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28)
128화
6.
승우가 성자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었던 그날 오후.
내 집무실에는 나를 포함해서 총 네 명이 모이게 되었는데, 그 네 명은 제각기 다른 복장으로 각자마다 강렬한 개성을 뿜어내고 있는 중이었다.
에이든이 이 모습을 봤더라면.
“종교의 용광로……라고 불렀겠지?”
분명히 저런 말을 했을 것이다.
“하하! 이런 자리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절에만 있으면 얼마나 답답한지 몰라요.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법운 스님.”
“종교인들끼리 친분을 나누는 자리라니! 이 얼마나 영예롭고 대단한 자리입니까!”
지난번 마병 대책 회의 때 만난 이후로 틈틈이 연락을 이어 오고 있는 법운 스님.
그의 옆에는 대전에서 만났던 서성신 목사가 웃으면서 앉아 있었으며, 그의 앞에는 황교성 신부가 인자한 웃음과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리멘 교단의 교황, 불교의 대표 주자, 개신교의 성자, 가톨릭의 희망.
각양각색의 이 네 명이 한자리에 모이게 된 것은, 어느 날 법운 스님으로부터 시작된 단톡방에 기원을 두고 있다.
종교를 사랑하는 모임. 일명 종사모.
최근 각 종교계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사람들을 초청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법운 스님이 준비한 비장의 모임 되시겠다.
참고로 단톡방의 까톡의 80프로는 법운 스님이 차지한다.
나는 가끔 눈팅이나 하는 정도.
그래도 다른 종교의 종교인들과 교류를 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에 귀찮더라도 단톡방에서 나가지는 않았다.
멤버들의 구성이 괜찮고 말이지.
“법운 스님은 항상 기운이 넘치셔서 보기 좋습니다.”
“우리 황 신부님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이곳에 모인 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나와 일면식이 없는 사이인 저 황교성 신부, 저 사람은 법운 스님의 강력한 추천을 통해서 합류한 사람이다.
물론 일면식만 없었을 뿐, 간간이 뉴스에서도 보도될 정도의 선행을 줄곧 해 온 사람이라고 한다.
그가 신성력을 각성한 이후로 약자들을 위해서 쉴 새 없이 노력해 왔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다.
확실히 좋은 사람이다.
우리 교단의 신성력과는 다르지만, 그의 몸에서도 정순하면서도 깨끗한 신성력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만큼 독실한 신앙심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집무실에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한 번씩 살핀 다음,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공사다망하신 여러분들을 이렇게 모시게 된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저희 리멘 교단은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치유봉사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각성자들을 통해서 말입니까?”
“예,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오늘 깨달은 게 좀 있거든요. 가만히 있자니 부끄럽더라구요.”
어린 성자가 사람들을 위하는 마음.
그 작고 귀여운 녀석이 그리 기특한 마음을 먹었는데, 어른인 우리가 가만히 있어서야 되겠는가.
하지만 루나의 말대로 우리 교단의 플레이어들만으로는 전체를 커버하기 힘든 상황.
이럴 때는 아예 스케일을 크게 키우는 것이 정답이다.
“병원 등을 비롯하여, 신성력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주기적으로 인력을 파견하고자 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도움을 받지 못해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내 말을 들은 나머지 세 명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저희 교단의 인력만으로는 부담이 있기에,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각 종교계에서 충분한 영향력을 펼칠 수 있는 이들이었다.
불교의 대표 플레이어라고 불리우는 법운 스님은 물론이거니와, 최근 들어 개신교에서 가장 발언권이 강한 서성신 목사.
거기에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 황교성 신부까지.
이들만 설득한다면 굳이 내가 각 종교계에 호소하지 않아도 된다.
“저는 여러분들이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종교의 가치를 한 단계 높여 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밖에도…….”
신성 계열 플레이어들에게 치유봉사가 얼마나 좋은지 설명하려던 찰나, 법운 스님이 슬며시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김 교황님께서 저희를 설득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예?”
“저도 그렇고, 다른 분들도 이미 결정을 내리신 듯하여.”
법운 스님은 그렇게 말하면서 나머지 둘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법운 스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교황님.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함께 돕자는 제의를, 종교인으로서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이건 서 목사의 반응.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들을 구제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해 왔습니다. 종교란 틀을 떠나서, 같은 인간으로서도 거절할 수 없는 제의로군요.”
