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48)
148화
3.
시연이의 묵직한 반격은 초등학교 4학년짜리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공격이었다.
시연이에게 묵직하게 후두려 맞은 황 대표의 딸은 시연이에게 손찌검을 하려는 듯 손을 들었지만, 그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시연이가 곧바로 팔을 뻗어 막아 버린 것이다.
‘폭력은 나쁜 거야.’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이 포인트였다.
말싸움에서도 져, 몸싸움에서도 져.
그런 상황에서 초등학교 4학년짜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당연히 울음을 터뜨리는 거지 뭐.
황 대표의 딸은 그대로 울음을 터뜨렸고, 덕분에 발표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당황했을 건 황 대표였지만, 도리어 황 대표는 나에게 사과를 전했다.
-저희 딸아이가 실언을 한 모양입니다. 죄송합니다, 김 교황님. 일단 저희 딸 아이부터 달래고 오겠습니다. 이따가 간담회 끝나고 계속 말씀을 나눴으면 합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지, 황 대표의 얼굴에는 체념 비스무리한 것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여튼 간에 그렇게 해서 상황이 대강 정리되었고, 나는 시연이와 함께 시연이의 담임 선생님과 대면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담임 선생님이 잠시 다른 학부모들과 인사를 나누는 동안 나와 시연이는 미리 상담실에 와 있었는데, 당연하게도 루나 역시 이 자리에 함께했다.
루나는 시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미소를 지었다.
“잘했어, 시연아. 원래 패드립치는 놈들에게는 본때를 보여 줘야하는 거야. 뺨을 먼저 맞았다면, 뺨을 친 놈의 얼굴에다가 주먹을 꽂아 넣으면 돼. 아주 잘했어.”
“마음만 같아서는 때리고 싶었어, 언니.”
“그냥 한 대 치지 그랬어. 언니가 커버해 줬을 텐데.”
시연이의 사고방식이 누구로부터 기인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나는 루나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깊숙하게 내뱉었다. 그리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범인은 너였구나.”
“성하. 성하였어도 저 말 듣고 가만히 있으셨겠어요?”
“그렇진 않지.”
나였으면 최소 손목은 골절시켜 뒀지.
그래도 시연이가 황 대표 딸을 제압하는 모습이 나름 사이다이기는 했다.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은 혼쭐이 나야지.
그나저나 시연이가 요새 루나한테서 나쁜 것만 배우는 것 같아서 걱정이 많다.
이러다가 무기술 같은 것도 배우는 거 아니야? 시연이에게까지 무기를 쥐여 주고 싶지는 않은데 말이야.
“시연아.”
“응, 오빠.”
“다음부터는 그냥 제대로 한 방 갈겨. 정 안되면 백설이한테 부탁하고. 백설이 평범한 고양이 아닌 거 알지?”
이왕 후려갈길거면 확실하게 후려갈겨야 한다.
요새 세상이 흉흉하니 시연이에게 간단한 호신술까지는 알려 줄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레오한테 교육을 부탁하면 사람을 반으로 접는 것만 알려 줄 것 같으니, 아무래도 내가 직접 알려 줘야 하나?
똑똑똑.
그렇게 우리 셋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쯤,
“안녕하세요.”
시연이의 담임 선생님이 상담실 안으로 들어왔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
방금 전까지 학부모들에게 제대로 시달리고 왔는지, 선생님의 얼굴에서 피로감이 진득하게 느껴졌다.
“시연이 담임 선생님을 맡고 있는 선지수라고 합니다.”
담임 선생님이 공손하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녀의 손을 맞잡으면서 은은하게 미소 지었다.
“김시우입니다.”
너무 피로해 보이길래 맞잡은 손을 통해 그녀에게 가볍게 축복을 걸어 주었다.
우우우웅.
내 몸에서 흘러나간 신성력이 빠르게 그녀를 휘감았고, 곧 선생님의 안색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본인의 몸은 본인이 제일 잘 아는 법.
담임 선생님은 갑작스러운 컨디션 호전에 눈을 둥그렇게 뜨며 놀라워했다.
“이거 혹시…….”
“피곤해 보이셔서요. 뇌물 같은 건 아니니까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신성력에 대한 기본 법률도 아직 지정되지 않은 마당에, 선생님한테 축복을 내려 줬다고 해서 문제가 생길 리가 없었다.
“감사합니다. 교황님.”
