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50)
150화
48. 청소시간
1.
리멘 교단의 공식적인 첫 원정.
원정에 동원된 리멘 교단 1기 교육생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결연했다.
게이트나 던전을 해치웠던 것과는 달리, 이번 원정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국토, 분단되었던 국토를 되찾겠다는 대한민국의 숙원.
따지고 보면 각성한 지 반년 넘은 그들에게 그런 중요한 책무가 주어진 셈이니, 긴장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딱 한 명.
내 옆에 붙어서 쉴 새 없이 입을 여는 사람이 있었다.
“분위기가 꼭 옛날 생각나게 만드네요. 안 그래요, 성하?”
“옛날?”
“왜 있잖아요. 마수들로 드글거리던 침묵의 평야. 그곳에서 정말 뜨거웠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 그 오우거 킹 사지를 성하가 뽑아 버린 날. 사방에서 마수들 몰려들고…….”
“아, 기억난다.”
당연히 루나였다.
루나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 패션이라고 할 수 있는 청바지와 라이더 재킷을 입고 있었다.
갑옷과 사제복을 입고 있는 1기 교육생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
루나가 전장에 나설 때면 항상 순백색의 갑옷을 입었던 걸 생각해 봤을 때, 지금 당장으로서는 전투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레오는 자유시간 주시고, 저는 이렇게 부려 먹으시고. 너무 차별 대우하시는 거 아니에요?”
“레오가 왜 자유시간이야. 레오도 돈 벌러 갔어.”
“에이, 자유시간이죠.”
루나는 왼손에 들고 있던 감자칩 봉투에서 감자칩을 하나 꺼내 먹은 다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솔직히 레오를 부려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성하 말고 어디에 있을까요?”
“음.”
“다른 사람이 레오를 보고 ‘내 말을 순순히 들어줄 거야’라고 생각할까요, 아니면 ‘이 사람이 나를 반으로 접어 버리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을 먼저 할까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여 버렸다.
이럴 때 보면 루나도 참 논리적인 생각을 할 줄 아는데 말이야. 머리를 쓰기 싫은 건지, 쓸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건지.
이유를 참 모르겠다.
루나의 말대로 황 대표가 레오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것이라는 생각은 안 하고 있다.
레오가 나설 때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비용이 증가하는 것뿐만 아니라, 레이스 길드도 나름대로의 자존심이 있다.
본인들도 큰마음 먹고 잃어버린 땅에 진출하는 셈인데 레오에게 의존을 하겠어?
황 대표 그 사람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다.
필요하다면 자존심을 굽힐 수 있는 거지, 자존심이란 게 아예 없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루나의 말대로 레오 역시 누구의 통제를 받을 만한 녀석도 아니고 말이지.
교황청의 광견을 다룰 수 있는 건 오로지 교황청의 식구들뿐이었다.
그래도 내가 고객 관리는 확실하게 하고 오라고 당부를 해 뒀으니 알아서 잘하고 올 것이다.
“걱정하지 마.”
“레오가 정말 잘해 주고 올까요?”
“고객 만족시키고 돌아오면 내가 전자기기들 싸그리 사 주기로 했어. 컴퓨터도 새 거로 하나 맞춰 주기로 약속했으니까, 아마 잘하고 올 거야.”
얼리어답터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고 있는 레오에게는 최신형 전자 기기야말로 최고의 당근.
게다가 미국의 A사에서 한정으로 제작하고 있다는 스페셜 상품들도 구해 주기로 약속했다.
에이든이 해결해 주겠다더라.
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다음, 지도를 확인했다.
“오늘 우리가 처리해야 할 군락지는 총 두 곳. 마음만 같아서는 하루에 다 처리하고 싶지만, 속도보다는 꼼꼼하게 해야 한다. 특히 우리가 첫 번째로 해결해야 하는 여기, 블랙 놀. 이 개대가리들 습성 너도 잘 알지? 한 놈이라도 살려 뒀다는 말짱 도루묵이다.”
블랙 놀.
놀은 개와 비슷한 대가리를 지니고 있어서 나는 편하게 개대가리라고 부르는 녀석들.
털 색깔에 따라 레드 놀, 블랙 놀 이런 식으로 부르는데, 개중 검은색 털을 지닌 놈들이 지닌 특성은 상당히 고약한 편에 속했다.
어마어마한 번식력.
완벽하게 제거하지 못한다면 금세 숫자를 회복한다.
바퀴벌레나 다름없는 놈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개성에 전초기지를 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깔끔하게 처리해야 하는 녀석들.
루나는 내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다 죽이거나, 다 땅콩을 떼 버리거나. 둘 중 하나는 무조건 해야죠. 후자보다는 전자가 훨씬 쉬우니까, 빠르게 지워 버리죠?”
