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61)
161화
5.
사부란 무엇인가.
그것은 스승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는 단어다.
즉, 누군가를 가르치는 존재란 뜻.
그런 의미에서 접근해 본다면.
“그래서 내가 사부라고?”
“예! 비록 신앙은 다르지만, 사부께서 저에게 인생의 목표를 가르쳐 주셨거든요! 항상 뵙고 싶었어요, 사부.”
내가 이 녀석한테 뭔갈 가르쳐 줬다면, 사부라고 불리는 게 아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
“나 오늘 너 처음 보는데.”
이 녀석과 내가 초면이라는 것만 빼면 말이다.
내가 이 녀석을 가르친 적이 있으면 몰라, 이 녀석은 진짜 난생처음 보는 얼굴이다.
“제 이름은 그레이스 바클리. 편하게 그레이스라고 부르셔요! 아니면 제자로 불러 주셔도 좋아요.”
“아니, 그러니까 내가 왜 네 사부…….”
“잠시만요!”
그레이스는 손에 들고 있던 가방에서 주섬주섬 뭔갈 꺼냈다.
가방 안에서 튀어나온 것들의 정체는 단순했다.
“제가 사부님에 대한 기사를 스크랩해 둔 거예요.”
그녀의 말대로 나에 대한 기사들을 스크랩해 두었는데, 특이한 점은 전부 한국어로 보도된 기사들을 스크랩해 두었다는 것이다.
가만 보니까 아까부터 얘 한국어로 이야기하던데.
한국어 능력자인가?
“제가 어렸을 때부터 케이팝을 즐겨 들었거든요. 그래서 한국어 되게 잘해요. 기특하죠, 사부님?”
쉴 새 없이 재잘거리는 그레이스.
나는 일단 그녀를 뒤로하고 기사들을 확인했다.
「직접 나서서 빌런들을 청소하는 리멘 교단의 김시우 교황!」
「리멘 교단의 훈련에는 비밀이 있다?」
「리멘 교단 훈련소 집중 취재.」
「리멘 교단의 루나 레벤톤, ‘악을 직접 처단하는 것이야말로 리멘께서 내리신 우리들의 사명.’」
대부분이 세종일보의 유 기자들을 통해서 보도된 기사들이었다.
특히, 저 훈련소 관련 기사.
우리 교단의 1기 교육생들과 2기 교육생들이 주로 어떤 훈련을 받는지, 어째서 그런 훈련을 받는지에 대해 취재한 기사들이었다.
“저는 그중에서도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이 가장 감명 깊었거든요. 악과의 타협은 없다. 악에게 허락된 건 오로지 비참한 최후뿐이다!”
“……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
“기사에 그렇게 적혀 있었어요! 아, 그리고 저 오피셜 리멘 구독자예요.”
그레이스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구독 목록을 보여 주기까지 했다.
그 구독 목록조차 심상치 않았다.
「오피셜 리멘」, 「주간 김시우」, 「성지에 사는 사람들」 등등, 온갖 우리 교단이나 나와 관련된 미튜브 채널들.
“보세요, 사부님. 저 이런 것도 습득했어요.”
그녀는 손톱에 신성력을 두르더니 곧장 자신의 손등을 베어 버렸다.
갑작스러운 돌발 행동에 당황할 뻔했지만, 나는 그녀가 왜 그런 짓을 벌이는지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음?”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었다.
그녀의 상처 부근에 순간적으로 모여든 신성력을 보았을 때, 신성력의 운용이 꽤 자연스럽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성력을 통해서 스스로의 회복력을 강화시키는 것.
그것은 훈련소에서 신입 교육생들에게 가르치는 신성력 운용법 중 하나였다.
신성력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사용자의 회복력을 높여 주는 건 맞지만, 이렇게 급격한 회복력을 보여 주기 위해서는 충분한 훈련이 필요했다.
“이걸 스스로 습득했다고?”
“스스로 습득하진 않았어요. 리멘 교단과 관련된 미튜브, 인터넷 기사, 이런 것들을 분석했거든요. 물리력만큼 효과적인 수단은 없다, 저는 사부님의 지론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똘똘한 아가씨였군. 시우, 이 아가씨가 모나코에서 보여 준 활약상에 대해 들어 본 적 있나?”
“나야 모르지.”
“온몸에 마수의 가시가 꽂힌 채로 날뛰었다더군. 잔 다르크의 재림이라는 이야기까지 듣고 있어.”
“저에게는 너무 과분한 이야기죠. 펜릴의 몸에는 손도 못 댔어요. 피라미들 정도만 정리했을 뿐이에요.”
