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68)
168화
54. 그 오빠에 그 동생이네
1.
엄청 오랜만에 듣는 리멘의 목소리.
오로지 나에게만 들리는 목소리였기에, 집무실 안에 있던 다른 이들은 알아서 자리를 피했다.
신의 사도가 신으로부터 계시를 들을 때 그 자리에 있는 것은 불경죄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야. 이제야 목소리가 닿았어. 잘 들려, 시우?』
“잘 들려.”
『통로가 잠시 열린 걸까?』
“그건 아니야. 이번에는 이쪽에서 신경을 좀 썼어.”
『아, 그 기계가 통로를 안정화시켰구나. 지구의 기술은 아닌 것 같아. 지구는 아직 차원에 간섭하기에는 애매할 테니까.』
“정확해. 다른 세계에서 건너온 친구의 도움을 좀 빌렸어. 앞으로 그 친구가 이곳에서 연구를 진행할 거야.”
내 대답에 리멘이 넌지시 물었다.
『믿을 만한 친구인가 봐?』
“목적이 확실한 미친놈이지.”
『딱 시우 같네. 끼리끼리 뭉친다는 말이 정말 맞나 봐!』
리멘은 가벼운 농담을 던지면서 웃었다.
그녀의 웃음이 내 귓가를 간지럽혔고, 나는 그제야 표정을 풀면서 안심했다.
목소리는 괜찮았다.
별일이 있는 줄 알고 걱정 많이 했는데, 그래도 괜찮아 보였다.
“에덴은 어때?”
『큰 문제는 없어. 이계의 침식이 조금 더 강해지긴 했는데, 어떻게든 막아 내는 중이야. 버티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아. 지구는?』
“우리야 항상 똑같아.”
『여전히 개판이라는 소리구나?』
에덴에 있을 당시, 리멘이랑 하루가 멀다 하고 대화를 나눠서 그런가? 리멘은 내가 사용하는 언어를 너무나도 잘 이해한다.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정확해.”
『마왕의 흔적들은 어떻게, 좀 찾아봤어?』
“어디로 흩어졌는지는 모르지만, 누가 그것들을 모으고 있는지는 알아냈어.”
리멘에게 곧바로 정화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정화자를 이끄는 ‘무명’이라는 놈.
녀석이 중국에 은거해 있으며, 마족들의 머리 위에 있다는 것.
게다가 마왕들과 상하 관계가 아니라, 동등한 수평 관계라는 이야기까지.
그 이야기를 모두 들은 리멘이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구의 인간이 그 편린들을 이용하고 있을 줄이야. 그 인간도 귀환자일까?』
“이름조차 모르는 마당에, 그것까진 알기 힘들지.”
『시우 성격이라면 대놓고 쳐들어갔을 텐데.』
“숨어 있는 위치가 너무 안 좋아.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내가 그쪽으로 넘어간다면…… 전면전이지.”
지난번 동북아 교류전 이후로 중국과의 관계는 최악을 떠나서 아예 파탄 난 지경이다.
거기에 지금 미국이 테러의 배후로 지목하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내가 중국으로 입국한다?
사실상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행위다.
“지금 당장 움직이진 못해. 그 나라가 많아지는 경우가 아니면, 쳐들어가는 것도 당장은 불가능할 것 같아.”
『많아진다는 게 무슨 뜻이야?』
“그런 게 있어.”
『그래? 음…… 맞다, 시우. 에덴을 침범한 이계의 신격들에 대한 몇 가지 단서를 알아냈어.』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최근 갑작스럽게 활동을 멈춰 버린 백명교.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공격적으로 포교를 시작하려던 놈들이 조용히 있으니, 나로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 이계의 신격들, 아무래도 지구에서 이계로 넘어갔던 고대의 신격들 같아. 시우도 얼추 짐작하고 있었지?』
“대강은.”
베히모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랑, 그때 백명교의 대교구장이랑 나눴던 이야기를 통해 짐작하고는 있었다.
『그 녀석들이 왜 에덴에 손을 뻗게 되었는지도 알아냈어. 지금 우리가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차원 통로 있지? 이걸 이용하는 모양이야.』
“통로를 닫으면 침략을 안 당한다는 거야?”
『대신에 시우와의 연결이 아예 끊기겠지. 그래서 지금 당장은 안 돼. 시우와의 연결이 끝나면, 내가 시우에게 건네준 신성력도 소멸하게 돼. 아직은 때가…….』
그녀는 무언가 더 말을 해 주려다가 말을 멈췄다. 그러더니 곧 빠르게 화제를 바꿨다.
『하여간에 걱정하지 마. 나 이래 봬도 에덴의 주신이야. 그깟 피난민들쯤은 거뜬해. 시우도 잘 알잖아?』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그러나 나는 따로 묻지는 않았다. 그녀가 말하지 않으려 했다면,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나와 리멘 사이에는 단단한 신뢰가 구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모르는 척 넘어가 주도록 하자.
