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73)
173화
5.
성지에 위치한 넓은 정원.
평상시에는 훌륭한 데이트 코스로 이용되던 이곳이, 지금은 순식간에 대피 장소로 변해 있었다.
“괜찮아요, 여러분!”
“여러분의 곁에는 우리가 있어요!”
“엄청 강한 교황님도!”
“손가락으로 제 머리를 쓰다듬으시면 마음이 한결 놓이실 거예요!”
귀여운 페어리들이 날아다니면서 사람들을 안심시킨다.
페어리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순수한 에너지가 불안에 떨던 사람들을 빠르게 진정시킨다.
항상 밝은 표정으로 지내는 페어리들.
녀석들이 활발하게 돌아다니니까 확실히 분위기가 잡힌다.
“성하.”
내가 신전의 입구에 서서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을 때쯤, 라파르트 대주교가 나에게로 다가왔다.
“루나 레벤톤 경으로부터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피해 규모는요?”
“탐식의 마왕 바알이 등장했었으며, 그로 인해 각성자 피해가 심각했다고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1기 교육생 중에서 사망자는 없습니다. 대신 중상자가 19명이며, 바알의 공격에 의해 레오 대주교의 복부가 관통당했다고 합니다.”
레오의 육체는 갑옷보다도 더 단단하다.
그런 레오의 육체가 뚫렸을 정도라면, 다른 사람이었으면 그대로 먼지가 되었을 공격이었을 것이다.
“레오의 상태는 어떻답니까?”
“생명에 지장은 없습니다.”
“다행이네요.”
레오는 우리 교단의 선지자들 중에서 유별나게 강력한 회복력을 지닌 녀석이다.
트롤의 뺨조차 후려칠 정도의 회복력.
목숨만 붙어 있다면 어떤 경우에든지 회복을 할 수 있는 녀석이었으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레오의 복부를 관통당하는 대가로 바알을 처리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과였다.
“아, 그리고 정부 측에서 비축해 둔 천벌을 전부 사용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마왕을 저지한 대가치고는 싸게 먹혔네요.”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성하.”
원래의 힘을 되찾지 못한 마왕들이었지만, 그래도 명색이 마왕이다.
빠른 속도로 저지하지 못했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추종자를 만들거나, 역병을 퍼뜨리는 걸 좋아하는 릴리스와 바알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마왕의 출현.
그리고 본격적으로 격의 시대>를 시작한다는 시스템 메시지.
이 둘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아직까진 모르겠으나, 한 가지만큼은 확실하다.
“좋은 날 다 갔다.”
정신없이 바쁜 날들이 시작될 거라는 것.
확실히 근래에 들어 우리 시스템이 너무 잠잠하다 싶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대전과 부산 쪽에 생성된 게이트에는 마왕들이 등장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놈들이 게이트를 이용할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하면 되려나.”
시스템이 그들의 편을 들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자세한 건 정화자의 고위 간부들을 잡아서 심문을 해 봐야 알 테지만 말이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린 다음, 스마트폰에 도착한 문자를 확인했다.
-부산, 대전 인근의 각성자 강제 소집. 게이트 안정화 작업 진행 중.
위급한 고비는 어떻게든 잘 넘어간 것 같기는 한데, 이 이후가 걱정이다.
이렇게 된 이상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북진이 굉장히 느려지게 될 것이다.
원래는 내년까지 구 북한 지역 전체를 수복하는 게 목표였겠으나, 평양까지 수복하는 수준에서 그치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성하, 라파엘 군은…….”
라파르트 대주교가 주위를 둘러보면서 라파엘을 찾았다. 나는 그런 라파르트 대주교를 향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기 오네요.”
“……음.”
저 멀리서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라파엘.
그의 옆에는 파란색의 비닐로 꽁꽁 감겨 있는 ‘무엇인가’가 허공에 둥둥 떠 있었는데, 라파엘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라파르트 대주교는 흐릿한 눈으로 그 비닐을 살펴보더니, 순식간에 표정이 굳었다.
어지간한 일로는 쉽게 무너지지 않던 라파르트 대주교의 포커페이스조차도 라파엘 앞에서는 허무하게 무너졌다.
“성하, 제가 잘못 보는 게 아니라면…….”
“잘못 보시는 게 아닙니다. 보시는 그대로입니다.”
“교황님! 이건 제가 자아아아알 보관을 해서 연구를 한번 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국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또 듭니다, 흐하하!”
비닐로 감겨 있는 걸 보면 대충 예상할 수 있겠지만, 저건 ‘릴리스의 화신체였던 것’이다.
