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64)
164화
5.
라파엘의 말대로 최근 들어 리멘과 연락이 닿은 적이 없었다.
지난번에 에덴에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본인이 수습하겠다고 한 뒤로 신탁이나 현신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
사실상 연락 두절 상태.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고 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나도 모르게 생겨난 불안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녀석이 그 희뿌연 감정을 끄집어냈다.
“알게 된 이유가 중요하겠습니까? 하하, 과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결과, 실적. 그것들만이 중요할 뿐입니다.”
“제가 수사관을 따로 데려와야 말씀을 해 주시려나.”
“수사관이요?”
내 말에 라파엘이 흥미롭다는 듯이 주위를 둘러보았고, 이번에는 에이든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그 수사관이라면 마주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라파엘 님.”
“음? 수사관님이 꽤 난폭하신가 보죠?”
“수사관은 저기에 있습니다.”
에이든은 턱짓으로 내 손을 가리켰고, 그제야 라파엘이 이해했다는 듯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법보다는 주먹이 먼저입니까? 교황님께서는 역시 듣던 대로 화끈하십니다.”
“진짜 화끈한 게 뭔지 보여 드릴 수도 있는데요.”
“사양하겠습니다.”
우우우우웅.
라파엘은 웃으면서 본인의 오른팔을 흔들었다.
그러자 그의 손목 부근에 박혀 있던 보라색 수정이 반짝거렸다.
“이 친구가 불을 싫어해서요. 데이비드라고 합니다.”
“……데이비드?”
“제가 저쪽 세계에서 가장 먼저 개조한 신체가 바로 이 오른팔이거든요. 그래서 특별히 데이비드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수정으로부터 알 수 없는 기운이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에이든이 발산하는 ‘투기’에서는 뜨거울 정도의 투지가 느껴지는 것과는 반대로, 라파엘이 방출하는 기운은 놀랍도록 차가웠다.
에이든과는 정반대의 성향.
라파엘의 기운은 인간의 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딱딱한 금속에서 느껴질 법한 차가움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레귤러다운 독특한 기운.
아마도 저 기운이 에이든이 말했던 ‘사이킥 에너지’인 듯했다.
“한바탕 해보자는 것 같은데.”
“전혀 아닙니다. 제가 검은 교황과 싸워서 이기리란 보장도 없잖습니까? 제가 이래 보여도 과학자에 가까워서, 싸우는 건 질색입니다. 게다가 전투용 슈트도 안 챙겨 왔어요. 데이비드가 이러는 건 교황님을 두려워해서 그렇습니다. 자체적인 인공지능을 탑재했거든요. 일종의 전투 연산장치, 그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무협 세계에서 귀환한 귀환자, 판타지 세계에서 귀환한 귀환자도 있는데, 지구를 뛰어넘는 기술을 지닌 세계라고 없겠어?
매드 사이언티스트라는 별명을 들었을 때부터 이미 짐작은 하고 있었다.
라파엘은 적대 의사가 없다는 것을 몸소 증명이라도 하는 듯, 두 팔을 번쩍 들면서 말했다.
“데이비드의 계산에 따르면 제가 이길 확률은 없습니다. 에이든 군도 꼼짝 못 하는데, 저라고 방법이 있겠어요?”
“알겠으니까 어떻게 알아냈는지나 말하세요.”
“맞다,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죠? 계속하겠습니다.”
라파엘은 들고 있던 팔을 다시 내리면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저는 2년 전에 지구에 돌아왔습니다. 돌아온 이후로 제가 가장 집중적으로 연구한 분야는 게이트입니다. 게이트는 일종의 차원 공명 현상, 즉 차원끼리 연결되는 현상을 지칭합니다. 갑작스레 등장하는 던전 역시 게이트의 또 다른 형태기도 합니다.”
그 뒤로 그는 게이트와 관련된 간단한 설명을 이어 갔다. 복잡한 과학 이론 등이 그의 입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왔고, 곧이어 우리 교단과 관련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연구를 지속하는 와중에 교황님께서 돌아오셨고, 곧이어 에덴에서 이계인들도 넘어왔죠. 귀환자와 연을 맺었던 이계인이 넘어오는 건 전례가 없던 일이라, 제가 따로 관측기를 설치했습니다.”
관측기?
그런 이야기는 에이든한테서도 못 들었는데?
나는 에이든을 곧바로 째려보았고, 에이든이 두 손을 내저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진짜 모르는 일이야, 시우.”
“아! 에이든 군과는 정말 관련 없습니다. 백악관에서도 모르는 내용입니다. 제가 임의로 설치한 거라.”
