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43)
143화
5.
“성하. 위험하면 바로 신성력 끌어올려 주세요. 무기 들고 바로 들어올 테니까. 아시겠죠?”
“내가 위험한 상황이라면 네가 들어온다고 해서 뭐 달라질까?”
“말이 그렇다는 거죠. 저도 성하 걱정은 안 해요. 신전이 무너질까 봐 그렇지.”
“……알았으니까 나가 봐.”
“꼭 저를 부르세요.”
루나는 나가기 전, 내 앞에 앉아있는 금발의 소녀를 째려보았다. 그리고 나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한 후, 조심스럽게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소녀는 붉은색 눈동자를 빛내면서 루나가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수하분들과 사이가 좋아 보여서 질투가 나네요.”
가녀리면서도 고운 목소리.
목소리만 들어서는 그녀의 정체를 쉬이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하지만 나는 이 소녀의 정체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다.
어쩌면 소녀라고 부르기에는 어폐가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내 앞에 놓인 국화차를 한 모금 마신 다음, 숨을 뱉어 내면서 물었다.
“질투고 뭐고. 그딴 거 물어보려고 온 건 아니잖아?”
“제가 못 올 곳이라도 온 건가요?”
“한 가지 확실한 건 이곳이 네가 속 좋게 차나 마실 곳은 아니란 거지.”
“모시는 신이 다르다고 한들, 인사 정도는 주고받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녀는 살포시 웃으면서 나를 따라 차를 한 모금 넘겼다.
“향이 좋은 것 같아요. 잘 마실게요.”
“눈치가 없는 건가, 겁이 없는 건가. 어느 쪽이야?”
내가 던진 질문에 소녀는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그리고 자신의 적안을 빛내면서 대답했다.
“그 어느 쪽도 아니에요. 저는 단지 당신이 궁금해서 왔을 뿐. 그것은 당신도 마찬가지 아니었나요?”
“궁금하기야 했지.”
탁.
나는 찻잔을 탁자 위에 소리내어 내려놓았다.
“박살 내기 전에 얼굴 한 번은 마주하고 싶은 거, 사람이라면 당연한 욕구잖냐.”
“솔직함은 성직자로서의 미덕이죠. 그런 의미에서 리멘 교단의 교황님은 참된 성직자네요.”
그 질문에 소녀는 더더욱 짙게 미소를 지었다.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순진무구한 미소.
그렇기에 기분이 더 더러웠다.
소녀의 정체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그녀의 몸에서 살아 숨 쉬는 막대한 신성력과 ‘격’.
그것은 일전에 백명교의 하수인 중 하나가 말했던 ‘대교구장’이어야만 설명이 가능한 힘이었다.
“좋은 말을 듣고 싶어서 온 건 아닐 테고, 도대체 무슨 깡으로 이곳에 친히 오셨을까? 전쟁이라도 하자고?”
“전쟁이라뇨. 21세기에 그런 야만스러운 짓을 누가 하겠어요? 저는 정말 궁금해서 왔을 뿐이랍니다. 그리고 정말 저희가 전쟁을 원했다면……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을까요?”
이 여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면, 그녀가 있는 이 신전은 적의 심장부다.
내가 여태까지 백명교에게 보여 준 행동들만 보더라도 우리 교단이 자신들을 적대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여자는 대놓고 신전에 찾아왔다.
그것도 혼자서.
나는 소녀의 적안을 빤히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내가 이 자리에서 네 목을 꺾어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하고 왔을까?”
“이곳은 리멘 교단의 성지. 저항할 생각도 없는 사람의 목을 꺾어 버릴 정도로 당신이 무례하다는 생각은 안 해요. 당신은 최소한의 선은 지키니까요.”
“그 최소한의 선은 얼마든지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어.”
“저를 죽인다고 하셔도 바뀌는 건 없을 거예요. 장담하죠.”
소녀는 계속해서 미소를 짓는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그녀의 얼굴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것은 내가 자신을 죽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에서 기인하고 있었다.
“당신의 그 눈이라면…… 제가 지은 죄가 없다는 것쯤은 보이지 않나요?”
악인을 판별하는 내 패시브 스킬, 멸악의 의지.
상대방이 지독한 악인이라면 당연히 발동해야 했지만, 이 소녀를 상대로는 멸악의 의지가 발동하지 않았다.
내 능력을 대강 파악하고 있는 것일까?
그녀는 다시 한번 차를 한 모금 홀짝였다.
“기댈 것 없는 이들에게 안식처를 마련해 주었을 뿐. 희고 밝은 빛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사악한 의도는 없어요. 중국에서 기생하고 있는 그 벌레들과 저희를 비교하시면 곤란해요.”
