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47)
147화
46. 저 뒤끝없어요
1.
다음 날 아침.
-헤헤, 오빠. 이따가 꼭 늦지 않게 와야 돼! 알겠지? 내 친구들 부모님도 다 오신다고 하셨어.
시연이는 나를 꼭 껴안아 준 다음에 등교를 했다.
저렇게까지 했는데 내가 빠질 수야 있나.
어째서인지 시연이의 함정에 빠져 버린 기분이지만, 어차피 작전 시작 전까지는 시간이 남았다.
본격적으로 북진을 시작하게 되면 당분간 가족들에게 쓸 시간이 부족해질 테니, 시연이와 좋은 추억을 미리 쌓아 두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결국 나는 아침을 대충 토스트로 때운 다음, 시연이가 다니는 서울제일초등학교에 도착했다.
내가 학부모 참관 수업에 참여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당연히 내가 에덴으로 납치되기 전, 시연이는 유치원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통 학부모 참관 수업은 학부모들끼리 ‘하하호호’ 하면서 모여드는 게 정상 아닌가?
그런데 내 눈앞에 펼쳐진 건.
“학교를 배경으로 느와르물이라도 찍나.”
초등학교의 정문 앞에서부터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신경전이었다.
고위 공무원 자제님들, 재벌 그룹 자제님들이 문제가 아니었다.
정말 문제가 되는 건 대형 길드에 소속된 헌터들의 자제들.
대각성자시대라는 명칭에 걸맞게, 입김이 가장 쎈 건 역시 헌터들이었다.
전각련이 해체했다고 한들, 전각련을 구성하고 있던 대형 길드들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학교의 정문 앞에는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대형 길드들이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서로를 견제하는 중이었다.
초등학교의 정문 앞에서 벌어지는 유치한 신경전.
다들 어린아이의 동심으로라도 돌아간 걸까.
하는 짓거리가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이딴 학교에 내가 내 동생을…….”
대형 길드들의 헌터들끼리 서로를 견제하는 중이라서 당연히 분위기는 흉악했다.
지나가는 시민들도 슬쩍 눈초리를 줄 정도였다.
하지만 다른 학부모들은 그것을 이상할 것 없다는 듯 받아들이며 학교로 들어가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학교지?
최고의 교육 수준을 자랑한다는 학교가 마침 주변에 있어서 전학을 시키긴 했다만, 벌써부터 학교의 분위기가 예상이 가는 것 같다.
그렇게 내가 툴툴거리면서 그 수많은 인파를 뚫으려던 순간.
“성하!”
그 인파들 사이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면서 손을 흔들었다.
신성력이 물씬 풍겨 오는 두꺼운 판금 갑옷.
그 판금 갑옷 뒤로 흩날리는 붉은색 머리카락.
“리멘 교단이야…….”
“저 사람들이 그 몬스터들을 반으로 접는다는……”
주변에서 우리 교단의 존재를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게 해 주는, 리멘 교단의 마스코트.
“저희랑 같이 가셔야죠.”
루나였다.
게다가 루나뿐만이 아니었다.
루나가 나를 알은체하면서 다가오는 순간, 대형 길드들끼리의 신경전이 빠르게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그들이 단순히 루나만을 의식해서가 아니었다.
루나의 뒤를 따라서 정문에 도착한 삼십여 명의 1기 교육생들.
토비의 장인 정신이 담긴 판금 갑옷을 두른 성기사들이 당당하게 정문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레오도 같이 왔네?”
성기사들의 앞에는 레오가 왼손으로 성서를 든 채로 서 있었다.
꼭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었다.
성기사들이 입은 판금 갑옷이 햇빛에 빛나고, 그 앞에는 검은색 사제복을 입은 사제가 엄숙한 표정으로 서 있고.
배경이 초등학교만 아니었다면 정말 영화로 담아도 될 것 같은, 너무나도 성스러운 장면.
표정만 보면 다들 그냥 성전에라도 나서는 것처럼 결연한 표정이었다.
“오늘은 중요한 날이잖아요. 우리 시연이가 기죽으면 안 되죠. 어차피 시연이네 학교도 신전에서 별로 안 멀고, 겸사겸사해서 왔어요. 우리 애들도 시연이 되게 좋아하거든요.”
“1기 교육생들이?”
“네. 시연이가 훈련소에 자주 놀러 왔었어요. 물론 저를 보려고 왔었던 거지만, 어느새 교육생들이랑 친해졌더라구요. 아마 시연이는 뭘 해도 될 거예요. 붙임성이 너무 좋다니까? 지난번에는 애들 먹으라고 김밥도 싸 오던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시연이는 작은 여우가 틀림없다.
언제 1기 교육생들까지 홀려 둔 거지
루나의 말이 사실인 게, 이곳에 온 교육생들의 표정에서는 귀찮음 따위는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불타오르는 눈빛들.
