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38)
138화
43. 대한민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1.
파악된 생존자들의 숫자는 총 102명.
베스가 말해 줬던 수치의 근사치였다.
생존자들을 모두 수습한 우리는 곧바로 남쪽을 향해 귀환했다.
거대한 불길을 보고 멀리서부터 달려드는 마수들이 일부 있었지만, 녀석들은 신성석으로 무장한 네 대의 헬기 앞에서 갈가리 찢겨 나갈 뿐이었다.
원래 목적은 해가 지기 전에 복귀하는 것이었지만,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소요되었다.
응급처치가 필요한 생존자들도 몇몇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잘 도착했네.”
나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항공 대대의 모습을 살피면서 작게 한숨을 뱉어 냈다.
근래에 들어 부쩍이나 길게 느껴졌던 하루였다.
헬기를 이용하지 않았다면 이 많은 생존자들을 데리고 복귀할 수 있었을까?
군용 헬기를 구매하고 싶은 욕구도 무럭무럭 샘솟았다.
“이곳이…….”
내 옆에 앉아 있던 이은택 씨 역시 창밖을 바라보면서 감격에 벅찬 표정을 지었다.
이곳으로 오면서 이은택 씨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디멘션 오프닝 이후 북한의 상황이 어땠는지, 어쩌다가 다크 엘프들에게 잡혔는지 등등.
물론 모든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짧은 시간이라서, 자세한 이야기까지는 듣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부터 남는 게 시간.
그와 이야기할 기회는 얼마든지 남아 있었다.
-착륙하겠습니다.
헤드셋을 통해 기장의 목소리가 전해져 왔고, 곧 우리가 타고 있던 헬기는 성공적으로 지상에 안착했다.
우우우웅.
닫혀 있던 헬기의 문이 열리자마자 곧바로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의료 인력이 수송칸으로 진입했다.
“일단 환자들을 헬기에서 내리겠습니다, 김시우 교황님.”
“부탁드립니다.”
“예.”
팀장으로 보이는 인원이 나에게 묵례를 취한 후, 팀원들을 지휘하며 빠르게 생존자들을 헬기 밖으로 내렸다.
일사불란한 움직임이었다.
나는 그들이 생존자들을 내리는 것을 잠시 지켜본 다음, 이은택 씨와 함께 옆문을 통해 내렸다.
항공 대대답게 확 트여 있는 시야.
네 대의 수송 헬기들을 맞이하기 위해 활주로를 깔끔하게 비워 둔 듯했다.
“김시우 교황님.”
활주로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손님이 한 명 와 있었다.
나는 내리자마자 나를 찾아온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서 대통령님.”
이제는 밖에서도 나를 ‘김시우 각성자’라는 호칭 대신, ‘김시우 교황님’이라고 매번 챙겨 불러 주는 서신우 대통령이었다.
서 대통령은 내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교신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받을 일은 아닙니다. 그나저나 준비 엄청 많이 해 두셨네요.”
활주로에는 상당한 의료 인력이 배치되어 있는 상태였다.
주변의 앰뷸런스들을 따로 수배해 뒀는지, 군용 앰블런스를 제외하고서라도 숫자가 엄청 많았다.
“오랜 시간 동안 그 땅에서 고통받은 분들입니다. 저야말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권력이란 이럴 때 사용하라고 주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내가 서 대통령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쯤, 내 옆에 서 있던 이은택 씨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분이…… 남조선의 대통령이십니까?”
“아, 소개부터 시켜 드려야겠네요. 서 대통령님. 여기 이분은 이은택 씨입니다. 생존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정신을 유지하고 있던 분입니다.”
“아아아.”
서 대통령은 이은택 씨에게 허리를 숙였다. 갑작스러운 대통령의 돌발 행동에 이은택 씨가 당황하려던 찰나, 다시 고개를 든 대통령이 애써 감정을 억누르면서 말했다.
“저희의 부족함을 탓해 주십시오. 일찍 도와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 지옥에서 일찍 꺼내 드리지 못해서 정말…… 죄송할 따름입니다.”
서 대통령은 잠시 말을 멈춘 다음, 조용히 이은택 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맺었다.
“대한민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은택 씨.”
“아아.”
이은택 씨는 지금 어떤 기분일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의 눈에서 다시 한번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둘의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활주로에는 기자도, 그렇다고 대통령의 경호원도 없었다.
생존자들을 이송해 가기 위한 의료 인력들만이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을 뿐.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의료 인력과 고개를 숙인 대통령.
그리고 그런 대통령을 눈물을 흘리며 바라보고 있는 생존자 하나.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절로 마음이 뜨듯해진다.