심각한 마기로 오염되어 있는 시체.
원래라면 한 치의 고민도 없이 폐기하는 게 마땅했으나, 내 관리 감독 아래라는 조건하에 라파엘이 직접 연구를 하기로 했다.
평범한 사람이면 절대로 연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시체에서 흘러나오는 마기가 끔찍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바알의 시체는 없습니다.”
“아쉽군요. 하지만 이거면 충분합니다. 마기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데에 훌륭한 단서가 되어 줄 겁니다.”
생각보다 온전했던 릴리스의 시체와는 달리, 바알의 시체는 갈기갈기 찢겼다.
그것은 군에서 보유하고 있던 천벌을 한 발도 남기지 않고 무자비하게 쏴 댄 결과였다.
릴리스의 화신체는 정밀한 공격에 의해 숨이 끊겼기 때문에, 바알과 비교하면 온전한 상태로 쓰러졌다.
그리고 저 특수 비닐에 꽁꽁 감긴 채로 라파엘의 실험체가 되는 미래를 맞이하게 되었다.
마왕의 영혼은 다시 빠져나갔지만, 그래도 실험체로서의 값어치는 충분했다.
“지정된 장소에서만 연구를 진행하는 겁니다, 라파엘.”
“물론입니다. 저도 일찍 죽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라파엘에게 배정된 장소는 내가 신성석 광산에다가 마련해 준 연구실이었다.
사실, 나는 장소만 제공해 줬다.
채굴이 끝난 갱도를 통째로 하나 건네줬는데, 5시간 만에 그곳에 연구 시설을 완성시키더라.
그곳에서 연구를 진행한다면 마기가 확산될 걱정은 없었다.
“아, 그런데 그 정화자라는 놈들 말입니다. 게이트와 관련된 기술을 개발한 것 같은데…… 어떻게, 제가 직접 중국에 다녀올까요? 몇 명 잡아 오면 캐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라파엘이 중국에 발을 내딛는 순간 뭐가 터지는 줄 알아요?”
“음, 글쎄요?”
“3차 세계대전입니다. 아시겠어요?”
나라고는 중국 가기 싫은 줄 아나.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중국에 쳐들어가서 정화자 놈들을 뿌리 뽑고 싶은 심정이다.
마왕의 화신체들을 키워 낸다는 거, 그건 다르게 말하자면 셀 수 없이 많은 피를 갈아 넣는다는 뜻이다.
에덴이었다면 당장 병력을 이끌고 쳐들어갔겠다만…… 이곳이 에덴이 아니라는 게 아쉬운 건 또 처음이다.
“상황을 좀 두고 봅시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크게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교황님.”
라파엘은 오른팔을 들어 올리면서 미소를 지었다.
“데이비드가 이번 게이트에서 특이한 파장을 감지해 냈습니다. 그것을 분석하면 아마 뭔가 방법이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그렇게 라파엘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신전의 뒤쪽을 향해 걸어갔다.
미친놈이라서 그런가 어디로 튈지 당최 모르겠단 말이지.
하여간에 정부랑 이야기를 하든, 아니면 미국 쪽이랑 이야기를 하든.
정화자와 관련된 대책을 세우긴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신전 안으로 들어섰다.
6.
루나와 레오를 비롯하여 광명시 게이트에 파견되었던 인원들은 게이트가 소멸된 지 2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신전으로 복귀했다.
중상을 입은 1기 교육생들은 모두 인근에 위치한 대학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그들을 치료하기 위하여 승우와 라파르트 대주교가 직접 움직였다.
레오와 루나에게 치료 임무까지 맡기기에는 그 둘의 상태가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하, 저 진짜 죽을 뻔했는데, 어떻게 보너스는 안 주시나요? 사랑스러운 부하가 이렇게 다쳐서 왔는데…… 위로의 뽀뽀 정도는 해 줄 수 있잖아요.”
“그 입을 다치고 왔으면 더 좋았을 것 같긴 해.”
“그랬으면 입술에 뽀뽀를 해 주셨을 건가요?”
“입술에다가 붕대를 감아 뒀겠지.”
루나는 평소처럼 나에게 농담을 던졌지만, 나는 루나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탐식 그 새끼, 여전히 지독하더라구요. 애들 지키느라고 고생했다니까요? 성하는 약한 사람의 마음을 진짜 몰라. 성하는 마왕쯤이야 거뜬하겠지만, 저랑 레오는 아니라구요.”
“엄살 좀 부리지 마……라고 하기에는 좀 아파 보이기는 해.”
나는 루나의 어깨 부근에 남아 있는 상처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루나가 갑옷을 벗자마자 드러난 어깨 위의 상처.
