다.”
“어…… 어?”
그녀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만큼 우리의 방문이 당황스러웠다는 뜻이었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놀라워하는 그녀를 향해 조심스레 말을 이어 갔다.
“우리 승우가 리멘 교단의 가장 소중한 보물 중 하나거든요. 미리 말씀드리고 왔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아, 아니에요. 저는 단지 너무 갑작스러워서…….”
나는 흘긋 침대에 누워 있는 정승헌 씨를 바라보았다.
손님이 왔음에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것만 보더라도 그의 몸 상태가 썩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병원장의 브리핑에서 들었던 오른쪽 다리, 정확히는 오른쪽 종아리 부근에 뭉쳐 있는 마력이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에 관통당했던 모양인지 봉합 수술이 진행된 흔적까지도 남아 있었다.
-회복이 너무 느리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다리를 절단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상태를 직접 보니까 병원장의 브리핑이 얼추 이해가 갔다.
환부에 과도하게 응집된 마력으로 인해 신체의 자연 치유 능력이 대폭 저하된 상태였던 것이다.
보통 마력이 응축된 병기에 꿰뚫리면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환부 주위의 마력을 제거하면 빠르게 호전될 수 있는 수준의 부상이기도 했다. 이런 부상은 사제들이 아니더라도, 실력 좋은 마법사를 초빙한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다만, 실력 좋은 마법사들이 일면식 없는 사람들을 위해 쉽게 나서 줄 가능성이 적을 뿐.
“초면에…… 굉장히 실례되고 염치없는 부탁인 줄은 알지만…… 혹시, 교황님께서 이 사람을…….”
서준이 어머님은 간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부드럽게 웃어 주면서 말했다.
“실례되지도, 염치없지도 않습니다. 저희가 온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으니까요.”
“……예?”
“그러나 어머님께서 오늘 감사를 표해야 할 대상은 제가 아닙니다.”
나는 승우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러자 승우가 조심스레 앞으로 나왔다.
“승우야, 할 수 있지?”
“네. 라파르트 대주교님이랑 레오 대주교님이 잘 가르쳐 주셨어요. 할 수 있어요.”
승우의 몸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순수한 신성력.
희고도 고운, 딱 승우를 닮은 신성력이었다.
승우는 신성력을 두 손에 모으면서 천천히 정승헌 씨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붕대에 감겨 있는 환부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린 후, 살며시 눈을 감았다.
“시작할게요.”
잠시 후.
“오.”
내 입에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