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27)
127화
3.
라파르트 대주교는 칭찬에 굉장히 인색한 사람이다.
특히, 누군가를 교육하고 있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 그의 입에서 칭찬이 나왔다는 것은 딱 한 가지를 의미한다.
승우가 지닌 가능성이 어마어마하다는 것.
게다가 승우가 지닌 가능성은 레오와 루나가 보여 줬던 가능성과도 종류부터가 달랐다.
리멘이 그 둘에게 부여했던 은총이 파마에 특화되어 있는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면,
우우우우웅-.
승우가 지금 내 앞에서 보여 주고 있는 모습은 그 둘과는 거리가 먼, 어쩌면 리멘과 가장 맞닿아 있는 모습이었다.
“성하.”
“쉿. 그냥 보고 있자.”
승우의 손에서 퍼져 나간 신성력이 정승헌 씨의 환부를 부드럽게 감싼다.
환부 부근에서 정승헌 씨를 괴롭히던 마력들이 빠른 속도로 흩어졌고, 곧이어 승우의 신성력이 그의 몸을 타고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그것은 아직까지 우리 교단의 다른 신입 교육생들이 도달하지 못한 단계였다.
신성력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통제권을 이용해서 몸 전체의 회복력을 높이는 것.
말은 쉽지만, 그 단계에 다다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에덴의 기준으로는 저 단계에 올라야지만 수행 사제로서 대륙 곳곳으로 치유 선교를 시작할 수 있다.
막 교단에 들어온 이들이 저 수준으로 성장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보통 5년 정도라고 했으니, 승우가 보여 주고 있는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기특하네.”
나는 치유에 열중하고 있는 승우를 바라보면서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리멘은 모두를 자비롭게 보살피는 여신.
에덴에서 모두를 보살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마족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 필요했을 테고, 그런 과정에서 등장했던 대표적인 선지자가 레오와 루나였다.
그에 반해 승우가 지금 보여 주고 있는 능력은 누군가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에 특화되어 있었다.
어쩌면 그런 승우의 능력이야말로 리멘이 보기에 지구에 가장 필요했던 능력이 아니었을까?
그녀가 보기에는 이 지구라는 세계 역시 많은 곳이 병들어 있다,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인과율은 조용하고.’
이런 감동적인 순간에 항상 등장하던 인과율이 흔적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으니, 나로서는 그저 즐겁게 승우를 지켜볼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끝났어요.”
승우가 힘겹게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잠시 후,
“……여보?”
침상에 누워 있던 정승헌 씨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서준이 아빠.”
“여기는 도대체…….”
정승헌 씨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상황을 파악하려던 찰나, 서준이 어머님은 아무 말 없이 그의 몸을 껴안았다.
승우는 서로를 껴안고 있는 부부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억하고 있는 걸까.
나는 승우의 어깨에 조심스레 손을 올리면서 말했다.
“우리들은 잠시 자리를 비켜 줘야겠다.”
“……네.”
“고생했어, 승우야.”
그 누구보다도 배우자의 마음고생이 가장 심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승우와 루나를 데리고 잠시 병실 앞으로 나왔다.
“승우 땀 좀 봐. 성하, 음료수라도 뽑아 올게요.”
“진짜 오랜만에 기특한 소리 한다? 올 때 내 것도 뽑아 오고.”
“네에.”
루나는 곧바로 음료수 자판기로 향했고, 나는 승우를 데리고 병실 앞 의자에 앉았다.
루나의 말대로 승우의 옷이 땀에 젖어 있었다.
어린아이의 몸으로 정밀하게 신성력을 운용한다는 것은 엄청난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
게다가 이번에 처음 실전을 경험한 셈이니까 힘들어하는 것도 당연했다.
“교황님.”
“응?”
“저, 실수한 건 없었겠죠?”
“완벽했어. 서준이네 아버님이 일어나신 거 봤잖아? 우리 오기 전까지 계속 의식이 안 돌아오셨다더라. 저기 봐 봐.”
나는 웃으면서 병실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는 의사들을 가리켰다.
“의사 선생님들도 오시잖아? 네가 혼자서 해낸 거야. 나는 우리 승우가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승우는 단순히 상처를 치료하는 것을 떠나서 온몸의 기력까지 회복시켰다.
