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49)
149화
5.
우리 교단의 협상조가 투입된 지 30분.
테이블 위에서 산전수전 다 겪었던 황 대표였겠으나, 노상강도나 다를 바 없는 2인조의 활약 앞에서는 사실상 무의미했다.
협상의 결과를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속옷까지 털어 드셨네요.”
우리 교단 측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건네주는 것은 물론이며, 고용한 성직자들의 일당도 별도로 챙겨 주기로 결정되었다.
그 금액은 비밀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2배는 넘는 금액을 뜯어냈다는 것.
라파르트 대주교는 이런 내 감탄사에도 그저 조용히 차를 마시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대형 길드 대표인데, 속에는 능구렁이 수백 마리가 들어 있었을걸요?”
시연이와 자신의 딸이 사이좋게 패드립을 주고받은, 기분이 안 나쁘려야 안 나쁠 수가 없는 상황에서조차 평정을 유지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구워삶는 게 마냥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려운 일을 불과 30분 만에 해냈다.
나였다면 저렇게까지 쥐어짜 내지는 못했을 것 같았는데 말이다.
역시, 전문가는 전문가인가?
“정수 군의 말에 따르면 레이스 길드가 최근 여러 대기업들로부터 천문학적인 자본을 투자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곳간은 가득 차 있고, 전투에 있어서 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는 성향을 고려한다면…… 전적으로 저희 측에 유리한 상황이었습니다.”
“박지원 형제님이 좋은 정보를 알려 주셨네요.”
내 말에 그 옆에 있던 박지원 씨가 흐뭇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리멘 교단의 경영 고문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길드들한테서는 뜯어낼만큼 뜯어내야죠. 술자리에서 전해 들은 내용이었습니다. 그 정보를 이렇게 빨리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여태까지 1기 교육생들에게 투자되었던 금액을 절반 가까이 회수할 수 있을 만큼의 큰 계약.
물론 그 계약의 이면에는 또 다른 조건이 하나 있었다.
“레이스 길드에 파견되는 1기 교육생들의 인솔자는 레오 대주교입니다, 성하.”
“그렇게 적혀 있네요.”
나는 라파르트 대주교가 건네준 계약서를 살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파견 인원은 초기에 저쪽에서 요구했던 5명이 아니라 10명. 거기에 인솔자로 레오가 함께한다.
연고도 없는 길드에 1기 교육생들만 달랑 파견하는 것보다야 이쪽이 훨씬 낫다.
레이스 길드가 알아서 조절이야 하겠지만, 욕심 앞에서는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다.
1기 교육생들은 앞으로 우리 교단을 이끌어 나갈 귀중한 일꾼들.
나 역시 그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레오를 포함시켜 주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보시면 계약서가 한 장 더 있습니다.”
“이건…….”
“레오 대주교를 파견하는 계약은 별도지요. 레오 대주교는 지구의 기준으로 디재스터급을 가볍게 상회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아무리 인솔자로 파견하는 거라지만, 맨입으로 보내 줄 수는 없지요.”
레오의 계약까지 포함하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계약.
레오가 전투에 가담할 때마다 추가 금액을 부담하게 되는 형태의 계약이었는데, 그 금액조차 비현실적인 수준이었다.
아무리 그들이 대기업의 투자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기둥이 뽑혀 나갈 수도 있는 형태의 계약이었던 것이다.
“교육생들의 일당과는 별개로 레오 대주교가 벌어들이는 수입은 그대로 교단에 귀속될 예정입니다.”
“레오가 섭섭해할 것 같은데.”
“대주교의 자리란 그런 자리지요. 교리에도 명시되어 있습니다. 대신에 레오 대주교에게 보너스를 넉넉하게 주면 될 것 같습니다.”
뭔가 양심에 찔리는 발언이기는 했다만, 발언의 당사자가 라파르트 대주교라서 딱히 문제가 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레오나 루나는 라파르트 대주교의 말이라면 순순히 따르니까 말이다.
이래서 학습된 공포가 무서운 법이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옆에 있던 박지원 씨가 라파르트 대주교의 설명에 몇 마디를 덧붙였다.
“교황님. 이번 계약은 오히려 저희가 손해를 보는 셈입니다.”
“……이렇게나 돈을 뜯어내는데요?”
“디재스터급 이상의 귀환자들이나 최상위권 S급 헌터들은 천금을 주고도 고용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번 원정에서 큰 성과를 거둔다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겁니다.”
하긴.
그러니까 황 대표가 밝은 얼굴로 돌아간 거겠지.
굉장히 만족스러운 듯한 표정이었지 아마?
“……잠깐만.”
처음에는 치료 능력을 지닌 성직자들 5명만 요구했던 사람이, 얼떨결에 레오까지 고용하는 계약서를 작성하고 갔다.
