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69)
169화
3.
한국에 돌아온 지도 벌써 3일이 지났다.
여행이니 뭐니 해도 역시 제일 편한 곳은 고향이다.
특히, 여행 간 곳에서 테러를 경험했다거나 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공감을 못 하겠다고?
테러를 경험해 보면 된다.
나는 내 집무실 창문으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을 만끽하면서 손에 커피 잔을 쥐었다.
그리고 창문 밖에 펼쳐진 풍경을 감상하면서 커피를 한 모금 목으로 넘겼다.
“하하, 개판이네.”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온 말.
창밖에서는,
“우와아아아! 지구 최고야!”
“흐하핫! 이봐 요정님들! 내가 만든 이 놀이기구 어떤가? 요정님들을 순식간에 고도 100m 이상으로 날려 줄 수 있다네!”
“오오! 라파엘 군! 그거 나는 못 쓰는 건가?”
“토비 씨가 타기에는 중량이…… 제가 토비 님 전용으로 한번 개조를 해 보겠습니다!”
“드워프의 신체는 단단하단 것, 잊지 말게나.”
드워프, 인간, 페어리.
거기에.
멍멍멍!
이제는 완벽히 성지에 적응해 버린 베스까지 어우러져서 정말 활기차고 정신없는 분위기를 연출해 내고 있었다.
라파엘이 적당히 잘 녹아들기를 바랐지만 저렇게까지 잘 녹아들기를 바란 건 아니었다.
기존 멤버들이랑 마치 처음부터 함께한 것처럼 어우러지더라.
그 모습이 보기에 참 흡족……하지는 않았고, 그냥 이제는 보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쭉쭉 빨리는 것만 같았다.
“성하, 레오 대주교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어, 들어와.”
내가 창문 밖을 심란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쯤, 레오가 집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근래에 들어 레오의 표정이 부쩍이나 밝았다.
지구로 건너와서 얼리어답터의 길에 들어서게 된 레오에게 라파엘의 합류는 큰 자극이 되었다고 한다.
당연히 라파엘이 레오가 지닌 전자 기기들을 개조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문물을 만끽하는 행복감이라고 해야 하나.
레오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활기가 넘쳐 보였다.
“표정 좋아 보인다. 요새 재미 좋나 봐?”
“……과찬이십니다. 매일 매일 신앙으로 충만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보니, 자연스레 컨디션이 좋아질 뿐입니다. 리멘님의 은혜가 정말…….”
“라파엘이 만들어 준 자동번역기의 은혜겠지.”
“리멘님께서 라파엘을 이곳으로 인도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너 요새 하루가 갈수록 말솜씨가 는다?”
“과찬이십니다.”
현재, 우리 교단의 성서는 영문판으로도 번역 중이었는데 원래는 그것 역시 레오에게 주어진 사명이었다.
하지만 라파엘이 자동번역기를 건네주더라.
레오가 한글판으로 번역한 성서를 영어로 번역하는 형식이어서 추가로 기입할 것도 없었다.
그로 인해 레오가 누리는 삶의 질이 대폭 상승했다.
문명의 발달이 인간에게 어떤 편안함을 선사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단심문관들 육성에 대한 간략한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좋지. 안 그래도 한번 확인할 생각이었는데, 어서 보고해 봐.”
“현재, 이단심문관 교육생 32명 중 22명이 성서 전반부에 대한 시험을 통과하였습니다.”
리멘 교단의 성서는 총 17권이다.
17명의 선지자들이 리멘의 은혜로운 말씀을 받아 적은 것들을 모아서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성서.
그중 전반부는 앞 8권을 의미한다.
“……속도가 엄청나네.”
“교육생들의 열의가 무척이나 뜨겁습니다. 스펀지처럼 교리를 흡수하고 있습니다. 1기 교육생이나 2기 교육생 들과 비교하더라도 교리에서만큼은 압도적인 교육 성과입니다.”
레오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곧 내 눈앞에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당신의 교단에 속한 이단심문관>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특성 광신>을 획득합니다!] [광신> : 교단에 속한 광신도들의 성장 속도가 급격하게 증가합니다! 하지만 조심하십시오. 광신도들은 언제나 양날의 검입니다. 그들의 불타오르는 신앙심은 큰 화재를 일으킬지도 모릅니다.] [광신도>의 발생 확률이 대폭 증가합니다!]썩 유쾌하지 않은 소식이었다.
광신도들이 많아질수록 곤란해지는 건 사실.
