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74)
174화
56. 대혼란의 시대
1.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게이트가 출현했던 다음 날 긴급 회의가 곧바로 열렸다.
참석자는 이능관리부의 유선호 장관, 나, 도깨비 길드의 최 대표, 강채아 헌터, 그리고 라파엘.
유선호 장관이 따로 마련한 자리였다.
“바쁘신 와중에 따로 모시게 되어 죄송한 마음입니다.”
“은퇴를 앞두시고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어 유감입니다, 장관님.”
“은퇴는…… 사실상 무기한 연기되었습니다.”
“저런. 우리 교단에서 스카우트할 만반의 준비를 끝내 뒀는데요.”
“아쉽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군요.”
나와 유선호 장관은 서로 간단하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잃어버린 땅을 개척하기 시작한 이후로 줄곧 밝았던 유선호 장관의 얼굴에서는 벌써 피로감이 엿보이고 있었다.
그는 나이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박력이 넘쳤던 노인이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별수 없는 것 같다.
유선호 장관의 주름이 유독 눈에 들어오는 건 내 기분 탓은 아닐 것이다.
“어제 생성되었던 게이트들은 모두 소멸된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들을 모신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유선호 장관이 손에 들고 있던 리모컨을 누르자, 곧바로 화면에 지도가 생성되었다.
정확히는 동북아시아에 한정된 지도.
한반도에 옆에 있는 거대한 땅덩이가 알록달록하게 물들어 있었다.
색깔은 못해도 9개.
“중국의 각지에서 테러를 일으키고 있는 조직들을 색깔별로 구분해 봤습니다. 중국에 있는 정보원들의 숫자가 적은 편이라, 미국과 공조하고 있습니다.”
저 다양한 색깔 모두가 다른 세력이란 말이지?
나는 손가락으로 볼을 긁었다.
회의에 참석한 인원들은 일제히 그 지도를 살피면서 각자 다양한 반응을 보여 주었다.
특히 최 대표.
최 대표는 물을 시원하게 들이켠 다음, 나를 바라보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우리 교황님께서 원하신 대로 된 것 같습니다?”
“예?”
“아니, 왜 예전에, 중국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 말씀하셨잖습니까. 어째 딱 그렇게 된 것 같아서 소름이 끼칩니다. 혹시 뭐 관여하신 건 아닙니까?”
“그럴 리가요. 저쪽엔 아직 우리 인프라도 없어요.”
예전에 라파르트 대주교에 의해 개종된 형제 하나가 넘어가기는 했지만, 내전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의 기반까진 만들지 못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런 기반을 만들었다고 해서 우리 쪽에서 먼저 움직일 생각도 없었다.
포교를 위해 나라를 무너뜨린다?
다른 사람들이 잘도 받아 주겠다.
그냥 그건 전범이다. 나는 우리 교단이 전범이 되는 걸 용납할 생각도 없고 말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거린 다음, 유선호 장관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중국 측의 공식 입장은 따로 없습니까?”
“현재 베이징에 위치한 각종 정부기관들도 큰 피해를 입은 상태로, 그쪽에서 공식 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흠.”
“이건 기밀 사항이니, 밖에서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큰 게 오는 것 같다.
유선호 장관이 기밀이라고 말하면 보통 진짜 심각한 사안이다.
유선호 장관의 말에 회의실 내부가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고, 노인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냈다.
“중국의 1호가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개판 났네 진짜. 정보 출처는요?”
“중국 정부 내부에서 흘러나온 정보입니다. 1호가 사망한 것을 확인한 일부 관료가 미국에 망명 신청을 했습니다. 정보값이지요.”
국가의 원수가 사망하면서 각지에서 무장 단체들이 들고일어나고 있는 상황.
개인적으로 중국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런 식의 전개는 생각지도 못했다.
전개가 너무 자연스러웠다.
마치 미리 각본이라도 짠 것처럼 신속하고 일사불란한 움직임이었다.
이런 경우 백 프로 각본가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각본가가 누군지를 짐작하는 건, 나에게 있어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정화자.”
중국에서 저런 일을 저지를 녀석들이라면 그놈들뿐이었으니까.
내 말에 유선호 장관은 표정을 살짝 찡그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들 역시 그렇게 예측하고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의문인 점이 있습니다.”
“의문이라고 하신다면.”
“이 정도 스케일의 사건을 일으킬 정도라면, 그들은 아마 중국 정부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힘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그 권력을 스스로 포기한 셈입니다. 권력의 속성을 생각해 봤을 때,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유선호 장관은 그렇게 말하며 물을 한 모금 목으로 넘겼다.
