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36)
136화
3.
“짐승만도 못한…… 아니지, 그렇게 말하면 짐승한테 미안하지. 적어도 짐승 놈들은 이딴 짓은 안 해.”
나는 내 앞에서 혼절한 남자를 비롯해서, 토굴 안에 있던 생존자들을 바라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의 상태는 차마 눈으로 보기 힘든 정도였다
신체가 썩어 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의 목에는 비슷하게 생긴 상처가 하나씩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상처의 정체는 굳이 자세히 확인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었다.
“하나같이 성대를 끊어 뒀네. 맞지?”
내 질문에 내 앞에서 떨고 있던 다크 엘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포로들을…… 포로들을 관리하기 쉽게…….”
“이유는 안 물어봤어. 너희 같은 새끼들이 하는 짓이 뻔하지. 그래도 너희들은 이유라도 있구나. 에덴에서는 심심풀이로 인간들을 죽이고 다녔는데 말이야. 에덴 출신 다크 엘프들이 아니라서 그런가?”
레오와 루나가 잡아 온 이 정찰병 녀석들은 기껏해야 피라미에 불과한 놈들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가지고 있는 정보가 그리 많지 않았다. 녀석들로부터 제공받은 정보 중에서 그나마 쓸 만했던 건 이 녀석들이 원래 있던 세계.
이 녀석들은 내가 알고 있는 다크 엘프들와는 다르게, ‘다인’이라는 이름의 세계에서 넘어왔다고 한다.
에덴의 인간들과 지구의 인간들은 이렇게나 다른데, 어째 다크 엘프 놈들은 어떤 세계 출신이든지 비슷한 것 같다.
“쯧.”
나는 토굴 바닥에 널부러진 다크 엘프들의 시체를 바라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스르르륵-.
생명을 잃자 녀석들의 몸에서 빠져나온 마기가 사방으로 꿈틀거렸다.
마치 새로 기생할 대상을 찾으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렇게는 안 돼.”
화르륵.
나는 성화를 통해서 마기들을 싸그리 불태워 버린 다음, 무릎을 꿇고 있는 다크 엘프를 바라보았다.
“제공해 준 정보는 쓸모 있었다. 인정해 줄게.”
그러자 다크 엘프가 나를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흑요석을 닮은 녀석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목숨만은…….”
“아, 그렇지. 목숨만은 깨끗하게 끊어 줄게.”
다크 엘프는 내 즉각적인 대답을 듣자마자 무릎 꿇은 자세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리고 곧 녀석의 입에서 잔뜩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분명 아까…… 험한 꼴은 안 보게…….”
“아, 그거? 내가 험한 꼴은 안 보게 해 준댔지, 살려 준다고 했었냐?”
“제, 제발!”
“걱정하지 마.”
콰직- 털썩.
대가리가 터져 나간 다크 엘프의 몸뚱아리가 바닥에 쓰러졌다. 나를 이곳까지 데려와 준 놈이라서 특별히 깔끔하게 목숨을 끊어 줬다.
나는 건틀렛에 묻은 피를 성화로 태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고통 없이 갔으니 이 정도면 호상이지.”
불에 타 죽는 고통은 생명체가 겪을 수 있는 고통 중에 가장 끔찍한 수준에 속한다.
특히, 마기를 보유한 놈들이 성화에 불타 죽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성화는 마기에 물든 신체만 불태우는 게 아니다.
마기로 오염된 영혼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태워 버린다.
신체와 영혼이 동시에 불타면서 오는 끔찍한 고통은 그 어떤 존재도 견딜 수 없었다.
그런 고통을 겪지 않고 한 방에 죽는다면, 그것이야말로 호상 아니겠어?
내 딴에는 성실하게 정보를 제공한 이 녀석에게 나름의 배려를 해 준 셈이다.
나는 힘없이 쓰러진 다크 엘프의 시체를 슬쩍 쳐다본 다음,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건틀렛에서 피어오른 성화가 빠른 속도로 녀석의 시체를 비롯하여 토굴 안에 있는 다른 다크 엘프들의 시체도 집어삼켰다.
성화에 의해 시체들이 잿더미가 되어 버리는 건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렇게 깔끔하게 현장을 정리한 나는 곧바로 정신을 잃은 생존자들에게로 다가갔다.
이 난리가 났음에도 대부분의 생존자들은 눈조차 뜨지 못했다. 방금 전에 나를 바라보았던 남자 한 명을 제외하고서는 말이다.
“미안합니다, 다들.”
내가 조금이라도 빨리 이곳에 도착했다면 상황은 조금 더 괜찮아지지 않았을까.
그 생각을 하니 자꾸만 입맛이 썼다.
하지만 아직 구해야 할 생존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계속 후회를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주머니에서 엄지손가락 크기의 최상급 신성석을 꺼냈다. 그리고 곧바로 신성석을 땅에 박았다.