“잘 알지.”
『크게 걱정하지는 마. 에덴은 아직까지 거뜬해. 그보다 시우,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따로 있는 것 같은데?』
리멘에게 가장 묻고 싶었던 말.
나는 지금까지 참았던 말을 그녀에게 건넸다.
“시연이가 선지자의 운명인 거, 너는 알고 있었어?”
그 질문에 리멘은 잠시 대답을 보류한다. 그러더니 곧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시연이는 나도 몰랐어.』
“선지자에 대해서는 미리 다 알고 있다면서.”
『시연이의 운명이 바뀐 거야. 시연이는 원래 선지자가 될 아이가 아니야.』
그녀가 나에게 거짓말을 할 리는 없다.
『대신 이유는 알 수 있을 것 같아. 시우, 네가 운명을 바꾸고 선택하는 자라서 그래. 그게 신의 사도니까.』
한마디로 나 때문에 시연이의 운명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나는 한숨을 작게 내쉰 다음, 손으로 머리를 긁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네 뭐.”
『결정하는 건 시우잖아? 시우가 싫으면 시연이가 교단의 선지자가 되는 일은 없어. 그런데 좀 궁금하네. 시연이한테는 따로 물어봤어? 어차피 시우가 이렇게 고민하더라도, 어차피 시연이의 마음대로 정해지는…… 설마?』
“……그 설마가 맞아.”
아까 전, 가족들을 집에 데려다줬을 때.
시연이가 했던 말이 있었다.
-나, 하고 싶은 게 생겼어, 오빠. 나도 승우 오빠처럼 힘든 사람들 도와주고, 슬픈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고 싶어. 내가 어떻게 하면 될까?
아직까지 본인의 상태를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 말을 리멘에게 들려주자, 리멘이 살포시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 오빠에 그 동생이네.』
“그러니까.”
『한번 천천히 생각해 봐. 나도 우리 귀여운 시연이라면 좋으니까.』
피이이이이잉-.
그렇게 내가 리멘이랑 대화를 주고받고 있을 때쯤, 탁자 위에 고정되어 있던 증폭기의 진동이 조금씩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귓가에 들려오던 리멘의 목소리도 작아졌다.
『아무래도 시간이 다 된 것 같지? 시연이 문제는 시우에게 모든 걸 일임할게. 그래도 이쪽에서라도 방법을 찾아서 다행이다.』
“최대한 빨리 문제를 해결해 볼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역시, 내가 제일 사랑하는 교황님다워. 정말 듬직해. 그럼, 금방 다시 보자!』
우우우웅.
[신탁이 종료되었습니다.]증폭기가 회전을 멈추는 것과 동시에 신탁은 종료되었다.
2.
리멘의 신탁이 끝난 후.
가장 먼저 내 집무실에 들어온 건 레오와 루나였다.
“성하, 리멘님이 뭐라고 하세요?”
“뭐라고 하기는. 그냥 잘 지낸다, 이런 말만 주고 받았지. 에덴에도 큰일은 없대.”
“아니, 시연이요, 시연이. 시연이를 선지자로 인정하시겠다 하셨어요?”
“인정하고 말고가 어디 있냐.”
자기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고, 하기 싫으면 안 하는 거고.
리멘은 시연이의 선택을 존중해 주기로 했다.
오빠인 내가 가만히 있는데, 왜 부하 둘이서 난리실까? 누가 보면 내 상전인 줄 알겠다.
“이야기나 들어 보자.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데?”
“어울리긴 할 것 같아요.”
“저도 레벤톤 경과 같은 입장입니다.”
“시연이, 성하가 생각하는 것보다 손 매워요. 전문적으로 배우면 되게 잘할걸요. 유전자가 확실히 있어요.”
살다 살다 에덴에서 넘어온 인물이 유전자를 언급하는 꼴을 본다.
루나는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언제까지 성하가 시연이를 챙겨 주실 순 없잖아요.”
“호신술 때문에 선지자로 만들자고?”
“겸사겸사죠 뭐.”
시연이가 선지자가 된다라.
솔직히 가족 경영 한다는 이야기가 듣기 싫어서 꺼려지는 것도 좀 있다.
하지만 나는 루나가 내세운 논리를 듣자마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시연이 평범하게는 못 살아요. 인터넷에서는 리멘 교단의 귀여운 성녀, 이렇게도 불리고 있구요. 김시우 여동생만 치면 바로 나와요.”
“어차피 나 때문에 유명해진 거, 아예 선지자로 만들어 버리자?”
“그쪽이 훨씬 안정적이니까요. 신수랑 계속 붙어 있어서 신성력에 대한 적응력도 엄청 좋을 거구요.”
