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55)
155화
5.
나는 자비로운 결정을 내렸다.
6개월 분할 납부. 그것도 무이자로.
레이스 길드라면 인지도가 높은 대형 길드기도 했으니, 돈을 떼먹고 도망갈 일도 없고.
우리가 사채업을 하는 사람들도 아닌데 이자를 물을 필요가 있겠어?
게다가 우리 교단의 인원들을 고용하신 우수 고객님이신데, 그 정도 융퉁성은 베풀어 줘야지.
그리하여 레이스 길드의 의뢰비 정산 문제는 일단 정리가 되었고, 그 뒤로 다른 길드들도 속속 전초기지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도깨비 길드와 설화 길드가 두 번째.
그들 역시 큰 문제 없이 전초기지에 도착했다. 기껏해야 경상자가 끝.
에이든이랑 쉴 새 없이 훈련한 최 대표의 전투력부터 시작해서, 기량이 한껏 발전하고 있는 설화까지.
이 둘이 이끄는 전력은 상당히 안정화되어 있었고, 그쪽에 파견한 우리 1기 교육생들도 에이스들로만 골라서 보냈다.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잃어버린 땅 원정 1일 차가 마무리되었고, 우리들은 전초기지 주위에다가 미리 준비해 온 신성석으로 결계를 쳐 두었다.
몬스터들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도록 말이다.
물론 정부 측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대가를 지불받았다.
확실히 요새 대한민국 정부의 사정이 많이 좋아졌나 보다. 아주 넉넉하게 넣어 주더라.
유선호 장관이 신경을 써 준 듯했다.
아, 그리고 친구의 도움도 좀 받았다.
“우리 애들 거기서 쉬어도 되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 줄 필요가 있을까?”
“그만큼 우리들이 리멘 교단을 신경 써 주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 왜, 불편해? 불편하면 말하라고, 시우.”
“그렇진 않은데…… 솔직히 네가 더 불편해 보인다.”
나는 페어리들의 놀이터가 되어 버린 에이든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계획은 전초기지에서 머물면서 원정을 진행하는 거였는데, 여기에서 미국이 끼어들었다.
나를 비롯한 리멘 교단의 인원들이 편하게 쉬라고 헬기로 출퇴근 서비스를 제공해 준 것이다.
근래에 들어 느끼던 건데, 확실히 개성과 서울의 거리가 가깝다.
자가용 헬기만 있으면 진짜 출퇴근이 가능한 수준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개성에 전초기지를 세우고 안정화시키는 구간이라서 이동 거리가 짧아서 그렇다.
추후에 더 북쪽으로 이동하게 되면 지금과 같은 출퇴근은 힘들지도 모른다.
“이 귀여운 친구들이 나를 좋아해서 다행이야. 어때, 좀 잘 어울려? 내가 이래 뵈도 저쪽 세계에서는 귀여움으로 유명…….”
“그 세계에 있는 귀여운 건 네가 다 죽였지? 그렇지 않고서야 네가 귀여움으로 유명했을 리가 없는데.”
“무슨 그런 섭섭한 말을.”
에이든은 그렇게 말하며 솥뚜껑만 한 손바닥을 페어리들을 향해 펼쳤다.
“우와아. 이 인간 봐! 손바닥이 우리 세 명 합친 것만 해!”
“인간 아닌 거 아니야? 트롤! 트롤 같은데?”
“아니야. 이건 트롤이 아니라 오우거야!”
“쉬잇. 우리 은인 친구인 것 같은데…… 알아들으면 어떻게 해?”
“걱정하지 마! 교황님 아니면 우리 말 못 알아들어!”
우리들의 리액션 맛집, 페어리들은 에이든의 손바닥을 만지작거리면서 쉴 새 없이 수다를 떨어 댔다.
에이든은 쉴 새 없이 재잘거리는 페어리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곧 나를 향해 넌지시 물었다.
“뭐라고 하는 건지 도통 모르겠어.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한 것 같다.”
“뭐가 확실한데?”
“칭찬이야. 내 손바닥을 두고 칭찬을 하고 있어.”
트롤의 손바닥 같다, 오우거의 손바닥 같다.
이 말이 과연 칭찬일까?
야만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칭찬에 가깝겠군.
나는 집무실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다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칭찬 맞아.”
“역시! 귀여운 친구들은 귀여움을 알아보는 법이지.”
“한 번만 더 네 입에서 귀엽다는 말 나오면…… 알지? 야마타노오로치 때처럼 확 그냥.”
그때의 기억이 워낙 인상적이었을까?
에이든은 어깨를 으쓱이면서 화제를 돌렸다.
“천벌 프로토 타입의 결과가 아주 뛰어났다는 소식은 들었다. 고무적인 일이야.”