이곳을 눈빛만으로 정리하기라도 하겠다는 듯한 기세들이었다.
문제는 왜 저 열정을 이런 곳에다가 불태우냐는 것.
“원래는 연례행사라더라구요.”
“뭐가?”
“이렇게 유치하게 신경전 벌이는 거요.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바로 나와요. ‘서울제일초등학교 학부모 참관 수업’. 대형 길드들의 작은 각축장이라던데…… 자료 조사는 조금 하고 오시지.”
루나의 말에 나는 깊게 한숨을 뱉어 냈다.
“참관 수업을 오기 전에 조사를 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냐?”
“애초에 이 학교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은걸요.”
“……그건 맞지.”
입구부터 이 난리면 학교 분위기도 알 만하다.
지난번에 시연이를 데리러 왔을 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부모들이 저러는데 아이들이 뭐를 보고 배웠겠어?
그렇게 내가 루나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어느새 성기사들은 내 앞에 멈춰 섰다. 그러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드디어 내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김시우 교황?”
“저 사람이 왜 여기에…….”
평상복을 입고 있었기에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꽤 적었지만, 이놈들 때문에 다 글러 먹었다.
성기사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이면서 나에게 예의를 표했고, 레오가 그들을 대표해서 말했다.
“교황 성하를 뵙습니다.”
절도된 동작.
딱딱한 목소리.
레오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주위에 내려앉았고, 순식간에 주변의 분위기가 냉각되었다.
아까 전까지만 하더라도 신경전을 주고받던 대형 길드 소속 헌터들의 안색이 흙빛으로 뒤바뀌는 건 한순간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크게 한숨을 뱉어 냈다.
“됐으니까 다들 돌아가.”
“성하. 하지만…….”
“……위화감 조성하잖아.”
지옥 훈련을 견뎌 낸 1기 교육생들의 기세가 워낙 흉흉했다. 기세만 보면 지금 당장 마굴로 기어 들어가, 마수들을 도륙 낼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이게 교단인지, 아니면 폭력 조직인지.
그들이 입고 있는 갑옷만 아니었다면 여러 오해를 샀을 것이다.
“다 내 업보다, 내 업보야.”
어째 하루의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나는 다시 한번 한숨을 뱉어 냈다.
오늘 하루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드는 건…… 단순히 기분 탓일까?
2.
돌이켜 생각해 보자면 아까 정문에서 있었던 일은 현재 대한민국 판도의 축소판이나 다름없었다.
대형 길드 간의 신경전.
각자의 이해관계 속에서 새롭게 구성되는 판세.
부모는 자녀의 거울이라는 말답게, 학생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다.
시연이의 나이가 올해로 11살.
이제 막 초등학교 4학년에 올라왔는데, 학교의 분위기는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저리 가라다.
“이야, 애들끼리 장난 아닌데요? 못된 것만 잔뜩 배워 뒀어.”
“그러니까 너는 왜 안 돌아갔냐고.”
“저는 시연이를 아끼는 언니의 마음으로…… 어 그래 시연아! 성하. 시연이한테 손 흔들어 주세요.”
루나는 내 질문에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시연이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는 중이었다.
나는 그런 루나를 째려본 다음, 시연이를 향해 오른손을 흔들어주었다.
시연이의 표정은 굉장히 밝았다.
아침보다 어깨가 훨씬 올라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사실, 참관 수업은 그다지 특이할 건 없었다.
학생들이 꿈을 발표하는 등의 다소 평범한 구성.
다만 스케일이 좀 달랐을 뿐인데, 몇몇 학생들은 전문가의 손길이 묻은 PPT를 통해서 꿈을 발표하더라.
그렇게 학생들의 발표가 이어지고 있을 때쯤.
“김시우 교황님.”
양복을 입은 한 남자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이런 곳에서 만나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나에게 말을 건 남자를 쳐다보았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어디선가 한 번 본 듯한 얼굴.
내가 자신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걸 눈치챈 걸까? 충분히 기분 나쁠 법하지만, 남자는 전혀 내색하지 않은 채로 말했다.
“어제 이능관리부의 회의실에서 교황님과 잠깐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아!”
“레이스 길드의 대표, 황석호입니다. 그리고…… 저기, 김시우 교황님의 동생분 옆에 앉아 있는 사랑스러운 여자아이의 아빠이기도 합니다.”
레이스 길드.
전각련이 무너진 이후 새롭게 떠오른 대형 길드 중 하나이며, 중부련에 소속된 길드였다.
생각해 보니 어제 악수를 한 번 나눴던 것 같다.
나를 두려워했던 다른 대표들과는 달리, 오히려 나에게 호감을 표시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황 대표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말을 이어 갔다.