신성 계열 플레이어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지 고작 반년 가까이 된 시점.
우리 교단의 1기 교육생들조차 국가위기급 마수 토벌전에는 집어넣을 생각을 못 하는데, 이 녀석은 독학으로 그 자리까지 올라섰다.
아무리 우리 교단의 훈련 방법을 벤치마킹했다고 한들, 이끌어 주는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이런 수준까지 성장했다면 한 가지 결론에 이른다.
“천재였네.”
이 녀석은 천재다.
선지자로서 선택된 운명인 건 당연하고, 선지자로서 허락된 은총도 전투와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잠재력이 높은 원석이 스스로를 가공하는 방법까지 습득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나는 그제야 이 녀석의 눈빛이 익숙했던 이유를 알아차렸다.
“……이거 완전 루나잖아.”
선지자 출신.
신성력 운용 능력 최상급.
전투 능력 최상급.
게다가 쉴 새 없이 나불거리는 주둥아리까지.
그야말로 루나 Mk.2.
“자길 한국에 두고 갔다고 도플갱어를 미국으로 보내? 이런 사악한…….”
“제가 사부님 다음으로 존경하는 사람이 바로 루나 레벤톤 경이에요. 어떻게 아셨지? 역시 우리 사부님. 정말 대단하시다니까.”
그레이스는 해맑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곧 내 옆에 앉으면서 눈을 반짝였다.
“저도 이번에 출국하기 전에 이탈리아에 있는 빌런들 싸그리 반으로 접고 왔어요. 칭찬해 주세요, 사부.”
“빌런은 역시 반으로 접어야 제맛……을 떠나서, 너 가톨릭이잖아. 개종할 거야?”
“그럴 리가요. 저는 뼛속까지 가톨릭인걸요. 저에게 이런 능력을 주신 하나님께 항상 감사드리고 있어요.”
“잘 봐. 내가 네 사부님이라고 치자. 그걸 너희 쪽에서 받아들이겠니?”
이 정도 재능이라면 머지않아 굉장한 수준의 각성자로 발돋움할 것이다. 아니, 이 정도만으로도 벌써 최고의 유망주로 주목받기에 충분한 재능이다.
즉, 우리는 기름과 물처럼 섞일 수 없는 운명.
그러나 그레이스의 입에서 다시 한번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말이 튀어나왔다.
“우리 교황님께서는 좋아하시던데요. 아, 그리고 지금쯤이면 리멘 교단의 신전에도 연락이 갔을 텐데…….”
‘우리 교황님’이라는 건 가톨릭의 교황을 의미하는 거겠지. 신부님들이랑 이야기할 때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을 교황이라고 지칭하는 걸 볼 때마다 어색하긴 하다.
그때였다.
띠리리리링-.
타이밍 좋게 내 스마트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라파르트 대주교.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교황 성하, 바티칸에서 친서가 도착했습니다. 친서의 내용을 찍어 전송하겠습니다.
잠시 후, 라파르트 대주교로부터 친서가 담긴 사진이 전달되었다.
“저희는 사부님께서 이번 포럼에 참가하실 줄은 몰랐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제가 직접 친서 챙겨 올걸.”
교황이 친필로 작성한 친서.
부드러운 필체로 쓰여진 친서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동쪽의 교황님, 그레이스에게 신성력에 대한 가르침을 부탁합니다. 교육 비용 역시 충분히 지불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교류를 기대하고 있습니다.]그리고 그 밑에 적혀 있는 대략적인 비용.
그 비용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 그레이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인자하게 미소를 지었다.
“만나게 되어 반갑다, 제자야.”
“예! 사부님! 제자, 열심히 하겠습니다!”
거절하기에는 너무 큰 액수였다.
6.
새로 들이게 된 제자에게는 호텔의 방 하나를 배정해 주었다.
바티칸과의 사이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는데, 저쪽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 준 셈이라 기꺼이 그 손을 잡기로 했다.
아마 그레이스를 우리 쪽에 위탁 교육을 보내는 건 정치적인 의미도 꽤 담겨 있을 것이다.
바티칸에서 우리 교단을 적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아하, 그런 식으로 힘을 줘 버리면 예쁘게 접을 수가 있네요, 사형.”
“자칫하다가는 뼈만 튀어나오게 되니 힘 조절을 잘해야 한다. 섬세한 테크닉이 필요해.”
“항상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레오와 그레이스가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
……어쩌면 그냥 감당하기 힘든 캐릭터라서 우리 쪽에 떠넘긴 것 같기도 하고.
확실히 미친놈은 미친놈이 잘 가르치니까.