시연이를 지켜 주라고 붙여 주었던 백설이가 졸지에 조기 교육으로 변해 버린 순간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시연이일까? 인욱이는……”
“인욱이는 아쉽게도 이쪽으로는 재능이 없나 보죠.”
“그 말 인욱이가 들었으면 섭섭해했겠다.”
“한번 껴안아 주면 돼요.”
인욱이를 다루는 법을 극성으로 터득해 버린 루나였다.
“맞다, 할머니의 반응은 어떠셨어요?”
“할머니는 찬성이야. 위험한 세상에 자기 몸 지킬 힘쯤은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더라.”
지극히 할머니다운 대답이셨다.
할머니는 시연이가 선지자가 되는 것에 대해 전혀 불만이 없으셨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말씀하시더라.
-밝게 빛나는 불 주위에는 벌레들이 꼬이는 법이란다. 시우야. 그 벌레 중에 독충이 있을 줄 어찌 알겠니? 차라리 다행이다.
듣고 보니 할머니도 루나랑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그런가?
“그 이야기는 일단 나중에 하자. 어차피 시연이의 의사가 제일 중요하니까, 알겠지?”
“네에.”
“가서 라파엘 들어오라고 해. 아, 그리고 당분간은 우리 교단도 상황을 주시한다. 잃어버린 땅에 예정되어 있는 토벌들을 제외하고서는 외부 활동 최대한 자제할 거야.”
혼란스러운 시기다.
이런 시기 때 함부로 움직였다가는 돌 맞기 십상이다.
이럴 때일수록 몸을 숙이고 조용히 내실을 챙기는 게 맞다. 원래 모난 돌이 돌 맞기 십상이거든.
……생각해 보니 그래서 우리 교단에 자꾸 일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
“만약에 시연이가 선지자의 길을 걷겠다고 한다면, 꼭 제가 전담하고 싶어요, 성하.”
결국, 루나가 급하게 뛰어 들어온 건 저게 이유였던 모양이다.
나는 눈을 빛내는 루나를 향해 대충 손을 휘저었고, 루나는 레오를 데리고 집무실에서 퇴장했다.
그리고 잠시 후,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라파엘이 안으로 들어섰다.
“제가 제작한 증폭기가 효과는 있었던 것 같아 기쁩니다, 교황님!”
“증폭기가 정지했는데, 괜찮습니까?”
“사이킥 수정에 담긴 힘을 모두 소모해서 그렇습니다. 일단은 프로토타입이라, 에너지 소비량이 어마어마하거든요. 그래도 데이터를 충분히 수집했습니다.”
라파엘은 자신의 오른팔, ‘데이비드’를 흔들면서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방금 소모한 사이킥 수정은 제가 1년 동안 소중하게 길러 낸 녀석이었습니다.”
“……수정은 더 없구요?”
“차원 간의 연결이 그리 쉬운 일이겠습니까? 하하! 걱정하지 마세요. 사이킥 수정이야 다시 만들면 되는 거고, 증폭기는 개선을 하면 되는 거고! 뭐 그런 거죠.”
그래도 가능성은 봤다.
처음 봤을 땐 단순히 미친놈인 줄로만 알았는데 말이야.
리멘과의 연락을 복구시켜 주는 걸 보면 확실히 능력은 있는 것 같다.
“사이킥 수정은 뭐로 만드는 겁니까?”
“신성석이랑 원리가 비슷합니다. 마정석을 기본 베이스로 만듭니다.”
“방금 부서진 수정이 그러면…….”
“원래는 주먹만 한 마정석이었죠.”
그 말을 듣자마자 잠시 정신이 아찔해진다.
그럼 내가 리멘과 잠깐 연락하는 사이에 수백억을 해 먹었다는 소린가?
통화료가 수백억?
“이계랑 통신하는 게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그 정도 통화료는 내셔야죠. 돈도 많으신 분이.”
“저 돈 없어요. 다 교단 돈이에요.”
“불리할 때는 교황 행세를……. 흐흐, 어쨌거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도 제가 밥값은 내겠습니다. 증폭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순전히 제가 부담할 테니,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제가 이래 봬도 돈이 많거든요.”
미국에서 새롭게 개발하고 있는 무기들 대부분에 라파엘의 손길이 닿았다고 들었다.
연구에 들어가는 비용을 모두 스스로 부담하겠다는 소리를 듣고 내가 가만히 있을 수야 있나.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서 라파엘에게 손을 건넸다.
“리멘 교단에 오신 걸 다시 한번 환영합니다.”
딱 한 가지, 미친놈이라는 단점이 있지만…….
어차피 우리 교단에 정상도 없는데, 한 놈 추가된다고 뭐 어때?
그렇게 라파엘은 정식으로 우리 교단의 손님이 되었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