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72)
172화
3.
릴리스.
에덴에서 내가 직접 두 손으로 머리와 몸을 분리해 버린 마왕이었다.
어떻게 분리했냐고?
당연히 신의 힘으로 분리했지.
리멘이 준 신성력을 손에 두른 채로 단번에 뽑아 버렸다.
마왕은 다른 마족들이나 마수처럼 피를 흘려 대면서 죽는 놈들이 아니다.
마기의 정점에 서 있는 존재들인 만큼, 녀석들의 살과 피는 마기로 이루어져 있다.
대신에 녀석들은 심장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마기의 구심점이 되는 ‘영혼석’이란 걸 지니고 있다.
녀석들을 소멸시키는 방법은 바로 그 ‘영혼석’을 뽑아내서 박살 내는 것.
내가 릴리스의 목을 뽑아 버렸던 건 그 ‘영혼석’이 녀석의 목 바로 밑 부근에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콰우우우-.
캬아아아아악!
릴리스가 이끄는 군단은 다른 마왕의 군단에 비해 압도적인 숫자를 자랑한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하늘에 생성된 게이트 너머로 괴성이 난무했다.
게다가 일부 마수들이 이미 게이트에 머리를 들이밀며 언제든지 넘어오려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는 상황.
그 모습에 나는 비릿하게 웃으면서 한마디 던졌다.
“여전히 발정 난 것들만 데리고 다니나 보네. 항상 느끼던 건데, 너한텐 딱 그게 어울려.”
『여전히 혓바닥이 매력적이야. 그 혓바닥으로 나에게 음탕한 이야기를 속삭여 주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생각만 해도 온몸이 짜릿해. 자꾸 흥분되잖아.』
릴리스는 허공에 둥둥 떠오른 상태로 나에게 속삭였다.
녀석의 목소리는 바람을 타고 끈적하게 내 몸을 휘감는다. 몽마의 일족 출신으로서 마왕이 된 녀석답게, 목소리 자체에 사람을 현혹하는 힘이 담겨 있었다.
성지를 중심으로 거대한 신성 결계가 생성되어 있어서 다행이지, 집단 현혹을 일으킬 정도로 강력한 마기가 담긴 목소리다.
-치명적인 에너지 파장 감지. 분석 시작.
라파엘의 ‘데이비드’가 기계음으로 내뱉는 것처럼 저 목소리는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무기였다.
에덴에 존재했던 어떤 제국의 기사단 역시 저 목소리에 홀려 서로 죽여 댔었더랬지.
막대한 군세와 저 말도 안 되는 권능.
그 두 가지로 인해서 대군끼리 맞붙는 전투에서는 항상 큰 피해를 입혔던 게 바로 릴리스였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릴리스를 바라보았다.
“껍데기가 바뀌었네.”
한국인의 시선에서는 서양인의 느낌을 주는 외관을 자랑하던 릴리스의 모습은 이미 동양인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마왕의 화신체.
내가 예전에 한국에서 분노의 마왕의 화신체가 될 놈을 처리하기는 했는데, 저 녀석의 화신체가 아무래도 중국 쪽에서 등장했던 것 같다.
“음, 교황님,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뭐 하나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예, 하세요.”
“저놈, 스트리퍼입니까? 입고 있는 꼴이 영.”
라파엘이 혀를 차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육감적인 상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릴리스의 모습.
옆에 승우나 시연이가 있었다면 당장 눈을 가리게 했어야 할 정도로 노골적이며 외설적이었다.
나는 라파엘의 말에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음욕의 마왕을 스트리퍼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것 같긴 하네요.”
“아, 저게 마왕입니까? 어쩐지. 탐구욕이 끓어오르는 것만 같군요. 그럼 저는 저 친구를 탐구욕의 마왕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좋을 대로.”
음욕의 마왕은 남성체들에게 한해서만큼은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나와 라파엘에게는 그 어떤 영향도 못 끼치는 듯 보였다.
나야 신성력 덕분에 녀석의 매혹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쳐도.
“헤이, 스트리퍼, 팁을 줄 테니 나를 위해 시간을 좀 내줬으면 하는데!”
이 미친놈은 도대체 어떻게 버티고 있는 걸까?
게다가 어느새 어디에서 났는지 모를 전투용 슈트까지 풀착용한 상태.
라파엘은 자신의 슈트 곳곳에 박혀 있는 수정들을 두드린 다음, 엄지손가락을 올리면서 말했다.
