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70)
170화
6.
무려 30분 동안이나 이어진 시연이의 발표.
도저히 초등학생이라고 믿을 수 없는 패기로 발표를 시작한 시연이는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발표를 마무리했다.
“이상! 김시연의 발표를 끝내겠습니다! 발표 자료 준비를 도와준 김인욱 씨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짝짝짝.
박수 소리가 두 번 중첩되어 들려온다.
하나는 당연히 인욱이였고, 다른 하나는……
“백설아, 너 뭐 하니?”
「뭐긴, 당연히 박수 치는 거지.」
백설이가 스마트폰을 통해 틀어 둔 박수 소리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캣타워에서 잠을 자고 있던 놈이 언제 일어난 걸까?
그리고 갑자기 등장해서는 스마트폰으로 박수 소리를 내는 것도 골을 때린다.
시연이의 발표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나도 오빠처럼 되고 싶어! 나쁜 사람들 혼내 주고, 힘든 사람들 도와줄 거야! 승우 오빠도 배우는데 나는 왜 안 돼? 나도 할 수 있어!
인욱이의 도움을 받아서 PPT도 깔끔하게 준비했고, 더불어 승우라는 좋은 예시까지 들었다.
명분까지 완벽했던 상황.
예전에 시연이가 웅변 학원에 잠깐 다닌 적이 있다고 했는데, 아무리 봐도 우리 시연이는 천재인 게 틀림없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더라.
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누가 시연이에게 바람을 불어넣었는지 알 수 있었다.
범인은 바로,
“너 이따가 보자.”
「아, 왜? 시연이도 자기가 어떤 상태인지 알고 있어야지. 시연이를 언제까지 어린애로만 볼 거야?」
백설이 이놈이었다.
시연이는 내심 비밀로 하려는 것 같지만, 내 눈에는 다 보인다.
범인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는 법.
백설이는 신수답게 시연이의 상태가 어떤지 본능적으로 깨닫고, 바로 작업을 들어간 것 같았다.
「시연이 옆에 있으면 나도 강해지는 기분이라서 그래. 주인이랑 있을 때보다 훨씬 행복하다고.」
신수와 같이 있다 보니 신수와 관련된 은총이라도 얻은 건가?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시연이의 표정을 보니 정말 진심이었다. 그리고 내 경험상, 시연이의 고집을 이기긴 힘들다.
시연이도 나처럼 고집이 좀 세거든.
평소에 고집을 부리는 일이 별로 없지만, 한번 마음 먹은 건 어떻게든 해내고자 하는 성격이다.
그런 시연이가 인욱이의 도움을 받아 발표까지 했다?
명분도 없이 단순히 ‘안 돼’를 해 버렸다가는 큰일이 벌어질 것이다.
이런 내 심정을 눈치를 챈 걸까?
가만히 있던 인욱이가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진지하게 한번 고민해 봐, 형. 시연이가 잠도 덜 자고 준비했어.”
“시연이가?”
“응. 물론 나도 같이 잠을 못 잤지만.”
인욱이는 사실 알 바는 아니고, 시연이가 잠까지 줄였을 정도라면…… 100프로 진심이라는 거다.
시연이는 보통 어떤 상황에서도 잠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즉, 나 역시 시연이의 발표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뜻.
시연이를 품속에서 애지중지 키우겠다는 생각은 그저 내 욕심일 뿐이었을까?
“큰오빠.”
발표를 성공리에 끝마친 시연이가 조심스럽게 내 앞에 다가왔다.
그리고 아까처럼 나를 폭 껴안으면서 말했다.
“큰오빠가 나를 지켜 주는 것처럼, 나도 언젠가는 큰오빠를 지켜 주고 싶어. 다시는 오빠를 잃지 않을 거야.”
그제야 나는 시연이의 마음속에 무엇이 남아 있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5년간의 부재.
항상 함께했던,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는 상실감.
평소에 시연이가 티를 내지 않았지만, 내가 5년 동안 실종되었던 기억은 아마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시연이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학교도 계속 열심히 다닐거구, 오빠가 걱정하는 일 없도록 할게!”
아직까지 시연이에게 어떤 은총이 내려졌는지는 모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리멘에게 미리 물어볼 걸 그랬나? 리멘이라면 알지도 모르는데.
아니, 다 떠나서.
나를 지켜 주겠다고, 다시는 잃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동생의 이야기를 어떻게 거절할 수 있을까.
나는 한참 동안 말없이 시연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시연이의 손을 잡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내 동생 엄청 진지하네. 오빠도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게.”