나를 비롯한 교단의 간부들에게는 어려운 일은 아니었겠지만, 승우 덕분에 회복한 정승헌 씨와 그의 가족들에게는 기적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그런 게 기적이 아니라면 뭐겠어?
“다행이다.”
승우는 긴장이 풀린 듯이 크게 숨을 뱉어 냈다. 그리고 그제야 활짝 얼굴을 폈다.
나는 승우의 머리를 다시 한번 쓰다듬어 주었다.
자신의 능력을 남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이 녀석이 어찌나 기특한지,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흘러나왔다.
“승우야.”
“네.”
“앞으로 이렇게 누군가를 돕는 일은 허락 안 맡아도 돼. 대신 우리에게 어떤 일인지만 말해 주렴. 그래야 어른들이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거든.”
리멘이 승우에게 이런 치유 능력은 준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리멘을 모시는 사람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언제나 그렇듯, 그녀의 뜻을 헤아리고 조용히 따르는 것이다.
“저는 아픈 사람들이 전부 나았으면 좋겠어요.”
“그래?”
“아픈 사람도 아픈 사람인데……. 그 사람을 보고 있는 사람도 아파요. 우리 아빠가 그랬거든요. 그래서 아픈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교황님이 갑자기 나타나서 저랑 아빠를 도와주셨던 것처럼요.”
작은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단단한 말.
승우는 웃으면서 자신의 꿈을 나에게 말해 주고 있었다.
또래의 아이들이라면 보다 풋풋하고 어린애스러운 꿈을 말할 법도 하지만, 승우의 입에서는 진심이 담긴 말이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내가 근래에 외부의 일로 바빴던 게 미안해질 정도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꿈을 말하는 승우를 향해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게 승우 꿈이야?”
“아니요!”
“음?”
“저희 아빠도 제가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아빠 생각에 기운을 차린 건지, 승우가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너를 보살펴 주고 있으니까, 너도 나중에 많은 사람들을 보살펴 줬으면 좋겠다고, 아빠가 그랬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아이를 누가 미워할 수 있을까?
나는 승우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흐뭇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어째서 리멘이 승우를 선택했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4.
정승헌 씨가 일어난 후 병실은 꽤 부산스러워졌다.
승우 덕분에 완전하게 회복한 것은 맞지만, 의사들로서는 이런저런 수치들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도 병실에 오래 머무를 생각은 없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감격스러운 순간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 은혜를 저희 가족이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정 갚으시고 싶다면 우리 승우한테 맛있는 거라도 사 주세요. 그거면 됩니다. 그렇지, 승우야?”
“맛있는 거 안 사 주셔도 돼요! 저는 아저씨가 나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요.”
승우의 표정은 처음 병실에 도착했을 때에 비해서 무척이나 밝아져 있었다.
자신의 능력으로 깨어난 사람을 처음 마주해서 그런가, 눈이 계속해서 반짝거렸다.
보통 저런 걸 보고 보람을 느낀다고들 표현한다.
나는 승우와 정승헌 씨를 번갈아 가며 쳐다본 다음, 슬쩍 웃으면서 말했다.
“저희들은 이만 먼저 물러나겠습니다. 가족분들끼리 좋은 시간 보내셔야죠.”
“하지만 이렇게 보내 드리면 제가…….”
“서준이도 곧 온다면서요? 오늘은 서준이 아버님을 걱정해 주신 분들에게 양보해 드리겠습니다. 나중에 저희 교단의 신전에서 차라도 한잔하는 걸로 합시다. 어떠세요, 서준이 어머님?”
“이 은혜 평생 동안 잊지 않겠습니다. 고마워, 승우야. 정말 고마워.”
서준이 어머님은 승우를 살포시 껴안았고, 승우 역시 웃으면서 그녀를 껴안아 주었다.
“나중에 서준이랑 같이 집에 놀러 가도 될까요?”
“당연하지. 아줌마가 맛있는 거 잔뜩 해 둘게. 언제든지 놀러 와.”
흠잡을 곳 없는 해피엔딩.
지금이야말로 딱 기분 좋게 퇴장할 수 있을 때였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루나야, 승우야. 돌아가자.”
“네, 성하.”
“네!”
승우가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병실에서 나왔고, 루나가 승우의 손을 꼭 잡으면서 말했다.
