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85)
185화
5.
리멘이 예전에 나에게 해 줬던 신격에 대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신성력은 생명의 믿음으로부터 피어오르고, 그 신성력으로부터 신격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리멘과 연결된 후, 리멘이 나에게 해 준 말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지구에도 격이 해금되었다. 따라서 곳곳에서 신격이 등장할 것이다.
2. 그 신격이 인류에 꼭 호의적이라는 법은 없다. 또한 리멘이 지구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3.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나야말로 그 대책이다(?)」
나를 더 굴리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던 이야기.
그 이야기를 다시 한번 더 축소시켜 본다면,
“나를 계속 더 굴리겠다는 거잖아.”
『나는 어차피 바지 사장이었잖아? 시우의 역할은 달라지지 않을 거야.』
“여신이 그런 표현을 써도 돼?”
『시우 은근히 편견 있다니까? 바지 사장을 바지 사장이라고 부르지. 나야 이쪽 세계에 있기만 했고. 교단을 경영한 건 실질적으로 시우였잖아.』
리멘의 말에 틀린 부분이 없어서 뭐라고 반박을 못 하겠다.
리멘은 나에게 신성력을 지원해 주는 일종의 건물주니까.
생각해 보니 좀 억울하네.
고생은 고생대로 다 하면서 건물주로부터 해방되지 못하는 건가?
『너무해. 나한테서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어?』
“그런 뜻이 아니잖아.”
머릿속을 들여다보이는 건 언제나 좋은 기분은 아니다.
나는 씁쓸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어 갔다.
“그래서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하는 건?”
지구는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럽다. 옆 나라는 내전에 휘말렸고, 유럽과 미국은 테러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제3세계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아프리카나 중동, 중남미.
그들 중 빌런들에게 넘어간 나라가 대다수다.
이런 상황에서 내 힘이 약해지는 건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내가 약해지면 우리 식구들이 위험해지니까. 시연이, 인욱이, 할머니뿐만 아니라 리멘 교단에 속한 모두가 말이다.
식구들은 지켜 줘야지.
리멘은 이런 내 생각을 모두 들여다본다. 내 의지, 내 결심을 받아들인다.
그녀는 언제나 그랬다.
에덴을 구해 달라는 부탁을 했던 그녀지만, 에덴에서 내가 무엇을 하더라도 묵묵히 지지해 주었다.
그것은 아마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시우가 내 하위 신이 되어야 해. 그래야 나와의 연결이 끊기더라도 지구에서 힘을 유지할 수 있어.』
“이런 말 하면 안 되는데…….”
『오글거린다고? 어쩔 수 없어. 그렇게 부담 가질 필요도 없고. 역할은 달라지지 않아. 시우의 격이 높아지면 시우는 결국 신격에 도달하게 될 거야. 신성력이란 원래 그런 힘이거든.』
“마기나 마력 사용자들도 신격에 도달하나?”
『아니. 기운들마다 종착지가 달라. 마기는…… 시우도 잘 알고 있잖아? 마왕에 도달하게 돼, 마룡왕이 그러했듯.』
“마력 사용자들은?”
『각자의 이상향에 도달하게 되겠지. 마력은 원래 그런 기운이니까.』
대강 이해했다.
즉, 각 기운마다 종착지가 개별적으로 다르다는 것.
나는 신성력을 사용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결국 신격에 도달하게 되는 모양이었다.
리멘이 친절하게 설명해 준 덕에 이해하기 쉬웠다.
『시우에게는 이미 격이 생겼어. 내 하위 신으로 간택될 수 있을 정도야. 원래도 자격은 있었는데, 여태까지는 지구의 시스템이 제한하고 있었거든? 그래서 내가 계약으로 선회했던 거고. 그런데 그게 이번에 풀린 듯하네.』
“지구의 고대 신들이 다시 넘어오고 있어. 그것과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격이 맞지 않으면 신격을 상대할 수 없어. 아마 격을 높이라는 건 그것 때문일 거야.』
시스템을 선악으로 구분하는 건 굉장히 애매한 일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시스템은 고대 신들이 넘어오는 걸 가만히 지켜볼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격을 부여한 거구나.
리멘만 나를 굴리는 게 아니라, 시스템 놈도 나를 굴리고 있었던 것이다.
『미안, 시우.』
“왜 갑자기 미안해해?”
