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84)
184화
3.
다음 날 아침.
리멘 교단의 공식 휴가 전 마지막 회의.
이번 휴가는 교단의 전투원들뿐만 아니라 관리직들까지 모두 포함한 휴가.
어차피 정원은 페어리가 관리해 주고, 성지 내부도 통제 중이었기 때문에 이참에 모든 직원들에게 휴가를 내줬다.
이번 기회에 휴가를 안 줬다면 정말 블랙기업 리멘에 대한 소문이 곳곳으로 퍼져 나갔을 것이다.
“후후, 성하, 이제 빚쟁이 되는 거예요?”
“시끄러워.”
오늘 회의 주제는 재원 마련이었다.
리멘과의 통화에 소비되는 2,400억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
대기업 총수들이나 국가 예산 집행기관들에게는 나름 이해할 만한 금액일지 몰라도, 아직 나는 평범한 서민의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전세금 1억이 모자라서 쫓겨났던 옛날의 기억을 떠올려 봤을 때, 2,400억이라는 금액이 나와 얼마나 거리가 먼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하, 도대체 얼마가 모자라서 회의를 해요? 강릉 갈 준비 중이었는데. 돈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제가 빌려드릴게요.”
“2,400억.”
“예?”
“2,400억 좀 빌려줘 봐 그럼.”
내 말을 들은 루나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러더니 곧 창문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회의 진행하시죠. 오늘 날씨 좋네.”
“밖에 비 오는데.”
“비 오는 날이 진짜 운치가 있잖아요?”
루나가 저러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니니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오늘은 일단 교단의 핵심 간부들만 모여 있는데, 평소와 다른 점이라면 박지원 경영고문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박지원 고문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오늘 회의의 주제가 ‘돈’이었으니까.
에덴에서도 그렇고, 지구에서도 그렇고.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다. 역시, 뭔갈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교단 차원에서 구휼 사업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전투원들 장비 챙겨 주려면 돈이 필요하고.
그건 아마 어느 세계나 마찬가지 아닐까?
“박지원 고문. 2,400억, 마련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박지원 고문에게 물었다.
우리 교단의 재정 상태에 대해서는 사실 여태까지 큰 관심이 없었다.
지금까지 살림살이는 라파르트 대주교와 박지원 고문이 도맡아서 했으니까.
내가 해 준 것이라고는 축성소를 추가해 주고, 축성소의 판매 상품을 DLC 상점에서 구매해 준 것뿐.
그런데 박지원 고문의 대답은 정말 의외였다.
“2,400억을 어디에다가 사용하실 계획이십니까?”
“리멘님으로부터 신탁을 즉각적으로 받아야 하는데, 거기에 소용되는 비용입니다.”
“일종의 국제통화료군요.”
엘리트답게 빠르게 본질을 파악하는 박지원 고문.
나는 박지원 고문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합니다. 라파엘의 기계를 통해 연결을 해야 하는데, 기계를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최상급 마정석을 가공해야 하거든요.”
“2,400억어치의 최상급 마정석이라……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박지원 고문은 태블릿 PC를 조작한 다음,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2,400억을 마련하는 건 현재로서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성하께서 생각하시는 것보다 교단의 재정은 매우 양호한 상태입니다.”
“2,400억을?”
“예. 인건비를 제외하고서 별다른 지출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개성 전초기지에서 들어오는 수익도 어마어마하구요. 유선 그룹과의 거래도 꾸준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개성 영업소’라고 부르는 곳의 매출이 장난이 아니란 소리는 들었다.
개성에서 가장 매출이 높은 상점.
헌터들을 위한 고가의 중급 성수를 판매하는 곳인데, 헌터들이 역시 씀씀이가 컸다.
잘만 사용하면 여분의 목숨을 가지고 다니는 셈이니까.
유선 그룹에서도 우리 교단을 대리해서 성수 유통을 맡고 있지만, 유선 그룹의 재고도 거의 바닥을 치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만큼 헌터들에게 있어서 우리 교단의 성수가 인기 소모품이라는 뜻이다.
“원가가 없다는 게 가장 크지요. 기껏해야 유통비. 개성 전초기지의 경우에는 유통조차 우리가 직접 하니, 마진율이 100프로에 가깝습니다.”
“……말도 안 되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교단 전투원들의 장비들은 대부분 자체 제작을 하고 있기도 하고, 이렇다 할 지출이 딱히 없습니다. 당연히 돈이 모일 수밖에 없죠.”