“바로 신전으로 돌아가실 거죠?”
“일단은. 왜, 어디 들를 데라도 있어?”
“일도 끝났으니까 온 김에 기념사진이라도 찍고 가려고 그랬죠. 성하의 전신상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잖아요?”
그래, 여태 조용하다 했다.
나는 루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기념사진을 찍고 싶으면 너 혼자 많이 찍고, 차 키나 내놔. 승우 데리고 먼저 신전으로 복귀하게.”
“에헤이. 승우야, 승우도 아까 그 교황님 전신상이랑 사진 찍고 싶지?”
“앗, 그래도 돼요?”
“물론이지. 누나랑 같이 사진 찍으러 가자.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시간 내서 찍으러 오겠어?”
승우의 손을 대뜸 잡았던 이유가 바로 그거였냐?
비겁한 녀석. 승우를 통해서 일을 벌일 줄이야…….
내가 너무 방심했다.
나는 루나의 옆에서 눈을 반짝거리는 승우 때문에라도 애써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 찍으러 가자.”
“남는 건 사진이라잖아요, 성하. 얼굴 펴세요. 자신의 전신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어요? 이게 다 리멘님의 축복…….”
“루나야, 좀 닥쳐.”
“넵.”
루나가 승우의 반만이라도 따라가 줬으면 좋겠다.
제발.
5.
내 전신상에서 기념사진까지 잔뜩 찍고 신전으로 돌아가는 길.
운전자는 루나였지만 차에 승우가 타고 있는 바람에 루나는 평소보다는 훨씬 얌전하게 운전할 수밖에 없었다.
“승우가 많이 피곤했나 봐요. 차에 타자마자 자네요.”
루나는 백미러를 통해 승우를 흘긋 바라보면서 말했다.
루나의 말대로 승우는 차에 타자마자 잠에 들었다. 신성력을 이렇게까지 정교하게 사용한 건 처음이라서, 당연히 피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린아이의 몸으로는 꽤 무리가 가는 일이었을 테니까.
나는 차의 시트에 등을 기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피곤할 거야. 라파르트 대주교한테 오늘 교육은 빼 달라고 해 주자.”
“그분이 유도리가 없는 분은 아니니까, 들어주실 거예요. 게다가 승우가 교육으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소중한 걸 얻었잖아요.”
“우리는 밖에서 쌈박질이나 하고 다녔는데, 막내가 우리보다 낫다. 안 그러냐?”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외부의 일을 처리하고 있다 보니 리멘 교단 본연의 가치에 잠시 소홀해질 뻔했다.
빛이 닿지 않는 그늘까지 리멘의 자비를 퍼뜨리는 것이 우리 교단의 가장 큰 존재 가치인 것을, 승우 덕분에 다시 한번 깨달았다.
“지금처럼 잠시 여유가 있을 때 확실하게 정하고 가는 게 좋겠네. 루나야. 1기 교육생들, 치유 능력이 정확히 어디까지 올라왔어?”
“응급조치를 비롯한 간단한 조치는 가능해요.”
“치료 봉사는 가능할 것 같아?”
“아까 그 정승헌 씨 수준의 부상을 기준으로 한다면, 완치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호전시킬 순 있을걸요?”
“그렇단 말이지.”
나는 창문을 툭툭 두드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긴 하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현대 의학의 도움을 받으면 될 것이다.
“우리도 이제 본격적으로 사회에 기여를 해 보자.”
“치유봉사 괜찮죠. 에덴에서도 수행 사제들이 맡던 임무니까. 그런데 저희 애들로만 커버가 될까요? 에덴과는 인구수부터가…….”
“좋은 건 같이 해야지.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
우리 막둥이가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데, 나도 내 나름대로 노력을 해 봐야지 않겠어?
나는 스마트폰을 꺼낸 다음, 까톡을 켜서 어느 단톡방 창을 열었다. 그리고 곧바로 톡 하나를 입력했다.
나: 다들 좀 봅시다. 우리 교단 신전에서 차 한 잔씩들 어때요?>
까톡- 까톡-.
내가 톡을 남기자마자 빠르게 올라오는 반응.
나는 그 반응을 살피면서 씨익 미소를 지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나은 법이거든.”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