“네가 아직까지 악행을 저지른 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장담할 수는 없지. 손톱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야.”
“마음대로 생각하셔도 좋아요. 그것 역시 교황님의 자유니까요. 미움받는 것에는 익숙하거든요.”
백명교는 그들이 제휴를 맺었던 전각련이 무너진 이후로도 별다른 행동을 보여 주지 않았다.
그들과의 마지막 충돌은 지난번 설화와 처음 만났던 그 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그들은 정부 측의 집중 관리 대상에 올라가 있었지만, 나에게 따로 이야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베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잠시 떠올렸다.
백명교가 숭배하는 신.
베스의 말에 따르면 지구의 고대에 존재했다던 일그러진 신들.
그 정보들을 얼추 취합해 보자면, 백명교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하나였다.
“너희들의 신을 지구로 다시 데려오고 싶은 거잖아. 안 그래?”
“백두산의 영물을 데려오셨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이야기는 대강 들으셨나 보네요. 맞아요. 딱히 숨길 이유도 없겠네요. 저희들은 그분들을 다시 이 세상에 모셔올 생각이에요. 그분들이라면 이 어지러운 세상에 새로운 질서를 세워 주실 테죠.”
그 말은 내 의중을 떠보기 위한 블러핑 따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나에게 백명교라는 종교가 어떤 방향성을 지니고 있는지 똑똑히 표명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정화자 놈들과는 뿌리부터가 다른 목표.
무명이라고 불렸던 정화자의 리더 놈이 도대체 뭘 원하는 건지 짐작할 수 없던 것과는 반대로, 백명교는 본인들의 목적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놈들은 위험했다.
어쩌면 정화자 놈들보다 훨씬 더.
나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위대한 존재들이 만들어 낸 새로운 질서. 그 속에서는 고통도, 절망도 없을 거예요.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하는 새로운 세상이겠죠. 가축이나 다름없는 인간들이 만들어 낸 조악한 세상과는 달리, 그분들이 만들어 낸 세상은 완전할 거예요.”
소녀는 사이비 교주나 내뱉을 법한 말을 자연스럽게 내뱉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에는 나를 설득하고 싶다거나, 함께하고 싶다는 뉘앙스는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자신과 백명교의 목표를 나에게 말해 줄 뿐.
하지만 그들의 목표는 리멘 교단의 추구하는 것과 정반대의 방향이었다.
나는 한쪽 입꼬리를 비릿하게 올렸다. 그리고 소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신의 이름을 팔아서 인간들 위에 군림하겠다는 소리를 뭘 그리 거창하게 하냐?”
“당신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아닌가요?”
“인간을 개돼지 취급하겠다는 말에 공감은 무슨.”
내 대답에 소녀는 궁금하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어째서요?”
“내가 모시는 분은 인간 위에 군림하실 생각이 없거든. 너희들의 그 게걸스러운 신들과는 다르셔.”
나는 의자에 등받이에 등을 기댄 다음, 그 어느 때보다 능글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 하나만 물어보자.”
“얼마든지요.”
“인간들을 가축이나 다름없다고 말했지? 그럼 너희가 모시는 그 신이라는 놈들은 가축들의 신인 거냐?”
어째서 그놈들이 지구에서 쫓겨나게 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말을 들은 소녀는 그저 웃는 낯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고, 나는 소녀를 향해 더더욱 비웃음을 지었다.
“가축들을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리멘님께서는 가축들의 믿음까지 갈구하실 정도로 급하진 않으셔서 말이야.”
이래도 웃을 수 있는지 한번 보자고.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6.
백명교의 대교구장이 떠난 집무실 안.
나는 여전히 의자에 앉은 채로 녀석이 마지막에 남겼던 말을 곱씹었다.
-그분들은 당신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존재들입니다. 고작 작은 차원계의 주신 따위가 그분들을 감당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마치 현재 내가 리멘과 연락이 잘 닿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한 말투.
신경이 안 쓰이려야 안 쓰일 수가 없었다.
에덴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일이 지구에서 추방된 그 일그러진 신들과 관련되어 있는 걸까?
“정화자에 백명교라.”
하나는 그냥 미쳐 날뛰는 놈들.
하나는 미친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하는 놈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어느 쪽도 우리 교단과 공존할 수 없는 놈들이란 점이다.
정화자와 백명교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은 의외긴 한데, 백명교의 대교구장이란 놈이 한 말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었다.
백명교가 추구하는 세상에는 정화자의 자리는 없을 것이다.
그때 이야기를 나누었던 정화자 놈들을 생각해 본다면 녀석들은 혼란을 추구하는 놈들이다.
강력하고 새로운 질서를 추구하는 백명교와는 당연히 대립할 수밖에 없는 관계였다.
