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66)
166화
4.
한스라는 놈의 주 무기는 검이었다.
지난번에 상대했던 왕 웨이와는 느낌부터가 달랐다.
왕 웨이가 어검술들을 이용한 화려하고 변칙적인 기술들로 나를 상대하러 들었다면, 이 녀석은 묵직한 바스타드 소드를 이용한 힘 싸움이 주특기였다.
카아아아앙-.
손끝으로 묵직하게 느껴지는 감촉.
이 녀석도 확실히 이레귤러는 이레귤러인지, 건틀렛을 타고 파고드는 기운이 꽤나 거슬렸다.
하지만 거슬리는 정도가 끝.
[패시브 스킬 신성불가침 Lv.Max>가 알 수 없는 기운에 저항합니다.]그 기운은 더 이상 내 몸속으로 파고들지 못했다.
확실히 몸으로 겪어 보니 알겠다.
“마력을 한 번 더 가공한 거네.”
마력을 통해서 한 번 더 응집한 형태. 그 과정에서 성질이 크게 변질되기는 했지만, 근본 자체는 마력이었다.
다만 가공 과정에서 특이한 게 하나 섞여 들어간 것 같다.
에이든의 투기와 비슷한 기운이 간간이 느껴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사실, 무슨 기운인지는 딱히 중요하지 않다.
[패시브 스킬 멸악의 의지>로 인해서 악인을 상대할 때 모든 능력치와 스킬 레벨이 증가합니다.]중요한 것은 이 녀석이 악인이라는 점.
이 녀석 역시 지구의 시스템에 애매하게 발을 걸치고 있는 놈인 건지, 멸악의 의지가 애매한 수준으로 발동되고 있었다.
지은 죄가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멸악의 의지>가 발동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이 악인이란 건 이미 증명된 셈이다.
“덕분에 좋은 사실 알아 간다.”
에이든이나 라파엘은 시스템이 악인으로 규정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
여태까지 찜찜했는데 이 녀석 덕분에 확실하게 확인된 거다.
왕 웨이를 상대할 때는 제대로 발동하지 않은 게 의문이긴 하다만, 지금 중요한 건 그딴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눈앞의 악인을 멸하는 것이 중요한 거지.
콰아아아앙!
그래도 한 가지는 까다롭다.
녀석이 두르고 있는 흑색의 갑옷에서 불규칙적으로 방출되는 거대한 파장.
“무료 마사지 좋네. 등 좀 때려 줄래? 좀 뭉쳤어.”
그 파장이 주는 자극이 심상치 않았다.
몸이 찌릿찌릿한 기분.
라파엘이 할머니에게 만들어 주었던 안마기보다 훨씬 성능이 좋았다.
게다가 저 흑색의 금속, 정말 탐난다. 내 사제복이랑 비슷한 원리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까까지만 해도 저 녀석은 양복을 입고 있었다.
기운을 불어 넣으면 순식간에 판금 갑옷으로 변하는 능력이 어떻게 탐이 안 나겠어?
카아아아아앙-.
다시 한번 내 건틀렛과 녀석의 검 사이에서 불꽃이 튀겼고, 녀석의 입에서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너는 입으로 싸우기라도 하는 거냐! 제발 좀 닥쳐! 이 원숭이 새끼야!”
“세상에는 참 다양한 기사님들이 계셔. 버스 기사님, 택시 기사님. 적어도 그분들은 시민의 소중한 발이 되어 주시잖아? 그런데 너는 기사라면서 도대체 하는 게 뭐야? 넌 그냥 인종차별주의 기사잖아.”
“뭐라는 거냐?”
“아, 이런 동음이의어는 제대로 전달이 안 되나? 뭐…… 일단, 그 갑옷부터 벗자.”
나는 오른발로 녀석의 명치를 밀어 찼다.
순간적인 변칙 공격에 녀석이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던 균형이 무너졌고, 곧바로 상체가 열린다.
그 틈을 놓칠 생각은 없었다.
콰아아아아앙.
곧바로 오른손으로 녀석의 복부 쪽에 건틀렛을 꽂아 넣었다.
콰지지지지직!
녀석의 몸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 발악을 했으나 큰 의미는 없었다.
“커어어어억.”
한스는 입에서 피를 토해 내면서 뒤로 나가떨어졌다.
판금 갑옷의 복부 부분에는 내 주먹이 남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다만 아쉬운 건,
“마지막 발악이 의미가 없던 게 아니네.”
한스가 정신을 잃지 않았다는 것.