이건 황 신부의 반응이다.
그들은 더 이상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저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
“항상 누가 더 잘났네 싸우는 것보다는, 손을 잡고 누군가를 돕는 게 훨씬 예쁜 그림이잖습니까. 하하! 부처님도, 하나님도 싸우는 건 원하지 않으실 겁니다.”
법운 스님의 넉살에 나를 포함한 나머지 인원들은 동시에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훨씬 잘 풀렸다.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말을 준비해 왔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던 모양이다.
나는 가볍게 헛기침일 내뱉은 후, 그들을 향해서 말했다.
“그리고 리멘 교단이 보유하고 있는 지식 중, 치유에 필요한 지식은 여러분들과 공유해 볼까 합니다. 신성력을 이용한 치유는 저희가 전문가거든요.”
우리 교단에는 오랜 세월 동안 이어진 전쟁으로 인한 실전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
당연히 응급조치를 비롯하여, 어떻게 하면 효율적인 치유가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연구가 되어 있는 상황.
이 정도의 지식을 공유하는 것 정도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루나가 우리들의 신입 교육생들에게 교육한 ‘선제적 치유법’이면 몰라도, 신성력 운용을 위한 팁을 전수하는 것쯤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기성 종교 쪽에도 미리 빚을 지워 두면 좋을 것이다.
서 대통령의 국제정치이론을 어느 정도 반영했다랄까?
“저희 기성 종교들이 리멘 교단에 해 준 것도 없는데, 이렇게 아낌없이 나눠 주시면 도대체 뭐가 남습니까?”
조용히 나를 지켜보고 있던 황 신부의 질문.
나는 그의 질문에 부드럽게 웃으면서 답했다.
“좋은 가치를 향해 함께 걸을 수 있는 친구들이 남겠죠.”
7.
갑작스럽게 성사된 번개 모임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 자리에 모였던 이들은 모두 내 의견에 동의하여, 우리 교단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말이 검토지, 그들로서는 거절할 수가 없는 제안이었다.
지구의 기성 종교들에게 부족한 것은 신성력에 대한 지식이었으니까.
그런 와중에 우리 교단에서 좋은 일도 함께하고, 일부 지식도 공유해 주겠다고 하니, 그들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모임은 끝이 났고, 나는 집무실의 의자에 앉아서 황교성 신부가 남기고 간 말을 떠올렸다.
-조만간 교황청의 사절단이 한국에 방문할 예정입니다. 아무래도 리멘 교단의 자문을 구할 일이 생긴 모양입니다. 알고 계셨으면 해서 말씀드려 봅니다.
“바티칸이라.”
예상외의 손님이 찾아오려나 보다.
자세한 일정은 말해 주지 않았지만, 늦어도 3달 내에 방문 예정이라던가.
평범한 이유는 아닐 거라 생각한다.
가톨릭의 수뇌부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이 사사로운 이유로 움직일 리는 없다.
언젠가는 한번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기는 했는데, 저쪽에서 직접 찾아오겠다니까 꽤 흥미가 동했다.
“그래도 뭔가 아쉽네요.”
어느새 집무실에 들어온 루나가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면서 말했다.
“뭐가?”
“우리 교단이 어떻게 쌓은 경험인데, 너무 쉽게 넘겨주는 것 같아서요.”
루나가 어느 지점에서 아쉬워하는지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사람을 효율적으로 치유하는 방법.
그것은 우리 리멘 교단이 에덴에서 피를 흘려 가며 체득한 지식이었으니까.
끔찍한 전장의 최전선에서 싸워 오며 모든 것을 목격한 루나로서는 당연히 불만을 표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루나는 단순히 툴툴거리기만 할 뿐, 내 뜻에 반대하는 건 아니었다. 루나는 적어도 무엇이 더 중요한지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도 이유는 대강 짐작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쉬워서 하는 소리예요, 아쉬워서.”
“루나야.”
“네, 성하.”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손해는 아닐 테니까 걱정하지는 마라.”
나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면서 말했다.
“네 말대로 현재로서는 우리 교단의 힘만으로는 모든 걸 감당하기 힘들잖아. 우리가 지식을 나누면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데, 단지 우리 교단의 입지 때문에 두고 보겠다는 건…… 리멘을 뜻을 따른다는 우리가 해서는 안 될 일이잖냐.”