“저도 그 영화 좋아했습니다, 아이언 브라더.”
“아, 예.”
“자, 그럼 저는 시민분들이나 마저 대피시키러 가겠습니다. 아, 그리고 1분 뒤에 도착할 겁니다. 그럼 이만.”
헬멧까지 완벽하게 착용한 라파엘이 곧바로 몸을 움직였고, 우리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릴리스가 한마디 던졌다.
『네가 지구 출신이라 그렇게 미쳐 있던 거야? 지구의 인간들은 하나같이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현대의 지구인은 누구나 하나씩 결핍되어 있지. 그리고…… 네 성적 매력이 많이 부족했나 봐. 노력을 좀 해라.”
나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당연한 거겠지만, 릴리스는 에덴에서의 그녀와 비교해 본다면 보잘것없을 정도로 약해져 있었다.
수치로 따지자면 3분의 1 수준으로 약화되었다고 해야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릴리스의 표정에는 여유가 가득했다.
『긴장하지 마, 교황. 오늘은 내가 돌아왔다는 것만 알려 주려고 온 거니까. 아직은 너랑 싸울 생각은 없어.』
릴리스가 자신의 목을 쓰다듬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눈에서 보라색 마기가 일렁인다.
『너에게 보여 주고 싶었어. 우리들이 지구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는 걸, 정말로 보여 주고 싶었어.』
전투 의지가 없었다는 것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만약 녀석이 정말 나와 사생결단을 내고 싶었다면 대화할 시간 따위란 없었을 것이다.
저 게이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을 병력을 한바탕 쏟아 냈겠지.
그럼 여기서 의문 한 가지가 든다.
싸울 생각도 없는데 녀석은 어째서 이곳에 온 걸까?
『이름도 없는 인간이 그러던데, 네 부하들도 지구로 꽤 많이 건너왔다면서?』
이름도 없는 인간이라 한다면 지난번에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 ‘무명’이라는 놈을 가리키는 것 같았다.
나는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천천히 신성력을 끌어 올리며 답했다.
“네가 알 바야?”
『지금으로서는 너를 죽이지는 못해. 아직 힘을 완전하게 회복하진 못했거든. 그런데 네 부하들 정도는 충분히 죽일 수 있어. 탐식 녀석도 화신체를 손에 넣었어. 지금쯤이면 아마 네 부하들을 먹어 치우고 있지 않을까?』
루나에게서 광명시의 게이트를 중심으로 마기가 확산되고 있다는 보고를 전해 들었다.
이제야 이 녀석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처음부터 목표는 내가 아니라 내 부하들이었다는 거네. 그 이야기를 애들이 들었으면 열 좀 받았겠는걸.”
단순한 양동작전.
어차피 본인들의 전력으로는 아직까지 나를 죽일 수 없으니, 내 발을 묶고 부하들이라도 죽이겠다는 생각.
어떤 놈 대가리에서 나왔는지는 모르겠다만, 참으로 상큼한 작전이 아닐 수 없었다.
“탐식 놈이랑 릴리스 너랑, 둘 중 누가 더 강하냐?”
『비슷하지?』
“그렇다면 걱정할 거 없겠다.”
[스킬 파마의 사슬 Lv.Max>를 시전합니다.]내 몸에서 뻗어 나간 신성력이 수십 갈래로 나뉘었고, 곧 그것들은 새하얀 빛의 사슬이 되어 릴리스의 전신을 속박했다.
그러나 릴리스는 묶인 상황에서도 여유로운 목소리로 지껄였다.
『묶는 플레이가 취향이었어?』
“얼추 비슷해.”
『진작에 말을 하지. 그런데 그거 알아? 어차피 나에게는 다른 화신체도 있어서, 지금 이 화신체를 죽여 봤자 나는 다른 화신체로 부활하면 그만-.』
그때였다.
하늘에서 날아든 미사일이 쉴 새 없이 속박된 릴리스의 몸에 꽂혀 들었다.
라파엘의 손에 의해 빠르게 개조된 천벌.
이름하여 천벌 2 되시겠다.
참고로 유도 기능까지 탑재한 버전이다.
콰아아아아아앙-.
하늘에서 새하얀 불꽃놀이가 시작된다.
나는 그 불꽃놀이를 바라보면서 건틀렛에 잔뜩 신성력을 불어 넣었다.
“아, 그리고 묶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
건틀렛에 잔뜩 응축되어 있던 신성력이 순식간에 성화로 전환되면서 쏘아져 나갔다.