그렇게 서 대통령은 한참 동안이나 이은택 씨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고, 이은택 씨가 괜찮다며 서 대통령을 안아 주고 나서야 마무리되었다.
“김시우 교황님.”
“예, 대통령님.”
“여기 이분을 저희가 의료 시설로 모셔 가도 되겠습니까?”
나는 그의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통령이 국민을 직접 챙기겠다는데, 제가 막을 명분이 뭐가 있겠습니까?”
“……감사합니다.”
“다른 생존자들 역시 긴급한 응급처치는 다 해 두었습니다. 만성적인 독은 단숨에 치료하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이분들이 이송되는 의료 시설만 따로 알려 주세요. 교단의 사제들을 파견하겠습니다.”
3년 동안이나 버텼다는 게 신기할 정도의 몸 상태였다.
당장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만성적인 중독 현상들은 치료해 두었지만, 신체의 밸런스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별도의 치료가 필요했다.
그들에게 회복 능력을 상승시켜 주는 축복을 내려 두었으니 적절한 치료가 더해진다면 금세 회복할 것이다.
다만, 신체적인 것보다는 다른 부분에서 큰 문제가 남아 있었을 뿐.
“대부분 정신이 피폐해져 있습니다. 신성력이 그분들에게 큰 도움이 되어 줄 수 있을 겁니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끔찍한 고통에 노출되었던 사람들.
이은택 씨의 말대로 그들 중 절반은 이미 정신이 붕괴되었을 정도로, 정신적인 피해가 심각했다.
어쩌면 생존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후유증은 그때의 기억일 것이다.
서 대통령은 내 말을 들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일은 끝.
이제 남은 건 그들이 치료를 잘 받고, 그 기억을 이겨 낼 수 있기를 기도하는 것뿐.
“교황님.”
이은택 씨가 나를 바라보았다.
“네, 은택 씨.”
“……고맙습니다. 살려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다시 교황님을 뵐 수 있겠지요?”
나는 그의 질문에 다시 한번 활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부드럽게 대답했다.
“서울의 신전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항상 문을 열어 둘 테니까, 천천히 오세요.”
역시, 누군갈 구하는 일은 행복한 일이다.
“리멘께서 여러분들을 상처를 따뜻하게 감싸 안아 주시기를.”
내 나지막한 기도와 함께 이은택 씨가 서서히 멀어졌다.
피곤하지만 기분 좋은 밤이었다.
2.
그렇게 해서 생존자들은 전부 정부에서 인계해 갔고, 나는 레오와 루나, 설화, 그리고 오준우 씨와 함께 신전으로 복귀했다.
갈 때도 헬기였고, 올 때도 헬기.
에이든은 항공 대대에서 미군 측과 함께 미군 기지로 복귀했다.
마지막까지 술이나 한잔하자고 졸라 대는 걸 겨우 떨쳐 냈다.
만약 미국에서 나온 사람들이 녀석을 끌고 가 주지 않았다면 큰 일 날뻔했다.
늦은 저녁에 서울로 오겠다고 했으니, 그 전까지 빨리 일을 마무리 짓고 퇴근할 계획이었다.
집에서 문 닫고 자고 있으면 쳐들어오진 못하겠지.
적어도 시연이 앞에서는 무례를 안 저지른 놈이거든.
하여간에 우리 일행은 무사히 신전에 복귀할 수 있었다.
“교황 성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구로 넘어온 이후로 신전의 터줏대감 역할을 수행해 주고 있는 라파르트 대주교가 헬기에서 내린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의 옆에는 오늘의 작업을 끝낸 듯 보이는 토비가 ‘I Love Beer’라는 티셔츠 입은 채로 서 있었다.
“오셨습니까, 성하!”
“다들 늦은 시간인데 왜 퇴근들은 안 하고 계세요.”
“성하가 안 돌아오셨는데 어찌 퇴근하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쇼! 야근 수당 꼭 챙겨 가겠습니다! 하하!”
우리 교단의 기본 능력 중 하나에 적응력이라도 있는 걸까?
지구의 생활에 놀랍도록 적응해 버린 토비였다.
그렇게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린 토비는 곧 내 뒤를 쳐다보더니,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저거, 귀큰놈. 다크 엘프 아닙니까?”
“토비가 눈썰미 하나는 좋다니까. 맞아요. 전리품입니다.”
“지구에도 귀큰놈들이 있었군요. 그냥 귀큰놈들도 싫은데, 시커먼 귀큰놈들이라니…… 후우. 오늘은 흑맥주라도 마셔야겠습니다. 에잉 쯧.”
모든 사고방식이 맥주로 향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인 다음, 이번에는 라파르트 대주교를 보면서 말했다.
