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9)
19화
3.
그야말로 파격적인 등장이었다.
대한민국이 자랑한다는 S급 헌터를 운동장에 심어 버린 레오 놈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본인의 사제복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 냈다.
그러더니 곧 천천히 내 쪽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2조는 곧장 대표님…… 상태 확인해.”
“막아! 못 막으면 이 주변은 쑥대밭이다! 정, 정신 차려!”
도깨비 길드의 플레이어들은 혼란스러운 와중에서도 포위망을 형성했다.
명문 길드라는 걸 스스로 증명하는 모습이긴 했지만, 포위망을 형성한 플레이어들은 이미 공포에 잔뜩 질려 있는 상태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모습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랭커조차 단번에 땅에 심어 버린 괴물인데, 랭커보다 약한 사람들은 얼마나 쉽게 심어 버릴까?
그러나 그들의 포위망은 레오 녀석에게 그 어떠한 영향도 끼칠 수 없었다.
레오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앞을 향해 걷더니, 곧 플레이어들이 형성한 포위망에 도달했다.
그리고 잠시 후.
녀석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제님들. 무의미한 전투는 그만두십시오. 저는 당신들과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리멘께서 슬퍼하실 겁니다.”
저게 방금 전에 길드 대표를 땅바닥에 심어 버린 놈의 입에서 나올 소리란 말인가.
저 뻔뻔함이야말로 치가 떨릴 수준이었는데, 더욱 충격적이었던 건 레오를 향한 도깨비 길드원들의 반응이었다.
레오의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무기를 내리며 길을 터 주었다. 그건 절대로 그들이 레오의 말에 감화가 되어 갑자기 비폭력주의자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나를 간절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즉, 나에게로 폭탄을 돌렸다는 뜻이다.
나는 그저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이 개판 일보 직전의 상황을 바라보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그리고 잠시 후.
어느새 내 앞까지 도착한 레오가 한쪽 무릎을 꿇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리멘을 섬기는 충실한 종이자 교리연구회의 수장이며, 2교구의 교구장인 레오 루멘이, 리멘의 제1 사도이자 유일한 대리자인 교황 성하께 인사를 올립니다.”
그 모습에 나는 극히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레오가 이질감이 느껴진다기보다는, 레오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언어로부터 느껴지는 이질감이었다.
나는 녀석의 인사에 가볍게 손을 휘저은 다음, 미간을 찌푸리면서 물었다.
“너 한국어는 어디서 배운 거냐?”
아까 도깨비 길드원들한테 했던 말도 그렇고, 지금 나에게 건넨 인사도 그렇고.
레오가 사용했던 언어는 다름 아닌 한국어였다.
그것도 서울 토박이라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표준어 말이다.
내 질문에 레오는 고개를 숙인 채로 대답했다.
“위대하신 리멘께서 저에게 내려 주신 은사입니다. 아름다운 언어로,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파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글까지 읽을 수 있는 거고?”
“성서를 번역해야 하기에 그 부분도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번에는 리멘이 의외의 디테일까지 챙겨 준 모양이다.
그렇지. 성공적인 종교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경전이 꼭 있어야 하는 법이지.
그래, 좋다.
그런 디테일도 잘 챙겨 왔고, 언어팩도 패치받아 온 것도 좋은데 왜.
“왜 등장하자마자 인간을 땅에 심어. 네가 무슨 농부야?”
하필이면 등장과 동시에 대형 사고를 치냐 이 말이야.
나도 귀찮은 상황을 만들기 싫어서 조용히 있었는데, 왜 당사자가 이러는 거냐고.
내 지적에 레오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더니 곧 당당하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자는 교황 성하 옆에서 살기를 내뿜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신성모독에 가까운 행위라고 판단하였고, 제가 지닌 권한과 원칙에 따라 적법한 절차를 취했을 뿐입니다.”
“……리멘이 지구의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는 알려 주지 않았니?”
“따로 신탁을 받은 바 없습니다.”
“미치겠네.”
언어팩만 달랑 패치해서 보냈다 이거지?
왜인지 귓가에 ‘헤헤, 시우! 이건 네가 알아서 해!’라고 말하는 리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쉰 다음, 레오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현 시간부로 대주교 레오 루멘에게 주어진 처벌 권한을 압수한다. 또한 지구, 아니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절대로 함부로 남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 그거 리멘 얼굴에 먹칠하는 거야. 이해했어?”
“대한민국이라고 하신다면…….”
“지금 우리가 있는 이 땅에 세워진 나라. 그리고 내가 태어난 고향.”
“알겠습니다, 교황 성하.”