평생 정치인으로 살아왔다고 했던가?
그런 사람이 보기에는 확실히 정화자 놈들의 이번 행보가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녀석들의 의도가 뭔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녀석들이 원하는 건 한 나라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권력을 휘두르는, 그따위 시시한 짓이 아니다.
“녀석들이 원하는 건 딱 하나뿐입니다, 장관님.”
권력, 재물욕 등.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는 탐욕.
마기는 기본적으로 그 탐욕을 먹고 자라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하수인들의 경우일 뿐.
고위 마족, 더 나아가 마왕급에 도달한 녀석들이라면 이미 탐욕에 사로잡히는 단계를 벗어나게 된다.
에덴에서 마왕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했던 가치는 딱 하나.
“녀석들이 원하는 건 그저 혼돈입니다.”
혼돈이었다.
온갖 탐욕끼리 뒤섞이며, 그들이 보기에 흡족한 세상.
에덴에서 마왕들이 원했던 가치는 오직 혼돈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마왕들과 동등한 계약을 맺었다는 그 무명이라는 놈 역시 그들과 목적을 같이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지금 일어나는 일들?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다.
아니, 더할 나위 없이 그 목적에 부합한다.
격의 시대>라는, 아직까지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과제가 주어진 상황.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라는 나라가 분열되게 된다면, 그야말로 아비규환을 보게 될 수밖에 없었다.
“세상을 잡아먹을 혼돈. 그들을 인간의 관점에서 이해하려 들면 안 됩니다. 미친놈들이니까요.”
내 말을 들은 유선호 장관이 한참 동안 말없이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회의실에 얼마나 정적이 흘렀을까?
생각을 정리한 듯한 유선호 장관이 씁쓸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요. 예측하려 드는 것부터가 틀렸던 거군요. 이해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시우 교황님.”
“별말씀을.”
“만반의 준비를 해 두겠습니다. 대륙에서 번진 화마가 한반도까지 휩쓸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안보리가 소집되었는데, 김시우 교황님도 함께 가시겠습니까? 대한민국 유일의 이레귤러이시니 참석 자격이 충분합니다.”
“꼭 참가해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대통령님이랑 여러 전문가분들께서 알아서 잘하리라 믿습니다. 저희 교단 식구들이 많이 다쳐서, 자리를 비우기가 좀 그렇네요.”
물론 핑계다.
내가 그 자리에 있으면 이래저래 방해가 될 것 같거든.
나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고, 내 뜻을 이해한 유선호 장관이 따라서 웃었다.
그렇게 회의가 어느 정도 정리되고 있을 때쯤,
“아아. 잘 잤다.”
내 옆에서 졸고 있던 라파엘이 눈을 떴다.
“다 끝났습니까? 제가 밤을 새워 연구를 해서 그런가, 좀 피곤했네요. 그런데 교황님, 중국에 무슨 일이 벌어졌답니까?”
진짜 피곤한 캐릭터네.
그 질문에 대신 답을 해 준 건 최 대표였다.
“중국이 터졌답니다.”
그러자 라파엘이 귀를 파면서 말했다.
“미국이 터트리려고 하니까 자기들이 스스로 먼저 터진 겁니까? 거참, 성질머리 한번 화끈하네. 대륙의 기상이 대단합니다그려.”
그야말로 뒤 없는 발언.
라파엘의 성격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발언에, 유선호 장관은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교황님 주변에 계시는 분들은 하나같이 특이하신 것 같습니다.”
“……그냥 미친놈들이라고 하셔도 좋습니다.”
“허허, 그런 결례를 범할 수야 있나요.”
결례라면 일단 회의 도중에 졸고 있던 저놈이 먼저 저지른 것 같습니다만.
“정보 라인을 총가동 중이니 추가적인 정보가 들어오는 대로 김 실장을 통해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연락해 주세요.”
“이런 혼란한 시기에 김시우 교황님이 계셔서 더없이 든든합니다. 항상 죄송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대통령께서도 안부를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조만간 한번 뵈러 간다고 전해 주세요.”
“대통령께서 혹시 교황님께 빚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안부차요. 지난번에 떡볶이도 얻어먹었고 해서요. 누가 들으면 제가 사채업잔 줄 알겠습니다.”
“농입니다, 농.”
그렇게 유선호 장관과의 긴급회의가 마무리되었다.
2.
회의가 끝나고 신전의 집무실로 돌아왔다.
“승우 오빠, 나도 이제 오빠랑 같이 사람들 도와주러 다닐 거야!”