통제가 가능할까 모르겠다.
“아, 그리고 오늘 오후 2시에 이단심문관 교육생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성적을 거둔 교육생에게 성하를 뵐 수 있는 영광을 주고자 합니다. 혹시 시간 괜찮으신지요?”
“그딴 게 영광일 리가 없잖아. 어차피 오늘 할 일 없어. 그런데 혹시 나도 아는 사람이냐?”
그러자 레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누군데?”
“이은택 교육생을 기억하십니까?”
이은택, 이은택…… 어디서 많이 들었…… 아, 기억났다.
“내가 함흥에서 데려온 그 생존자?”
“예, 맞습니다. 교육 성과가 제일 뛰어납니다. 각성자 출신이 개종한 경우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전투적인 능력 역시 압권입니다. 빠르면 3개월 이내에 1기 교육생 수준을 따라잡을 것으로 보입니다.”
“오”
내가 함흥에서 구출해 온 이은택 씨.
우리 교단의 훈련소에 들어왔다는 보고는 전달받았는데, 이단심문관의 길을 선택했을 줄은 몰랐다.
“의욕과 정신력이 굉장합니다. 아마 성하께서 기억하는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이은택 씨라면 성기사랑 어울린다고 생각했어.”
“교단의 적을 분쇄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습니다. 성하와 리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자들을 지옥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겠다면서…….”
“그만. 대충 알겠어.”
내가 기억하는 함흥은 지옥 같은 곳이었다.
그런 지옥 같은 곳에서 정신력만으로 버텨 온 사람이, 교단의 적을 지옥으로 밀어 넣겠다는 생각을 한다라?
생각만으로 모골이 송연해지는 기분이다.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라면 그 누구보다 지옥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 터.
나는 잔에 남아 있는 커피를 마저 목으로 넘긴 다음, 씁쓸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자. 아, 레오야, 점심이나 먹으러 갈까? 다른 간부들은 다 일이 있어서, 혼밥하게 생겼다.”
“좋습니다.”
“돼지고기 불백이나 먹으러 가……. 아, 맞다, 나 집에 카드 두고 왔는데, 어떻게 하지?”
“……제가 사겠습니다.”
“역시, 레오가 최고야.”
4.
레오와 든든하게 돼지고기 불백을 먹고 청계천까지 산책을 하고 나서 신전에 돌아왔다.
우리 신전의 위치가 청계천과 가깝기도 해서 간간이 산책을 즐기는 편이다.
우리 교단이 그라운드 제로를 정화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청계천은 산책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다고 한다.
이능관리부에서 직접 관리해야만 할 정도로 간간이 몬스터들이 출현했다던가.
원인을 알 수 없었다고는 하는데, 아마도 그건 그라운드 제로의 마력 오염과 관련되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교단이 성지를 정화한 이후로는 다시 옛날의 모습을 되찾았다.
청계천을 걷고 우리 교단의 성지를 관광하는 것이 현재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데이트 코스다.
페어리들이 우리 교단 성지에 합류한 이후로 우리 교단의 정원도 엄청 다채로워졌다.
게다가 페어리들 자체가 원체 쇼맨십이 좋은 편이라, 관광객들에게 인기 만점이기도 하고.
입장료를 받았다면 떼부자가 되었을 정도로 여전히 우리 교단의 성지는 북적거리는 상태였다.
“교황 성하를 뵙습니다.”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죠?”
“성하의 배려 덕분에 한국에 잘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생존자들도 항상 성하께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서울 사람이라고 해도 되겠어요.”
“그렇습니까?”
“예.”
이은택 씨의 사투리가 원래 굉장히 셌던 편인 걸로 기억하는데, 현재 이은택 씨에게서는 사투리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사투리라는 게 저렇게 쉽게 교정되는 게 아닌데 말이지.
“리멘 교단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바칠 수 있습니다. 말투를 교정하는 것쯤, 목숨에 비해서는 별게 아닙니다.”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처음 내가 이 사람을 구조했을 때는 그저 단단한 느낌만 받았는데, 이제는 익숙한…… 광기까지 느껴지고 있었다.
레오는 보기 드문 미소를 지으면서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은택 교육생은 그 누구보다 열의가 넘치며, 학습 속도가 빠릅니다. 제가 가장 기대하고 있는 교육생이기도 합니다.”
레오가 기대를 많이 한다는 건 아주 엄청난 광신도로 성장할 포텐셜이 있다는 의미다.