『……내 탓이야, 내 탓. 시우를 내가 데려가는 바람에……. 아마 그게 원죄일 거야. 너를 데려가면서 이쪽의 시스템과 이야기를 나눈 게 있-.』
[해당 정보에 대한 권한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이 이야기까진 아직 안 되나 보다.』
시스템은 항상 이런 순간에 초를 친다.
빌어먹을 놈.
“더 높은 격에 도달하면 그 시스템이란 것도 손볼 수 있을까?”
『가능……할걸.』
“좋아. 목표가 생겼어.”
리멘은 이쁘고 나에게 사근사근하기라도 하지, 이 시스템이란 놈은 나를 그저 굴리기만 한다.
나중에 반드시 손봐야지.
반으로 접어 버리든지 해야 속이 풀릴 것 같다. 그래도 그런 생각을 하니 동기부여가 확실해졌다.
『하위 신으로 각성한다고 해도 지금과 크게 달라지는 건 없을 거야. 내 권한을 조금 더 다양하게 대행할 수 있을 거고, 시우의 사도를 따로 임명할 수 있게 돼.』
“성좌물에서 능력을 내려 주는 것처럼, 뭐 그런 건가?”
『맞아. 내가 시우에게 능력을 내려 줬던 것처럼, 비슷하지. 그리고 선지자들의 위치도 알 수 있고, 은근히 할 수 있는 게 많다?』
이야기만 들어 보면 전혀 나쁠 게 없어 보였다.
못 먹어도 고지.
어차피 지금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반드시 내디뎌야 하는 발걸음이라면 주저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자.”
『내 하위 신이 되어 줄래?』
“신은 모르겠고, 계속 밑에는 있을게.”
내 대답에 리멘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고마워.』
내 주위로 리멘의 신성력이 모여든다.
그 신성력은 빠른 속도로 내 몸속을 파고들었다. 나를 따스하게 껴안는 것만 같은 기분.
내 몸속의 신성력이 리멘의 신성력에 감응했고, 공명하기 시작했다.
『나 리멘은 사도 김시우를 나의 친우이자 동반자. 운명을 함께할 존재로 받아들이겠다.』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차원계: 에덴>의 주신 리멘>이 당신에게 걸려 있던 제약을 해방시켰습니다.] [당신에게 신격>으로 도달하는 길이 열립니다.] [당신이 보유하고 있던 직업 사도>가 소멸합니다.] [당신의 성향에 의거하여 시스템이 당신을 혼돈 선>의 신격으로 분류합니다.] [더 높은 격에 도달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퀘스트 해방>을 완료하셨습니다.] [DLC – 교황>이 DLC – 신격>으로 업데이트됩니다. 예상 소요 시간은 지구의 시간으로 일주일…….]수많은 메시지 창이 떠오르는 가운데, 머릿속에 리멘의 은밀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거 알아 시우? 신격끼리는 결혼할 수 있어. 부담 가질 필요는 없고, 알고만 있어. 알겠지?』
문득 어렸을 때 보았던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개정판이 떠오르는군.
그리스 로마 신화는 신화가 아니라 실화였던 건가?
“그런데 지금 그게 중요해?”
『응.』
“……음, 중요하네.”
그렇게 해서 나는 리멘의 부하로서 나의 여신님께 다시 한번 충성을 맹세하게 되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뭐.
6.
2,400억을 남김없이 불태운 리멘과의 국제통화가 끝나고, 나는 다시 신목으로 돌아왔다.
엄청난 변화는 없었다. 시스템이 업데이트 중이라서 그런가, 당장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그래도 시스템 놈한테 불평불만을 표시하니 나름대로 휴가를 부여해 준 모양이다.
덕분에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같이 휴가를 보낼 가족들은 여행을 갔고, 성지 내부는 조용하고.
결국 나는 아까처럼 다시 페어리들과 베스에게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백설이를 괴롭히는 재미도 있지만, 이 백설이 놈이 눈치 좋게 가족들을 따라가서 말이지.
그래서 결국 설화, 그레이스와 함께 신목으로 피크닉을 왔다.
그레이스가 성지 밖의 카페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사 왔고, 설화는 신전의 창고에서 돗자리를 가져오고.
갑작스러운 피크닉.
시연이만 옆에 있었으면 더 완벽했을 텐데. 아쉬웠다. 시연이는 지금 바닷가에서 재밌게 놀고 있겠지?
“교황! 왜 그렇게 표정이 안 좋아?”
“우리랑 또 놀러 온 거야?”
“스마트폰! 우리한테 스마트폰을 줘! 교황 걸로 가지고 놀게!”