“김시우 교황님의 동생분께서 이 학교에 다니고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놀랍게도 첫 대화부터 장난질이었다.
아마 시연이가 내 동생이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겨울방학 전에도 내가 한 번 찾아오기도 했었거니와, 시연이는 현재 우리 교단의 미튜브에도 자주 출연하고 있었다.
교황의 동생이라는 화제성에다가 시연이 특유의 붙임성 덕분에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는 중이다.
백설이, 베스와 함께 애완동물 브이로그도 기획 중이었고, 리멘 교단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아볼 수 있을 만큼의 인지도를 쌓아뒀다.
이런 상황에서 시연이를 못 알아봤다고?
그랬을 리가 없지.
요즘 초등학생들이 얼마나 유행에 민감한데.
그러니까 이 황 대표라는 사람의 말은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이었지만, 사실 딱히 거슬리는 거짓말은 아니었다.
나와 말을 붙이기 위해서 꺼낸 말이었기 때문이다.
“제 동생이 지난 학기에 전학을 와서요. 첫 학부모 간담회니까 한번 와 봤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분위기가 많이 다르네요.”
나는 넉살 좋게 말을 건넸고, 그러자 황 대표는 힘겹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제 안사람이 꼭 가야 한다고 해서 왔습니다. 올해로 벌써 4년 째네요. 아빠 노릇하는 게 참 쉽지가 않습니다. 아마 그건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황 대표는 주위를 슬쩍 둘러보았다.
“자식들의 자존심은 곧 부모의 자존심인 법이니까요.”
“그런가요?”
“게다가 이 학부모 참관 수업 이후에 이루어지는 간담회는 좋은 사교 모임이기도 합니다. 정재계 인사와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기회죠.”
이곳에 입학하기 위해 목을 매는 이유 중 하나.
인맥.
자식의 교육도 교육이지만, 이곳에 다니는 학생들의 부모들은 대부분이 한자리씩 하시는 분들이다.
상류층의 커뮤니티라고 해야 하나.
나로서는 쉽게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세계가 있다.
여유로운 사람들끼리 뭉쳐서 놀겠다는데, 그걸 누가 뭐라고 하겠어?
“김시우 교황님께서 여동생분을 이곳에 보내신 것 역시…….”
“아, 저희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초등학교가 여기라서요. 학교 시설도 좋고, 선생님들도 좋으시다기에 보낸 겁니다.”
나는 빠르게 선을 그었다.
그들의 커뮤니티에 들어가는 건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내 의중을 파악한 황 대표는 눈치 좋게 화제를 돌려 버린다.
“혹시 간담회가 끝난 후에 따로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제는 미처 경황이 없어서 말씀을 못 드렸지만, 드리고 싶은 제안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제안인지 살짝 들어 보고 싶네요.”
“리멘 교단의 성직자분들을 고용하고 싶습니다.”
의외의 안건.
파견을 요청하는 게 아니라 ‘고용을 하겠다’고 말하는 거라면,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소리였다.
“저희 길드가 중부련에 소속되어 있는 건 맞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길드 차원의 제안입니다. 중부련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신성 계열 플레이어들이 필요하다면 저희 말고도 대안이 있을 텐데요.”
“미지의 위험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각 분야의 최고가 필요한 법입니다. 저는 리멘 교단의 성직자분들이야말로 이 분야의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적당한 감언이설까지 섞는 황 대표.
이번 기회에 나와 인연을 좀 만들고 싶어 하는 눈치기도 했다.
나는 황 대표의 시선을 마주하면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따가 따로 이야기를 나눠 보시죠.”
“감사합니다.”
먼저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는 사람들에게까지 벽을 세워 둘 필요는 없었다.
우리 교단에 우호적인 세력이 많을수록 좋은 법.
황 대표는 내 긍정적인 반응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딸을 바라보았다.
“제 딸과 교황님의 동생분이 친해 보여서 기분이 정말 좋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저렇게 나누고 있는 걸까요?”
“글쎄요…….”
황 대표의 말대로 그의 딸과 시연이가 서로 귓속말을 주고받는 중이었다.
황 대표에게는 아이들끼리 노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내 귓가에는 그 둘이 나누는 귓속말이 고스란히 들려오고 있었다.
“야, 김시연. 너는 부모님 없어? 왜 학부모 참관 수업인데 너네 오빠만 와?”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시연이의 성질을 건드리고 있는 황 대표의 딸. 시연이를 싫어한다는 게 확연히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놀라운 건 시연이의 반응이었다.
시연이는 활짝 웃으면서 황 대표 딸의 귓가에 속삭였다.
“너희 부모님도 결국 없어지실 텐데, 지금 미리 인사드리고 올래? 키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때? 마침 뒤에 계시잖아.”
……시연아?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