“아직 개선할 부분이 많다. 제작 단가가 비싸.”
“단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우. 너는 천벌이 지닌 가치에 대해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 같군.”
“……그건 네가 미국에서 살아서 그렇구요.”
이래서 미국 놈들은 다른 나라에 공감을 못 해 준다니까?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다음,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일단 손이 너무 많이 가.”
“언데드 타입의 몬스터들을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수할 만하다. 물량만 확보할 수 있다면, 비각성자들로 구성된 병력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잖냐? 거기에다가 리멘 교단만이 만들 수 있다는 특수성은…… 리멘 교단을 조금 더 특별한 집단으로 만들어 줄 테지.”
언데드 타입의 몬스터들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각지에서 골칫거리라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다.
에이든의 말대로 천벌은 우리 교단의 영향력을 극대화시키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호기심인데, 리멘 교단은 무기를 개발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은 없나?”
“거부감? 무슨 거부감.”
“교단 차원에서 무기를 개발하는 건…… 아무래도 그 무기라는 게, 살상과 관련되어 있으니 하는 말이다.”
“아아. 그건 전혀 문제없어. 에덴에서는 연금술사들까지 고용해서 신성 폭탄 같은 것도 만들어 봤었는걸. 그리고 어차피 신성력이 들어간 무기는 마기에 물든 놈들이 아니면 효과도 별로 없어.”
“……그런가?”
“응. 그렇게 따지면 루나가 휘두르는 철퇴는 얼마나 야만적이야? 마수랑 마족 새끼들이 얼마나 지독한 놈들인데, 그놈들을 상대하는 무기를 개발하는 건 당연한 거야.”
독실한 신앙심과 믿음으로 악을 이겨 낸다?
이거 싹 다 개소리다.
무력을 동반한 악은 무력을 동반하지 않으면 막아 낼 수 없다.
아주 당연한 이치지.
내 단호한 대답을 들은 에이든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자신의 주머니에서 밀봉된 편지 봉투 하나를 꺼냈다.
“너에게 줄 게 있다, 시우.”
“청첩장이냐?”
“아쉽게도 난 재혼할 생각은 없다. 내가 사랑하던 아내는 이미 이 세상에 없거든.”
“……저쪽 세계에서 부인 많았다며?”
“부족을 통합시키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정략결혼이었을 뿐이다. 그녀들에게 마음을 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뻔뻔하기도 해라.
나는 탐탁지 않다는 표정으로 녀석을 쏘아본 다음, 녀석이 건네준 편지 봉투를 받았다.
“그럼 뭔데 이거.”
“제3회 세계 각성자 포럼 초청장. 1달 후, LA에서 개최된다. 그들이 너를 초대했다.”
“나를? 왜?”
“대한민국의 부흥기를 연 이레귤러이자, 신성 계열 플레이어의 정점. 이것만으로 초청할 이유는 충분하지. 너도 슬슬 동북아시아가 아니라 세계로 진출할 때가 되지 않았나?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더 큰물에서…….”
“난 그냥 한국에서 가족들이랑 쉬고 싶은데? 싫어. 안 가.”
큰물은 무슨.
집에서 쉬는 게 내 평생의 소원인데.
나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녀석의 제안을 거절했다.
각성자라고 거들먹거리는 놈들만 모여들 텐데, 그런 자리를 내가 왜 가?
“흠. 역시 그렇군.”
하지만 에이든은 내 대답을 예상했다는 듯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넌 오게 될 것이다.”
“아니, 안 간다니까?”
“미국의 정보력을 너무 과소평가하지 않았으면 싶어.”
도대체 이게 무슨 신선한 개소리야?
내가 안 간다면 안 가는 거지.
그러나 그로부터 1시간 후.
나는 ‘미국의 정보력’이 무슨 의미였는지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6.
하루의 고된 일정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기분 좋게 샤워를 하고 거실로 나와, 인욱이가 깎아 둔 사과를 한 입 집어넣었을 때쯤.
시연이가 방에서 쪼르르 걸어 나왔다.
“오빠!”
“응?”
“엠마 할머니가 그러는데 LA가 그렇게 좋다고 하더라구! 이쁜 곳도 많구…… 나 살면서 외국 여행 한 번도 안 가 봤잖아? 헤헤.”
에이든이 말했던 ‘정보력’의 정체.
그것은 바로 내가 시연이밖에 모르는, 동생 바보라는 특징이었던 것이다.
나는 내 앞에서 LA에 대한 노래를 부르는 시연이를 바라보면서 애써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응!”
“학기 중이니까 나중에 방학에 가는 건…….”
“맞다! 오늘 교장 선생님이랑 상담했어! 작은오빠도 같이 갔었어! 그치, 작은오빠?”