그래서 지난번 그 무명이라는 놈이 나에게 함께 백명교를 치자고 제의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삼파전이라.”
백명교의 대교구장은 가기 전에 나에게 선물을 하나 제공하고 갔다.
나는 그녀가 건네준 잃어버린 땅의 지도를 눈으로 훑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다크 엘프 장로로부터 뽑아낸 함흥 일대의 지도와는 달리, 백명교가 건네준 지도에는 잃어버린 땅 전역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져 있었다.
어느 지역에 어떤 놈들이 살고 있으며, 숫자는 어느 정도 되는지, 그런 것들이 꽤나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일종의 전술지도.
값어치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한 정보였다.
-이제는 필요 없어졌으니, 선물로 드릴게요.
선물이라.
정말 그 녀석들이 호의로만 이 정보를 건네준 걸까?
그렇게 내가 지도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어느새 집무실 안으로 들어온 루나가 나에게 말했다.
“배짱 하나는 인정해 줄 만하네요.”
“성지에서 우리가 함부로 못 한다는 것쯤은 눈치채고 들어온 거지. 그리고 쉽게 안 죽어 줄 거란 자신도 있던 것 같던데.”
“성하께서 그년과 붙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연히 이겼겠지.”
이겼겠지만 이긴 게 아니었을 것이다.
간단하게 제압이 가능한 상대는 아니었다. 충돌이 일어났을 것이고, 성지가 쑥대밭이 되었을 것이다.
안 그래도 인구 밀집도가 높은 지금, 이곳에서 충돌이 일어났다면?
신전이 파괴되는 걸 떠나서, 성지를 보러 온 사람들도 셀 수 없이 죽어 나갔을 것이 분명했다.
그야말로 최악의 결과.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대놓고 배짱을 부릴 수 있던 걸지도 모르겠다.
“질이 나쁜 놈들이야.”
대교구장은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목숨을 담보로 움직인 셈이다.
그녀는 내가 사람들의 목숨을 판돈으로 걸지 않을 것이란 걸 확신했던 모양이다.
“정화자 놈들이랑은 사이가 안 좋아 보이던데.”
“일부러 연막작전을 펼치는 건 아닐까요?”
“그렇다기에는.”
나는 탁자 위의 지도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제공해 준 정보가 너무 상세해. 잃어버린 땅에 있는 정화자 놈들의 시설이 싹 적혀 있더라.”
다크 엘프들이 보았다는 함흥의 죽은 것들의 요새>부터 시작해서 정화자의 입김이 닿은 모든 것이 그 지도 안에 담겨 있었다.
지도가 정확한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증명된 건 없었다.
대신 다크 엘프 장로로부터 뽑아낸 함흥 지역의 지도와 비교해 보았을 때, 함흥 지역 일대는 정확하게 일치했다.
어느 정도 신뢰성은 있는 지도라는 뜻.
“이이제이인가.”
루나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단은. 자신들의 손에 피를 묻히진 않겠다는 것 같다.”
이 지도만 있으면 북진 작전의 성공률을 대폭 높일 수 있다. 정부와 거래를 했다면 엄청난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상품이었는데, 이런 걸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에게 내어주었다.
정말 녀석들이 호의로 준 선물일까?
장담하건대, 그럴 가능성은 없었다.
“사람의 목숨을 판돈으로 움직이는 놈들이 호의를 베풀 리가 있나.”
녀석들이 정말 우리 교단과의 관계 개선을 원했다면, 내 앞에서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이런 것이에요’ 따위의 말을 지껄이진 않았을 것이다.
가장 현실적인 건 우리가 정화자들과 싸우면서 힘을 소진하길 원한다, 뭐 그런 이유인데…….
복잡하군.
간만에 머리를 굴리려니까 짜증이 난다.
이럴 때일수록 간단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사실, 삼파전을 해결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그냥 둘 다 아작 내 버리면 되는 거잖아.”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
힘 앞에서는 전략이고 뭐고 무의미하다.
“애들 더 굴려.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 않아야 하니까 더 빡세게 굴려.”
이럴 때일수록 교단의 선제적 방어 능력을 극대화시켜야 할 때였다.
내 말에 루나는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만 믿으세요, 성하. 제가 아주 미친놈들로 만들어 버릴게요.”
“듬직하다.”
“전문가잖아요, 전문가.”
첫째도 힘.
둘째도 힘.
힘만큼 효과적인 억제 수단은 없는 법.
나는 루나의 호언장담을 들으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들이 무슨 짓을 꾸미더라도 상관없었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면 될 뿐.
그렇게 리멘 교단이 지구에서 맞이한 첫 겨울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첫 번째 봄이 찾아왔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