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65)
165화
53. 싫으세요?
1.
밤을 새우는 술자리가 끝나고, 아침이 밝았다.
지난밤 사이에 결정된 일이 몇 가지 있었다.
첫째는 라파엘의 한국행.
라파엘은 이번 포럼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귀국 비행기에 함께 타기로 했다.
이레귤러를 다른 나라로 파견하는 절차는 엄청 어렵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이미 허락을 받았단다.
아, 그리고 살면서 미국 대통령의 전화도 처음 받아 봤다.
-김시우 교황님. 언제 한번 리멘 교단 신전에 정식으로 초대해 주시겠습니까? 직접 찾아뵙고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도대체 뭐 때문에 감사 인사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단 감사 인사를 한다니 받았다.
방한 일정에 우리 교단 신전 방문 일정도 포함시키겠다더라.
다음 달 중순쯤에 방문한다던데, 미국 대통령이 방문한다는데 막을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해서 일단 라파엘의 한국행은 기정사실화되었는데, 문제는 그다음의 일이었다.
“레오 대주교, 제가 스마트폰 슬쩍 손봐 드려도 됩니까? 맡겨만 주신다면 신세계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신세계요?”
“생각만으로 스마트폰을 움직일 수 있는 기술이라든가, 뭐 그런 것들이죠.”
“오, 부탁드립니다, 라파엘 님.”
“하하! 이제 함께 지낼 사이인데 이 정도쯤 못 해 드릴까요.”
우리 일행만 쓰기에는 넓은 호텔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라파엘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라파엘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진짜 미친놈이었다.
졸지에 미친놈 소굴이 되어 버린 우리 호텔.
“미친놈은 미친놈을 알아보는 법이지. 시우, 걱정하지 마라. 네가 우리 중에 가장 미친놈이니까, 네가 이곳의 대장이다.”
“나는 좀 빼 줄래?”
“무슨 소리야? 너 때문에 다 모인 사람들인데. 봐라, 시우. 다 네 덕분에 한자리에 모인 거다.”
나는 에이든의 말을 들으며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과학기술이 발전한 세계에서 온 미친놈.
야만 부족들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온 미친놈.
그리고 사람을 반으로 접는 걸 좋아하는 미친놈.
에이든의 말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이쯤 되면 확실히 내 쪽에 문제가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말도 안 되는 조합이 가능할 리가 있겠나.
“슬슬 너도 인정할 때가 되었다, 시우. 장담하건대 너는 몇 년 안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거야.”
“평화상은 또 왜?”
“나를 비롯해서 라파엘까지. 통제 불가능한 핵무기들을 네가 직접 관리하게 되었는데, 너만큼 세계 평화에 기여한 사람이 또 있을까? 없을 거라고 본다.”
에이든은 가만히 보면 자기 객관화가 확실한 사람이다.
자신이 걸어 다니는 핵폭탄이라는 건 이미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옆에서 이상한 장비를 들고 레오의 스마트폰을 개조하고 있던 라파엘도 한마디 거들었다.
“항상 존경합니다, 교황님! 달달한 꽃향기에 벌이 날아들듯, 저 역시 교황님에게 끌리는 걸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비유가 왜 그래요.”
“아니면 S극이 N극에 달라붙듯이? 문과라고 하셔서 제가 한번 표현을…… 아, 그건 물리학이니 이과인가? 하여간에 그렇습니다, 흐흐. 내 표현 어땠습니까, 그레이스 양?”
“역시, 배우신 분들은 달라도 다르네요.”
“그레이스 양도 필요한 거 있으면 말씀만 하십시오. 교황님의 제자가 되신 걸 축하합니다!”
“교단의 연구원이 되신 걸 축하드려요, 라파엘 님.”
이보다 더 혼란할 수 있을까.
어제 처음 만난 사이라는 그레이스와 라파엘도 빠른 속도로 친해지고 있었다.
저기에 루나까지 추가된다면…… 상상만으로도 아찔할 정도.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그들의 대화를 귀에 담았다.