꿩 대신 닭이라고, 귀여운 시연이 대신에 귀여운 페어리들이 주위로 날아들었다.
특히, 페어리들의 대장이라고 할 수 있는 레아.
연분홍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레아가 날개를 파닥거리면서 나에게 묻는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표정이 복잡해.”
나는 친절한 레아의 질문에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나는 신이다.”
그러자 페어리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미쳤구나! 괜찮아, 교황이 미쳐도 우리는 교황의 편이야!”
“교황 파이팅!”
“미친 교황 파이팅!”
“힘내라고 하지 말라고…….”
매사에 긍정적인 페어리들조차 내가 신이라고 하니까 미쳤다고 하는구나.
하지만 사실인걸.
당분간은 숨기고 있어야겠다. 페어리들조차 이런데, 다른 사람들에게 가서 ‘사실 제가 이번에 신이 되었는데요.’라고 하면 반응이 어떨까?
당연히 페어리들처럼 나를 미친놈 취급하겠지.
그러니까 숨겨야겠다.
그리고 솔직히 말만 신이지, 몸이 달라진 것도 못 느끼겠다.
리멘 역시 크게 달라질 건 없다고 했으니까 아마 평소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냥 새로운 목표가 생긴 정도.
그래도 심란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사부님, 이거라도 드세요.”
“고맙다.”
나는 그레이스가 건네주는 샌드위치를 받아서 한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 그레이스를 슬쩍 쳐다보면서 말했다.
“스승님, 사부님. 호칭은 하나로 통일하면 안 될까?”
“왜요? 골라 먹는 맛이 있잖아요.”
“제자야.”
“예, 스승님.”
“성지 둘레길 30바퀴 뛰고 와라. 체력은 국력. 그것이 내가 너에게 내려 주는 오늘의 과제다.”
그러자 그레이스가 손을 내저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에이, 사부님. 장난도.”
“넌 내가 장난 같은 걸 하는 사람으로 보이냐?”
“……진짜 뛰어요?”
“어. 갑옷 입고 뛰어.”
내 말에 그레이스는 눈을 끔뻑거리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오히려 주먹을 불끈 쥐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넵!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는 그레이스.
어찌나 빨리 달리던지, 페어리들도 감탄사를 내뱉을 정도였다.
나는 그레이스의 뒷모습을 보면서 샌드위치를 한입 더 베어 물었다.
그 옆에서 스무디를 마시고 있던 설화가 한 마디 거들었다.
“오빠는 참 신기해.”
“뭐가?”
“어쩜 이렇게 미친 사람들만 모아 두는지 모르겠어. 자석 같은 사람이야.”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않을까?”
내 말에 설화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맞아.”
“너희 길드는 요새 어때?”
“3일 전에 서울로 돌아왔어. 그 전까지는 개성에서 계속 있었구.”
처음 설화와 설화 길드원들을 만났을 때가 문득 떠올랐다.
그때만 해도 설화 말고는 강한 헌터들이 없었는데, 어느새 개성에서 높은 실적을 자랑하는 길드가 되었다.
그것은 그만큼 설화가 길드 관리를 잘하고 있다는 뜻.
설화가 겉으로는 쌀쌀맞아 보여도 자기 부하들 하나만큼은 끔찍하게 아낀다.
알아서 잘하겠지.
“신탁은 잘 받고 왔어?”
“만족스러워.”
“나도 리멘님 얼굴 한번 보고 싶네. 그렇게 아름다우시다던데.”
“아름답지.”
설화는 빨대로 스무디를 몇 번 저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해.”
“보면 깜짝 놀랄 거야.”
나도 처음 봤을 땐 놀랐거든.
리멘이 현신을 안 한 지도 꽤 오래되었다. 그만큼 차원 간의 연결이 불안정하다는 뜻이겠지.
나는 컵에 담긴 얼음을 깨물었다. 그리고 작게 숨을 뱉어 냈다.
“설화야.”
“응?”
“쉴 수 있을 때 충분히 쉬어 두자.”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운 이곳.
나는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이 태풍의눈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 눈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그 어느 때보다 거친 태풍이 우리를 휩쓸 것이다.
그 태풍이 얼마나 거셀지는 사실 나조차도 모른다.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잠시 휴식하면서 태풍을 지켜보는 것뿐.
이 태풍 끝에서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아무것도 예정되지 않은 미래를 떠올리면서 다시 한번 얼음을 씹어 삼켰다.
오늘따라 얼음이 차가웠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