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45. 봄봄봄
1.
언론에서 유난히 추웠다고 하는 겨울이 지나갔다.
겨울의 대부분을 성지에서 보내서 그런가, 솔직히 춥다는 생각이 별로 안 들었던 겨울이다.
에덴의 북지에서 경험했던 혹한과 비교해 보더라도 그다지 춥게 느껴지지 않았던 겨울이었다.
시연이의 겨울방학도 끝났고, 정부의 북진 작전 계획도 거의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
우리 교단에도 특별한 행사가 하나 준비되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교육생들은 각자 배정받은 조로 모입니다.”
“훈련소에 입소하기 전에 지인들과의 시간이 준비되어 있으니, 지시에 따라 주시길 바랍니다.”
2기 교육생들의 입소식이었다.
나는 성지에 위치한 우리 교단의 훈련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입소식을 보면서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예전처럼 직접 발로 안 뛰어도 이렇게나 많은 지원자들이 몰려들다니, 교황으로서 참으로 흐뭇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꼭 신병 훈련소를 보는 것 같군.”
“오, 에이든. 미국도 저렇습니까?”
“물론이야, 서진. 대신 교관들의 눈빛이 좀 달라. 미국의 교관들도 어딘가 미쳐 있는 것 같은데…… 저 교관들이 한술 더 뜨는군그래.”
“다 들린다, 에이든. 지금 우리 교관들 비하하냐?”
“칭찬이다, 시우. 정말 경이로워. 나중에 팁이라도 얻고 싶은 마음이야. 자고로 전장에 나갈 병력을 길러낼 자들이라면 저런 광기쯤은 있어야지.”
에이든은 양복을 입은 채로 가볍게 박수를 쳤다.
에이든의 옆에는 피부색만 제외하면 형제라고 부르기에 충분한, 도깨비 길드의 최 대표가 웃으면서 서 있었다.
바바리안이 하나가 아니라 둘인 셈.
평소에 에이든이 최 대표의 훈련을 많이 도와줘서 그런가, 둘 사이에는 사나이 간의 끈끈한 우정이 형성된 듯싶었다.
리멘 교단 2기 교육생들의 입소식에 이 둘이 초청된 이유는 딱 하나였다.
“나에게 축사를 부탁하는 놈은 세상에서 너 하나뿐일 거다, 시우.”
“이레귤러 친구 좋은 게 뭐냐? 이럴 때 서로 돕고 그러는 거지.”
“그럼 나중에 내가 축사를 요청하면?”
“그건 또 따져 봐야 하는 거야. 내가 막 다른 종교 기념식에서 축사를 할 수는 없잖냐? 원래 종교인들은 자리를 조심해야 한다고.”
에이든과 최 대표는 오늘 우리 입소식에서 축사를 해 주기로 했다.
친구를 좀 도와줄 수 있잖아?
미국의 이레귤러가 축사를 해 준다면, 우리 2기 교육생들의 어깨에도 힘이 들어갈 것이다.
아, 물론 정부에서도 사람을 보내왔다.
“늙어서 그런지 이제 기력이 다하는 느낌입니다, 교황님. 다음 달이면 은퇴하는데, 이 늙은이를 너무 부려 먹으시는 거 아닙니까?”
이능관리부의 유선호 장관은 앓는 소리와 함께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런 유선호 장관을 향해 살짝 어깨를 으쓱였다.
“노인 공경은 해 드려야죠. 피곤하시면 돌아가셔도 괜…….”
“허허, 무슨 그런 섭한 말씀을. 대한민국에 큰 도움이 되어 주실 분들이 훈련소에 입소하는 날인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흐흐, 맞습니다 유 장관님.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한 숟가락 올리겠습니까?”
“장관님의 말이 맞습니다. 생색은 낼 수 있을 때 내야 하는 법이죠. 이때 아니면 또 언제 우리 김 교황님께 생색을 내 보겠습니까. 흐하하!”
참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생긴 것과 다르게 정치 능력 하나만큼은 기가 막힌 에이든과 천상 정치인 유선호 장관.
거기에 재벌가 자제님인데도 눈치가 기가 막힌 최서진 대표까지.
이 셋이면 죄 없는 사람도 죄인으로 만들기에 충분할 것 같다.
이 환상의 트리오가 내 편이라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그 셋의 티키타카를 들으면서 천천히 2기 교육생들을 살펴보았다.
입소식은 예정보다 살짝 늦어졌다.