고막이 괴로웠지만, 리멘을 위해서 참는다. 나도 근래에 리멘 소식을 못 들어서 걱정도 많이 되고, 라파엘이라면 방법을 찾아낼 사람이긴 하다.
원래 역사는 미친놈의 손에서 이루어지는 법이거든.
“아, 오늘 첫 회의가 있다.”
에이든은 아침부터 열심히 위스키를 들이켰다.
어젯밤, 일반인이었다면 급성알코올중독으로 사망하고도 남았을 정도의 술을 마셨는데도 대낮부터 낮술을 하는 모습.
하지만 이상할 건 없었다.
에이든이니까.
술에 미친 놈.
“오늘 첫 회의에는 이렇게 셋이 같이 입장하면 될 것 같다. 나랑 시우 그리고 라파엘까지.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보여 주는 의미기도 해.”
“나보고 얼굴마담이나 하라는 거야?”
“누누이 말했지만, 얼굴마담을 하는 건 나와 라파엘이고 주연배우는 너다. 아, 그리고 연회 때는 안 나왔던 유럽 측의 이레귤러도 참석한다. 한스라고, 독일 소속의 샌님이야. 사용하는 무기는 검. 성격은 모난 곳은 없다. 대신 기사도에 미친 놈이지.”
“기사도에 미쳐 있다면, 모난 곳이 있는 게 아닌가?”
“우리에 비해서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보다 덜 미친 놈이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라는 건데…….
하긴.
우리보다 더 미쳐 있는 게 쉽지는 않지.
“원래는 참석할 생각이 없었는데 말이죠.”
라파엘은 어느새 개조가 끝난 레오의 스마트폰을 레오에게 건네주면서 미소를 지었다.
“교황님과 함께면 어디든 재밌을 것 같아서 가 볼 생각입니다. 아, 맞다. 교황님, 한국에 이종족 실험체가 있다는데, 사실입니까?”
지난번에 내가 함흥에서 잡아 온 다크엘프 장로를 말하는 것 같다.
다크엘프 장로는 아주 잘 살아 있다.
사실, 그걸 살아 있다고 말하기에는 좀 애매하긴 한데, 아무튼 살아 있다.
“잡아 온 놈이 하나 있죠. 인간을 대상으로 독극물을 실험하던 놈이라서, 일단 목숨은 붙여 뒀습니다.”
“마기를 사용하는 생명체들을 연구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정부 측에 인계를 해 둔 상황이라, 돌아가는 대로 허가를 받아 드리겠습니다.”
“차원 공명 현상, 신성력, 마기. 연구할 게 많아서 참 즐겁습니다. 연구를 하다 보면 결국 제가 원하는 곳에도 이를 수 있겠지요.”
가족들을 다시 만나겠다는 의지로 뭉쳐 있는 미친 과학자.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아직까지는 그의 광기가 나쁜 방향으로 향하지 않았다.
무언가에 미쳐 있다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닐 테니까.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역할은 그의 광기가 어두운 곳으로 향하지 않도록 신경 쓰는 것뿐.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지금 만나게 된 게 차라리 좋은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회의는 2시간 뒤에 시작되니, 슬슬 준비하는 게 좋을 거다.”
“준비해야 한다는 놈이 술을 마시네.”
“나에겐 이게 준비다. 워낙 역겨운 놈들이 많아서, 술을 마시지 않고서는 못 견딜 것 같거든. 너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게 될 거야.”
에이든의 냉소적인 반응.
거기에다가 라파엘이 한 숟가락 올린다.
“그럼 제 연구실에 가서 강화 슈트 좀 챙겨 오겠습니다, 교황님!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강화 슈트는 왜…….”
“여차하면 쓸어버려야죠! 하하, 꼴도 보기 싫은 놈들인데, 마침 잘된 것 같습니다. 한국으로 가기 전에 청소 좀 미리미리…….”
다들 반응이 왜 이래?