그렇게 보면 바티칸에서 우리 교단에 폭발물을 던진 셈인데, 적대하겠다는 소린가?
모르겠군.
“그런데 제자야.”
“예, 사부.”
“도대체 그 사부, 사형, 그 단어들은 어디에서 가져온 거니?”
그레이스는 아까 전부터 나를 사부라고 칭하고 있고, 레오에게는 사형이라고 칭하고 있었다.
“동양에서는 이렇게 부르지 않나요, 사부님?”
“어디에서 배웠어?”
“무협 소설에서요.”
“무협 소설로 동양의 문화를 배웠구나.”
“재밌더라구요.”
“재밌긴 하지.”
여러모로 골 때리는 캐릭터였다.
가톨릭 출신인데 리멘 교단에서 교육을 받고자 하고.
서양인이면서 한국 무협 소설의 호칭을 사용하고.
이대로 쭉쭉 성장한다면 루나와 맞먹는 수준의 혼돈을 초래할 인물인 게 분명했다.
하지만 어쩌겠어? 이미 돈 받기로 했는데.
저쪽에서 충분한 금액을 지불한 이상, 이미 소중한 우리 식구다.
레오를 사형으로 부르든, 루나를 사저로 부르든. 본인들만 동의한다면 딱히 상관없다.
게다가 레오도 사형이라고 부르면서 친해지려는 그레이스가 싫지만은 않은 눈치였다.
“이번 각성자 포럼에서는 같이 움직이고, 우리가 한국으로 귀국할 때도 같이 가는 걸로 하자. 그 전까지는 레오한테서 주로 배우면 된다. 레오가 가르치는 것도 잘해.”
“예! 스펀지처럼 쏙쏙 빨아들이겠습니다!”
의욕과 광기가 반반씩 섞여 있는 저 위험한 눈빛.
루나와 만났을 때 어떤 케미를 보여 줄지 내심 기대가 된다.
나는 그레이스를 바라보면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웃으면서 지켜보고 있던 에이든이 위스키를 마시면서 한마디 던진다.
“제자를 받는 모습이 보기 좋다. 제법 잘 어울려.”
“비꼬지 마라.”
“나도 어차피 계속 한국에 있을 텐데,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라.”
“네 도움은 사양한다.”
에이든까지 한 스푼 넣어 버리면 정말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여기 분위기는 좋네.”
나는 눈앞의 거대한 연회장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들과 LA 나들이를 끝내고 도착한 이곳.
각성자 포럼에서 주최하는 연회가 예정된 고풍스러운 호텔의 연회장.
입구부터 느껴지는 분위기가 아주 예술이었다.
“살벌해 아주. 사람 몇 죽어 나가겠어.”
“작년에 프랑스에서 개최되었을 때는 실제로 연회에서 몇 죽었다.”
“그래? 성질머리 한번 예술이신 분들이네.”
“각 집단의 자존심을 멘 채로 나온 자리니까, 무시당할 바에야 싸우겠다는 거지. 기선 제압도 나름 필요할 테고.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우린 유럽 놈들처럼 미지근하게 대응할 생각은 없다.”
에이든은 이런 연회장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방에서 편하게 병째로 들이켜는 걸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에이든이 이런 자리에 직접 참석하는 걸 보았을 때, 아마도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따로 명령을 받은 모양이었다.
“피 냄새가 나는 곳이야. 이런 곳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야말로 전사의 유흥 아니겠어?”
……아님 말고.
그냥 싸움 구경하러 온 것 같기도 하다.
에이든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린 다음, 슬쩍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오늘 주인공은 너다.”
“왜?”
“다들 궁금해할 거다. 새롭게 등장한 이레귤러니까. 네 성향, 성격. 그 모든 걸 탐색하려 들겠지. 원래 그러라고 있는 연회야.”
“맞아요, 사부님. 다들 사부님만 의식하고 있을걸요.”
한마디로 탐색전이 이루어지는 장소.
지난번 동북아교류전 때도 그렇고, 연회의 의미가 많이 변질된 것 같다.
“시우, 좋은 팁을 알려 주마.”
“일단 들어는 볼게.”
“시비를 걸면 반으로 접어 버려라. 안면을 함몰시켜도 좋고.”
“너희 집 안방에서 그래도 되냐?”
“안방이니까 하는 말이다. 마음껏 날뛰어도 좋아. 그래야 말을 잘 듣지 않겠어?”
나는 에이든의 말에 그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는데?”
“……그런가?”
“당연하지.”
나를 뭘로 보고.
그렇게 내 국제 무대 데뷔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