1기 교육생들의 특별 훈련이 생각보다 늦게 종료되었기 때문이다.
“교관들의 표정들이 하나같이 범상치 않아 보입니다.”
유선호 장관을 나를 따라서 교관, 그러니까 1기 교육생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저 친구들, 어제까지만 해도 지옥에서 뒹굴었거든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어제까지 잃어버린 땅에 계셨다지요?”
“전지 훈련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 루나 레벤톤 경이 힘을 많이 썼어요. 덕분에 독기 하나만큼은 잘 얻어 나온 것 같습니다.”
2기 교육생들의 숫자는 총 200명.
그중에는 일본에서 온 100명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겁에 질린 한국인들과는 다르게 일본인들은 아직까지도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훈련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자신들이 이곳에 왔다는 사실에 설레하는 모습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에 반해 한국인들은…….
“군필자로 보이는 분들이 두려움과 혼란을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익숙하겠죠. 원래 가장 무서운 공포는 학습된 공포니까요. 딱 봐도 비슷하게 느껴지는 거겠죠.”
군대에 다녀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을 중심으로 잔뜩 공포에 질려 있는 상태.
아직까지는 우리 교단의 교관들이 살갑게 교육생들을 맞이해 주는 중이었지만, 빠른 속도로 공포가 퍼져 나가는 중이었다.
“1기 교육생들이 이를 악물었어요. 2기 교육생들의 훈련 성과는 1기보다 훨씬 좋을 겁니다.”
루나와 레오에게 전적으로 의지했던 1기 교육생들과는 달리, 2기 교육생들은 선배들로부터 집중 마크가 예정되어 있었다.
지난 지옥 훈련을 통해서 독기가 바짝 오른 1기 교육생들은 2기 교육생들을 쉴 새 없이 굴려 댈 것이다.
원래 인간은 굴린 만큼 강해지는 법.
개인적으로 2기 교육생들의 성과가 기대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유선호 장관은 내 말을 듣자마자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파벌 같은 건 안 나뉘어지겠군요. 개인적으로 걱정을 많이했습니다. 일본인과는 가위바위보조차지지 말라,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런 걱정은 붙들어 매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라도?”
“인간은 원래 극한의 상황에서는 자연적으로 뭉치는 법입니다. 생존보다 우선시되는 욕구는 없지요. 숨조차 쉽게 쉴 수 없는 하루가 이어질 텐데, 파벌을 나눠 싸울 여력이 있겠습니까?”
역시 유선호 장관이다.
우리가 2기 교육생들을 위해 준비해 둔 커리큘럼을 단번에 눈치챘다.
나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십니다.”
“으음, 그렇게 생각하고 저들을 바라보니 안쓰럽다는 생각이…….”
정신도 못 차리게 굴려 댈 건데, 한국인 일본인 나뉘어서 싸울 생각이나 하겠어?
그런 생각이 든다면 우리가 녀석들을 충분히 굴리지 못했다는 증거다.
패싸움을 벌였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훈련 강도를 높여 주면 금세 정신을 차릴 것이다.
그렇게 내가 귀빈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이번 입소식을 총괄하고 있는 라파르트 대주교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교단의 정식 행사인 만큼 라파르트 대주교는 하얀색 사제복을 입고 있었다.
“성하.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라파르트 대주교가 나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단상으로 올라가면 됩니까?”
“예. 입소식은 성하의 축복으로 시작됩니다. 올라가셔서 우리 교단의 새로운 일꾼들에게 축복을 내려 주십시오.”
질질 끌 이유는 없지.
나는 라파르트 대주교에게 가볍게 손짓한 다음, 귀빈들을 향해서 말했다.
“그럼 입소식 슬슬 시작하겠습니다. 이따가 축사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내 인생 최고의 축사를 해 주지. 믿어도 좋다.”
에이든이 가슴을 쿵쿵 두드리면서 기세 좋게 말했다.
네가 제일 못 미더워 이 자식아.
그렇게 나는 단상에 올라섰고, 곧 2기 교육생들의 시선이 나를 향해 모여들었다.
설레임 반, 두려움 반.
그러나 그들에게서는 공통적으로 기대감이 전해져 왔다.
나는 그 귀여운 병아리들을 잠시 감상한 다음, 기분 좋게 첫마디를 뗐다.
“이곳에 오신 형제 자매님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저는 리멘 교단의 교황, 김시우입니다.”
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 병아리들.
2.