아무래도 마지막에 방출했던 그 기운이 효과가 있기는 했던 모양이다.
“오러가…… 쿨럭, 이렇게 쉽게…….”
“더 없냐?”
“……뭐?”
“참고로 내가 지난번에 중국인 한 놈도 때려 부쉈는데, 걔가 무협 세계에서 온 놈이란 말이지. 그런데 너보다는 강했던 것 같은데?”
물론 그때 당시의 나와 지금의 나는 비교하기에는 분명히 큰 차이가 있다.
그때와 비교했을 때, 지금 우리 교단의 신도 숫자는 말도 안 되는 수치로 증가한 상황.
당연히 내가 동원할 수 있는 신성력의 수치도 급격하게 증가했다.
현재로서는 에덴에서 사용했던 신성력의 절반까지는 끌어올릴 수 있을 정도였고, 그 신성력을 꽉꽉 담아서 박아 넣는 중이니 녀석이 버틸 수 있을 리가.
나는 녀석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 기운의 이름이 오러야?”
“기사의 결투는 신성해야 한다. 내가 재정비하는 시간을 다오. 그래야 이 결투가 명예롭지 않겠나? 명예롭지 않은 승리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교황!”
“아까는 원숭이라며.”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그것 참 편리한 기억력이네.”
한스는 바스타드 소드를 지팡이 삼아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러자 곧 손상된 판금 갑옷이 빠르게 복구된다.
나는 그런 한스를 향해 비릿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너 이렇게 보니까 그 사람 닮았다. 콧수염, 독일인, 인종차별주의자. 너 혹시 평행 이론을 믿냐?”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내가 개인적으로 머리에 떠오른 말은 반드시 뱉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사실, 아까부터 참고 참았던 말이다.
“너 히틀러 닮았어. 그런 말 못 들어 봤냐?”
독일인이라고 했지?
독일인에게 히틀러를 닮았다고 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욕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 미친!”
그 말의 효과는 확실했다.
한스가 투구도 쓰지 않은 채로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은 속도였다.
아, 어디까지나 ‘남의 눈에 전광석화’ 같은 속도다.
내 눈에는 다 보였다.
어깨를 눕히고 대놓고 각을 내주면서 들어오는 멍청한 기사 한 놈.
평정심 따위는 이미 잃어버린 지 오래인 듯 보였다.
검을 사용하는 사람이면 모름지기 명경지수가 필수인 것을, 멍청한 놈.
“고맙다.”
나는 가볍게 주먹을 들어 한스를 향해 내려쳤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한 폭음과 함께 거대한 먼지구름이 솟아올랐다.
먼지가 피어오른 자리에는 어느새 거대한 구덩이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 밑에 박힌 게 한스라는 건 굳이 확인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
이 녀석이 유럽산 이레귤러 중 최약체인 건가? 쉬워도 너무 쉬운 전투였다.
자, 이제 이 녀석을 챙겨서 돌아가면 미국에서 나를 굉장히 이뻐……
“야, 야, 이 새끼야. 숨 쉬어.”
이 새끼 이거 죽으면 안 되는데?
어?
5.
유니온 소속의 이레귤러 한스를 손쉽게 포획한 나는 미국에서 제공해 준 헬기를 타고 가벼운 마음으로 사건 현장으로 되돌아왔다.
건물이 무너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미국의 국력은 세계 제일이었다.
“저걸 마법으로 그냥 때워 버리네.”
최소 100명 이상의 마법사들이 모여서 빌딩의 외벽을 단단하게 고정시켜 둔 상황.
한국이었으면 이 짧은 시간에 100명의 마법사를 동원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저 100명의 마법사들 모두가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 한국이었으면 능히 S급 헌터로 분류되었을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오! 교황님. 다녀오셨군요.”
가장 먼저 나를 반겨 준 건 어느새 슈트를 옆에다가 벗어 둔 라파엘이었다.
꽤 힘들었던 모양인지,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혈색이 좋았던 라파엘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에이든 군은 현재 관련자를 색출하러 다니고 있습니다.”
“사망자는요?”
“현재까지 파악된 바로는 95명입니다. 부상자는 셀 수도 없죠.”
라파엘이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
“건물이 무너졌다면 더 큰 사상자가 발생했을 겁니다.”
높은 마천루.
저 마천루가 무너졌다면 정말 심각한 상황이 발생했을 것이다.
“유니온과의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 셈이죠. 아마 지금 우리 보스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왔을 겁니다. 유니온이 주도하는 테러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거든요.”