나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은택 씨, 사람이 달라진 것만 같았다.
“성하, 성하께 건의하고 싶은 사안이 있습니다.”
내가 이은택 씨와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레오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부산 쪽에 리멘 교단을 사칭하는 이단들이 등장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이은택 씨에게 그들을 조사하는 임무를 내리시는 게 어떠신지요.”
기본적으로 이단심문관들은 정보 수집 능력을 탑재해야 한다.
상대방이 이단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정보 수집이 필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이단심문관들에게 정보 수집 능력에 관한 교육은 따로 실시하지 않은 상황.
추후에 정부 쪽의 도움을 받을까 고민하고 있는 상황인데, 아직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을 정보원으로 보낸다?
이건 살짝 어폐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나는 잠시 후에 이어진 레오의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은택 교육생에게는 별다른 교육이 필요 없을 겁니다.”
“왜?”
“그의 출신이 그렇습니다. 이은택 교육생? 성하께 설명을 드리십시오.”
“북한이 무너지기 전, 제가 소속된 곳은 정찰총국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방부 산하의 정보사령부, 아니면 국가정보원이랑 비슷한 조직이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전문가였구만.
그래서 이 사람이 정부 측에 꽤 오래 억류되어 있었던 건가?
“제 특기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면! 절대로 성하를 실망시키는 일 없도록 최선을 다하여 완수하겠습니다!”
“부산에 이단들이 나타난 건 맞아?”
“리멘 교단의 성서를 함께 공부하자는 모임들이 부산 지역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고 합니다. 심리 상담 같은 것도 병행한다는데, 아무래도 그 수법이 좀…… 성하께서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심리 상담이라…… 스터디 모임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겠지?”
“정확합니다.”
“수법은 클래식하네.”
성서를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니다.
정말 그 사람들이 성서를 공부하고 싶어서 모이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극히 희박한 경우겠지만 말이다.
수법 자체는 꽤나 고전적이다. 2020년대에도 몇몇 사이비 종교들이 주로 사용했던 포교 방법.
확실히 냄새가 난다.
그것도 아주 진득한 이단의 냄새가.
“정말 그들이 교단의 신도들인지, 아니면 교단의 이름을 팔아 뱃속을 채우는 이단들인지. 인력을 직접 파견할 필요성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았을 때, 이은택 교육생이야말로 이번 임무의 적임자입니다.”
현재, 이단심문관 교육의 총책임자는 레오다.
레오에게 전권을 부여한 만큼, 그들의 임무에 대한 것 역시 레오의 의견을 따라가 주는 게 맞다.
나는 빠르게 고민을 끝냈다. 그리고 레오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이은택 형제님?”
“예, 성하!”
“교단의 명예와 관련된 문제니까 잘 부탁합니다.”
그러자 이은택 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허리를 90도로 숙이면서 답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구산 이단심문관의 공식적인 첫 임무가 시작되었다.
5.
이은택 씨와의 만남이 끝난 후, 교단의 이런저런 업무를 처리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나 왔어.”
퇴근은 언제나 즐겁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는데, 내가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곧 안방에서 시연이가 달려 나왔다.
“큰오빠! 기다리고 있었어!”
나를 보자마자 와락 껴안는 귀여운 우리 시연이.
정말로 귀여워 죽겠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시연이가 선지자가 되는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 시연이는 꽃길만 걷게 해 줘야지.
그렇게 내가 웃으면서 시연이를 쓰다듬어 주고 있을 때, 시연이가 나를 바라보면서 눈을 빛냈다.
“큰오빠한테 보여 줄 거 있어!”
“음? 뭔데.”
“헤헤, 들어가서 보여 줄게!”
시연이는 내 손을 꽉 잡은 채로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에는 지난번에 사다 둔 빔 프로젝터가 있었는데, 그 옆에는 인욱이가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형 왔어?”
“무슨 일이냐?”
“그게…… 아니다. 형이 직접 봐 봐.”
무슨 일이길래 인욱이가 저렇게 당황할까.
그러나 인욱이가 당황하건 말건, 시연이는 미리 세팅되어 있던 의자에 나를 앉혔다. 그리고 당찬 목소리로 말했다.
“열심히 준비했어!”
그리고 잠시 후, 빔 프로젝터가 가동되더니 곧 큰 글씨가 화면에 떠올랐다.
「나의 꿈」
“지금부터 김시연의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시연아?
뭐 하니?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