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35)
135화
42. 늦게 와서 미안합니다
1.
완벽했다.
내가 착지하면서 만들어 낸 간이 착륙장이 말이다.
“훌륭해.”
디테일을 굉장히 신경 썼다.
헬기들이 착륙해야 하는 장소니까 나름 수평도 신경을 썼고, 넓이도 신경을 썼다.
어쩌면 나는 건축 쪽으로도 재능이 있던 게 아닐까?
“네 기의 헬기 모두 문제없다. 최상급 신성석의 효과가 정말 대단해.”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착륙 지점을 둘러보고 있을 때쯤, 헬기에서 내린 에이든이 다가오면서 말했다.
“성능 확실하지. 방어적인 성능만큼은 마력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야.”
“그런 것 같아. 신성력이라는 것, 치유에만 유용한 줄 알았다. 본국에서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만 들었거든.”
“결국, 신성력의 핵심은 생명을 지켜 내는 것이니까. 신성력이란 것이 원래 치유에 특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우리 교단의 신성력은 신성력 중에서도 아주 유별난 편이라서.”
우리 교단의 핵심은 선제적인 방어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들을 선제적으로 제거하는 것.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딱 우리 교단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신성석은 전투 방식의 혁신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비행형 몬스터들의 습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현대의 이동 수단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거다.”
“마음에 들었나 봐?”
“헬기나 수송기를 이용하는 쪽이 뛰어가는 쪽보단 훨씬 효율적이지 않나?”
“그건 맞지.”
에이든은 신성석의 성능에 크게 감탄한 듯 보였다.
아까 항공 대대에서 이륙하기 전, 나와 리멘 교단의 간부들은 네 기의 헬기에 전부 강력한 축성을 해 두었다. 거기에 신전에서 미리 챙겨 온 최상급 신성석으로 헬기 각각에 신성 결계까지 쳐 두었다.
현재 우리가 타고 온 치누크 헬기는 그야말로 움직이는 요새라고 부르기에 충분했다.
지대공미사일 같은 대공 무기로도 쉽게 격추할 수 없는 수준의 방어력을 보유한 상태다.
우리만 타는 거면 몰라도, 이곳의 생존자들을 수습하여 데려와야 하기 때문에 아낌없이 최상급 신성석을 사용했다.
쓸데없는 내 전신상에도 최상급 신성석을 박아 넣는 마당에, 목숨이 걸린 일에 아낄 필요가 있겠어?
“착륙은 성공적이었으니, 곧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겠어. 시우. 다음 계획은 어떻게 되나?”
“이곳을 베이스캠프 삼아서 사방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릴 거야. 다크 엘프는 보이는 족족 잡아 죽여, 에이든. 그놈들은 애초에 협상이 불가능한 족속들이거든.”
“……한 교단의 교황이 세운 작전이라기에는 너무 과격해. 정말 그게 맞나?”
“인간을 심심풀이로 죽이고, 인간의 신체로 실험까지 하는 놈들에게 인권을 묻고 싶은 건 아니겠지?”
애초에 갱생의 여지조차 없는 놈들이다.
엘프들이 마기에 타락해서 탄생하게 된 종족, 다크 엘프. 마기에 근원들 둔 녀석들은 마족이나 다름없는 종족이었다.
욕망을 비롯한 온갖 부정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마기는 본성을 오염시킨다.
나는 이미 에덴에서 녀석들을 수도 없이 경험해 봤다. 다크 엘프들의 마기를 정화해 보려고 했던 적도 있었는데, 정말 부질없더라.
“어차피 마기를 정화시키면 죽는 놈들이라서.”
녀석들에게 있어서 마기는 생명줄이나 다름 없었다.
마기를 잃은 다크 엘프는 죽는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정화를 할 필요가 없다. 그냥 제거하는 게 최선의 방법일 뿐이었다.
“녀석들을 죽이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던 건 아니다. 단지 생존자들을 어떻게 수색할 생각인지가 궁금했을 뿐이다.”
에이든은 오른손에 들고 있던 도끼로 자신의 등을 긁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일이 수색하기에는 상당히 넓은데 말이지. 그리고, 이곳을 지킬 인원들도 따로 편성해야지 않겠어?”
“그러려고 마법사들 데려왔잖아. 강채아 씨? 설화야?”
나는 저 멀리에서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강채아와 설화를 불렀다. 그러자 그녀들은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왔다.
강채아는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마법사라고 평가받는 인재였고, 설화 같은 경우는 내 계획에 굉장히 적합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특히 설화의 능력.
“불렀어, 오빠?”
“아까 이륙하기 전에 말해 줬지? 미국 쪽에서 최상급 마정석 챙겨 왔으니까, 그거 이용해서 단단하게 얼음 성채 하나 만들어 봐.”
지난번에 던전에서 내가 감탄한 전력이 있는, 설화의 특별한 진지 구축 능력은 이번 작전에서 아주 큰 도움이 되어 줄 것이다.