“오늘은 학부형의 자리로 온 거라서, 굳이 그렇게 안 불러 주셔도…….”
내 말에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실, 제가 리멘 님을 믿거든요.”
“아아.”
어쩐지.
아까부터 친숙한 느낌이 들더라.
이런 걸 보면 확실히 우리 교단의 교세가 많이 확장되었다는 걸 느낀다.
시연이의 담임 선생님이 리멘 교단의 신도라…….
참 애매한 관계긴 하다. 조심할 것도 많을 것 같고.
얼떨결에 본인의 신앙을 고백해 버린 선지수 선생님은 곧바로 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까 발표 시간에 죄송했습니다.”
“아, 아니예요. 유나가 원래 유별난 구석이 좀 있어서…… 시연이 정도면 정말 얌전하게 대처한 거예요. 예전에는 수업 시간에 머릿채를 쥐어잡고 싸운 적도 있었는 걸요.”
전과가 있던 아이였구나.
신지수 선생님은 힘겹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직장인들의 기본 패시브라고 할 수 있는 저 영업용 미소.
그녀는 그 미소를 유치한 채로 말을 이어 나갔다.
“저는 항상 시연이에게 고마워하고 있어요. 시연이가 학급에서 소외되는 친구들을 잘 챙겨 주거든요. 지난 학기에 전학 왔는데도 반 아이 대부분이랑 사이가 좋아요. 원래 이 나이 때는 그게 참 쉽지 않아요.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언젠가 이런 순간을 한 번 꿈꿨었다.
시연이의 학교에 방문해서, 선생님으로부터 시연이의 이야기를 듣는 것.
그곳에서 내가 되찾고 싶었던 일상 속에는 이런 장면도 포함되어 있었다.
“항상 똑부러지고, 인사성도 밝고. 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을 뵐 때마다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학생은 시연이 뿐이에요. 그래서 교장 선생님도 시연이를 되게 이뻐하고 계세요.”
“다행이네요.”
“어디를 가더라도 이쁨받을 아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것 뿐만이 아니라 학업 능력도…….”
시연이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선생님의 칭찬이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아까 친구에게 거침없이 돌직구를 날리던 시연이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었고, 잔뜩 붉어진 얼굴로 내 팔을 잡는다.
돌아가신 부모님도 이 자리에 계셨다면 더 좋아했을 텐데.
부모님도 일찍 여의고, 의지하던 큰오빠도 사라지고.
그런 악조건들 속에서 이렇게나 이쁘게 자라 준 시연이가 어찌나 고맙던지.
나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은 후, 신지수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시연이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러자 신지수 선생님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답했다.
“저야말로 저희 학교에 이렇게 예쁜 아이를 보내 주셔서 감사하죠.”
그 이후로 선생님은 10분 내내 시연이에 대한 칭찬을 이어가셨고, 나 역시 그녀가 늘어놓는 칭찬을 기쁜 마음으로 귀에 담았다.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솟아오르는 시간이었다.
4.
학부모 참관 수업은 시연이의 학교 생활을 엿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비록 황유나라는 아이와의 불화가 있었지만, 시연이를 대하는 다른 아이들의 태도를 보면 시연이가 어떤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지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자존심 높은 아이들, 편을 가르는 아이들 사이에서도 돋보이는 사교성.
시연이를 싫어하는 애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때 항상 웃음을 보여 줬고, 친구들 역시 그런 시연이를 부담스럽지 않게 받아들였다.
그건 그만큼 시연이가 다른 친구들을 골고루 챙겨 줬다는 의미기도 했다.
담임 선생님과의 면담은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 되었고, 나는 다른 학부모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눈 후에 신전으로 돌아왔다.
신전으로 출근할 때에는 손님도 함께였다.
아까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레이스 길드의 황 대표.
아버지 된 마음으로서 아까 전의 일이 불쾌할 법도 한데, 대표란 자리가 참 쉬운 자리가 아니긴 하다.
“이렇게 귀한 자리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은 공, 사는 사.
내 앞의 황 대표에게서는 불쾌한 표정이라고는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유나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모든 게 자식을 잘못 가르친 제 탓입니다. 아까 전에도 따끔하게 혼을 냈지만, 집에 돌아가서 다시 한번 훈육을 제대로 시키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내 앞에서 자식의 잘못을 시인하며 용서를 비는 아버지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나는 계속해서 용서를 비는 황 대표에게 차를 권했다.