리멘 교단의 2기 교육생으로 선발된 카시미 시게지는 도저히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내가…… 내가 리멘 교단의 일원이 되다니.’
처음 2기 교육생으로 선발되었을 때가 아직도 그의 눈앞에 선했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일본의 100명.
‘센다이 시의 기적’이라고 불리우는 야마타노오로치 이후, 리멘 교단은 단연코 일본에서 가장 뜨거운 종교였다.
일본에서 신성력을 각성한 플레이어들 대부분이 토속신앙이 아니라 리멘 종교를 신앙으로 채택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 와중에 리멘 교단에서 일본인 100명을 2기 교육생을 선발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고, 덧붙여 그 100명이 일본 포교의 초석이 될 것이라는 소식도 전해져 왔다.
일본 열도에 리멘 교단의 씨앗을 뿌리는, 그야말로 영광스러운 임무.
시게지는 자신을 괴롭혔던 27년 동안의 불운이, 지금에 와서야 보상받게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교황님…….’
시게지는 눈앞에서 김시우 교황이 보여 주는 기적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한국어를 배운다고는 노력했지만, 아직까지 그의 한국어는 완전하지 않은 상태.
하지만 놀랍게도 김시우 교황의 말은 언어의 장벽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일본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의 머릿속에 모든 뜻이 정확하게 전달되고 있던 것이다.
“여러분들은 앞으로 우리 교단의 일원으로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리멘님을 모시는 이로서의 자긍심, 약자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고결함. 그리고 그 어떠한 악과도 타협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까지. 리멘 교단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을 이곳에서 얻게 될 것입니다.”
시게지는 눈을 부릅뜬 채로 김시우 교황의 모든 말을 받아들였다.
악을 가차 없이 징벌하는 영웅.
상처를 돌보는 성인(聖人).
‘언젠가는 저분 옆에서……’
저분의 쓰임을 받는 사람이 되어, 리멘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자신만의 목표는 아닌 듯 했다.
그의 옆에 있는 다른 교육생들 역시 각자 결연한 표정으로 김시우 교황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으니까.
“이곳이 여러분들의 새로운 시작점이 되기를, 리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겠습니다.”
그렇게 김시우 교황의 연설이 끝났고, 곧이어 유명한 인물들의 축사가 이어졌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시게지의 머릿속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그 누구에게도 질 수 없다. 반드시 인정받겠어.’
어쩌면 그의 인생에서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시게지는 간절했고, 또 절박했다. 그저 그런 교육생 중 하나로 남고 싶지는 않았다.
짝짝짝
시게지가 여러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사방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입소식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끝난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교관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말했다.
“교육생들은 마지막으로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옵니다. 시간은 10분 줍니다.”
일본인들을 배려해 준 것인지, 교관들 중 일부가 일본어로 소리쳤다.
시게지는 그 말을 듣자마자 빠르게 우측을 향해 달려갔다.
그곳에서는 그의 부모님이 눈물을 흘리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시게지.”
“정말, 정말 괜찮겠니?”
꿈도 희망도 없이 놀고먹었던 자신을 끝까지 붙잡아 주셨던 부모님.
시게지는 자신의 부모님을 바라보면서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오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긴말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말 대신에 행동으로, 성과로 보여 준다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시게지는 긴말을 하지 않고 부모님을 한 분씩 안아 드렸다. 그리고 그분들을 향해 허리 숙여 인사한 다음,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지인들과의 마지막 시간이 끝났고,
“교육생을 제외한 분들은 이제 훈련소에서 퇴소해 주시길 바랍니다!”
순식간에 훈련소에는 교관들과 교육생들만이 남게 되었다.
마지막 가족이 훈련소에 퇴장한 그 순간, 시게지의 앞에 빨간색 모자를 쓴 한 교관이 다가왔다.
“122번 교육생, 카시미 시게지. 맞습니까?”
“제 이름이 맞…….”
“지금부터 맞으면 예, 틀리면 아닙니다로 대답합니다. 알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시게지는 배에 힘을 꽉 주면서 힘차게 대답했다.
그런 시게지의 우렁찬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 걸까?
빨간색 모자를 쓰고 있던 교관이 앳된 목소리로 말했다.
“목소리 좋습니다. 본 교관은 앞으로 122번 교육생을 담당하게 된 오재민입니다.”
시게지는 몰랐다.
지금 그가 서 있는 이곳이 지옥의 입구라는 것을.
그렇게 2기 교육생들의 입소식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