“묶어서 패는 걸 좋아해.”
4.
중국, 상해.
어느 건물의 지하에 만들어진 거대한 공동.
“꺄아아아아아아악!”
“쿨럭. 크흐으으으윽.”
바닥에 누워 있던 수백 명의 인간들이 동시에 피를 토해 내며 사망했다.
그들을 중심으로 그려져 있던 마법진이 희생자들의 피를 흡수하면서 밝게 빛났지만, 그 빛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우우우우웅.
마법진의 중심에 있는 두 개의 구슬.
그 구슬들은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인간들의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를 게걸스럽게 빨아들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파아아아아아아악-.
구슬 두 개가 차례로 산산조각 나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실패로군요.”
그 장면을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미청년이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그의 옆에 있던 리치가 고개를 숙이면서 의지를 전했다.
-마왕님들의 화신체가 신성력을 버티지 못했습니다.
“게이트를 활용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볼 수 있겠군요. 그리고…… 리멘 교단에서 개발한 신무기가 의외로 위협적이네요.”
무명은 미소를 지으면서 방금 전의 장면들을 떠올렸다.
리멘 교단에서 새롭게 개발한 신무기.
기존의 재래식 무기들을 신성력을 통해서 재탄생시킨 혼종.
“천벌이라고 했던가요?”
릴리스와 바알.
둘 모두 리멘 교단의 신무기에 당했다.
릴리스의 경우에는 현장에 김시우가 있었으니 그렇다고 쳐도, 바알이 당한 과정을 분석해 보면 그 무기의 위험성에 대해서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게이트에서 몸을 드러낸 바알.
탐식의 마왕답게 주변의 빌딩조차 압도하는 크기를 자랑했던 바알이지만, 오히려 압도적인 크기가 독이 되었다.
빠르게 증원을 온 ‘천벌’ 미사일에 의해 전신이 참혹하게 박살 났기 때문이다.
“두 병신 같은 마왕님들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시죠?”
-……성소의 영혼석에서 힘을 회복 중이십니다. 신성력에 입은 타격은 마왕님들의 영혼에도 후유증을 남기기 때문에,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하여간에 병신 같은 놈들입니다. 따라 해 보세요. 마왕들은 병신이다.”
-위대한 분이시여…….
“따라 할 수 없나요?”
무명은 웃으면서 리치의 두개골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리치가 다급히 고개를 조아리면서 말했다.
-……마왕들은 병신이다.
“바로 그거예요.”
원하는 대답을 들은 무명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병신 같은 것들이 화신체나 날려 먹고, 화신체를 구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르나 봐요. 제가 아직 그들을 찌르는 건 이르다고 몇 번이나 말을 했는데…… 겪어 봐야 아는 것만큼 미련한 짓이 또 없죠. 다른 마왕님들에 비해 음욕이랑 탐식은 너무 멍청하고 성급해요.”
무명의 목소리가 어두운 동굴 속을 울렸다.
무명은 공동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을 향해 가볍게 손끝을 튕겼다.
그러자 곧 검은색의 불길이 치솟더니, 그 시체들을 남김없이 불태웠다.
“나머지 마왕분들은 사리 분간을 하실 줄 아시던데…… 이렇게 화신체를 소모하는 게 정말 아쉬워요. 그래도 뭐 그런 점이 우리 마왕님들의 매력 아니겠어요?”
그렇게 뒤처리까지 완벽하게 끝낸 무명이 등을 돌렸다. 그리고 어두컴컴한 통로를 걸으며 질문을 이어 갔다.
“백명교 놈들의 행방은 찾아봤나요.”
-그들이 잃어버린 땅에서 무언가를 입수한 건 분명해 보입니다. 현재 그들은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점화하고 있습니다. 명령만 내려 주신다면 곧바로 병력을 파병하도록 하겠습니다.
“리멘 교단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요. 오히려 그들을 견제해야 할 것 같은데……. 그냥 내버려 두세요. 퇴물을 모시는 광신도들이 무슨 짓을 하나 궁금하거든요.”
무명의 입가에 떠올라 있던 미소가 더욱 짙어진다.
“각 지부에 수확을 시작하라고 전달하세요.”
-알겠습니다.
“그 달콤한 과일들을 입에 넣으면 얼마나 달콤할까, 기대를 감출 수가 없네요.”
기쁨을 주체할 수 없는, 마치 즐거워 죽겠다는, 그런 목소리였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