“최상급 신성석을 제공해 주는 대가로 받아온 마정석이니까, 알아서 사용해. 아, 그리고.”
나는 설화의 귓가에 입을 가져간 다음,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적당히 쓰고, 남는 건 너 해라.”
“……이거 엄청 비싼 건데? 돈 주고도 못…….”
“괜찮아. 마법사들한테 마정석은 성장의 기폭제가 되어 준다면서? 너도 성장해야지. 그래야…….”
“……그래야?”
뭔가 기대감이 담겨 있는 듯한 설화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나는 한층 더 은근하게 속삭였다.
“내가 널 더 알차게 부려 먹지 않겠니? 후후. 무럭무럭 성장해라, 설화야.”
재능 하나만큼은 확실한 설화다.
설화가 계속해서 성장해 줘야 나중에 도움받을 만한 일이 생기지 않겠어?
마법만이 해결할 수 있는 영역도 분명 존재하니까 말이야.
하지만 내 말이 어딘가 불만스러웠는지, 설화는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지.”
“왜?”
“아냐, 됐어. 그런데 오빠. 내 마법만으로 가능할까?”
“문제없어. 어차피 네 마법은 이차 방어선인 거고, 일차 방어선은 저 헬기들이야. 정확히는 저 헬기에 박혀 있는 네 개의 최상급 신성석으로 설치한 대형 신성 결계지.”
이곳까지 우리를 안전하게 수송해 준 헬기들이, 이번에는 결계의 구심점이 되어 주는 셈이다.
내가 착륙하면서 생겨난 넓은 분지.
이 위를 신성 결계를 덮음으로써 일종의 벙커를 형성시켰다.
여기에 최상급 마정석을 이용한 설화의 마법이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방어선이 구축되는 것이다.
“급조된 계획치고는 꽤 완벽하지 않냐, 에이든.”
“음, 방어 계획은 그렇다고 치고. 생존자 수색은 어떻게 할 계획인 거냐. 지금 당장 생존자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잖아.”
“그것도 다 계획이 있지. 저기, 애들 오네.”
나는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고, 에이든은 내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에이든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저게 계획인가?”
“아주 훌륭한 계획이지?”
저 멀리서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루나와 레오.
그들의 양쪽 손에는 검은색 피부의 이종족들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정보가 없으면, 직접 정보를 뽑아내면 되는 거야.”
“이제는 놀랍지도 않아, 시우. 너는 내가 알고 있는 놈들 중 최고다.”
“칭찬 고맙다.”
“최고로 미쳐 있다는 소리야. 정말 대단해. 대부족을 이끌었던 나조차도 감복시킬 정도로군. 그래, 복잡할 게 생각할 것 없지. 적을 잡아서 정보를 뜯어내면 되니까! 크흐흐, 중요한 걸 일깨워 줘서 고맙다.”
칭찬인 듯하지만 칭찬이 아닌, 그런 기분 나쁜 칭찬.
우리 할머니랑 같이 있어서 그런가, 반어법도 일취월장하고 있다.
나는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에이든을 째려본 다음, 어느새 우리 앞에 도착한 레오와 루나를 바라보았다.
둘은 내 앞에다가 정신을 잃은 다크 엘프들을 내려놓았다.
“다녀왔습니다, 성하.”
“예상했던 대로 정찰병들이 바로 있더라구요. 어렵지 않게 잡아 왔어요.”
“어, 그래. 고생 많았다. 얘네 말고는 더 없었어?”
내 질문에 루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주위 슬쩍 둘러봤는데 얘네가 전부예요. 가서 더 잡아 와 볼까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겠어.”
나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다크 엘프들에게 다가갔다.
덜덜덜.
잡혀 오는 과정에서 지옥이라도 경험한 걸까, 포악하기로 유명한 다크 엘프들이 일제히 몸을 떨고 있었다.
이해하기 힘든 반응은 아니었다.
아무리 마기에 물든 다크 엘프라고 한들, 목숨이 붙어 있는 이상 생존 본능이란 게 있다.
하다못해 이 녀석들보다 훨씬 멍청한 오크들의 경우만 봐도 그랬다.
오크들조차 지난번 몬스터 웨이브 때 대군주를 잃고 나서 북쪽으로 꽁지가 빠지게 달아났는데, 녀석들보다 훨씬 영악한 다크 엘프들은 어떻겠어.
“적어도 너희들은 그 돼지 대가리들보다는 말이 잘 통할 거잖아. 내가 기대해도 괜찮지 얘들아?”
나는 다크 엘프들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언어의 축복>으로 인하여 내 뜻은 정확하게 녀석들에게 전달된다.
악마들하고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인데, 다크 엘프들에게 적용이 안 될 리가 있나.
“내가 묻는 거에만 순순히 답해 주면 험한 꼴은 안 보게 해 줄게. 믿어도 좋아.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다들 알아들었지?”