짐승한테 물어뜯긴 듯, 이빨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게다가 환부 주위가 검게 변색되어 있는 상태였다.
바알과 직접 맞섰다는 게 티가 난다.
바알, 그 새끼는 온몸에 셀 수도 없이 많은 입을 지니고 있는 흉측한 녀석이다.
그 이빨에 물리면 곧바로 마기 잠식이 시작된다.
루나나 되니까 마기의 증식을 막아 냈던 거지, 다른 각성자였다면 순식간에 마기에 중독되어 사망했을 것이다.
나는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성수를 꺼내서 그 환부에 부었다.
그러자 루나가 호들갑을 떨어 댄다.
“꺄아아아악. 아파요, 진짜.”
“너희 다쳤다는 이야기 듣고 내가 직접 축성한 성수거든. 엄살 떨지 마.”
“아니, 성수에 도대체 뭘 넣어 둔 거예요?”
“혹시 몰라서 소독제도 넣어 뒀지. 병균 감염은 항상 조심해야 해.”
그래도 효과는 굉장히 좋았다.
루나의 어깨 부근에 잔존해 있던 마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음은 레오.”
루나의 응급처치를 대충 끝내고 곧바로 레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레오가 살짝 뒤로 물러서면서 말했다.
“걱정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만은, 이미 상처를 회복했습니다. 제 몸은 제가 직접 관리를…….”
“내가 갈까? 아니면 네가 올래?”
“……제가 가겠습니다.”
레오가 천천히 내 앞으로 다가왔다.
레오의 몸 상태는 딱 봐도 루나보다 심각했다. 레오는 어느 순간에도 검은색 사제복을 입고 다녔는데, 지금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레오의 와이셔츠를 풀어 헤쳤다.
그리고 잠시 후.
“너 왜 입원 안 했냐?”
짜증을 낼 수밖에 없었다.
딱 봐도 큼지막한 상처였다. 루나의 어깨에 남아 있던 상처와 비교한다면 루나의 상처가 아무것도 아닌 수준.
복부에 구멍이 뚫렸었다더니, 그게 과장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정말 괜찮습니다, 성하.”
“장기까지 손상되었을 상천데, 이거 맞냐?”
“보시다시피 상처 부위는 수복했…….”
“어휴.”
에덴에서야 치료할 겨를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터프하게 다녔던 거지, 솔직히 이런 상처를 입고도 병원을 안 가는 건 무식한 방법이지 싶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붕대 위에다가 성수를 들이부으면서 말했다.
“다음부터는 병원 가라.”
“……크으으.”
“재생은 재생인데, 고통은 별개의 문제잖아. 아무리 고통을 잘 견딘다고 하더라도 왜 굳이 고통을 방치해? 진통제라도 먹든가. 진통제도 안 먹었지?”
고통을 줄일 수 있는 수단이 있는데도 몸으로 버티는 꼴이 참 안쓰럽다.
그래도 내 수족이나 마찬가지인 사람들인데, 어디가서 쥐어 터지고 온 걸 두 눈으로 보니 속이 터진다.
“성수 한 병으로 안 되겠다. 루나야, 냉장고에서 한 병 더 꺼내 와라.”
“네에!”
루나가 빠르게 가져다준 성수를 곧바로 레오의 환부에다가 부었고, 레오의 입에서 다시 한번 비명 소리가 튀어나왔다.
“크윽.”
“내가 진짜 속이 터져서 살 수가 없어, 어! 칠칠맞게 배나 뚫리고 다니고, 나 너 그렇게 안 키웠다?”
“애들 살리려고 그랬던 거예요, 성하. 너무 뭐라고 하지 마세요. 이단심문관 출신들이 뭐 몸으로 때우는 것 말고는 할 줄 알겠어요?”
루나의 깐족거림이 이어지면서 레오의 응급처치도 대강 마무리되었다.
“앉아. 할 얘기가 있어.”
“네.”
“예.”
나는 그 둘을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곧바로 집무실의 벽에 걸려 있던 TV를 켰다.
“일단 뉴스를 보면서 이야기하자.”
그러자 곧 내가 방금 전까지 보고 있던 뉴스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인 혼란이 들이닥친 가운데, 현지 소식원에 따르면 현재 중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인 테러가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현재 중국이 내전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시급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길게 이어지는 뉴스.
상하이, 북경 등등.
중국의 주요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테러들.
나는 그 뉴스를 보면서 레오와 루나에게 말했다.
“중국이 여러 개가 될 것 같다.”
반가우면서도 반갑지 않은, 그런 소식이었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