“땅콩을 뗀다는 표현은 어디서 배웠어.”
“인터넷에서요. 혹시 베스나 백설이도 땅콩을 떼 줘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베스랑 백설이가 옆에 없는 게 다행이네.
둘 다 기본적으로 암수의 구분이야 없다지만은, 저 소리를 들었으면 화를 냈을 게 틀림없었다.
특히, 백설이였으면 루나에게 달려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내가 루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을 때쯤.
“김시우 교황님. 개인적으로 여쭤볼 게 하나 있습니다.”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고 있던 김 실장이 나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김 실장은 전투 인력으로 온 건 아니었고, 정부와 리멘 교단의 유기적인 소통을 위해서 우리 쪽에 파견되었다.
나는 김 실장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거죠?”
“도대체 리멘 교단의 1기 교육생 분들을 어떻게 교육시키셨기에…….”
김 실장은 저 앞에서 전진하고 있는 우리 교단의 1기 교육생들을 쳐다보았다.
아까도 말했지만, 다들 긴장을 하고 있기는 했어도 두려워하는 기색이라곤 1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몇몇은 묘한 흥분감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
훈련 기간 내내 지옥 같은 훈련과 실전을 경험한 1기 교육생들이었으니, 오히려 긴장을 하는 게 더 이상하긴 했다.
나는 김 실장의 말을 들으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건틀렛을 착용하면서 말했다.
“교육생들을 죽기 직전까지 계속 몰아붙이면 저렇게 됩니다. 하지만 따라 하지는 마세요. 신성력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교육 방식이거든요.”
신성력의 압도적인 재생 능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교육들.
부족한 부분은 몸으로 때운다.
적의 공격에 피해를 입을 때마다 그때의 경험이 고스란히 몸에 축적된다.
피를 흘려 가는 실전이야말로 우리 1기 교육생들이 급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실질적인 이유다.
그리고 나 역시 그 무식한 훈련 방식의 산증인이기도 했다.
“김 실장님.”
“예, 교황님.”
“사람은 그리 쉽게 안 죽습니다. 딱 죽기 직전까지만 굴리면 바로 저렇게 됩니다. 생각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우리가 남도 아니고…… 안 그래요? 우리가 나눈 정이 있는데, 위탁 교육쯤 못 해 드릴까.”
“저는 그게 아니라…….”
“스카우트 제의는 유효하니까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내버려 둬도 알아서 잘 돌아가는 지금, 내 비서 역할을 수행해 줄 인재 한 명만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 말이다.
그런 점에서는 김 실장이 최고의 적임자다.
꼼꼼하게 확인을 잘하는 점도 그렇고, 성격도 나랑 잘 맞는 편이고.
와 주기만 한다면 참 좋을 것 같다.
“성하.”
그런데 그때였다.
내가 김 실장을 상대로 열심히 영업을 하고 있는 사이, 루나가 나지막하게 나를 불렀다.
“보고 있어.”
“100마리쯤 되는 규모의 정찰대네요. 어떻게 하실래요? 정찰병들 그냥 돌려보내면 귀찮아질 텐데.”
루나의 말대로 저 멀리서 검은색 갈기를 지닌 놀 100마리가 주위를 수색하는 중이었다.
후각이 좋은 놈들이라서 그런가, 바람에 섞여 있던 우리들의 냄새를 감지한 모양이다.
“개코는 개코야.”
“후각 하나로 먹고사는 놈들이잖아요.”
“100마리라…….”
위협적인 숫자는 아니다.
이번 원정에 참여한 1기 교육생들의 숫자는 도합 80명.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데다, 전원이 토비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어 낸 장비로 무장하고 있는 상태.
100마리 정도면 내 손에 순식간에 정리될 숫자였지만, 그렇게 해서야 교육생들을 데려온 이유가 없었다.
“전투 준비시켜. 교육 성과나 한번 보자고.”
1기 교육생들에게는 놀 한 마리 한 마리가 소중한 경험치였다.
우리 애들의 전투 감각이 어디까지 올라와 있는지 확인할 필요도 있었으니, 100마리 규모의 정찰대 정도는 신입들에게 맡길 생각이다.
대신 한 가지만 확실하게 해 두면 된다.
“가져온 최상급 신성석 있지? 그걸로 방음이 가능할 정도로만 신성 결계를 쳐 둬. 놀들이 하울링하면 귀찮아진다.”
놀들은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 하울링을 통해서 동료들을 끌어모은다.
내 말의 뜻을 이해한 루나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루나는 짧게 대답한 다음, 곧바로 교육생들을 향해 소리쳤다.
“드가자!”
“리멘을 위하여!”
“리멘을 위하여!”
그렇게 우리 교단의 첫 전투가 시작되었다.
2.
‘……평가를 또 바꿔야겠군.’