우우우우웅-
신성석에서 뿜어져 나온 신성력이 빠르게 이 토굴 전체를 가득 메웠고, 곧 생존자들의 몸속으로도 파고들었다.
마기를 정화하고 신체의 회복력을 극대화시키는 힘.
저들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건 회복이었으니까.
[액티브 스킬 신성 결계 Lv. Max>를 시전합니다.]최상급 신성석을 중심으로 신성 결계까지 쳐 두었으니, 내가 상황을 정리하고 돌아올 때까지는 안전할 것이다.
다크 엘프 정찰병으로부터 뽑아낸 정보에는 이곳에 자리잡은 다크 엘프 부족의 중심지에 대한 정보까지 있었다.
가장 많은 생존자들이 잡혀 있는 곳.
오는 길에 보이는 다크 엘프란 다크 엘프들은 싸그리 목숨을 끊어 뒀기 때문에, 녀석들은 아마 지금도 상황을 파악하는 중이겠지.
녀석들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몰아붙여야만 했다.
그래야 불필요한 희생이 줄어들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내가 토굴에서 나가려던 찰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방금 전에 기절했던 남자가 금세 정신을 차리며 나에게 말했다.
성대를 오랜만에 사용하는 것인지 그의 목소리 끝이 갈라졌다. 그는 각성자인 모양인지, 신성력을 통한 회복이 무척이나 빨랐다. 그래도 그 목소리에 담긴 진심만큼은 나에게 정확하게 전달되었다.
아무리 신성력이 그들의 회복을 돕고 있다고 한들, 곧바로 일어나기 위해선 엄청난 정신력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저 남자의 정신력은 확실히 대단한 면이 있었다.
나는 나를 향해 눈물을 흘리는 그를 향해 슬며시 미소를 지어 주었다.
“이름이 뭡니까?”
“이은택…… 이은택입니다.”
“이은택. 이름 좋네요. 이은택 씨.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제 일이 다 끝나지 않아서요. 이은택 씨가 이곳을 지켜 줄 수 있겠습니까?”
내 질문에 이은택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던 다크 엘프의 검을 손으로 잡은 다음,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죽더라도 지키겠습니다.”
사투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인지, 그의 입모양과 내 머릿속에 들어오는 말이 살짝 다르다.
동북 방언이 굉장히 강하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언어의 축복>을 통해서 사투리까지 통역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진심만큼은 가감 없이 전해져 온다.
“이번에는…… 이번만큼은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좋습니다, 이은택 씨. 그럼 이곳은 잠시 이은택 씨에게 맡기도록 하죠.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나는 두 발로 일어선 이은택을 바라보았다.
힘이 없어 떨리는 다리,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해 피골이 상접한 체격. 하지만 고작 그런 것들로는 저 남자의 의지를 무너뜨리지 못했다.
그의 눈에서는 결연함이 엿보였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표정에서는 다시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가 전해져 왔다.
그의 사연은 상황이 끝난 후에 들어도 충분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은택 씨.”
“저, 한 가지만…… 딱 한 가지만 여쭙고 싶습니다.”
“음, 뭔가요?”
“은인의 이름. 이름을 듣고 싶습니다.”
별난 사람이네.
어려운 질문도 아니었기에, 나는 순순히 그에게 내 이름을 알려 주었다.
“김시우. 부족하지만, 리멘 교단을 이끌고 있는 사람입니다.”
“김시우…… 리멘 교단……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분 탓일까.
어쩐지 앞으로도 이 남자와 자주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금방 다시 봅시다.”
나는 내 이름을 되뇌이는 이은택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다.
4.
생존자들이 남아 있는 토굴을 신성 결계로 완벽하게 봉인시켜 둔 다음, 곧바로 앞으로 나아갔다.
더 이상 가이드는 필요 없었다.
다크 엘프들의 주 거주지에 대해서는 이미 파악이 끝났기 때문이다.
마기에 물든 나무들로 가득한 이 기괴한 삼림 속,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마기를 뿜어내는 거대한 나무 한 그루.
다크 엘프 정찰병의 증언에 따르면 그곳이 다크 엘프들의 주 거주지라고 했다.
그리고 그 말은 한 치의 거짓 없는 진실이었다.
“아주 성대한 환영식이야. 마음에 들어.”
나는 내 앞을 가로막은 나무와 가시덩굴을 바라보면서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누가 보더라도 인위적인 장애물.
사방을 가로막고 있는 나무들 사이에서는 이미 다크 엘프들이 독이 묻은 화살로 나를 조준하고 있었다.
하긴.
아까전에 착지할 때도 그렇고, 우리가 숲을 아예 아작 내고 있으니 가만히 있는 게 더 이상한 거겠지.