이익을 추구하는 건 부정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명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는 일이다. 이익도 함께 추구하는 건 괜찮지만, 오로지 이익만을 추구하는 건 교단이 지향해서는 안 될 일이다.
“예전처럼 우리가 자리를 못 잡은 상황도 아니고, 이만하면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잖아? 어차피 다른 종교의 플레이어들도 시간 지나면 수준 올라올 텐데, 우리가 그 기간을 조금 앞당겨 준다고 생각하자.”
때로는 베푸는 게 이득일 때가 있다.
나는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지식을 나눠 준다고 해서 우리 교단의 특색이 사라지는 건 아니야. 백명교를 제외하고, 전투원을 직접 육성하는 건 우리밖에 없어.”
“그러니까 성하 말씀은 이거잖아요? 어차피 도달할 단계, 우리가 조금 도와주고 생색내자.”
“비슷하지. 생색이라기보다는 어? 상부상조하자는 거야.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가만 보면 우리 성하, 정치에 재능 있다니까? 우리도 리멘당, 그런 거 하나 만드는 거 어때요. 도와줄 사람들도 꽤 있을 테고. 성하라면 진짜 잘해 낼 것 같…….”
“틈만 나면 꼭 쓸데 없는 말을 해요. 아무튼 너도 천천히 준비는 해 둬라.”
내 말에 루나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준비요? 무슨 준비?”
“우리 교인들도 아닌데, 내가 직접 가르칠 수는 없잖아? 당연히 교육 담당들이 고생해 줘야지. 라파르트 대주교에게는 따로 말해 뒀으니까, 이야기 잘 나눠 봐.”
불교, 개신교, 가톨릭에서 각각 다섯 명씩 뽑아서 우리 교단의 훈련소에 파견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우리 교단의 훈련생들과 함께하는 방식으로 훈련이 진행될 예정이다.
물론 전투 훈련은 제외.
신성력에 대한 이론 수업과 실습 위주로 진행하기로 했다.
“항상 귀찮은 건 우리들한테 넘기신다니까? 그러다가 저랑 레오가 파업하면 어쩌시려구요.”
“해 봐.”
“네?”
“파업, 해 볼 테면 해 보라고. 진짜 재밌겠네.”
루나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철주야 노력하는 루나 레벤톤 되겠습니다!”
“그래, 가 봐.”
“넵!”
꼭 이렇게 은근히 압박을 줘야 정신을 차린다니까?
나는 집무실 밖으로 나서는 루나의 뒷모습을 한 번 쳐다본 다음, 피식 웃으면서 다시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승우가 호의로 시작했던 일이 제법 스케일이 커졌다. 그래도 오늘 내가 내린 결정은 리멘 역시 기뻐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분명히 리멘이 봤다면 칭찬을 해 줬을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리멘으로부터 칭찬받으면 기분은 참 좋았었다.
나를 에덴으로 납치해 간 장본인인데 말이야, 설마 이런 게 스톡홀름 신드롬, 뭐 그런 건가?
하여간에 다시 또 연락이 뜸하니까 괜히 섭섭하다.
지난번에 얘기해 줬던 일이 잘 안 풀리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계의 신격과 관련되어 있는 그 일 말이다.
“후우.”
그렇게 나는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로 잠시 눈을 감았다. 급한 일은 처리해 두었으니, 잠시 쉬는 것도…….
콰르르륵.
“좀 쉬자, 제발.”
나에게 휴식 따위란 사치인 모양인지, 눈을 감자마자 곧바로 옆에서 이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기괴한 소리의 원인은 다름이 아니라 꿈틀거리는 조각>이 담겨 있는 병.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그 병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 창 하나가 떠올랐다.
[꿈틀거리는 조각>]*성장률: 100%
아침까지만 해도 97프로였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100프로가 되어 버렸다.
성장을 끝낸 조각은 예상대로 나침반의 모양을 취하고 있었는데, 그것의 자침은 북동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눈앞에 몇 개의 메시지 창이 추가로 떠올랐다.
[꿈틀거리는 조각>의 성장이 완료되었습니다.] [시나리오 퀘스트 고대의 편린>이 시작됩니다.]오랜만에 나타난 퀘스트 메시지.
그 메시지를 따라 퀘스트 창을 확인한 나는 그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내 신세가 그렇지 뭐.”
어쩐지 요새 잠잠하다 했다.
에휴.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