김 실장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리멘 교단의 1기 교육생들.
그들은 불과 2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C급 헌터쯤으로 평가받는 인원들이었다.
이번 잃어버린 땅 원정에 동원된 다른 대형 길드의 전투원들은 최소 A급 헌터들인 걸 감안했을 때, 새내기 티를 벗지 못한 1기 교육생들은 이번 원정에서 큰 활약을 보여 주지 못할 것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판단을 비웃기라도 하듯.
콰지지지지직-
콰아아아아앙!
깨개애애앵-!
리멘 교단의 1기 교육생들은 그야말로 흉악한 전투를 펼치고 있었다.
사방에서 두개골이 부서지고, 피가 흩뿌려진다.
‘다들 미쳤어.’
1선에 선 성기사들이 철퇴를 휘두를 때마다 놀의 대가리가 뭉개진다.
그리고 성기사들 사이로 민첩하게 파고드는 놀들은 모두 검은색 경갑을 걸치고 있던 사제들에 의해 목이 꺾여 버렸다.
순수한 폭력의 현장.
리멘 교단의 가장 큰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김시우 교황과 루나는 투입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 둘은 자신의 옆에서 팔짱을 낀 채로 전투를 직관하는 중이었다.
“사제를 선택한 녀석들에게 경갑을 입혀 둔 건 최고의 판단인 것 같아요, 성하.”
“여유 있을 때 과감하게 투자해 줘야지. 아직 쟤네들이 우리처럼 몸이 단단하지는 않잖아? 재수 없게 찔리면 죽는다고.”
“우리 병아리들도 언젠가는 피부로 칼을 튕겨 낼 수 있겠죠?”
“당연하지. 리멘 교단의 전투원이라면 그 정도는 해 줘야 되는 거야.”
김 실장은 그 둘의 대화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칼을 튕겨 내는 피부라니.
신의 뜻을 따른다는 성직자들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차력사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경지가 아닌가.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김 실장 역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깨애애애애애앵!
놀들의 비명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처음에 기세 좋게 달려들었던 놀들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몬스터들이 불쌍할 지경이네.’
인간과 몬스터의 입장이 정반대로 바뀐 듯한 모습.
두려움에 질린 놀들이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몸을 피하고 있었고, 리멘 교단의 교육생들은 그런 놀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두꺼운 갑옷을 입고 있는 성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놀들을 포위했으며, 성기사들 사이사이에서 뻗어 나온 팔들이 놀들의 목을 움켜쥐었다.
우드드드득-
우드드득.
사제들의 손에 잡힌 놀들의 목은 나무젓가락마냥 손쉽게 부러졌다.
궁지에 몰린 놀들이 거세게 반격을 해 오기도 했지만, 녀석들의 무기는 교육생들의 장비에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그러나 변수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법.
“어어!”
공포에 잔뜩 질린 놀 한 마리가 내지른 창이 한 사제의 어깨에 박혀 들어갔다.
갑옷의 이음새 부분이었다.
그러나 김 실장은 뒤에 이어진 사제의 반응을 보자마자 다시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우드드득!
창에 어깨를 꿰뚫렸던 그 사제는 오히려 창대를 왼손으로 강하게 움켜쥔 다음, 남은 오른손으로 놀의 대가리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놀의 대가리가 수박처럼 터져 버렸다.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본인 앞의 적을 정리한 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어깨에 박힌 창을 뽑아내더니, 손을 환부에 가져다 대었다.
우우웅-.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새하얀 빛.
사제는 신성력을 통해서 간단하게 응급조치를 한 다음, 곧바로 다른 놀을 향해 달려들었다.
‘……미친놈들.’
그리고 그때, 김 실장의 귓가에 다시 한번 무서운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창 보니까 또 옛날 생각나네. 그때 기억나냐? 나 마룡왕 잡았을 때 있잖아.”
“아! 그 도마뱀 새끼! 당연히 기억나죠. 성하가 그때 아마…… 흉부에 창이 박히셨었죠? 그 상태로 마룡왕 목 꺾으셨잖아요.”
“와, 그때 창이 1cm만 옆으로 박혔어도 즉사였다. 그때 생각만 하면 가슴이 찌릿찌릿하다니까?”
“에이, 성하. 교단의 전투원 중에서 안 그랬던 사람이 어디 있어요? 성하 도끼에 등 연속으로 세 번 찍혀 봤어요? 나 그때 진짜 죽을 뻔했다니까?”
“여기 배에 흉터 보이냐? 이건 말이야, 내가 분노의 마왕이랑…….”
“칼빵 누가 더 많이 맞았는지 해 보자는 거예요?”
“어, 내가 이김. 수고.”
김 실장은 그 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몸을 부르르 떨 수밖에 없었다.
‘제일 미친놈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