의외로 레오는 순순하게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로서는 녀석에게 지금 당장 하고 싶은 말이 셀 수 없이 많았지만, 그보다 우선인 게 있었다.
나는 한숨을 연신 내쉰 다음, 손가락으로 최 대표가 박혀 있는 곳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저기에다가는 무슨 짓을 해 둔 거냐?”
저래 보여도 최 대표는 대한민국이 자랑한다는 S급 헌터였다.
그런 남자가 땅에 처박혀서 못 나온다는 건 레오가 분명 무언가 조치를 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질문에 레오는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
“투기와 살기를 내뿜고 있던 탓에 신성 결계로 잠시 봉인을 시켜 두었습니다. 가만히 내버려 두기에는 위협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신성 결계는 신성력으로 전개하는 결계인데, 원래는 마기를 지닌 존재를 구속할 때 사용한다. 하지만 신성력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상당히 유용한 편이다.
왜 최 대표가 별다른 반응이 없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풀어 줘라. 내가 제대로 설명을 안 해 준 탓이야.”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지?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것도 아니고, 미쳐 날뛰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셈인데…….
안 되겠다.
비장의 무기를 사용하는 수밖에.
나는 빠르게 판단을 내린 다음, 곧바로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뚜우우-.
잠시간의 연결음 후, 전화기 너머에서 힘이 쭉 빠진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예, 전화 받았습니다.
“김 팀장님.”
-네.
“일이 좀 잘못된 것 같아요.”
-그게 무슨…… 아닙니다. 저희가 곧바로 게이트로 출발하겠습니다. 안 그래도 근방에서 대기 중이었습니다. 딱 5분만 기다려 주시면 저희가…….
그때였다.
콰아아아아아앙-!
결계에서 풀려난 최 대표가 땅에서 솟구치더니, 곧 전신에 붉은 마력을 두른 채로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노력은 해 볼게요.”
4.
교단의 대주교라고 해서 모두가 강력한 전투력을 지니고 있던 건 아니다.
대주교의 자리는 누구보다 잘 싸우고 뛰어나다는 이유로 오르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교리를 철저하게 지키고, 남을 위해서 희생할 수 있는 고귀한 인품.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하여 많은 이들에게 추앙받아야만 오를 수 있는, 그야말로 존귀한 직분인 것이다.
실제로 대주교들 중에서 이렇다 할 전투력을 지닌 인물은 극히 드문 편이었다.
다만.
파지지지직!
“교황 성하. 물러나 계십시오. 이런 일에 힘을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 녀석, 레오만큼은 그 극히 드문 경우에 속한다.
교황청, 더 나아가 교단을 대표하는 두 개의 무력 집단.
전투사제단과 성기사단.
레오는 그중 전투사제단을 이끌고 마족과의 전쟁에서 수도 없는 전투를 승리로 이끈 영웅이었으니까.
나는 최 대표의 오른쪽 주먹을 왼손으로 막아 세운 레오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붉은색 마력을 불태우면서 끊임없이 투기를 내뿜는 최 대표를 향해 말했다.
“여기까지만 하시죠. 제가 미리 말씀 못 드린 점은 사과드리겠습니다.”
최 대표의 기세는 흡사 짐승에 가까웠다.
그가 입고 있던 옷은 이미 그가 내뿜는 마력에 의해 전소된 지 오래였고, 온갖 흉터가 새겨진 그의 우람한 상체 근육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상체 전체를 빼곡하게 채운 흉터.
그것은 그가 여태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가감 없이 보여 준다.
흉터 가득한 그의 몸과 이런 상황에서도 맹렬하게 불태우는 그의 투쟁심이야말로, 그가 여태까지 이룩해 온 투쟁의 역사를 증명하는 셈이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이르게 된 것에는 나 역시 어느 정도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처음은 말로 풀어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레오와 주먹을 맞대고 있는 최 대표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크흐흐. 시우 씨는 빠져 계쇼. 이제 한참 재밌으려니까!”
존대도, 그렇다고 하대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에 자리 잡은 듯한 말투.
파지지직-!
그가 그렇게 말하는 이 순간에도 그가 내뿜은 붉은색 마력과 레오의 신성력이 맹렬하게 충돌했다.
두 기운의 충돌에서 오는 반발력 때문에 운동장 바닥에는 벌써 큼지막한 구덩이가 몇 개 파여 버렸다.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애써 무시하면서 다시 한번 최 대표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큰 오해가 있는 것 같으니…….”
그러나 최 대표는 내 말을 끊으면서 소리쳤다.
“이 괴물이 적이 아닌 건 나도 압니다! 흐흐, 적이었으면 진작에 나를 죽였겠지.”