시연이가 폭풍에 휘말리지 않았으면 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내 욕심이었을 뿐.
이 조그만 아이가 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시연이에게도 시연이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는 것 같다.
“정말?”
“그럼. 오빠가 언제 너한테 거짓말하는 거 본 적 있어? 인욱이한테는 몰라도 시연이 너한테는 거짓말한 적 없다?”
“그건 맞아.”
“아니, 왜 갑자기 나를 때려?”
옆에 있던 인욱이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고, 나는 그런 인욱이를 향해 어깨를 으쓱였다.
“시연이가 만약에 우리 교단에서 선지자 수업을 받으면…… 우리 집의 최약체는 누가 될까? 야, 김백설, 말해 봐.”
그러자 백설이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스마트폰을 두드렸다. 그러자 곧 스마트폰에서 무뚝뚝한 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김인욱.
“봐 봐. 축생조차 그렇게 말하잖아.”
-참고로 나까지 포함. 그러니까 인욱은 나한테 츄르를 많이 줄 것. 그러면 자비를 베풀어 줌.
마지막에 사족을 붙이는 것까지.
베스는 오늘 페어리들이랑 노느라고 집에 아직 안 들어왔고, 베스가 이 집에 있더라도 인욱이가 최약체인 건 틀림없어 보였다.
“진짜 억울해.”
“왜.”
“따지고 보면 내가 2호 신도인데, 왜 나는 아무런 능력도 없는 거야?”
“그건…… 네 팔자가 그런 걸 어떻게 하겠니?”
꼬우면 시연이처럼 알아서 재능을 개화시키던가.
세례라는 좋은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인욱이에게까지 세례를 내려 주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인욱이는 내 단호한 대답을 듣자마자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러자 가만히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시연이가 인욱이의 등을 두드리면서 말했다.
“걱정하지마, 작은오빠.”
“시연아, 작은오빠는 우리 시연이밖에 없…….”
“우리 집 최약체는 내가 지켜 줄게! 나만 믿어!”
……그게 위로가 되는 건 맞니, 시연아?
인욱이의 표정을 보면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그렇게 해서 시연이의 발표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고, 나는 웃으면서 동생들에게 말했다.
“인욱아, 시연이 데리고 잠시 나가 있어 봐.”
“알았어.”
인욱이가 말을 참 잘 듣는다. 인욱이는 시연이의 손을 잡고 일어났고, 곧바로 안방에서 나갔다.
그러자 신나게 스마트폰을 두드리고 있던 백설이도 몸을 일으켰다.
「츄르 먹을 시간이네. 나 먼저 갈게, 주인! 푹 쉬고 있…….」
콰앙.
슬쩍 신성력을 움직여서 안방의 문을 닫아 버렸다.
그러자 곧바로 털을 곤두세우는 백설이.
「주……주인?」
나는 잔뜩 겁을 먹은 백설이를 향해 입꼬리를 씨익 올려 주었다. 그리고 즐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시연이 꼬신 게 너지?”
「꼬신 게 아니라 이건 어디까지나…….」
“아아 됐고, 나도 지금 너 때리려는 게 아니야. 이건 어디까지나 훈육이지.”
「……살려 주세요.」
김백설 넌 뒈졌다.
7.
다음 날 아침.
“성하,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이셔요.”
“아, 그래? 어제 스트레스 좀 풀어서 그런가?”
“음, 근데 옷에 흰색 털이 많이 묻어 있네요? 백설이 털 같은데, 백설이도 털갈이 같은 거 하나?”
“털갈이는 안 하는데, 조금 있으면 여름 찾아오잖아? 더울까 봐 미리 밀어 줬지. 시원한 게 좋잖아.”
“이쁘겠다. 사진 있어요?”
“나중에 집에 가서 봐 봐.”
“네에.”
나는 아침부터 집무실에 찾아온 루나를 상대해 주는 중이었다.
“시연이는 어떻게, 선지자 교육을?”
“하기로 했어. 시연이 본인의 의지가 강하더라. 그런데 너한테만 맡기지는 않을 거야.”
“성하, 그거 알아요?”
“뭐?”
“가족 사이에는 운전 가르쳐 주는 거 아니라잖아요. 전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한마디로 ‘너는 교육에서 빠져.’라는 건데, 나는 슬쩍 웃으면서 루나를 바라보았다.
“안 그래도 난 빠질 생각이었는데?”