마치 자동차의 타이어만 사러 온 사람이 자동차까지 구매해 버린 것만 같은 상황.
대형 길드의 대표를 상대로 한탕 제대로 해 먹은 셈이다.
내 표정을 살피고 있던 라파르트 대주교가 인자한 표정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레오 대주교도 밥값은 해야지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성하. 제가 레오 대주교에게 잘 말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교단의 재정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으니, 적당히 공을 치하해 주면 됩니다.”
“밥값은 밥값인데…… 이건 수법이 완전히 중고차 딜러잖아?”
소문으로만 익히 들었던 중고차 판매, 일명 차팔이들을 연상시키는 수법.
하지만 라파르트 대주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방식이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성하. 저희도 만족하고 상대도 만족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상생이 아니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정수 군.”
“맞습니다. 윈윈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들은 필요한 전력을 보충을 했고, 저희는 이번 기회에 넉넉한 예산을 확보했고. 서로 좋은 게 좋은 거죠. 하하!”
“허허.”
뭔가 상생의 의미가 굉장히 곡해되어 있는 것 같은 현장.
백색공포는 과연 백색공포였다.
저 둘의 조합이라면 악마의 피까지 충분히 짜낼 것 같이 보인다.
어쩌면 더 나아가 악마들의 피를 말려 죽일 수 있지 않을까?
“아, 그리고 성하. 이번 기회를 통해서 대형 길드 쪽에도 교단의 입김을 불어넣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리멘 교단이 자신들을 적대하지 않는다, 조건만 맞는다면 언제든 일을 함께할 수 있다. 이번 레이스 길드와의 계약은 그런 의미도 내포하고 있으니까요.”
“그들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한다?”
“그렇습니다. 대형 길드들에 대한 영향력도 확대시킨다면, 리멘 교단이 원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훨씬 유용하지 않겠습니까?”
더불어 그들이 연을 맺고 있는 백명교의 영향력도 줄일 수 있을 테고 말이지.
나는 박지원 씨의 말을 들으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잃어버린 땅을 두고 벌어지는 대형 길드 간의 신경전을 이용해서 우리 교단의 위치를 더 공고히 한다라…….
나쁠 것 없지.
적은 최대한 적게, 친구는 최대한 많게.
변화하는 세상을 주도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도 하니까.
“앞으로도 두 분이서 잘 해내 주실 거라 믿습니다.”
“다 성하와 리멘님의 은혜 덕분입니다.”
“항상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역시는 역시.
앞으로도 둘에게 일을 계속 맡겨 두면 될 것 같았다. 이래서 인재들이 중요하다니까?
나는 다시 한번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잃어버린 땅을 향한 준비가 착실하게 끝나 가는 중이었다.
6.
유능한 부하 직원들 덕분에 오늘 역시 편안한 하루였다.
우리 신전의 지하에 구금해 두었던 다크 엘프 장로를 정부 산하의 연구 기관에 넘긴 것을 끝으로, 오늘의 내 공식 업무는 마무리.
다크 엘프 장로에 대한 처분은 지난번에 함흥에서 구출한 생존자들이 결정했다.
나는 그들이 다크 엘프들에게 여태까지 어떤 짓을 당했는지 알고 있었기에, 그들의 결정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인간을 상대로 끔찍한 짓을 저질렀던 놈이다.
그런 놈에게 편안한 죽음을 선사해서는 안 될 일이지.
녀석이 어떤 반항조차 할 수 없도록 완벽한 봉인까지 걸어 두었으니, 아마 정부 측 연구원들은 편안한 실험을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모든 업무를 끝마치고 집으로 퇴근했다.
“오빠 왔다.”
“큰오빠!”
시연이는 그 어느 때보다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근래에 본 시연이의 표정 중 가장 밝았고, 가장 귀여웠다.
그만큼 기분이 좋아보였다.
“유나네 아버지랑 싸운 건 아니지? 미안해 오빠. 내가 조금 더 참을 걸 그랬어.”
“아냐, 안 싸웠어. 오히려 죄송하다고 하시더라. 그러니까 시연이는 걱정하지 마.”
사과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알차게 털어먹었다는 말은 시연이의 동심을 위해서 일부러 말을 아꼈다.
어른들에게는 어른들만의 사정이 있는 법이니까.
『딱 봐도 한 탕 해 먹었네.』
-시연이가 교황의 진면목을 모른다는 게 아쉽군. 교황은 지옥까지도 따라가서 죗값을 물을 놈인데 말이지.
시연이 옆에서 나보고 들으라는 듯이 말하는 두 축생들.
나는 백설이와 베스의 목소리를 가볍게 무시한 다음, 시연이를 향해 말했다.
“시연아. 참는 게 착한 일은 아니야. 그런 친구들에게는 가끔씩 매운맛을 보여 줘야 돼.”