라파엘은 씁쓸하게 중얼거리더니 곧 작은 검은색 금속 상자를 내 앞에 내려 두었다.
“폭발 원점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이런 게 발견되었습니다.”
폭발에 의해 안쪽에서 터져 나간 듯한 형체의 상자.
본 적이 있는 물건이었다.
동북아 교류전 때 중국이 흑단을 반입하면서 사용했던 차폐 장치.
저것을 만든 녀석들도 누군지 자세히 기억난다.
“정화자.”
틀림없이 그놈들.
요새 너무 조용하다 싶더니만, 국제 무대를 배경으로 뛰어놀고 계셨던 모양이다.
마기 대신 마력을 차폐하는 방향으로 개조된 것 같기는 했지만, 틀림없는 정화자산이었다.
나는 그 상자를 내려다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중국산 물건입니다. 중국에 은둔해 있는 조직인 정화자, 그놈들이 만든 물건일 겁니다.”
“유니온과 그들이 손을 잡았다고 생각하면 되겠군요.”
“추구하는 방향이 같은 놈들입니다. 손을 잡는 게 불가능할 리가 없죠.”
각성자들만을 위한 세상.
모든 것이 각성자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나머지는 노예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위험한 사상으로 뭉친 폭탄들.
내 쪽에는 이상한 미친놈들만 모여든다고 걱정했는데, 저쪽은 아예 한술 더 뜬다.
“그런데 교황님. 한스, 그 새끼는 어디에 있습니까?”
“아, 저거입니다.”
“음?”
나는 내가 방금 전에 뒤에 두고 온 검은색 공을 가리켰다.
검은색 판금으로 만들어진 공.
그 공의 정체가 바로 한스였으니까.
“이쁘게 접어 두었습니다.”
“오, 저 자세로 목숨을 붙여 두실 수 있는 겁니까? 과연, 대단하십니다, 교황님.”
“리멘님의 은총이죠.”
“굉장합니다. 리멘님께서는 미적 감각도 탁월하신가 봅니다.”
인간을 접어 공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도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작업 도중에 신성력으로 생명을 유지시켜 주기도 해야 하고, 뼈를 부러뜨린 다음에 최대한 곡선으로 붙이는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름 손이 많이 간 작품.
그런데 그때였다.
크르르르르릉.
어느새 소위 ‘백호 모드’라고 부르는 상태로 변신한 백설이가 기분 좋게 그르렁거리면서 공을 굴려 대기 시작했다.
-공만 보면 참을 수가 없어. 주인! 이거 내 선물이야? 고마워! 내 마음에 딱 들어.
머릿속으로 전해지는 백설이의 목소리.
백설이 녀석은 레오랑 우리 가족과 함께 현장에 도착한 상태였다.
이곳이야말로 LA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백, 백호다!”
“마수인가?”
“전투준……”
하지만 나에게나 귀여운 애완동물이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거대한 마수나 다름없는 존재.
작은 하얀색 고양이가 백호가 된다는 건 누구라도 믿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나서기도 전, 라파엘이 먼저 미국 측 인원들을 안심시켰다.
“강조되고 반복되는 소리는 고양이를 불안하게 합니다. 진정들 하세요. 이 고양이는 리멘 교단의 신수입니다. 그렇지요, 교황님?”
“그건 또 언제 들으셨대?”
“어제 시연 공주님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인, 그 인간 조심해. 반쯤은 미쳐 있거든.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백설이는 ‘한스공’을 굴리면서 나에게 말했다.
인간으로 만든 공을 굴려 대면서 나에게 ‘미친놈을 조심해.’라고 말하는 신수라…….
이것 참, 뭐가 정상인지 원.
이쯤 되면 그냥 평범하게 생각하는 걸 포기해야지 싶었다.
‘지금 놀 타이밍 아니니까 장난 그만쳐.’
-너무하네. 나 그래도 100명은 넘게 구했는데.
‘……그래? 그럼 마음껏 가지고 놀아라.’
-고마워, 주인.
사람을 구했다면 인정이지.
나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여전히 불타오르고 있는 컨벤션 센터를 바라보았다.
미국의 도시 한복판에서 벌어진 최악의 참사.
다행히도 초기 대응이 잘 이뤄져 희생자는 줄일 수 있었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했다.
“걷잡을 수 없겠네.”
이곳에서 피어오른 불길은 곧 세상을 향해 번져 나갈 것이다.
과연, 그 불길은 무엇을 태워 버리게 될까?
나는 작게 한숨을 뱉어 냈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