그래도 눈치는 좀 있는 놈들인 것 같다.
“화살이 시위에서 떠나는 순간 끝인 건 아나 봐?”
나는 시위를 당긴 채로 팔을 떨고 있는 다크 엘프들을 향해 이죽거렸다.
다크 엘프들은 엘프들이 마기에 타락하면서 생겨난 종족이므로, 기본적으로 궁술에 조예가 깊다.
어쩌면 궁술만큼은 녀석들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엘프들보다 우위에 서 있을 것이다.
정령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면서 전투를 벌이는 엘프들과는 달리, 정령으로부터 버림받은 다크 엘프들이 선택한 수단은 독.
그리고 그 독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바로 저 화살이었으니 말이다.
“네놈들 성격에 바로 안 쏘는 걸 봐서는 뭔가 있네, 그렇지?”
나는 녀석들을 조롱하면서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대놓고 걸어가는데도 다크 엘프들은 나를 공격하지 않았다.
동족 살해도 번번이 일어나는 놈들치고는 꽤나 신중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는 곧 그 신중함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게 되었다.
쿠드드드득.
내 앞을 가로막고 있던 나무와 가시덩굴이 빠른 속도로 좌우로 갈라졌고, 곧 그 안에서 한 다크 엘프가 걸어나왔다.
한 눈에 봐도 계급이 높아 보이는 다크 엘프.
녀석은 금실로 치장된 로브를 입고 있었으며, 몸속에 꽤나 방대한 양의 마기를 축적시켜 둔 상태였다.
“이리 귀한 손님이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이곳의 일족을 이끄는 장로…….”
“이름은 안 궁금하고, 용건이나 말해. 10초 준다.”
“인간 포로들을 넘겨드리겠습니다. 그것들을 구하러 이곳까지 친히 오신 것 아니겠습니까, 에덴의 교황이시여.”
흥미로운 새끼였다.
다른 다크 엘프들은 나에 대해 모르는 눈치였는데, 이 녀석은 내 정체를 알고 있는 듯했다.
분명 누군가에게서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다.
“방금 전 그 말이 네 수명을 좀 늘려 줬다? 1분 더 준다.”
“듣던 대로 인자하신 분이십니다.”
“내 이야기는 누구한테 들었어?”
“그분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릅니다. 그저 저희를 이 세계로 인도하신 분이라는 것, 그것만 알고 있지요.”
두루뭉술한 대답.
나는 그 대답을 듣자마자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30초 차감. 25초 남았다.”
“인간 포로들을 구하러 오셨는데, 포로들이 죽어서야 되겠습니까. 현재 일족의 전사들이 포로들이 잡혀 있는 곳에 있습니다. 저를 죽이셔도 좋으나, 제가 죽는 순간 포로들도 죽습니다.”
“결국, 인질극을 벌이시겠다, 이 말이네. 어울려.”
기껏 죽음을 각오하고 나와서 하는 말이 인질극이라.
저놈들이 단순히 인질극만으로 저런 배짱을 부릴 일은 없을 테고, 무언가 다른 걸 준비해 둔 것 같았다.
“또 뭘 준비하셨을까.”
“저희 일족은 이곳에 자리 잡은 순간부터 숲 전체에 흑마법을 걸어 두었습니다. 간단한 주문을 외우면 숲 전체가 폭발합니다. 저희들은 죽겠지만, 당신의 부하나 다른 인간들도 생각하셔야지요. 이곳까지 타고 오신 그 신기한 비행 물체가 과연 그 폭발에서 자유롭겠습니까?”
녀석들이 인질로 잡은 건 단순히 이 땅에 있던 생존자들만이 아니었다.
이곳에 착륙한 나의 일행.
그들 전부를 인질로 잡아 둔 것이다.
다크 엘프 놈들이 자폭을 운운하니 꽤나 신뢰성이 높다. 저놈들은 그런 짓을 하고도 남을 족속들이거든.
“이곳에서 공멸하는 것보다는 서로 한 발자국씩 물러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이 장로라는 놈의 배짱이 두둑한 이유를 이해했다.
결국, 이 녀석은 내 일행의 목숨을 두고 베팅을 걸어 온 것이다.
가스통이랑 라이터를 들고 협박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셈.
원래 저런 협박은 잃을 게 많은 놈들에게 아주 잘 먹힌다. 더 이상 가진 패가 없는 쪽에서 꺼내는 꼼수이자 마지막 발악이기도 하다.
즉.
“그거 말고는 별다른 수가 없나 보다?”
본인들 스스로가 불리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뜻.
나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장로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면서 말했다.
“네 소원대로 널 죽이지는 않을게. 대신 하나만 약속하자. 나중에 제발 죽여 달라고 애원하지나 마. 알겠지?”
이번에도 테러범과의 협상은 없을 예정이었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