나는 대놓고 불쾌감을 표시하는 둘을 쳐다본 다음, 레오를 향해 말했다.
“나 포럼 참석하고 있는 동안에는 가족들이랑 같이 도시 구경이나 하고 있어. 위험할 것 같으면 백설이를 통해서 연락 바로 주고.”
“예, 성하.”
그렇게 해서 본격적인 2일 차 일정이 시작되었다.
그나저나 저 둘이 왜 이렇게 포럼을 싫어하는 거지? 그래도 나름 각 세력의 대표들이 오는 자리인데, 불쾌한 일이 있을 리가 있나.
포럼이니까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 주고받다가 평범하게 끝나겠지, 안 그래?
하지만 그로부터 2시간 후.
콰아아아아아앙-.
“진짜 도시에 마가 꼈네.”
사건이 터져 버렸다.
2.
시작은 폭탄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앙-.
원래라면 세계 각성자 포럼이 진행되었어야 할 컨벤션 센터.
포럼 개최 40분을 남기고, 센터의 지하 부근에서 거대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미국의 도시 한가운데에서 가해진 거대한 테러.
게다가 폭탄도 평범한 폭탄이 아니었다.
마력으로 똘똘 뭉쳐 있던 마력 폭탄.
“이 정도면 최소 상급 마정석인 것 같네요.”
라파엘은 자신의 손에 들어온 마정석의 조각을 만지작거리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우우우우웅-.
라파엘은 일전에 말한 자신의 ‘슈트’를 입고 왔다.
보라색 수정이 곳곳에 박힌 금속질의 옷.
그의 몸 전체에서 ‘사이킥 에너지’라고 불리는 에너지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확실히 이레귤러는 이레귤러였다.
방금 전의 폭발로 원래 건물이 무너졌어야 했는데, 라파엘이 뿜어내는 사이킥 에너지가 붕괴를 막아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는 못 버팁니다. 기껏해야 30분 정도? 그 안에 생존자들을 모두 구출해야 합니다.”
“이 정도 수준의 폭발을 일으킬 마력 폭탄이라면 무조건 감지가 되었어야 했는데, 마력 은폐 기술인가?”
에이든은 거칠게 숨을 몰아 내쉬면서 분노를 토해 냈다.
“곧바로 요원들 데리고 생존자 구출 시작하겠습니다.”
“에이든 군. 여기, 탐지 장치입니다.”
라파엘의 어깨에서 자그마한 구체 수십 개가 튀어나왔다.
“생존자 수색에 쓰십시오. 이 녀석들이 알아서 수색을 도울 겁니다.”
에이든은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 나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시우, 수색은 우리가 맡을 테니, 혹시 용의자들을 잡아 와 줄 수 있을까? 부탁 좀 하자. 우리 정보원들이 아침에 파악한 게 하나 있다.”
“말해.”
“이번 포럼에 참여하기로 했던 유럽 측의 이레귤러가 한 명 있다. 한스. 그놈이 유니온이랑 연관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정보가 급하게 들어왔어. 그놈을 잡아 줘라. 요원을 붙여 주겠다. 부탁한다.”
나는 주머니에서 건틀렛을 꺼내서 꼈다.
“그걸 왜 지금 말하냐?”
“이건 아마 우리 쪽 정보원이 그쪽 기밀에 접근해서 벌어진 일일 거다. 아마도 지금쯤 출국하기 위해서 공항으로 향했을 거야. 비행기만 못 뜨게 막아 주면 돼. 자세한 이야기는 저 친구가 말해 줄 거다.”
에이든이 말하자마자 앳된 얼굴의 요원 한 명이 빠르게 다가와서 고개를 숙였다.
폭탄을 몰래 설치하는 데 성공했으면, 포럼이 진행되고 있을 때 터뜨리는 게 효과적이었을 텐데 말이지.
뭔가 계획이 어긋난 거다.
그리고 계획이 어긋나게 된 이유는 아마도 내가 어제 연회장에서 유니온 측의 인원을 잡아 버렸기 때문이겠지.