……진짜 돌겠네.
“아니, 알고 계시는데 왜 이러시는 겁니까.”
내 질문에 최 대표는 이빨을 드러내면서 크게 웃더니, 곧 가슴을 치면서 말했다.
“사나이의 낭만은 강자를 상대하면서 비로소 완성이 되는 법.”
“……예?”
“낭만은 때때로 목숨보다 가치 있는 법이거든.”
미친놈이다.
진짜, 진짜 제대로 미친놈이다.
온몸에서 붉은색 아우라를 내뿜으면서 저런 말을 하니까 의외의 설득력까지 피어오른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낭만이라…… 좋은 말이군요. 지구라는 세계는 경험해 보지 않았습니다만, 당신 같은 전사가 있는 걸 보니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하하하! 고맙구만.”
레오 이 녀석이 저 미친놈의 발언에 동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서로 주먹을 맞부딪친 상태에서 말이다.
혹시, 미친놈들끼리는 서로 통하는 교신망이라도 있단 말인가.
이건 내가 예측할 수 있는 범위를 아득히 뛰어넘은 전개였다.
“후우.”
나는 정신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심호흡을 몇 번 내쉬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았다가는 어지러워서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역함과 혼란스러움이 한데 뒤엉킨, 그야말로 지옥의 도가니탕.
그 와중에 레오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교황 성하께서 허락만 해 주신다면, 이 지구의 전사에게 위대하신 리멘의 힘을 보여 주고 싶습니다.”
그 말도 안 되는 질문에 내가 대답하려던 찰나.
“우리가 어린애도 아니고 싸우는 데 허락이 필요하겠소!”
최 대표의 행동이 더 빨랐다.
꽈드드득.
최 대표는 레오와 주먹이 맞닿아 있던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반대쪽 손을 기괴하게 변형시켰다.
붉은색 마력을 한껏 머금은 그의 왼팔이 선홍빛으로 물들었고, 그것을 본 레오 역시 다시 한번 새하얀 빛을 뿜어내면서 충격에 대비했다.
“크하하! 아주 즐겁-”
최 대표의 신명 나는 목소리는 끝을 맺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 대표가 반항할 시간 따위란 없었다.
나는 뛰어오르면서 순식간에 최 대표의 머리를 주먹으로 찍어 내렸고.
콰아아아아아아앙!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던 최 대표가 다시 한번 땅속 깊숙한 곳으로 처박혔다.
“좋은 말로 할 때 좀 좋게 가자는 건데, 왜 사람 성질을 돋우냔 말이야. 두 분 다 뒤지고 싶으세요? 예?”
최 대표를 순식간에 해결해 버린 후, 곧장 레오를 쳐다보았다.
방금 전의 무자비한 폭력에도 불구하고 레오는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
“역시, 교황 성하십니다.”
“에덴에서도 그랬는데, 네가 사고를 쳐 놓고 무뚝뚝한 표정을 지을 때마다 그렇게 꼴받을 수가 없더라?”
“어디까지나 원칙…….”
“닥쳐. 너도 똑같아 이 새끼야.”
콰아아아아아아앙!
나는 단 3초 만에 그 둘을 그대로 땅에다가 처박아 버린 다음, 이를 부드득 갈면서 말했다.
“한마디만 더 하십쇼들. 그러면 그냥 지옥까지 처박아 줄 테니까. 낭만 있게.”
쥐어 터져야 입을 다물지.
무슨 지들이 사춘기 청소년도 아닌데 말이야, 어?
“대……표님?”
“……으음.”
“크흠.”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도깨비 길드원들이 아까와는 다르게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들은 피아식별이 제대로 안 되는 모양인지, 그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수많은 전장을 경험했다는 베테랑들에게조차 너무나도 벅찬 현장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런 도깨비 길드원들을 슬쩍 훑어본 다음, 한숨을 내쉬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던 하늘은 빠르게 푸른색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카오스게이트가 완전하게 소멸합니다.] [퀘스트 마중>을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은 레오 루멘>에게 직접 지급받으십시오.]될 대로 되라지.
나는 진짜 조용한 픽업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는걸?
그렇게 내가 체념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젓고 있을 때였다.
“시우 니이이이이임! 저희가 왔습…….”
어느새 현장에 도착한 김 팀장이 곧 땅에 깊숙하게 파여 있는 구덩이들을 바라보더니, 곧 할 말을 잃어버렸다.
어쩌면 이 상황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이 남자가 아닐까?
나는 나를 원망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김 팀장의 시선을 애써 회피하면서 말했다.
“노력은 했어요.”
왜 저를 그렇게 쳐다보십니까.
진짜라니까요?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