박지원 고문은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면서 말을 이어 갔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라면?”
“최상급 마정석의 가격이 높게 형성되고 있는 건 최상급 마정석의 성능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공급이 적다는 겁니다. 최상급 마정석이 매물로 나오는 즉시 전 세계의 마법 계열 플레이어들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이 달려듭니다.”
박지원 고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쉰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돈이 있어도 구매하기가 힘들 것이다, 그 말이잖아요.”
“그렇습니다. 회의가 끝나는 대로 국내 대기업들에게 문의를 넣어 보겠지만, 제가 알기로는 다른 기업들도 최상급 마정석 수급에 문제가 있습니다.”
잃어버린 땅을 개척하기 시작하면서 상급 마정석까지는 공급이 많아졌다고 들었는데, 최상급 마정석은 아직인 모양이다.
“정부 측에는 문의를 해 보셨습니까?”
“이번에 잃어버린 땅 수복 작전 때문에 남아 있던 최상급 마정석을 전량 소모했다고 합니다. 상급 마정석으로 대체하는 것도 불가능하구요.”
“라파엘이 최상급 마정석이 아니면 사이킥 수정을 만들 수 없다는데 어떻게 해?”
내 대답을 들은 박지원 고문은 태블릿 PC를 다시 한번 조작했다.
“답은 해외에서 구해 오는 것뿐이군요. 현재, 세계에서 최상급 마정석 보유량이 가장 많은 국가는 미국입니다. 그다음 러시아, 중국. 중국의 경우에는 현재 내전 중이라서 논외로 치고, 남는 건 미국과 러시아인데……”
“미국에 구매 문의를 해 보겠습니다.”
“성하께서 직접 말씀이십니까?”
“제가 직접 문의를 넣으면 뭐 어떻게든 되겠죠. 미국 대통령 번호도 있는데.”
LA에 있을 때 전화 통화를 한번 했던 게 이렇게 스노우볼이 되어 굴러오나?
정 안 되면 라파엘을 통해서 연락을 넣어도 되고.
내 대답을 들은 박지원 고문은 웃으면서 말했다.
“중국이 내전 중이더라도 방법은 있을 겁니다. 제가 따로 알아는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리멘 교단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미국 쪽에 문의를 넣는 것으로 오늘 회의는 끝.
그래도 돈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이 시간부로 리멘 교단의 전원에게 휴가를 명령합니다. 푹 쉬고, 일주일 뒤에 봅시다. 비상 상황이 안 걸리도록 리멘님께 기도를 드리도록 하세요.”
내 휴가 명령과 함께 회의는 종료되었다.
그나저나 미국에는 어떻게 문의를 넣어야 하나?
4.
박지원 고문의 조언대로 미국 측에 문의를 넣었다.
놀랍게도 미국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더라.
-여분으로 비축해 둔 최상급 마정석이 있습니다. 교황님께서 원하시는 양 정도는 충분히 맞춰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정석의 값은 물건으로 대신 받고 싶은데, 혹시 가능하겠습니까?
미국 측에서 요구한 물품은 다름이 아니라 성수를 비롯한 축성소의 여러 물품들.
미국까지도 소문이 났는지, 미국 대통령의 입에서 먼저 제의가 들어왔다.
대답은?
당연히 승낙했지.
게다가 거래 방식도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먼저 최상급 마정석을 보내 주고, 1년에 걸쳐서 성수를 공급해 줄 것.
비록 내가 지금까지 열심히 쌓아 온 신성 점수를 축성소에 투자하게 되었지만, 어차피 축성소는 또 추가로 지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괜찮았다.
그렇게 해서 거래는 성사되었으며, 미국은 전투기와 수송기를 편성해서 곧장 배송을 시작했다.
세상에 수송기로 직접 배송받는 교황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돈도 아끼고, 이참에 축성소에 투자도 하고.
이래서 사람이 인맥이 좋아야 하나 보다.
그리하여 우리 교단의 성지에 도착하게 된 무려 2,400억어치의 마정석들.
마정석들은 도착하는 즉시 라파엘의 연구소로 향하게 되었다.
참고로 나와 라파엘은 따로 휴가를 가지 않았다.
라파르트 대주교도 마찬가지고.
대신 레오와 루나가 우리 가족들과 함께 강릉으로 떠났다.
나도 시연이랑 함께 여행을 가고 싶었건만, 퀘스트가 먼저인 건 어쩔 수 없잖아.