성화에 의해 산 채로 불타 죽어 가는 것보다야, 한 방에 깔끔하게 죽는 쪽이 훨씬 행복한 최후 아니겠어?
나는 은근한 목소리로 녀석들에게서 정보를 캐내기 시작했다.
“자, 진실의 방으로.”
내 오른손에 착용되어 있던 건틀렛에서 새하얀 성화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2.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으음?’
거목의 뿌리 부근에 만들어진, 축축하면서도 불쾌한 작은 토굴.
이은택은 갑작스럽게 울려 퍼진 굉음에 힘겹게 눈을 떴다.
그의 입에는 재갈과 비스무리한 도구가 물려있었기에 소리조차 제대로 낼 수 없었다.
“으으으으.”
잔뜩 부르튼 그의 입술 사이로 나지막하게 비명이 새어 나왔다.
전날 다크 엘프들에 의해 주입받은 독이 완벽하게 해독되지 않아, 신체 곳곳을 갉아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지 못해 사는 삶.
아니, 차라리 누군가 와서 죽여 주기를 바라는 삶.
그것이 이은택 그를 비롯해서 다크 엘프들에게 포획된 인간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삶이었다.
이은택은 힘들게 몸을 일으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 토굴에 잡혀 있는 생존자의 숫자는 총 열둘.
원래는 열다섯이었지만 지난달에 셋이나 줄었다. 잡혀 있던 생존자들 일부가 감시망이 소홀해진 틈을 타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생존자들에 대한 감시가 더 심해졌지만, 이은택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들을 탓할 수 없었다.
‘……죽는 게 맞지비. 살아 있어 봐야…….’
한때 북조선 인민공화국이라고 불렸던 그의 조국은 이미 붕괴한 지 오래였다.
더 이상 이 땅 위에는 인간이 세운 국가란 없었다.
이계에서 넘어온 괴물들과 그들이 세운 질서만이 자리 잡고 있을 뿐.
이은택은 문득 3년 전의 일을 떠올렸다.
이 부근에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뭉쳐 있던 작은 공동체.
외부와 연락을 취할 수는 없었지만, 새로운 능력을 각성한 인원들 덕분에 그래도 초기 2년간은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갑작스럽게 이 부근에 등장한 다크 엘프들에 의해 공동체가 허무하리만큼 쉽게 무너져 내렸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대학살극이 펼쳐졌다.
그리고 이은택은 그 학살극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생존자 중 하나였다.
‘……죽는 것이 옳았다.’
죽었다면, 정말로 그때 죽었다면.
지금처럼 온몸의 힘줄, 성대가 끊긴 상태로, 실험실 속의 쥐가 되는 신세만큼은 면했을 텐데.
[패시브 스킬 불굴의 정신 Lv. 17>이 당신의 정신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막습니다.]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백치라도 되었으면 차라리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골백번이고는 했다.
이은택은 자신의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창을 바라보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끔찍한 지옥 속에서 이미 대부분의 생존자들은 정신이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자신은 항상 맨정신으로 고통을 감내해야 했으며, 동료들이 망가져 가는 꼴을 보아야만 했다.
세상에 이런 지옥이 어디에 있을까.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야만 이런 지옥에 굴러떨어지는 걸까.
콰아아아아아앙!
이은택은 다시 한번 들려오는 굉음에 몸을 떨었다. 이번에는 굉음뿐만이 아니었다.
토굴 전체가 뒤흔들리는,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한 흔들림까지.
그렇게 몇 분이나 기현상이 계속되었을까?
“OOO-!”
그가 있던 토굴 앞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하더니 곧 다크 엘프들이 토굴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의 복장은 평소와는 달랐다.
평소에 그들이 즐겨 입던 가죽옷이 아니라, 금속제로 된 갑옷을 착용하고 있던 것이다.
토굴 내로 들어선 다크 엘프들은 무기를 꺼내 든 채로 재빠르게 토굴 내의 생존자들에게 다가섰다.
당장에라도 생존자들의 목숨을 끊을 기세였다.
‘……드디어.’
이은택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다크 엘프 한 명을 바라보면서 눈을 감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드디어 자신들의 목숨을 끊어 줄 생각인 듯했다.
하지만 잠시 후.
콰지지지직-!
그의 귓가에 무언갈 써는 소리가 아닌, 섬뜩한 파골음이 들려왔다.
이은택은 다시 눈을 떴다.
그러자 그의 눈앞에 믿기지 않는 장면이 펼쳐졌다.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새하얀 불꽃으로 어두운 토굴을 밝히고 있었으며, 그의 곁에는 대가리가 뭉개진 다크 엘프들이 널려 있었다.
코끝을 쉴 새 없이 찔러 대는 비릿한 혈향이, 지금 이것이 꿈이 아니란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남자는 천천히 이은택을 향해 다가왔다.
“제가 보이십니까?”
남조선의 말투로 건네진 질문에, 이은택은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그런 이은택을 향해 잠시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늦게 와서 미안합니다.”
“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
이은택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절망 속에서의 구원이었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