“봐 봐.”
우리의 허락도 없이 관측기를 주변에 설치했다?
이걸 무례하다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괘씸하다고 해야 하는지.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겠다.
“관측기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던 건, 리멘 교단의 신전에서 불규칙적으로 차원 공명 현상이 일어났다는 겁니다.”
그는 차원 공명 현상이 일어났던 날짜를 말해 줬고, 그 날짜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전부 리멘이 현신했거나 신탁을 내렸을 때였다.
“그러던 그때, 아주 강력한 신호를 잡았습니다. 바로 서울 그라운드제로를 격리해 주고 있던 벽이 사라진 그날이죠.”
“……리멘이 직접 권능을 사용한 날.”
“맞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최소 수개월은 걸렸을 대작업인데, 영상으로만 봤는데도 놀랍더군요. 그래서 그때 제가 세웠던 가설이 바로 이겁니다. 리멘 교단의 성지에는 이계의 신격이 관여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신호가 잡힌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강 짐작하고 있었을 뿐이죠. 그리고 그 짐작을 교황님께서 확신으로 바꿔 주셨습니다.”
그 말을 다 들은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블러핑이었다?”
“원래 가장 단순한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니까요. 교황님께서는 이런 경험은 많이 없으셨나 봅니다? 하하하!”
나는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리는 라파엘을 향해 나지막하게 말했다.
“경험이 없었던 게 아니라, 경험할 필요가 없었던 건데.”
“예?”
“예전에 저한테 블러핑을 걸었던 귀족이 하나 있었거든요? 그놈 반쯤 죽여 두니까, 그 이후로는 장난질을 치는 놈이 없더라구요.”
그 말에 라파엘은 잠시 벙찐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좋아, 기세 잡았다.
이대로 밀고 나가자.
“그러니까 당신의 말을 요약하자면, 허가받지 않은 물건으로 우리 교단의 활동을 도청, 감시했다. 이 말이죠?”
“아니, 그게 그렇게 되는 겁니까?”
“예.”
그러나 이 녀석은 강적이었다.
라파엘은 곧바로 무릎을 꿇으면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뭐 하나에 꽂히면 눈이 돌아가는 성격이라서요.”
“아니, 그렇다고 무릎까지?”
“무릎 꿇으면 혹시 안 때리실까 해서 해 봤습니다. 데이비드라도 떼어 드릴까요? 그렇게 해서 화가 풀리신다면…….”
아무래도 이 LA라는 도시에 마가 꼈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캐릭터들이 한 번에 몰려들 리가 없다.
“책임은 나중에 묻도록 하고, 아까 말했던 해결 방법부터 들어 봅시다.”
“아, 방법! 지금부터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라파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면서 자신 있게 말했다.
“제 머리가 방법입니다! 리멘 교단의 신전에서 본격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아, 그리고 신성력을 이용한 무기들을 연구하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신성 미사일! 신성 자주포! 말씀만 하십시오! 제가 싹 다…….”
우리 가족들에게 선물 공세를 펼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이 남자, 선물로 사람들을 홀리는 것에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하지만 저런 감언이설에 넘어갈 내가 아니었다.
나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왜 하필이면 우리 신전입니까?”
“리멘님께서는 이미 차원 통로를 통해서 신도들을 지구로 보내셨습니다. 그 방법을 연구할 수만 있다면, 게이트를 우리들이 원하는 대로 이용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세계를 관장하고 있는 시스템이 그 꼴을 가만히 보려나?
그래도 시도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한다.
리멘도 나름대로 방법을 연구하고 있을 테니, 우리들도 우리 나름대로 노력할 필요는 있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당신은 도대체 뭘 위해서 이러는 겁니까?”
이 남자의 목적에 대해서 아직 알 수가 없었다.
내 질문에 라파엘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저는 지구로 귀환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제 아내와 세 살짜리 아이가 그 세계에 남아 있습니다.”
“……그럼 어째서 귀환한 겁니까?”
“귀환이 아닙니다, 교황님.”
여태까지 웃는 낯이었던 라파엘의 얼굴에서 얼핏 분노가 보인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제가 있던 세계의 신격. 기계로 만들어진 괴물, 그 새끼가 저를 지구로 쫓아낸 겁니다. 저는 반드시 제가 있던 곳으로 돌아갈 겁니다. 가족들을,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되찾아야만 합니다.”
그건 흉내 내거나 연기할 수 있는 분노가 아니었다.
세상에는 사람의 숫자만큼 사연이 있다고 했던가.
문득 에덴에서 보냈던 세월이 떠오른다.