그렇게 마정석이 도착한 지 3일이 지났고, 마침내.
“완성되었습니다, 교황님.”
사이킥 수정 제작이 완료되었다.
경이로운 속도라고 할 수 있었다.
늘 그렇듯이 신목 앞에서 베스, 페어리들과 놀고 있던 나는 반갑게 라파엘을 맞이했다.
“엄청 빠르네요.”
“본국에서 넉넉하게 마정석을 보내와서 말이죠.”
“넉넉하게 보낸 마정석을 하나도 남김없이?”
“여부가 있겠습니까. 교황님께서 섭섭해하실까 봐 하나도 남김없이 사용했습니다, 하하!”
나중에 라파엘의 연구소를 압수수색이라도 해야겠다.
혹시 꿍쳐 둔 마정석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게 얼마짜린데.
“교황! 호구 잡힌 거야?”
“교황은 호구야!”
“호구 교황 최고!”
“최고!”
페어리들이 일제히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면서 소리쳤다.
……기분 최악이다.
나는 페어리와 베스를 뒤로한 채로 라파엘과 함께 집무실로 향했다.
사람이 없어서 그런가, 성지가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웠다.
일반인들도 출입을 못 하는 기간에다가 성지에서 일하던 사람들까지 휴가를 보내서 그런지 진짜 성지가 텅텅 비어 있었다.
드래곤의 사체를 작업하는 토비와 토비의 제자들을 제외하고서는 성지에 아무도 없었다.
항상 사람으로 북적이다가 이런 모습을 보니까 감회가 새롭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교황님.”
“뭔데요?”
“최소 10분 이상 연결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사이킥 수정들이 제법 괜찮게 나왔거든요. 하하! 나란 과학자, 천재 과학자.”
“……아, 예.”
10분을 위한 2,400억이라.
더럽게도 낭만적이군.
나는 씁쓸하게 미소를 지은 다음, 라파엘과 함께 집무실로 들어섰다.
집무실에는 지난번에 보았던 증폭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세팅도 전부 끝내 뒀습니다. 바로 연결 가능합니다.”
“마음의 준비 좀 하구요.”
“마음의 준비?”
“그래도 제가 모시는 신과 대면하는 건데, 2,400억 썼다고 기분 나쁜 표정 지을 순 없잖아요?”
“아아, 그렇군요. 편하게 하십시오.”
좋게 좋게 생각하자.
리멘이랑 연락도 하고, 퀘스트도 클리어하고.
일단 내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격>이라는 것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으니, 절대로 헛돈 쓴 게 아니다.
나는 심호흡을 몇 번 내뱉은 다음, 최대한 미소를 지었다.
“연결합시다.”
“예!”
설마 리멘이 잠시 자리를 비운 건 아니겠지? 그랬다면 진짜 사곤데.
이런저런 불안 속에서 증폭기가 가동되었다.
우우우우웅.
지난번에 느꼈던 규칙적인 공명.
증폭기에서 퍼져 나간 에너지가 빠른 속도로 신전을 채우기 시작했다.
[당신의 주신이 신탁(神託)>을 내립니다!]『기다리고 있었어, 나의 시우.』
걱정을 종식시키듯, 리멘의 신탁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죽은 것들의 요새>에서 들었던 그 불쾌한 신탁과는 차원이 다른 신탁.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깨끗하게 씻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표정이 죽상이야? 숨겨 둔 꿀단지를 빼앗긴 곰의 표정이야.』
“표현 너무 디테일하네. 그렇게 티가 나?”
『시우는 원래 억지로 웃으려고 하면 입가에 경련 오잖아. 지금이 딱 그 표정이야.』
다른 사람은 다 속여도 리멘은 못 속인다니까.
하지만 리멘 앞에서 돈 이야기를 할 수는 없…….
『아, 돈 때문이었어? 그럼 좀 예민할 만하지. 돈 엄청 많이 썼나 보다.』
“여신님 앞에서는 딴생각도 못 하겠네.”
『나를 두고 다른 여자 생각을 하고 싶어? 그럼 조금 속상할 것 같아. 이래서 장거리 커플이 힘든 건가?』
“장난은 나중에 치자. 좀 급해.”
『알았어.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가볍게 웃음소리를 낸 리멘은 곧바로 내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격을 얻었구나, 시우.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어.』
잠시 후, 그녀에게서 그동안 듣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