“괜찮습니다. 아이들이 뭐 싸우면서 친해지는 거 아니겠어요? 마음에 담아 두진 않았습니다.”
시연이가 일방적으로 당했으면 감정이 남았겠다만, 아까 전의 딜교환은 시연이가 압도적으로 우위에 선 상황.
먼저 운 쪽이 진 거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이들끼리의 일로 어른들끼리 감정 상해서 되겠나요? 저를 그런 소인배로 보신 것 같아서 좀 기분이 그러네요.”
“그게 아니라…….”
“농담입니다, 농담.”
원래 목이 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이거든.
나는 씨익 미소를 지은 다음, 내 앞에 놓여 있던 녹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리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바쁘신 대표님을 오래 잡아 둘 수는 없죠. 아까 이야기나 마저 해봅시다. 레이스 길드에서 저희 교단의 성직자들이 필요하다구요?”
내 질문에 황 대표는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예,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신성 계열 플레이어들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지 않겠습니까?”
“흐음.”
“혹시 리멘 교단의 교리에 어긋난다거나…….”
“아, 그런 것 때문에 고민하는 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만 아니라면 사례금 정도는 받을 순 있어요.”
어떻게 보면 용병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지만, 금전적인 것과 관련해서 우리 교단은 언제나 놀라울 정도의 융통성을 발휘한다.
약간 이런 개념이다.
「사례금을 통해서 더 많은 선행을 펼친다.」
이걸 뒷받침하는 교리가 몇 개 있는 것으로 아는데, 굳이 교리까지 들먹이면서 복잡하게 따질 이유는 없다.
남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일은 당연히 받아들이면 안 되지만, 마족이나 마수를 토벌하고 나서 사례금을 받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몇 명 정도 필요하십니까?”
“저희가 원하는 건 응급조치를 도와주실 분들입니다. 다섯 분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많지는 않네요.”
“길드의 사활을 걸고 원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성직자분들의 안전은 반드시 보장하겠습니다.”
“아, 그 부분도 걱정하진 않습니다.”
“……예?”
“마굴에 던져 넣어도 살아나올 놈들…… 아니, 형제자매님들이니까요.”
고작 잃어버린 땅 초입에서 죽어 나갈 정도로 약하게 키우진 않았다.
“제가 봤을 때는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
“다만.”
한국말은 끝까지 들으셔야지.
나는 능글맞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아무래도 저희 교단에서도 단독으로 원정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라서, 다섯 명이나 인원을 차출해 버리면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원래 협상이란 단번에 합의점에 도달해 버리면 안 된다.
급한 건 저쪽인데, 뽑아낼 수 있는 건 다 뽑아 먹어야지?
대형 길드들이 돈을 쓸어 담는다는 이야기를 옆집 꼬맹이도 알고 있는 마당에, 순순히 제안을 받아들일 수야 없지.
저 쪽에서 어떤 조건을 준비해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라파르트 대주교? 박지원 고문? 들어오세요.”
내가 원하는 건 그것을 아득히 뛰어넘는 조건.
돈은 원래 벌어 둘 수 있을 때 많이 벌어 둬야 하는 거다.
잠시 후, 라파르트 대주교와 박지원 씨가 집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부르셨습니까, 성하.”
“여기 이분께서 우리 교단의 형제자매님들을 모셔 가고 싶다는데, 생산적인 대화를 나눠 보셨으면 합니다.”
황 대표라면 이런 자리를 샐 수도 없이 경험했을 사람이다.
따라서 이런 협상에는 전문가가 필요한 법.
교황청의 실무를 담당했던 라파르트 대주교와 아이비리그 출신 박지원 씨야말로 이 상황의 적임자였다.
라파르트 대주교는 나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교단의 명예가 실추되지 않도록 잘 해결해 보겠습니다.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하. 기대에 반드시 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문서화까지 시켜야 하니까 박지원 형제가 옆에서 잘 도와주시구요.”
“예, 걱정 마십시오.”
이런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레오와 루나보다 훨씬 든든한 둘의 조합.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거린 다음, 살짝 얼이 빠진 것 같은 황 대표를 향해 말했다.
“지금부터는 이 두 분과 이야기를 나누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까 황 대표 딸이 시연이를 무시해서 그러는 거 아니다.
절대로.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