“어떤 은총을 부여받았는지부터 알아봐야 할 것 같은데…… 아쉽다. 그런 건 라파르트 대주교가 전문이죠.”
“그런데 루나야, 너는 웬일로 갑옷을 입고 있냐? 평소에는 잘 입지도 않잖아.”
나는 루나가 입고 있는 순백색의 판금 갑옷을 턱으로 가리키면서 물었다.
귀찮다는 핑계로 라이더 복장을 고수하던 루나가 무슨 바람이라도 불었는지, 오늘따라 신전 내부에서도 갑옷을 입고 있었다.
“아, 이거요? 이능관리부에서 오늘 협조 요청 와서 그냥 입고 있었어요.”
“협조 요청?”
“경기도 광명시에 오늘 게이트 큰 거 하나 온다고 해서요. 애들 데리고 갑니다.”
요새 자잘한 협조 요청은 대부분 간부들이 처리하는 중이다.
매 게이트마다 내가 직접 나서면 귀찮기도 하고, 이레귤러를 아무 데나 동원하기에는 정부로서도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나야 뭐 좋다.
할 일이 줄어들었으니까.
게다가 이런 협조 요청을 통해서 교육생들을 키울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광명시면 내 고향인 거 알지?”
“그럼요. 광명시에도 지금 성하 전신상 세우자는 이야기가 들리던데, 당연히 알죠.”
“……거기에도 내 전신상을?”
“그렇다던데요.”
이러다가 전국에 내 전신상이 세워질 기세다.
곤란하다, 곤란해.
만약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가는…… 치욕스러워서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
“오늘 레이드는 2기 교육생들 중에서 다섯 명을 선발하여 참여할 예정이에요. 여기, 명단이요.”
루나가 건네준 종이를 받아들었다.
그곳에 적혀 있는 다섯 명의 이름.
그중 가장 최상단에 위치한 것은 아주 익숙한 녀석이 담당 교관으로 있는 ‘카시미 시게지’라는 일본인 교육생이었다.
“재민이가 이를 악물고 키웠네. 성과가 아주 좋아.”
“근성, 전투 능력 모두 빼어나요. 딱 한 가지, 평소에 사람들을 많이 안 만났는지 사회성은 살짝 떨어져요. 히키코모리 출신이었다고 하더라구요. 처음에는 적응을 잘 못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괜찮아지고 있어요.”
“좋다. 좋아.”
아주 긍정적인 선순환이었다.
1기 교육생들의 주도하에 키워지는 2기 교육생들.
지금이야 2기가 끝이지만, 나중에 3기, 4기를 넘어선다면 선배들의 경험이 고스란히 밑으로 전달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들은 곧 우리 교단만이 지닌 또 다른 강점이 되어 줄 터였다.
“조심해서 다녀와라.”
“예에, 널널하게 다녀오겠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수도권 쪽에 게이트가 등장한 적은 몇 번 없지 않았냐?”
“이능관리부에서도 이례적이라고 하던데요?”
“그래?”
잃어버린 땅 공략이 시작된 이래로 게이트나 던전이 출현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어졌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서울 바로 밑에 게이트가 생성될 예정이라고 하니, 뭔가 목에 턱 걸리는 것 같다.
“등급은 뭐래?”
“대형 B급이요. 혹시 몰라서 잃어버린 땅에 있는 본대 중 일부 귀환시켰다니까, 크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그런데 왜요, 좀 불안하세요?”
루나가 내 시선을 마주하면서 넌지시 물었다.
“성하 직감은 그런 쪽으론 백 프로 확실하잖아요. 뭔가 좀 싸하세요?”
나는 그녀의 질문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느낌이 안 좋아. 갈 때 레오도 데려가라. 그레이스도 데려가고.”
레오에다가 그레이스까지 붙여 준다면 어지간한 변수에도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말에 루나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누나가 일하는데, 동생 쉬는 꼴은 못 보죠. 감사합니다, 성하. 레오 꼭 데려갈게요.”
“……어, 그래.”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루나는 허리를 숙여 인사를 끝낸 다음,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무실 밖으로 나섰다.
나는 루나가 열고 나간 문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숨을 뱉어 냈다.
레오에다가 그레이스까지 붙였으니 별일이야 없겠지, 뭐.
8.
하지만 1시간 후, 나는 나의 그 안일한 생각이 플래그였다는 걸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차원계 : 지구>에 할당된 시나리오 : 격의 시대>] [충분한 준비가 끝났다고 판단, 시나리오 진행을 속행합니다.] [침공을 방어하십시오.]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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