그 녀석들을 미국이 가만히 내버려 둘 리는 없었을 것이다.
“하여간에 그 새끼를 좀 잡아 줘라. 친구로서 부탁한다.”
“나 여기 처음 올 때는 그냥 쉬었다 가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알겠으니까 빨리 사람이나 구하러 가라.”
“고맙다.”
에이든은 어느새 도착한 다른 요원들을 데리고 곧바로 건물 안으로 진입했고,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라파엘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레오가 제 가족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올 겁니다.”
“마음 편히 다녀오십시오.”
“예, 그럼.”
어째 근래에 너무 조용하다 했다.
나는 다시 한번 크게 한숨을 내뱉은 다음, 내 옆에 서 있던 요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장 녀석의 멱살을 잡아 올리면서 말했다.
“내 앞에서 장난질 좀 치지 말라니까?”
“커허어어어억.”
“위장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걸 못 알아볼 줄 알았어? 에이든도 이미 눈치챘던데. 그래서 너 던져 준 거야.”
머리 위에 줄줄이 나열되어 있는 온갖 죄목들.
나야 멸악의 의지로 이 녀석의 정체를 파악했다지만, 도대체 에이든은 어떻게 이놈이 위장을 했다는 걸 알아차린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짐승 같은 놈이라니까.
나는 성화를 끌어 올리면서 말을 맺었다.
“안내해.”
“아까 말했던 대로 공항…… 끄아아아아아악!”
“거짓말 한 번만 더 하면 산 채로 익는다. 조심해라.”
친구가 부탁을 했으면 확실하게 해 줘야지.
그래야 나중에 딴소리 안 듣는다.
3.
분주하게 달리고 있는 열차.
최고급의 사치품으로만 도배되어 있는 특실 안, 콧수염을 기른 한 남자가 부하로부터 보고를 받는 중이었다.
“지금은 공항 쪽만 봉쇄되어 있습니다. 철도로 조금만 더 이동하고, 미리 대기시켜 둔 차량을 이용하여 멕시코로 곧장 향하면 됩니다, 지부장님. 모든 준비는 다 끝내 두었습니다.”
“곤란하군, 곤란해. 이런 식으로 우리의 정체가 노출될 줄은 몰랐어.”
“김시우에게 뭔가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눈을 마주치자마자 전사들의 정체를 파악해 냈다고 합니다.”
“동양인 주제에 과분한 능력이야. 귀찮은 새끼. 그래도 중국의 그놈들이 전해 준 기술이 쓸모가 있었어. 마력 폭탄을 은폐시킬 수 있는 기술, 그 기술의 실효성을 확인한 것만으로 만족해야겠어.”
콧수염을 기른 남자, 한스는 짜증을 내면서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이번 각성자 포럼은 그들이 오랫동안 준비해 온 원대한 계획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등장한 동양의 사이비 교주가 모든 걸 망쳐 버렸다.
“역겨운 탈을 쓰고 활동하는 것도 지겹던 차였다. 이참에 본격적으로 활동해야…….”
그때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열차의 앞쪽에서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열차가 급제동한다.
순간적으로 몸이 앞으로 튕겨지는 순간, 한스는 재빠르게 몸에 마력을 둘렀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부하가 형체도 알 수 없이 으깨졌으나, 한스로서는 부하의 상태를 살필 여유조차 없었다.
끼기기기긱-.
그가 타고 있던 열차의 외피가 찢어지듯이 열렸고, 곧 그 너머로 한 남자가 들어왔다.
검은색 사제복을 입은 남자.
그 남자는 한스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동양인 주제에? 이 새끼, 인종차별주의자였네.”
그렇게 말한 동양인은 손에 들고 있던 또 다른 남성을 대충 그의 앞에 던지더니, 가볍게 손을 털면서 말했다.
“이레귤러라면서. 어디 한번 재밌게 놀아 보자. 안 그래도 나 최근에 욕구 좀 많이 쌓였거든.”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