가족을 다시 보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견뎌 냈던 세월들. 나에게 있어서 귀환은 재회였지만, 반대로 이 사람에게는 귀환은 단절이었던 것이다.
나는 애써 분노를 억누르는 라파엘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제가 연구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시는 겁니까?”
“앞으로 저를 설득하실 때 과학 용어나 지식, 이런 쪽으로 접근하지 마세요. 차라리 지금처럼 감성을 건드리세요. 저 문과거든요.”
“조언 감사합니다.”
나는 그에게 술잔을 건네주면서 말을 맺었다.
“사연이나 좀 들어 봅시다.”
밤은 아직 한참 남았다.
이야기로 채워도 충분할 만큼.
6.
미국 워싱턴, 백악관.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에서는 한창 이야기가 진행 중이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라파엘과 김시우가 만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여사님, 에이든에 이어서 라파엘까지 한국으로 보내는 건 우리로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일입니다. 이레귤러가 둘이나 타국에 있는 것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늙은이는 그저 조언을 해 드렸을 뿐이고, 라파엘의 휴가를 최종 승인해 준 건 결국 대통령님 본인이시잖아요?”
“다른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글쎄요.”
엠마 밀러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면서 조심스레 차를 마셨다.
“라파엘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 것 같군요.”
“여사님께서도 이번 포럼이 끝나면 다시 한국으로 가실 겁니까?”
“그래야죠. 아직 그곳에서의 일이 전부 끝나지 않았어요. 게다가 마음 맞는 좋은 친구도 그곳에 있죠. 정말 좋은 곳이에요.”
그녀의 입가에 포근한 미소가 감돌았다.
대통령은 그녀의 미소를 바라보면서 그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유니온의 마수가 미국 본토까지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식의 전력 누수는 곤란합니다.”
“그 유니온의 마수를 밝혀내 준 것도 시우였죠. 이런 시기에 김시우라는 아군이 있으니, 정말 든든하지 않나요?”
“여사님은 언제나 김시우를 고평가하시는 것 같습니다.”
“다른 이들이 시우를 저평가하는 거랍니다.”
엠마 밀러는 김시우가 미국에 해가 될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김시우라면 장래에 이 땅에 닥칠 재앙으로부터 훌륭한 방파제가 되어 줄 것이라 생각했다.
“라파엘의 내면에는 깊은 분노가 자리 잡고 있어요. 더 이상 잃을 게 없던 에이든과는 전혀 다른 케이스. 라파엘이 그동안 미국에 협조를 해 준 건 그가 애국자라서가 아니에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였을 뿐이죠.”
돌아갈 곳이 있는 귀환자.
엠마 밀러가 본 라파엘은 돌아가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마다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미국과 걷는 방향이 같았을 뿐, 서로 바라보는 곳이 달라진다면 언제든지 어긋날 관계였다.
분노는 선악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라파엘이 본인의 목적을 위해 노선을 바꿀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옆에 김시우가 있다면?
적어도 최악의 상황은 방지할 수 있었다.
“대통령님.”
“예, 여사님.”
“단둘만 있으니까 솔직하게 말씀하셔도 좋아요. 라파엘이 한국으로 간다고 했을 때, 속이 후련하지 않았나요?”
“그것은…….”
대통령은 말끝을 흐렸다.
그 역시 엠마 밀러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엠마 밀러는 그런 대통령의 표정을 즐겁다는 듯이 감상한 다음, 찻잔을 내려놓았다.
“이미 바티칸에서 먼저 선수를 친 것 같던데요?”
“그레이스 바클리, 그녀를 말씀하시는군요.”
대통령은 일전에 보고받았던 그레이스 바클리의 성격, 성향에 대한 것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연달아 에이든, 라파엘에 대한 것들도 떠올렸다.
그는 얼마 안 가 한 가지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정말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됩니까?”
“그럼요.”
“여사님과의 독대가 끝나는 대로 서신우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 생각입니다. 감사하고 미안하다, 그런 내용으로 이야기를 나눌 겁니다.”
대통령의 대답을 들은 엠마 밀러는 작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좋은 생각이네요.”
“여사님, 요새 우리 참모진이 한반도를 뭐라고 부르는지 아십니까? 원자로입니다, 원자로. 세계 최대의 원자로.”
“원자로. 참모진들의 위트가 제법인걸요.”
“그 원자로에 우리가 또 다른 핵폭탄을 인계하게 된…… 후우. 제가 서신우 대통령이었다면…… 정말 끔찍하군요.”
졸지에 원자로가 되어 버린 한반도였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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