“북쪽에서 데려온 생존자들에게 치료가 필요합니다. 라파르트 대주교. 교육생들 중에서 잘 선발해 주세요. 승우도 포함시키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적절히 선발해 두겠습니다. 치료는 언제부터 시작하는지요.”
“정부 쪽에서 명단이 넘어오는 대로 진행할 테니, 추후 변동 사항 있으면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예, 성하.”
라파르트 대주교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곧 다크 엘프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것의 상태가 썩 좋지 않군요. 신성한 성지에 부정한 것을 들이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습니다.”
“아, 이놈요?”
함흥에서 강원도 인제까지.
그리고 강원도 인제에서 이곳 서울 종로구까지.
이곳까지 이동하는 내내 헬기에 대롱대롱 매달아서 데려온 놈이다.
마기도 봉인시켜 두는 바람에 신체 능력도 저하되었을텐데, 맨정신일 리가 있나.
나는 슬쩍 장로의 목을 잡아 올렸다.
예로부터 기절한 놈들을 깨우는 데 특효약인 방법이 있다.
“다 왔다. 일어나.”
짜아아아악!
녀석의 뺨을 가볍게 후려쳤다. 그러자 녀석이 눈을 번쩍 떴다.
“허어어어억.”
“좋은 곳에 왔는데 계속 그렇게 정신을 잃고 있어서야 쓰나. 아직 진짜 좋은 건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이렇게 늘어져 있으면 되겠어?”
그 와중에 살고는 싶은지 녀석은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주위를 살피면서 활로를 물색하려는 듯한 모양새.
나는 녀석의 뺨을 한 번 더 후려친 후, 슬쩍 땅바닥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라파르트 대주교에게 말했다.
“심문이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제가 했다가는 죽여 버릴 것 같아서요.”
“흠, 그렇습니까.”
“인간을 잡아다가 독을 먹이고, 해부를 하는 등 별짓 다 한 놈입니다. 이 녀석의 일족들은 싸그리 멸족시켰고, 남은 생존자는 이놈뿐입니다. 게다가 아는 것도 꽤 있어 보이더라구요.”
잃어버린 땅에서 생포해 온 최초의 이종족.
변화한 지형 등, 쓸모 있는 정보를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제가 교황이란 사실도 알고 있던데, 그 부분도 집중적으로 캐 주세요. 그리고 추후에 저희 교단도 잃어버린 땅으로 진출할 수 있으니, 관련된 정보도 빠짐없이 캐내 주셨으면 합니다.”
내 말에 라파르트 대주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다크 엘프 장로를 향해 다가갔다.
“제가 이제 나이가 좀 들어서…… 레오 대주교도 함께 심문에 참여했으면 합니다.”
“좋습니다. 레오야. 부탁한다.”
“안 그래도 심문에 참여할 수 있게 허락받으려던 참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성하. 기대에 반드시 부응하겠습니다.”
나와 함께 그 참상을 두 눈으로 목격한 레오였다.
그런 레오가 과연 저놈을 가만히 내버려 둘까?
레오의 표정만 보더라도 지금 레오가 얼마나 화를 참고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심문 역시 스페셜리스트가 해야 한다.
약은 약사에게, 심문은 이단심문관에게.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바닥에 쓰러져 있던 장로 놈에게 조용히 말했다.
“잊지 못할 밤이 될 거야. 반대로 당해 보니까 기분이 어때? 아까도 말했지만…… 죽여 달라고 빌면 안 된다. 네가 죽여 달라고 해도 생존자들이 허락해 주기 전까지는 들어줄 수 없어.”
“제, 제발…….”
장로가 무어라 말하려던 찰나,
콰드드득.
“끄아아아악!”
녀석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라파르트 대주교가 녀석의 허벅지를 발로 짓눌렀다.
그리고 서리가 내린 듯한 차가운 목소리로 불쾌감을 표시했다.
“네놈이 성하와 대화를 섞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이곳은 우리 교단의 성지. 너는 지금부터 우리가 허락하지 않으면 입조차 열 수 없다. 성스러운 인두로 네 입부터 지져 주마. 레오 대주교!”
“예, 라파르트 대주교님.”
“밤은 짧습니다. 서두릅시다.”
“예.”
레오는 라파르트 대주교의 말에 따라 장로를 질질 끌면서 신전의 뒷문을 향해 걸어갔다.
지하와 곧바로 연결되어 있는 비밀스러운 뒷문.
나는 조금씩 멀어지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피 엔딩이야, 해피 엔딩.”
옆에 있던 오준우 씨의 얼굴이 다시 한번 창백해졌다는 건 그냥 넘어가 주도록 하자.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