“성하께서 허락해 주신 거야?”
“응! 내가 발표도 했어.”
“대단하네, 우리 시연이.”
“헤헤. 그치? 내가 좀 대단해!”
집무실에서는 두 어린아이가 베스와 백설이를 데리고 노는 중이었다.
당연히 한 명은 승우, 다른 한 명은 시연이었다.
승우가 ‘우리 시연이’라고 하니까 뭔가 기분이 요상하다. 아무리 승우가 우리 교단에서 이쁨을 받는다지만, 승우를 보고 있는 시연이의 눈빛이 반짝이는 걸 보고 있자니…… 뭔가 속이 쓰리다.
시연이가 신전에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현재 대한민국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명확하게 파악하기 전까지는 당분간 신전에서 지내기로 했기 때문이다.
“승우야.”
나는 의자에 앉은 채로 넌지시 승우의 이름을 불렀고, 그러자 시연이와 놀아 주고 있던 승우가 재빠르게 내 앞으로 달려왔다.
“부르셨어요?”
“오늘 수업은 다 했어?”
“아침에 다른 형제자매님들 입원한 병원을 다녀와서요. 수업은 따로 없다고 하셨어요.”
“음, 그렇구나. 저녁은 먹었고?”
“2시간 전에 점심을 먹어서요. 아직 저녁은…….”
“그 나이대는 많이 먹어야 돼. 가서 저녁 먹고 와.”
시연이랑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뭔가 괜히 심통이 난다.
그러나 여기에서 내가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개입했다.
“아! 승우 오빠, 나랑 같이 떡볶이 먹으러 가자!”
“그럴까?”
“루나 언니도 데리고 가면 되겠다. 아까 떡볶이 먹자고 했었거든.”
“좋아.”
……이건 내가 원하던 그림이 아니었는데.
나는 최대한 미소를 유지한 채로 시연이에게 말했다.
“시연아, 오빠한테는 왜 안 물어봐?”
“오빠는 바쁘잖아. 아직 퇴근 시간도 아니구, 그러니까 내가 승우 오빠랑 루나 언니 데리고 갔다가 올게.”
“루나도 일…… 아, 내가 오늘 휴가 줬지.”
레오와 루나에게 따로 휴가를 부여했다. 그 둘이 티를 안 내긴 했어도, 이번에 입은 부상의 여파가 없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게 이렇게 돌아올 줄은 몰랐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오빠도…… 떡볶이 좋아하는데.”
“그럼 올 때 내가 포장해 올게! 승우 오빠, 가자!”
“성하, 잠시 외출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내가 원하는 대답은 ‘오빠도 같이 가자’였거늘.
떡볶이 먹을 시간 정도는 아직 있는데…….
밝은 표정으로 승우의 손을 잡고 나가는 시연이를 보고 있자니 괜스레 서럽다.
그렇게 시연이와 승우가 밖으로 나갔고, 얼마 안 가서 인욱이가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인욱이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물었다.
“뭔 일 있어? 표정이 왜 그래?”
“딸 기르는 심정이 이런 건가 싶어서.”
“확실히 시연이가 딸같이 느껴지긴 해. 형, 승우랑 시연이 같이 있다고 심통 났구나? 그런 거 보면 은근히 보수적이야. 승우가 얼마나 착한데? 틈틈이 우리 집 와서 인사도 하고 가고, 엄청 착해. 저번에는 나 피곤해 보인다고 신성력도 써 주고 가더라.”
“이런 팍스.”
“뭐?”
“그런 게 있다. 어쩐 일이냐?”
인욱이는 자연스럽게 내 앞에 있던 콜라를 가져가서 한 모금 들이켰다. 그리고 입을 닦으면서 답했다.
“페어리들이랑 놀고 있었는데, 페어리들이 형 좀 데려와 달라고 하더라. 줄 선물이 있다나.”
“인욱아.”
“어?”
“힘내자.”
“갑자기 무슨 소리야?”
불쌍한 우리 인욱이.
같이 놀 사람이 없어서 페어리들이랑 놀다가, 페어리들의 심부름까지 하는 신세라니.
갑자기 인욱이가 안쓰러워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선물이래?”
“몰라. 형이 가서 확인해 봐.”
“선물 좋지.”
안 그래도 분위기가 어두컴컴하던 차에 잘되었다. 페어리들이랑 이야기하면서 기분이라도 전환해 봐야지.
그나저나 갑자기 선물이라.
……뭐가 이렇게 불안하지?
기분 탓인가?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