“안 그래도 형 돌아오면 얘기하려고 했는데.”
내 옆에서 사과를 함께 먹고 있던 인욱이가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시연이가 이번에 그 뭐냐, 제3회 세계 각성자 포럼? 거기에 초청되었다고 하더라고. 최연소 비각성자 초청이라고 하던데, 학교 쪽으로 이야기가 들어왔다나 봐.”
대한민국의 초등학생이 각성자 포럼에 초청받았고, 하필이면 그 초청받은 초등학생이 내 동생인 것이 단순한 우연일 확률. 그 확률이 과연 몇 퍼센트나 될까?
냄새가 난다. 그것도 아주 진득하게.
“그래서 시연이가 지금 바람 들어간 거야. 나는 형한테 물어본다고 했어. 형이 싫어할 수도 있잖아.”
그래도 인욱이가 참 경우가 있다. 나에게 의견을 먼저 구할 생각도 하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네.”
“비행기 석도 퍼스트 클래스로 제공. 호텔도 최고급. 여행 중에는 사용 한도 없는 카드도 지급. 최고의 경호원도 붙여 준다고 하고, 뭐 그 밖에도 엄청 혜택은 많더라. 그리고 가장 혹한 게 뭔지 알아?”
“뭔데?”
“이번 포럼에 참석하면 추후 미국 대학교 진학을 희망할 때 무조건 합격할 수 있는 혜택을 주겠다더라. 살짝 솔깃했어.”
다시 한번 말하지만, 확실히 미국의 정보력이 굉장하다.
학생을 기르는 가정이 가장 혹할 조건을 내지르는구나.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싫어하는 티를 낼 수도 없는 것이,
“해외여행!”
시연이가 아주 해맑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것도 근래에 들어 가장 밝은 미소.
저렇게 가고 싶어 하는 애 앞에서 분위기를 깨는 것도 영 못 할 짓이다.
“한 가지는 확실하네.”
“뭐가?”
“내일 에이든 보자마자 반은 죽여 둬야겠어.”
분명히 에이든이 넘긴 정보일 거다.
다르게 보면 미국에서 이런 방법까지 사용할 정도로 급하다고 볼 수는 있겠지만, 그건 내가 알 바야?
방법이 괘씸하잖아, 방법이.
“큰오빠.”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방방 뛰고 있던 시연이가 내 오른손을 잡았다. 그리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큰오빠가 싫으면 안 가도 돼.”
“……진짜?”
“응! 살짝 시무룩하긴 하겠지만, 괜찮아! 그래도 큰오빠가 내 옆에 있잖아!”
시연이는 그렇게 말하며 눈을 반짝였다.
나는 해맑은 시연이를 바라보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유전자라는 게 참 무섭다.
웃는 얼굴로 저렇게 압박하는 게 쉽지 않은데 말이야, 도대체 누구한테 저런 기술을 배웠는지 원.
이렇게 해맑은 얼굴에 안 된다고 말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그리고 사실 내가 생각해 봐도 거절할 이유가 딱히 없기도 하다. 미국에 슬쩍 들른다고 해서 손해 볼 건 없긴 하니까.
1달 뒤면 개성 전초기지도 어느 정도 안정화가 될 테고, 2차 계획인 평양까지는 반년이나 남은 상황.
“오빠가 한번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게.”
시연이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긍정적으로 고려해 볼 가치가 있었다.
그렇게 내가 미국행을 두고 가족들이랑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쯤이었다.
-정부와 대형 길드의 주도하에 개성시 인근의 몬스터들이 정리되고 있는 가운데, 한편 이능관리부 청사에서는 중소 길드들의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원정에 포함되지 못한 헌터들을 중심으로 잃어버린 땅에 들어갈 권한을 공평하게 부여하라는 여론이 확산되는 가운데……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잃어버린 땅에 들어가고자 하는 헌터들의 시위.
인욱이는 접시에 남아 있던 마지막 사과를 입에 넣은 다음,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미스릴 러시. 인터넷에서는 그렇게 부르더라. 다들 잃어버린 땅에서 제대로 한몫 잡고 싶은가 봐. 요새 인터넷이든, TV든. 어디를 가더라도 저 이야기밖에 안 나와.”
“골드 러시에 빗댄 모양이네.”
“맞아. 잃어버린 땅에서 나오는 부산물들이 던전이나 게이트와는 비교할 수 없다는 소문이 돌고 있더라. 그래서 저 사람들이 저러고 있는 거야.”
목숨을 걸고서라도 한 몫 크게 잡겠다는 이들이 뭉쳐서 만들어 내는 광기.
나는 뉴스를 통해 보도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작게 한숨을 뱉어 냈다.
“느낌이 안 좋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리고 늘 그렇듯, 내 직감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