“진짜?”
“당연하지. 그래야 정신을 차리고 바른 사람이 되지 않겠어?”
내 말에 시연이는 해맑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나쁜 말은 안 썼어.”
“아주 잘했어.”
“헤헤.”
원래 그런 드립은 욕설을 안 섞어 줘야 효과가 백배인 법이거든.
그리고 개인적으로 아주 흐뭇한 장면이었다.
집에서는 항상 착하고 애교 많은 모습만 보여 줘서 친구들에게 만만하게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다만, 아까 시연이가 보여 준 매운맛을 보고 느낀 게 하나 있다.
우리 시연이, 어디 가서 기죽고 다니지는 않겠다는 것.
『주인이 아직 잘 몰라서 그래. 시연이가 얼마나 기가 센지 알아? 시연이한테 시비 걸면 죽음이야, 죽음. 시연이네 학교에도 기 센 애들 많긴 한데…… 시연이 앞에서는 그냥 순한 양이 되어 버린다니까?』
백설이가 내 다리에 자신의 머리를 부비면서 말했다.
『유나라는 걔도 평소에 시연이한테 기 많이 눌렸거든.』
‘그래서 사이가 안 좋았던 거냐?’
『그것보다는 그 유나라는 애가 좋아하는 현수라는 아이가 시연이를 좋아하더라고. 일종의 삼각관계라고 생각하면 편해.』
복잡한 치정 관계까지 얽혀 있었던 사건이었다는 건가.
어쩐지 시연이를 질투하는 티가 팍팍 나더라.
그렇게 불만이 쌓여 있던 차에 아버지가 자신의 뒤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먼저 선공을 가했던 모양이다.
뭔가 어린아이 같으면서도 어린아이 같지 않다고 해야하나.
요새 애들이 확실히 영악한 것 같긴 하네.
나는 시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백설이에게 은근슬쩍 물었다.
‘시연이는 그 현수라는 아이 좋아해?’
『절대. 현수라는 놈이 꼬맹이치고 잘생긴 편이긴한데, 시연이 눈 되게 높아. 승우만큼 잘생긴 게 아니라면…… 글쎄. 시연이 관심받는 건 힘들지도?』
승우만 조심하면 된다는 뜻이군.
이해했다.
그래도 시연이가 지닌 의외의 모습을 경험할 수 있어서 즐거운 시간이었다.
“오늘 학교에 왔던 사람들 중에서 큰오빠가 제일로 멋있었어! 우리 선생님도 되게 좋아하시더라구. 맞다, 큰오빠. 우리 선생님 엄청 예쁘지?”
“예쁘시더라.”
“남자친구도 없으시대. 내가 미리 조사해 뒀어. 그런데 나는 설화 언니나 루나 언니도 좋아!”
“그게 무슨 뜻일까?”
“그냥 그렇다구!”
여우 같은 녀석.
귀랑 꼬리만 없다 뿐이지, 하는 짓은 진짜 여우라니까?
그렇게 내가 시연이랑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쯤, 인욱이가 안방에서 걸어나왔다.
“왔어? 오늘 참관 수업은 어땠어.”
“시연이 덕분에 재밌었지. 시연이가 생각보다…….”
“맵지. 매워. 학교에서의 시연이는 진짜 맵다고.”
……너는 알고 있었구나?
인욱이는 다가와서 시연이의 어깨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이어 갔다.
“전학 가기 전의 학교에서는 남자애들도 기 다 죽이고 다녔어. 형 그거 알아?”
“뭐?”
“시연이 싸움도 잘한다? 한 번도 본 적 없지? 남자애들이랑 싸워도 안 져.”
“작은오빠.”
시연이는 인욱이를 빤히 쳐다보았고, 시연이의 눈빛을 마주한 인욱이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봤지, 형. 시연이 조심해. 딱 엄마 닮았으니까, 알겠지?”
“큰오빠. 빨리 씻으러 가! 나 작은오빠랑 이야기 좀 할게!”
기가 쎈 건 우리 집안 유전인 건가?
할머니도 그렇고, 엄마도 그렇고, 시연이도 그렇고.
정말 유전자의 힘이란 위대한 것 같다.
나는 겉옷을 벗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인욱이와 시연이에게 물었다.
“이번주 주말에 다 같이 바닷가라도 보러 갈까? 백설이랑 베스도 같이. 어때?”
“웬일로?”
“잃어버린 땅 들어가면 한참 바빠질 텐데, 그 전까지 충분히 놀아 둬야지.”
놀 수 있을 때 잔뜩 놀아 둬야지.
그렇게 인상 깊었던 하루가 끝나 가고 있었다.
7.
그로부터 2주일 후.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자, 슬슬 시작해 봅시다.”
본격적인 북진이 시작되었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